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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5만원권

은바리라이프 2009. 6. 29. 12:05
[설왕설래] 5만원권
  • 현재 통용되고 있는 화폐 가운데 최고액권은 싱가포르 1만달러다. 원화로 환산할 때 약 910만원에 달한다. 워낙 고가여서 분실신고를 하면 수표처럼 무효 처리가 가능하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할 때 주로 사용한다. 일상에서 유통되고 있는 최고액권은 스위스 1000프랑이 꼽힌다. 우리 돈으로 120만원가량 된다. 동네 슈퍼마켓 등에서도 눈에 띌 정도다. 스위스 지폐는 육안으로 분별키 어려운 미세 구멍을 뚫어 놓는 등 최첨단 위폐 방지 장치로 유명하다. 시계 등 정밀산업이 발달한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

    화폐 가치가 아니라 숫자 크기로 따지면 터키의 2000만리라를 첫손가락에 꼽을 만하다. 액면으로 따지면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가치는 1만7000원밖에 되질 않는다. 그러나 이것도 짐바브웨달러에는 무릎을 꿇어야 한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지난 1월 10조 짐바브웨달러를 발행했다. 그래봤자 4만3000원에 해당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것도 약과다. 헝가리 중앙은행은 60여년 전 ‘0’이 무려 20개인 1해(垓) 펜괴를 발행한 적이 있다. 어마어마한 이 화폐는 당시 가치로 미화 20센트에 불과했다.

    화폐는 한 나라의 역사와 정치·문화를 품고 있는 ‘모바일 시각 예술품’이라 할 수 있다. 그 나라의 경제 수준과 사회·문화적 관습은 물론 자존심을 반영한다. 국가에 대한 긍지와 애국심을 키우기 위해 인물을 새겨넣는 게 세계적 흐름이다.

    6월부터 유통될 국내 최고액권 5만원짜리 지폐에는 조선 중기의 여류 예술가인 신사임당의 초상이 담겨져 있다. 한국은행이 엊그제 지폐 견본을 공개하자 말들이 적지 않다. ‘가부장적인 현모양처 이미지’라는 게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다. 한국은행은 2007년 양성평등원칙에 따라 국민 의견을 받아 도안 인물을 선정 발표했다. 이제 와서 초상 인물을 바꾸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 세계 230여개국에서 최고액권 화폐에 여성을 채택한 나라는 이제껏 영국과 호주뿐이다. 신사임당 초상과 함께 포도와 가지 등 그의 작품이 앞면에 새겨져 있다. 다산(多産)과 풍요의 뜻으로 받아들이면 무방할 듯하다. 하지만 사임당처럼 자식을 잘 키워보겠다고 과외공부 열풍을 더욱 부채질할까봐 은근히 걱정이 된다.

    박병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