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바울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신실함’

은바리라이프 2009. 8. 29. 23:28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교했다 -‘하나님의 신실함’

백석대 김정훈 교수의 바울의 설교와 신학을 따라(2) [2007-12-05 20:48]

▲백석대학교 김정훈 교수(신약학)

3)설교의 전개

(1)이스라엘의 과거사를 언급하다(행 13:17-23)

바울은 먼저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를 언급한다. 그는 아브라함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더듬는다: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그는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내신 것,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들을 주신 것, 이스라엘이 왕을 구해 사울 왕(베냐민 지파 사람)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 왕을 세우신 것(이 때 약속을 주심), 그리고 약속하신 대로 다윗의 씨에서 구주 곧 예수를 세우신 것을 언급한다.

이것은 유대인 청중들이 다수였던 점을 감안할 때,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들은 특히 다윗의 혈통에서 메시야가 날 것을 대망하였기 때문에 바울의 이야기는 그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 역사 언급을 통해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스라엘의 역사를 주관해 오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둘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결정적으로 중요한 구속의 약속은 한 인물에게서 성취됐는데 그가 바로 예수이시다(22-23). 바울의 논지를 따라 이것을 좀 더 신학적 관점에서 정리하면 -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의 주관자이시고, 이스라엘의 역사는 구속의 역사며, 약속과 성취의 구도 속에서 전개 된다.

약속의 핵심 내용은 ‘이스라엘의 구속’, ‘이스라엘의 구속은 하나님의 뜻의 성취’, ‘구속자는 다윗의 혈통에서 난 예수(왕이며 완전한 인간)’, 그리고 ‘예수는 구주’라는 사실이다.

(2)세례자 요한의 예비 사역을 언급하다(행 13:24-26 : 눅 3:15-17과 비교)

바울은 세례자 요한의 예비사역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메시아 약속’이 성취된 사실을 논증한다. 바울은 구주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 세례자 요한이 먼저 와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다고 진술한다. 그는 세례자 요한이 ‘자기는 그리스도가 아니며, 자기 뒤에 오시는 이가 있는데 자기는 그의 신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고 진술한다. 바울은 세례자 요한의 회개의 메시지를 “구원의 말씀”이라고 정의한다.(행 13:26)

바울은 예비자로서의 세례자 요한의 사역은 ‘회개를 촉구하는 사역’이였다고 강조한다. 세례자 요한은 회개하는 자가, 오실 구주이신 예수의 제자가 될 것을 외쳤다. 또한 오실 예수의 사역은 회개하는 자에 대한 용서가 될 것임을 외쳤다. 세례자 요한에 대한 바울의 언급 속에 보이는 그의 신학의 핵심은 예수는 그리스도요, 구원자며 세례자 요한이 신을 풀기도 감당키 어려운 ‘지극히 높으신 분’이라는 것이다.

(3)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언급하다(행 13:26-37)

a.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 사실을 지적하며 이것이 구약 예언의 성취임을 언급함. (행 13:26-29)

새로운 호칭 (행 13:26a)
바울은 유대인들에 대해 새로운 명칭을 끌어들이며 그의 설교를 계속 한다: “형제 여러분, 곧 아브라함 족속의 자손들과 여러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여.” 여기서 ‘형제’라는 호칭은 듣는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준다. 이 개념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적용된다. ‘아브라함 족속의 자손’은 유대인들이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후예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을 염두한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여전히 유대교의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호칭으로 적절히 사용한다.

예수의 죽음 언급(행 13:26b-29)
바울은 세례자 요한을 통해 “구원의 말씀”을 보내셨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의 관원들이 이 사람과 안식일 마다 읽는 선지자들의 소리를 알지 못하여 그를 정죄하므로 선지자들의 말을 이루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가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묘사하는 내용이다.

‘선지자들의 말’이란 메시야가 대적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한 말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바울의 뜻은 예수를 죽인 자들이 그가 메시야인 사실을 알지 못하므로 그를 죽였다는 것이다. 또 메시야가 죽은 것은 사실은 구약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는 메시야(구원자)라는 사상을 일관되게 견지하며, 예수의 죽음을 예언과 성취의 구도 속에서 이해하고 있다.

또한 “안식일마다 읽는 선지자들의 소리를 알지 못하여”라는 말은 청중들에게 도전을 주는 말이다. 즉 형식적이며 반복적인 성구 낭독이 그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인식임을 항상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 낭독과 무지는 얼마든지 같이 갈 수 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낭독하는 언어의 뜻을 이해하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참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믿음은 참된 인식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요한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에서 이렇게 진술한다 : “믿음은 고차원적 인식이다. 그런데 이 인식은 확신에 속한 것이다.”

[행 13:28-29]에서도 바울은 26, 27절과 동일한 맥락에서 예수의 죽음을 언급한다. 그는 유대인들이 예수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으면서도, 빌라도에게 그를 죽여달라고 한 것은 성경의 예언을 응하게 함이라고 말한다. 다시 한 번, 우리는 바울이 예언과 성취의 구도 속에서 예수의 죽음을 이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