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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페스트 귀환

은바리라이프 2009. 8. 8. 23:00

[만물상] 페스트 귀환

입력 : 2009.08.07 23:22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에 종기가 생겼다. 환자는 극심한 발작과 고열에 기력이 떨어져 병에 완전히 압도됐다. 사흘 동안 피를 토하다 나흘째 숨졌다.' 1347년 프란체스코 수도회 탁발 수도사 피아차가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서 생긴 첫 페스트 희생자를 묘사한 글이다. 페스트는 3년간 유럽을 휩쓸며 인구 절반에 가까운 2500만명을 삼켰다. 이후 300년 동안 기승을 떨쳐 1665년 런던에선 한 주에 6000명이 죽기도 했다.

▶19세기 화가 뵈클린은 '페스트'라는 작품에서 낫을 든 악마가 곡식을 수확하듯 인간의 목숨을 닥치는 대로 앗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원인을 몰라 천형(天刑)으로만 여겼던 것이다. 페스트를 쥐나 쥐벼룩이 옮긴다는 건 1900년대 와서야 밝혀졌다. 미국 보건부는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건물 사이로 쥐 떼가 들끓어 페스트가 발생하자 쥐 100만 마리를 잡았다. 쓰레기통에 덮개를 씌우고 하수도도 새로 만들었다. 190명이 죽었지만 두달 만에 페스트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인류 역사상 최대 '연쇄 살인마' 페스트가 중국 서북부 칭하이(靑海)성에서 발생해 세계가 불안해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쥐 비슷한 마못을 먹고 죽은 개의 벼룩에 물린 30대 개 주인이 이틀 뒤 폐(肺)페스트로 죽었다. 이웃 2명도 연이어 죽자 당국은 2만여 주민의 이동을 통제했지만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몰래 빠져나가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칭하이에선 2004년에도 페스트로 8명이 사망했었다.

▶페스트는 림프선·폐·패혈성 3가지가 있다. 이번에 발생한 폐페스트는 사람 사이에도 침방울로 전염되는 악성이다. 고열·두통·폐렴 증상이 나타나 테트라사이클린 같은 항생제로 치료받지 못하면 발병 1~3일 만에 죽고 치사율이 80%를 넘는다. 림프선 페스트는 고열과 함께 목, 겨드랑이가 붓지만 사람끼리 전염은 안 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온난화로 쥐와 쥐벼룩 서식지가 늘어나 페스트 창궐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며 경고한다. 신종플루나 사스처럼 국경을 넘나들며 번지는 새 전염병이 지난 30년 사이 30가지나 등장했다. 우리는 페스트를 1954년 법정전염병으로 지정했지만 발병한 적이 없어 경험도 없고 대비책도 마땅찮다. 일본은 1993년에 국립도쿄의료원을 신종 전염병 연구기관으로 바꾸고 개도국 등에 연구진을 파견해 현지 연구도 하고 있다. 우리는 신종 질병 대비체제가 너무 느슨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