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라면
김 석 환 극본
<등장인물> 미순, 진성, 최 장로, 수진, 조 집사, 박 집사, 손 목사
(막이 오르면 어두운 가운데 아나운서의 뉴스 소리가 들려 온다. )
소 리 : 지난 7월 21일부터 내리기 시작한 집중 호우로 경기 북부와 강원 일부가 큰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산사태로 근부대 막사가 매몰되어 수많은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가옥과 농경지가 침수되고 도로가 유실되는 등 엄청난 피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기상청은 오늘 오전 8시를 기해 경기와 강원에 호우 경보를 발령하고 앞으로도 200에서 400mm의 비가 더 오겠다고 예보했습니다. 특히 현재 침수로 인해 고립 상태에 있는 문산시에 계속해서 비가 내릴 경우 임진강이 범람할 위기에 있어서 가공할 만한 피해가 우려되고 있습니다. 이 시간 현재 문산의 상황이 어떤지 중계차가 나가있습니다. 현장에 나가있는 중계차를 불러서 알아보겠습니다. (소리 점점 작아지며 무대 한쪽에 있는 손목사에게 조명 들어온다. )
손목사 : 선유 제일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손관우 목삽니다. 방금 들으셨듯이 이번 여름의 수해로 우리 문산 지역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다행히 우리 교회는 약간의 고지대에 자리하고 있어서 우려할 피해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의 집과 논밭은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당했습니다. 제가 이 곳에 부임한 지 10여년이 되었습니다만 이처럼 어려움을 겪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농작물을 하나도 건지지 못한 성도들은 발만 동동 구르며 이번 감사절에 바칠 감사 예물조차 없어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우리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하실 만한 감사의 모습이 있었지요. 한 소녀의 감사 예물은 우리 모두를 감동시켰습니다. (손목사에게 비치던 조명이 꺼지고 무대 밝아진다. 은은하게 들려오는 차임벨 소리가 교회임을 알려준다. 최장로와 아들 진성이가 등장한다. )
최장로 : (휴대 전화로 통화를 하며 들어온다.) 그렇지. 그거하고 음∼ 뭐 좀 그럴듯한 거 없나? (사이) 응. 응, 그래. 그러면 그거 빨리 가져와. 잠깐. 아 지금 교회에 아무도 안 왔으니까, 조금 있다가 내가 연락하면 가져 오라구. 알겠지? (전화를 끊는다.) 흐흐흐, 진성아! 조금 있으면 물건이 올 거다.
진 성 : 아빠, 지금 가져오라고 하시지, 왜 이따가 오라고해요?
최장로 : 야, 이놈아! 지금 교회에 아무도 안 왔잖니.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가져와야 아빠가 가져온 지 알지. 참 교회에 왔으면 먼저 기도해야지. 자, 이리 와서 기도해라. (선 채로 기도한다) 거룩하시고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최장로 교회에 왔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추수 감사 주일입니다. 아버지여, 장로 체면에 감사 예물을 대충 할 수도 없고 해서 좀 신경 써서 준비했나이다.
진 성 : (기도한다) 하나님, 오늘은 추수감사절이에요. 우리 선생님이 정성껏 예물을 한 가지씩 가져 오라고 하셨는데 저는 준비를 안 했어요. 아빠가 대신 준비하신다고 했어요. 장로 아들답게 좋은 것으로 해주신대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손목사가 예배를 인도하려고 가운을 입고 들어온다. )
손목사 : 어이구, 장로님 오셨어요?
최장로 : 안녕하셨습니까, 목사님!
진 성 : 안녕하세요?
손목사 : 요즘 어떠세요?
최장로 : (거만스럽게) 흐흐 뭐, 늘 바쁘지요. 정신이 없습니다. 새벽에 나가면 밤늦게 들어와서 새벽 예배도 수요 예배도 참석하지 못합니다.
손목사 : 그래도 힘드시겠지만 장로님이 예배에 열심을 내셔야....
최장로 : (헛기침을 하며) 흠흠. 글쎄요. 워낙 사업이 바쁘다보니.... 사업이 잘 돼야 헌금도 많이 하지요. 교인들 대부분이 농사꾼들이니 제가 헌금 안 하면 교회 운영이 힘들기 때문에.... 흠흠. (손목사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조집사가 노래하며 등장한다. )
조집사 :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우우다. 짠짠짠. (목사를 발견하고 재빨리) 성령 충만으로 성령 충만으로 뜨겁게 뜨겁게..안녕하십니까? 목사님. 장로님, 안녕하셨어요? 주 예수를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하하하
최장로 : 이봐, 조집사 일요일날 성경책 끼고 교회 오면서 목포는 항구다가 뭔가? 에잉∼ 나이롱 신자 같으니라고...
조집사 : 장로님, 일요일이 아니고 주일입니다. 주의 날. 주우일. 칫!
손목사 : 아니, 조집사님. 박집사님하고 수진이는 같이 안 왔습니까?
조집사 : 아, 예~ 곧 올겁니다. 아침에 같이 나오는데 오늘이 감사절인 걸 깜박했지 뭡니까? 그래서 감사 예물 사오느라고......
최장로 : (과장되게 흥분하며) 아니, 뭐야? 어허, 나 참. 저 목사님! 이거. 이거 문제가 심각합니다. 아니, 집사가 도대체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고 있으니 말입니다.
조집사 : 어제만 해도 알았는데요. 제가 어제 술 먹고 늦게 집에 오는 바람에 그만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며) 아이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가...
최장로 : 쯧쯧, 내가 사업 관계로 한 두어 주 예배를 못 봤더니 교인들 교육이 영 안되겠어. 목사님, 이거 집사들 교육 좀 잘 하셔야겠어요. 이게 뭡니까? 도대체 이 교회는 내가 없으면 되는 일이 없다니까. 안돼. 안돼.
손목사 : 장로님, 예배는 보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겁니다.저 예배준비 때문에 실례하겠습니다. (퇴장한다. 박집사와 수진이가 등장한다. )
박집사 : 아유~ 무슨 과일 값이 그렇게 비싼지. 원~
조집사 : 얼마나 샀어?
박집사 : (최장로를 발견하고는 눈인사를 한다.) 삼천원 어치만 샀어요.
수 진 : 이제 뭐야. 좀 많이 사자니까.
박집사 : (최장로의 눈치를 보며) 이것아. 과일 값이 얼마나 비싼 줄 알아? 그리고 가져온 과일들 예배 끝나면 목사님이 다 드실텐데 많이 사야 뭔 소용이 있어.
조집사 : 그래도 그렇지. 너무했어. 아니 내가 이래뵈도 봉일천에 자리 잡고 있는 거성 패션의 사장이 아닌가?
최장로 : 거성 패션 좋아하네. 미싱사 열댓 명 있는 봉제 공장 주제에....
조집사 : 아니 장로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우리 회사가 어때서요?
박집사 : 유명 메이커에 제품을 납품하는 유망 기업이라구요.
조집사 : 그럼요. 빙빙, 조다세, 꼼푸니아, 오랜드, 언더운다... 이런 큰 회사에 납품한다구요. (무대 어두워지며 조명 들어온다. )
손목사 : 저런 장로님과 집사님은 없겠지요? 그러나 겉과 속이 너무도 다른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체면 때문에 억지로 헌금을 드리고, 감사하는 마음 없이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예물을 드리는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일년 동안 주님께서 지켜주심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한해 동안 농사를 잘 짓게 해 주심을 감사해서 정성껏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물론 수해로 인해서 드릴 것이 없었지만 나름대로 아름다운 마음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손목사를 비추던 조명 꺼지고 무대 밝아진다. )
최장로 : (휴대 전화를 건다.) 아, 난데. 아까 주문한 거 지금 빨리 가져와. (전화 끊는다.) 흠흠.
조집사 : 뭘 주문하셨어요?
최장로 : 두고 보면 알아. 흐흐흐.... (미순이가 냄비를 들고 등장한다. )
미 순 : 안녕하세요?
박집사 : 응, 미순이 왔구나. 어머 그게 뭐니?
미 순 : (창피해한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수 진 : 뭔데 (뚜껑을 열어본다.) 아니, 이건 라면아니니?
조집사 : 라면? 최장로 : 교회에서 먹으려고?
미 순 : 아니에요.
박집사 : (냄비 안을 들여다보고) 어휴~ 탱탱 불었네. 이걸 어떻게 먹니? 개나 줘야겠다. 워리야, 워리 (개를 부른다.)
미 순 : 아니에요. 이건 감사절 예물이예요.
모두들 : (놀라며) 감사절 예물?
미 순 : (고개를 숙이며) 네..
진 성 : 그런 건 개도 안 먹겠다.
조집사 : 겨우 라면을 하나님께 드리다니.
수 진 : 그만들 하세요. 무슨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렇지, 미순아?
최장로 : 이유는 무슨 이유. 하나님을 조롱하는 거야. 철딱서니하고는..
미 순 : 아니에요. 아니란 말이에요.. (울기 시작한다.) (미순의 울음소리에 손목사가 나온다. )
손목사 : 아니, 미순아! 왜 우니?
진 성 : 미순이가요. 라면을 가져왔어요. 감사 예물로요.
박집사 : 그것도 탱탱 불어터진 라면을 요.
손목사 : 미순아, 울지만 말고 목사님께 말해봐.
미 순 : 목사님, 저는 하나님께 드릴 감사 예물이 없어요.동사무소에서 매월 나오는 생활 보조비중에서 조금씩 모아둔 돈으로 감사 예물을 준비하려고 했는데 며칠 전에 할머니가 너무 아프셔서 약값으로 써 버렸어요.
손목사 : 그랬구나.
미 순 : 목사님이 사 주신 라면도 다 먹고 4개가 남았는데 어제 저녁에 할머니하고 형욱이 하고 2개먹고 오늘은 한 개로 할머니와 형욱이가 나눠 먹었어요. 저두 너무 배가 고파서 나머지 한 개를 끓어서 먹으려고 식사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 드리지도 못하면서 배고프다고 먹으려니 먹을 수가 없었어요. 나에게 남은 거라고는 라면 한그릇 뿐인데 비록 불어터진 것이지만 하나님께 드리고 싶었어요.
수 진 : 어머나, 그럼 너는 어제 저녁부터 굶었니?
미 순 :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께 드릴 예물이 없었어요. 그래서 창피하지만 라면을 가져왔어요.
박집사 : 그런 줄도 모르고... 어린것이 얼마나 배가 고플까?
조집사 : 우리가 너무했구나.
최장로 : 미순아. 장로님이 잘못했다. 용서해주렴. 내 자식만 귀한 줄 알았지 네 생각은 못했구나. 가만 (휴대전화를 건다.) 어, 난데. 아직 물건 안 떠났지? 그거, 취소야 취소. (전화를 끊는다.) 목사님, 앞으로 미순이하고 형욱이 클 때까지 제가 책임을 질랍니다. 이 아이에게 많은 것을 배웠어요. 부끄럽습니다.
손목사 : 고맙습니다, 장로님.
조집사 : 미순이 할머니 치료는 제가 돕겠습니다.
미 순 : 고맙습니다. 손목사 : 여러분들의 마음씨가 최고의 예물입니다.
박집사 : 목사님, 예배시간이에요.
최장로 : 자, 자 어서들 들어갑시다. (모두들 퇴장할 때 조명 어두워진다. 손목사에게 조명 들어온다. )
손목사 : 미순이는 어려서 사고로 부모를 잃고 어린 동생과 영양실조로 두 눈의 시력을 거의 상실한 할머니와 같이 사는 소녀 가장입니다. 교회가 나서서 그들을 돌봐야 하는데 어려운 시골 교회 형편으로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 모든 성도들이 책임입니다. 오늘 예배 때 드려진 헌금은 소년 소녀 가장을 위한 구제 헌금으로 써야겠습니다. 주님께서도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올해의 추수감사절은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찬송가 490장 2절이 흐르면서 조명 어두워진다. )
- 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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