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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대 예배와 음악

은바리라이프 2009. 8. 3. 18:46

구약시대 예배와 음악

 

  예배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개인 또는 집단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찬양하고, 기뻐하고, 기도하며 제사 드리는 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예배의 형태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구약시대에 나타나는 예배는 제사였으며 신약시대에는 예배였다. 예배는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또한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지음받은 인간의 마땅한 도리이며 첫 예배가 있은 그 때로 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찬양은 늘 함께하여 왔다. 그러므로 예배와 음악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으며 이사야 6장 1절부터 11절에 이르는 구절을 통하여 예배자의 계시와 응답의 원리를 많은 신학자들이 예배의 모범적인 모델로 간주하는 것도 크게 하나님의 계시(revelation)와 인간들의 경배인 수직적 응답 관계의 성립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구약시대의 제사 의미는 죄된 인간이 그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나 죄를 사함 받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구약시대의 제사에는 희생물이 반드시 따랐기 때문에 성경에서 '제사'란 어휘와 '희생'이란 어위는 동의어(同義語)로도 쓰인다. 창세기 31장 54절의 "야곱이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제사(제바흐)는 이어 나오는 히브리어로 드리다(자바흐)와 동일한 어원을 가진 말이다. 여기에서 동일한 어근을 갖는 '제사'가 앞뒤로 중복되어 나오는 것은 제사는 희생의 행위와 같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성경에서 맨 처음 '희생의 피'가 나타나는 곳은 여호와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힌 사건(창 3 : 21)이지만, 구체적으로 인간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하여 동물을 잡아 희생의 피를 흘리기는 아벨의 제사가 처음이었다(창 4:3∼4). 이때로부터 구속사적인 측면에서 성경 전체의 기조 사상을 이루고 있는 피 제사의 원리가 곧 속죄의 교리로 이어진다. 즉 피 제사의 불가피성은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야기된 죄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① 죄는 그대가로 반드시 '죽음'을 지불 받게 되어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 : 23)
 ② 인간으로서는 그 죄의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 : 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 : 23)

   이 원리는 채무자와 채권자 간의 법적인 부채 관계로도 설명될 수 있다. 여기에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중으로 완전히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 무이한 한 원리가 생겨났으니 그것이 곧 구약 시대 피 제사의 원리로 상징화되어 나타났던 것이다(레 16: 10∼14; 히 10장). 왜냐하면 피는 '죽음'과 '생명'을 동시에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위기 17장 11절은 이 원리를 가장 핵심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구절이며 히브리서는 그 생생한 주석이다(히 9:11-22). 따라서 피 제사를 드리는 행위는 희생 제물의 피를 통하여 상징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바치는 것임과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보장받는 행위인 것이다. 이처럼 흠없고 순전한 동물의 피는 흘리는 이 피 제사의 원리는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사건에서 계시의 정점을 이루다가 마침내 모든 희생 제물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완성되었다. 한편 죄인인 인간들에게 있어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은 곧 죄의 빚이 청산되었음을 뜻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죽음이 구약 시대 모든 피 제사의 영정 성취임을 선언하셨다(마 26 : 26 ; 막 10 : 45). 이런 의미에서 구약시대 희생 제물의 피를 드려 제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을 이중으로 충족시키는 대속의 원리이며 동시에 십자가의 원리이다.1)

    초기 구약시대에는 특별히 구별된 제사장 제도가 없었다.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최초의 제사는 아담의 셋째 아들 셋이 아들인 에노스를 낳고 드렸던 예배이다. 창세기 4장 25절에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다른 씨(창4 25)"인 셋을 통하여 구속사를 이끌어갈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하는 말의 뜻을 정확히 풀이한다면 '이름을 불러 그에게 말을 걸다'라는 말이다. 이 말은 셋 시대에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 바른 신지식(新知識)을 갖게 된 자들이 자신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언약을 맺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인 여호와께 기도와 찬양 그리고 감사가 있는 공동 예배를 드렸다는 뜻이다.(창12:8, 창26:25, 시105:1, 행2:21, 롬10:13, 고전1:2)

    창세기 12장 7절에서 8절까지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壇)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라는 구절이 있다. 아브람은 여호와께서 아브람 자신에게 나타나셨던 그 자리에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다. 이처럼 초기 구약시대는 이처럼 족장이 제단을 쌓고 희생의 제물을 드리는 제사를 드렸다.
    제사의 바른 모형을 제시한 인물이 바로 모세이다. 하나님의 사람인(신33:1)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획과 성별된 구속사 언약을 주셨다. 모세가 하나님의 성산인 시내산(출3:1)을 여덟 차례나 오르내리며 하나님께 받은 모든 언약과 계명들은 그 당시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한 것이다. 모세가 40일을 주야로 머물며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십계명이 쓰인 두 돌판과 성막 건축을 지시 받게되며 더불어 제사에 대해 구체적인 명령을 받게 된다.
 

  1) 회막예배와 음악(출애굽에서 가나안 점령까지)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신앙생활은 회막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이었다. 출애굽기 25장 1절을 보면 출애굽하여 광야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출 25:1)",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출 25:8)라고 명하신다. 이렇게 구체적인 하나님의 명령으로 지어진 성소를 회막(출 33:7) 또는 성막(출 40:2)이라고 하였다. 또 이 성소를 구약성경의 여러 구절을 통하여 알 수 있는데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는 성별된 거룩한 곳을 회막(출 29:42, 33:7, 민 17:4)이라 하여 히브리어로 '오헬 모에드'라 하며 '약속에 의해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지성소(레 16:33), 성막(출 25:9, 출26:1 ; 히브리어 명사 '미쉬칸' 은 '머물다'의 동사에서 파생, '거룩한 장소'라는 뜻) 및 성전 등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신명기 26장 15절은 하늘을 주의 거룩한 처소라 하였으며, 거룩한 성전(미 1:2), 높은 성소(시 102:19), 거룩한 하늘(시 20:6), 거룩한 보좌가 있는 곳(시 47:8)이라 하여 이 모두를 하나님의 성소라 하였다. 이 회막은 여호와와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만남과 축제 때의 모임을 뜻하다가 신약에 와서는 증언(證言)의 장막으로 그 의미가 바뀌게 되며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장소요(창 28:18-22), 법궤가 두어진 장소가 되었다. 성전이 세워지는 왕국시대 솔로몬왕 이후부터는 예루살렘 성전이 이스라엘의 성소로 되었다.

  출애굽의 생활은 여호와께서 늘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비취사 그들을 주야로 진해하게 하셨다. 언제나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들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출 13:21-22) 또한 여호와 성막을 하나님께 봉헌한 후 구름이 회막을 덮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으며, 구름이 성막에서 떠 올라야 만이 그 행할 길을 나섰으며 낮에는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었다.(출 40:34-38) 이렇게 잦은 장소의 이동으로 인하여 성막은 이동 성소의 형태였다. 회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무는 거주지역 밖에 세웠다.(출 33:7; 민 11:24-31; 신 31:14).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출 33:7)"

   성막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성막안에 성소와 지성소가 있었다. 성막의 길이는 100규빗(45.6m)이요, 너비는 50규빗(22.8), 출입문은 20규빗(9.21m)였다. 출애굽기 40장 1절로 33절까지는 성막안에 두어야할 것들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해 주시고 있다.   

   모세의 형인 아론과 그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삼을 것을 명령하시고 제사장이 입을 거룩한 옷을 지어 입도록 하셨다. 제사 의식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명시한 성경의 장이 레위기이다. 레위기는 제사장 나라로 세워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어떠한 모습으로 가까이 나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하나님의 지침서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즉 거룩하신 하나님을 거룩하게 섬겨야 하는 인간의 성결 의무를 제시하고 특별히 제사장직과 레위인의 직분을 중심으로 제사 의식을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레위기 1장부터 7장에는 제사법에 관한 말씀이다.

    구약의 제사법에는 제사의 목적에 따라 모두 다섯 가지로 나누고 있다. 이 번제는 흠 없이 깨끗한 짐승을 드렸으며 생활 형편에 따라 수소나 수양, 수염소, 산비둘기, 집비둘기 새끼 등이 제물로 허용되었다. 이런 정결한 짐승을 가죽만 제외하고 모두 제단 위에서 불태워진다. 이 제사는 하루에 두 차례 아침과 저녁으로 드리는 정결한 제물인 타미드 제물과 유월절, 맥추절, 장막절 따위 축제날에 대량으로 드리는 무사프 제물(민28:29)이 있다. 와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이다.

<제사 목적에 따른 분류>

제사의 명칭

성격

제물

목적

영적인 의미

번제(燔祭)[올라]

자원제

(레1:2,3)

 생활 형편에 따라

 

 *흠없는 수소 (레1:3-9)

 

 *흠없는 숫염소, 수양

 

 (레1:10-13)

 

 *산비둘기, 집비둘기 새

 

끼 (레1:5-9)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 유지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헌신을 상징함

*그리스도가 생명 전체를 바침을 의미함

(마26:39-44;막14:36'눅22:42;엡5:2;빌2:5-11)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희생적인 헌신을 의미함

(롬12:1,2)

소제(素祭) [민카]

자원제

(레2:1)

 피없는 곡식으로서

 *고운 가루, 기름, 유향, 소금 (레2:1.3,13;6:15)

 *번철 또는 화덕에 기름을 넣어 구운 무교병, 무교전병

(레2:4-7;6:20,21;7:9)

 *볶아 찧은 첫 이삭

(레2:14,15)

*하나님께 대한 행위의 성별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감사를 상징함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원함

*그리스도의 인격의 무죄성을 의미함

(고후5:21;히4:15;벧전2:22;요일3:5)

*그리스도의 순수한 충성을 의미함

(7:16;8:28,29;12:49,50;17:4)

*그리스도인들의 순수한 충성을 의미함

(빌2:17;골1:29;계12:11)

화목제

자원제

(레3:1;7:12,16)

생활형편에 따라

 

 *흠 없는 수소, 암소

 

  (레3:1-5)

 

 *흠 없는 수양, 암양

 

 *염소  (레6:12-17)

*하나님과 경배자 사이의 화목과 친교

(1) 감사제: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을 감사하는 제사

(2) 서원제: 하나님꼐 서원한 예물을 드리는 제사

(3) 자원제: 하나님께 자발적 으로 드리는 제사

*그리스도를 통한 성도와 하나님과의 화평을 의미함

(롬5:1,엡2:11-23;골1:20)

속죄제

의무제

(레4:1,13,22,27)

 

신분의 차이에 따라

 

 *제사장: 수송아지


  (레4:3-12)

 

 *회중 전체:수송아지

 

  (레4:13-21)

 

 *족장:수염소(레4:22-26)

 

 *평민:암염소 또는 암 어

 

린 양 (레4:27-35)

 

*가난한 자:산비둘기 둘 또는 집비둘기 새끼둘(레5:11-13)

*극빈자:고운 가루 에바 십분의 일(레5:11-13)

*내장의 기름과 두 공팥과 그 위의 기름, 간에 덮인 꺼풀을 단에 불사름

*제사장과 회중 전체의 속죄 제물 가축과 모든 고기, 머리, 다리, 내장, 똥을 진 바깥에서 불사름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의미함(마20:28;막10:45;요1:29;롬5:25;고후5:21;엡1:7;히9:12-14,26;10:10-12;13:11-13;요일1:7)

속건제

의무제

(레5:1-4, 15)

범죄한 대상에 따라

*여호와의 성물 또는 금령을 범한자:흠없는 수양(레5:15-19)

*이웃에 대하여 범죄한 자: 흠없는 수양(레6:1-7)

*내장의 기름과 두 공팥과 그 위의 기름, 간에 덮인 꺼풀을 단에 불사름

*범죄한 물건의 보상으로 오분의 일을 더함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의미함(사53:4-6;골2:13,14;벧전2:21-24)

    제사는 모세 이후 제사장을 통하여만 드릴 수 있었다. 그것은 모세 이후 제사장 제도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누구나 다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 이외에도 구속사의 전개란 관점에서 여러모로 신약시대의 예수를 예표하며 상징하고 있다. 최초의 인류인 아담은 하나님과 직접 상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은 하나님의 낮을 스스로 피할 수밖에는 없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 에덴을 떠나게 된 인간은 특별히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자만이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었다.

    출애굽기 24장 1절에서 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과 함께 여호와에게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너 모세만 여호와에게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으라 명하신 후에 모세의 형인 아론을 들어 제사장을 삼고 제사를 관장하게 하였다. 출애굽기 8장 1절부터 2절에는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라 하셨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자신이 직접 성막에 들어가거나 제사를 드리다가 벌을 받아 그 자리에서 죽거나, 큰 재앙을 당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이야기이다.

    사무엘 상 13장 8절로 14절을 보면은 사울 왕은 사사인 사무엘이 오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가 번제를 드리게 된다. 제사는 모세 이후 제사장의 고유 권한으로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범죄를 지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한 하나님의 징벌은 사울의 왕권이 그 대(代)로 끝나게 되는 비극을 낳게 되었다.

 

  2) 성전예배와 음악(왕국시대)

  다윗왕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단에 임하여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삼하 7:5)"라고 말씀 하시고 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나니"라고 말씀 하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집이란 성전을 말하는 것으로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떠돌이 생활의 장막과 회막의 생활을 벗고 여호와가 거하실 성전을 지어 정착하게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은 "...내 집과 내 나라를 세우리니..."(대상 17:14)라는 말씀으로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함을 의미하고 궁극적으로는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와 교회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윗은 그의 통치 기간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를 소원하였으나(삼하 7:1-11)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한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다.(삼하 7:1-16) 대신 다윗은 그의 통치 전반에 걸쳐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를 꾸준히 하였다. 결국 성전 건축은 그의 아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지 4년 즉 B.C. 966년 기공하여 B.C. 959년 7월에 걸쳐 약 7년만에 완공하였다.(대하 8:1) 본격적인 성전예배가 시작된 것이다.

  성전예배는 회막예배와는 달랐다. 특히 음악에 있어서 구약시대의 성전음악은 그 규모와 형태 등 체계를 갖추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예배의 의식 및 규정 등을 정리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레위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다윗은 직접 성전을 건축하지는 않았지만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물질적 준비를 완벽하게 하였다. 또한 다윗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섬길 레위 사람들의 책임을 쳬계적으로 분담시켰다. 이같은 다윗의 의도는 막상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 사사 시대 동안 레위인들의 역할이나 활동이 극히 미미한 상태로 퇴락해 버렸기 때문에 이를 다시 회복 시켜 새롭게 성전시대를 이끌어 갈 제도의 체계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는 다윗은 레위인들을 24반열로 나누어 조직하여 그 책임을 분명하게 분담하게 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의 율법을 맡은 자들로서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 내에서 그들의 역할이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대상 23:6-23) 다윗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길 사람들을 불러모았는데 그 대상은 30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이었다.(대상 23:2-3) 레위인들은 30세가 되서야 성전에서 봉사를 할 수 있었으며 정년은 50세였다.(민 4:3) 이 수는 모세때 율례대로 집계한 수가 8,580명이었던 것이 다윗의 때에 이르러 그 수효가 38,000명이나 되었다. 그 중에 성전에서 여호와를 찬송하는 자들이 4,000명이다. 이들 중 아삽의 지휘하에 그와 그의 자손이 '신령한 노래'를(대상 25:2), 여두둔의 지휘하에 수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였으며(대상 25:3), 헤만의 지휘하에 나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대상 25:4-5)

  찬양대에 대하여 구체적인 수효를 제시하는 구절은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의 수효가 이백 팔십 팔 인이라"(대상 25:7)하였는데 이는 아삽과 헤만, 여두둔의 자손들을 24반열로 나누어 순서를 정하고 성전에서 찬양의 직무를 맡았다.(대상 25:7)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완공하여(B.C. 959년 7월) 성전을 봉헌하는 장면은 참으로 장엄하며 웅장했다. 우선 솔로몬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윗성에서 새 성전으로 옮겼다. 언약궤의 안치식이 끝난후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였는데 그 광경을 역대하 5장 12절에서 14절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단 동편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 부는 제사장 일백 이십인이 함께 서 있다가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떠라"(대하 5:12~14)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차고 찬양대와 나팔 부는 자, 제금을 우리는 자가 소리 높여 찬양하는 모습은 상상만 하여도 전신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

  <성전예배와 음악>

성전예배와 음악

관련 성구

 선별된 레위인을 중심으로 한 음악

 대상 6:31-48, 9:33, 16:24, 16:5-6, 23:5, 25:17

 전문적인 음악가 양성

 대상 15:22, 25:1~8

 찬양하는 자들

 대상 15:16, 15:27, 16:7-9, 25:2, 25:7,

 찬양의 악기에 대하여

 대상 15:19-21, 15:24, 16:5-6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나누어지게 된다. 이 분열 왕국 중 남 유다 왕국의 제 10대 왕은 웃시야이다. 웃시야 왕이 통치하던 시기에 그와 같이한 선지자가 스가랴이다. 스가랴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웃시야 왕은 순종하였으며 솔로몬 이후 가장 번성된 왕국을 건설하게 된다. 그러나 선지자 스가랴가 죽자 웃시야 왕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흔들리게 된다. 웃시아 왕은 교만한 마음을 품게 되고 급기야는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향단에 분향하려 하다가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그 자리에서 문둥병이 발하여 죽는 날까지 문둥이로 살게 되는 비참한 최후를 마치게 된다.

    이처럼 엄격한 구약의 제사 제도는 '오실 이' 즉 신약시대의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를 상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회당예배와 음악(선지자 시대)

   회당(synagogue)예배는 분열왕국의 끝인 B.C. 586년 남유다의 마지막 시드기아왕(왕위 11년)의 몰락으로 인하여 시작된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B.C. 605-562)은 유대인들을 바벨론의 잡아가 70년 간 포로 아닌 노예 생활을 하게 만든다. 이때부터 생긴 예배가 회당예배이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울리던 음악은 이미 그쳤으며 단지 시137편을 통해 바벨론 포로 생활 당시를 회상하며 쓰라린 회환의 감정을 노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시 137:1-5)

   회당이란 낱말은 그리스어로 "집회장소(gathering place)를 뜻하며 공동체의 예배당을 말한다. 이곳은 주로 예배의식, 각종 집회, 교육훈련 장소로 쓰여왔다. 예루살렘에서 성전예배를 드릴 수 없었던 바빌론 포로시절에는 회당이 교육훈련 및 기도의 장소로 부각되었다. 1세기경에는 유대인 공동체가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반드시 회당이 세워져 있었으며 에수님 당시에도 400여 개의 회당이 이었다. 큰 도시에는 여려 개의 회당들이 있었다. 70년의 성전파괴 당시 예루살렘에는 394개의 회당이 있었다고 전한다. 성전파괴 이후 회당은 성전의 일부 기능까기 겸하면서 그 중요성이 훨씬 더 커졌다. 1세기 이후의 유대교는 회당을 중심으로 존속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2)

    회당예배의 찬양에 대하여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 당시의 시대적 환경을 고려할 때 음악은 예배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회당집회가 있기 전에 발달했던 성전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수가 있으며 특별히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하나님께 드렸던 신앙고백과 간구의 찬양, 그리고 감사의 찬양이 많이 불렸을 것이다. 어려울 때의 찬양은 인간의 깊숙한 곳에 깔려있는 정서의 요구이기 때문이다. 또한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온 후에도 성전예배에서 소수의 레위인에게 맡겨졌던 찬양의 직무가 회당예배에서는 평신도의 참여라는 비교적 덜 형식적인 예배의 영향을 받아 손쉽게 회중이 함께 하는 찬송으로 불렸을 것이다. 물론 완전한 형태의 회중찬송이기보다는 단순한 낱말의 응답송(respinsorial)이었을 것이다. 성악음악에 비해 기악음악이 덜 사용되었다고 보는 것은 역시 자연스런 견해이다. 큰 규모의 기악합주 음악보다는 형식적이지 않고 자유스러운 가창이 주로 사용되었다.

    음악적인 면에서 바라볼 때 가장 현저한 특징은 성경해석 부분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영창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일상생활의 의사전달 수단인 일반 언어를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할 수 없으며, 또한 종교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찬양은 물론 성경봉독, 신앙고백, 기도까지도 시편창과 같이 영창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들은, 음악이 영적인 언어라는 것을 인식했던 것이다.3)

   정리하자면 성전예배와 회당예배의 근본적인 차이는 제물이었다. 성전예배는 "피 있는 제물"이 핵심이었는데 반하여, 회당예배에서는 예배자가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순종하도록 하기 위하여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는 일로 대치되었다. 다시말해 기독교의 예배는 성전예배와 회당예배의 영향 가운데 형성되었는데, 성례전은 "희생의 제물"을 드린 성전예배의 결과이고, 말씀선포는 성경봉독과 해석을 강조한 회당예배의 영향인 것이다.

 

2. 신약시대 예배와 음악

 

  1) 예수 그리스도 구속사 이후의 예배 

    구약시대의 예배의 형태가 제사라면 신약시대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완성되었다. 구약시대의 제사 제도의 진정한 정신이 신약의 예배로 이어지며 또한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드리는 예배를 잘 설명하고 연결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은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히브리서 10:1)"

    이 구절이 말하는 바 의미는 구약 제사의 불완전함을 말하고 있다. "... 율법은 ...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했다. 오실 그리스도의 불완전하게 미리 보여준다는 의미이다. 그러기 때문에 구약의 제사는 매일 그리고 매번 반복하여 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2절은 "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히 10 : 2)"

    구약의 제사는 오실 그리스도의 그림자임을 말해주는 구절이다. 만일 구약의 제사가 완전한 속죄요 죄사함 이었다면 죄로 인한 징벌 때문에 근심을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새 언약 아래 있는 신자는 죄를 두려워 하며 미워하되 실망에 빠질 이유는 없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로 인하여 우리는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解放)하였음이라 (롬8 : 1-2)"

    로마서 8장 1절로 2절은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지, 그 대상을 통하여 누릴 수 있는 영원한 죄사함의 축복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구절이다. 정죄함 없음의 조건은 어떤 행위를 조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 안에서'만 있다는 의미이다.

   구약의 제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으로 인하여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의 성별된 그리스도인이 되어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은 신약 성도가 하나님의 주권적 사랑에 의해 선택되었음을 알려준다. 이를 통하여 신약 시대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예배는 다음과 같이 새로워졌다.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 2:6)

   여기에서 "산 돌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는 살아 계셔서 하나님의 교회가 초석이 된다는 점에서 산돌이시고, "거룩한 제사장"이란 구약의 성도와는 달리 신약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 사역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다른 인간적인 증보가 필요없이 직접 하나님을 섬기며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만인제사장주의」라 하는데 만인제사장주의는 개신교 곧 프로테스탄트교회(Protestant Church)의 정신인 첫째, 신앙에 의한 의인 즉 프로테스탄티즘은 ‘오직 신앙에 의하여(solfida)’ 또는 ‘오직 은혜에 의하여’ 의(義)로 인정됨을 강조한다는 것과, 둘째, 성서원리로 프로테스탄티즘은 권위의 통로를 성서에만 한정한다. 교회는 성서보다 우위에 있지 않고 오히려 성서에 기초하여 존재한다. 셋째, 만인사제(萬人司祭)주의로 프로테스탄티즘에서는 전례보다도 설교가 중시되어 교직제(敎職制) 자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교직자는 제사라는 성격보다도 설교자·목회자(牧會者)의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교직자라고 해도 그 직위에 권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교직자의 신앙과 인격이 중요해지는데, 엄밀하게는 신의 말씀만이 권위이며 교직자는 신의 말씀을 전도하는 기능이다. 원리적으로는 만인이 설교하는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제사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만인이 바로 제사이다.4)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약의 제사가 신약의 예배로 바뀌게 된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인류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고 운명하실 때의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사건(마 27:51)에서도 명백히 증거되었는데 여기서 휘장이 찢어진 것은 그리스도의 찢긴 몸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열렸음을 뜻한다.(히 10:19) 또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의 하나님으로 모든 믿는 자의 하나님이 되심을 말해주는 말씀은 베드로 전서 2장 6절을 통하여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여기에서 모퉁이 돌의 의미는 유태인과 이방인을 연결하시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말한다.(슥 4:7, 행 4:11, 엡 2:20) 이어지는 구절은 "건축자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 돌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벧전 2:7-8)라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유대링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딪치는 돌과 거친 반석으로 보고 하나님의 아들임을 의심하여 대항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배척하였으나(행 13:42-46)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머릿돌 곧 믿는 모든 이에게 구원을 주는 유일한 근거로 삼으셨음을 의미한다.(시 118:22, 사 28:16, 막 12:10-12) 또 남자와 여자 사이에 계신 하나님, 제사장과 백성 사이의 하나님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5)

그리스도의 구속사

내용

관련 성구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

하나님과 회개한 인간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져 하나님께 직접 예배와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마 27:5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 11:19-20)"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분의 차별이 사라졌다.

1.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사라짐.

2. 남자와 여자 사이를 가르쳐 주시고 있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롬 10:1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2)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7-28)

제사장과 백성 사이의 예수 그리스도[만인 사제설,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 1:6)"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결론적으로 죄와 사망의 법은 분명히 존재하며 마땅히 죄에 속한 인간은 그 대가를 받아 육체적으로 사망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이 모든 죄에서 영원히 면죄받아 해방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구약시대의 희생 제사는 구약시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깨달아 기억하게 했으며, 이로 인하여 완전한 구속의 주이신 그리스도의 오심을 소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대속 받은 우리는 죄에 대해 해방되었음을 확신하는 믿음 이 필요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시대와 사도시대는 음악에 관한 기록이 그렇게 많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양으로서 제물이 되시기 위하여 골고다로 향하시기 전 마가의 다락방에서, 주님께서는 새 언약의 표로서 성만찬을 드시고,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고 하였다. 많은 성경학자들이 시편 113편-118편의 전부이거나 일부를 발췌해서 불렀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시편 113-118편을 암송하거나 노래하면서 유월절을 지켰다.6)

   바울 사도도 교회를 향하여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엡 5:19, 골 3:16)을 부를 것을 명하였다. 여기에 '시'는 구약의 시편(psalms)을, '찬미'는 찬송가(hymns)나 창작 회중 찬송을 가리키며, '신령한 노래들'이란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형태의 영적인 노래(spiritual song)들을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엄격히 구분되어 사용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예수님 당시에 살았던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필로(Philo)는 구약의 시편을 '찬미'(hymn)라 하였으며, 마가복음 14장 26절에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가니라". 예수님과 제자들이 찬미(hymn)하였다는 것은 시편을 노래한 것을 뜻한다고 하였다. 바울이 "너희가 모일 때에 찬송 시(psalm)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은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전 14:26)고 한 부분의 '찬송 시'는 시편이나 회중 찬송이 아닌 영가(spiritual song)의 범주에 속하는 노래라고 생각된다.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