부르심 이전의 바울
사도행전을 통해서 우리는 바울이 길리기아 다소에서 혈통으로는 유대인이면서 법적으로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로마 시민으로 태어났음을 알고 있다(행 22: 3, 27-28).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다소라는 도시는 길리기아 지방의 수도였고, 희랍인과 동방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던 상업과 교육의 중심 도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이 희랍 철학이나 수사학을 깊이있게 정식으로 배운 것같지는 않다. 그에게서 희랍적 요소를 볼 수는 있으나 그것은 그 곳 회당 교육을 통해서 받은 영향으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의 부모는 엄격한 유대교의 전통으로 교육하려고 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70인역 구약 성경만이 아니라 희랍적인 다른 요소들도 배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그는 희브리인 중의 희브리인(빌 3: 5)으로 자부할만큼 철저히 유대 전통을 고수하며 살았다. 그는 당대의 석학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으면서 성장한 바리새인으로서(행 22: 3) 흠이 없이 율법을 준수하였고 그 열심 또한 대단한 사람이었다(빌 3: 5-6).
따라서 그는 유대적 교육을 받았으나 동시에 희랍적 문화권에서 성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역시 유대주의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는 비록 희랍어로 번역된 성경(LXX)을 주로 배우기는 하였으나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하기까지 그는 유대교 선교사(Jewish missionary)로 봉사하였으리라는 추측까지 하게 한다(갈 5: 11).
그의 모세의 율법과 조상들의 전승에 대한 열심은 그로 하여금 그 율법과 성전 의식을 침해하는 어떤 가르침이나 행위도 참을 수 없게 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의 눈에 바로 그런 반율법적으로 보이는 기독교 신자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 율법에 대한 열심히 그로 하여금 교회의 박해자가 되게 한 것이다(갈 1: 13).
하나님께서는 선교사로서의 바울을 위하여 다른 하나의 준비를 시키셨다. 그것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 희랍 문화 안에서의 성장과 로마 시민권이었다. 희랍 문화가 지배하던 당시의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로 쓰시기 위해서는 단순히 유대교에서 배운 하나님과 그의 율법에 대한 이해와 열심만으로는 부족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는 희랍-로마 문화의 지배적인 영향 하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성장하고 교육을 받았었다. 그리고 당시의 정치적 지배국이었던 로마의 시민권까지도 가진 사람이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그를 쓰시기 위하여 철저히 준비시키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원리는 오늘도 변함 없이 적용되어야 함은 당연한 논리라고 하겠다.
'성경 > 바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의 예수와 바울 (0) | 2009.09.04 |
---|---|
바울의 시대의 원시신앙전승 (0) | 2009.09.04 |
바울 복음에 나타난 '계시'와 '전승'의 관계에 관한 연구 (0) | 2009.09.04 |
바울의 회개 이야기의 해석사 (0) | 2009.09.04 |
바울의 부르심과 회심/ 다메섹 도상에서의 바울의 회심 (0) | 2009.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