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부자와 한 가난한 과부 2/2
이와 마찬가지로 본문에 나오는 '여러 부자'들이 다 과부의 가산을 삼켜서 부자가 된 자들이라거나, 그들은 다 나쁜 이들이었다고 할 수도 없다. 성경은 결코 '부함' 자체를 악하다고 정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자라고 무조건 나쁜 사람들이고 그들의 헌금은 다 가증스러운 것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과부의 헌금을 칭하시되 부자들의 헌금을 정죄하지 않으셨다. 과부의 헌금은 '참된' 헌금이요, 부자들의 헌금은 '헛된' 헌금이었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 과부가 모든 사람들(부자를 포함하여)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하셨을 뿐이다.
그러면 부자들의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돈이 많다는 것? 아니다! 많이 드렸다는 것? 아니다! 과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적게 드렸다는 것? 글쎄... 그러면 예수님은 지금 그 부자들이 '생활비 전체'를 드린 과부처럼 가진 재산 전부를 드려야 했다고 말씀하시는 것인가? 부자들의 잘못이 '전부'를 드리지 않고 '일부'(그것도 '많은' 것이긴 했지만...)만을 드린 것에 있는가? ...... 사도행전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이 '전부'가 아닌 '일부'를 드림에 근원하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전부 혹은 일부에 얽매이시는 분이 아니다. 헌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그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 있어서 부자들은 과부에 비하여 불리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얼마가 되었든 '가진 것 전부'를 드린다고 할 때, 富者와 貧者는 아무 차이가 없다. 보기에 따라서 빈자가 부자보다 더 물질에 대한 집착을 보일 수도 있겠으나, 보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빈자보다 부자가 '소유 전부'를 포기하기 힘들어 할 것이라고 해야 한다. 부자들에 비해서 과부는 자기 '소유 전부'를 포기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소유 전부'를 드리지 못하고 '풍족한 중에서' '많이 넣은' 이들이 잘못했고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그들에게 매우 불리한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20먹은 청년과 2살 된 아이를 비교하는 것처럼... 그 많은 부자들이 일반적인 사람들(또는 그리스도인들)을 보여준다면 과부는 매우 특출한 믿음과 헌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대단한 상대와 비교하므로 그들이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잘못했다고 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세계 신기록을 가진 육상 선수와 달리기하는 올림픽 선수들을 보라. 그들은 형편없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에 대해 '달리기도 못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러한 현상과 관련하여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부자와 빈자의 서로에 대한 태도이다. 부자는 빈자를 무시하고 업신여기지 말아야 하며, 빈자는 부자를 비난하고 욕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친히 이 세상에 빈자와 부자가 함께 거하도록 하셨으며, 그들의 눈에 빛을 주셨기 때문이다(잠29:13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섞여 살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 그 둘은 적대 관계에 있지 않으며 共存共生, 相互補完의 관계에 있도록 규정된 것이다. 돕는다고 뻐길 것도 없고 도움 받는다고 부끄러울 것도, 반대로 뻔뻔스러울 것도 없다.
각자가 하나님이 자기에게 정해주신 자리와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여 살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변을 사랑으로 돌보며 살고자 해야 할 것이다. 부자가 자기의 부를 정당한 방법으로 취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요, 성실히 노력하여도 재물이 늘지 않아 가난한 이들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 남의 가산을 삼키는 이들은 부자만이 아니다. 가난한 이들끼리도 남의 것을 삼키는 이들이 있으며, 부자 중에도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되 계속 부한 이들도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약자에 대하여 배려하는 마음을 늘 가져야 할 것이다(갈2: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가 논의 중에 일부 제시되었지만 그래도 차근히 정리해보자. 풍족한 중에 드린 많은 헌금과 구차한 중에 드린 생활비 전부에 대하여...
풍족한 것도 구차한 것도 다 죄가 아니다. 어떻게 해서 풍족해졌는지, 어떻게 해서 구차해졌는지 하는 원인과 방법에 따라 좋은 富도, 나쁜 貧도 있을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물론이고...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많은 헌금을 낸 부자들보다 과부의 두 렙돈을 더 칭찬하셨다. 그것은 ① 그녀의 헌금이 '구차한 중에' 드려진 것이었고, ②구차한 중에서도 자기의 '모든 소유' 그것도 '생활비 전부'를 드렸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구차한 중에서 드리기 힘들어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풍족한 중에 드리는 것을 더 힘들어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니 어느 쪽이 더 힘들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그래도 구차한 중에 드리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힘든 결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후자의 경우는 드린다 하여도 자기에게 남는 몫이 있으되, 전자의 경우는 드리고 나면 남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2000. 3. 8)
출처 : 자유혼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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