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신사임당

신사임당은 19세 때 이원수와 혼인했다. 혼례를 치른 곳이 강릉의 신부집이니, 사임당이 시집간 것이 아니라 이원수가 장가(장인집)갔다고 하겠다. 실제로 사임당은 혼인 3년 후에야 시어머니를 처음 만나 예를 올렸다. 한양 시댁에 정착한 것은 결혼 19년이 지난 뒤이니 시집살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남편 이원수는 사임당보다 세살 위이지만 여러 면에서 부인에 못미쳤다고 한다. 총명한 아내는 남편을 감화시켜 학문과 벼슬길로 이끈다. 셋째아들 율곡 이이는 어머니의 일생을 그린 <선비행장>에 “아버지가 어쩌다 실수를 하면 반드시 지적하고 옳은 도리를 간하였다”고 적고 있다. 여필종부가 아니라 남편을 꾸짖고 타이른 아내가 신사임당이었다.
강릉지방에는 이런 전설이 내려온다. 어느날 사임당이 남편에게 10년 동안 떨어져 지내자고 한다. 학업에 전념해 큰 인물이 되라는 간곡한 요청에 남편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10년 공부를 위해 떠난 첫날 이원수는 오죽헌에서 20리쯤 갔다가 돌아왔다. 아내와 생이별하자니 차마 걸음이 안 떨어졌던 것이다. 다음날 다시 출발했으나 대관령 근처에서 돌아왔다. 셋째날도 남편의 발걸음은 대관령을 넘지 못했다. 사임당은 바느질가위를 꺼내 놓고 말했다. “당신이 이렇게 나약하다면 저는 세상에 희망이 없습니다. 이 가위로 머리를 자르고 여승이 되든지, 자결하는 게 낫겠습니다.” 정신이 번쩍 든 이원수는 다음날 길을 떠나 눈에 불을 켜고 공부했다고 한다.
역사는 사실을, 전설은 진실을 담는다. 붓과 입으로 그려진 신사임당은 ‘양처’보다는 ‘현처’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그 차이는 미세해 굳이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신사임당에 대한 시각이 엇갈리듯 5만원권 유통에 대한 시각도 엇갈린다. 어쨌든 남편을 변화시킨 것처럼, 고액권 속의 신사임당은 이제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킬 것이다. 여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김태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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