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성극(대본)

나의아버지는 광부이십니다

은바리라이프 2009. 6. 20. 23:55

나의아버지는 광부이십니다

때 : 현대
곳 : 시골의 탄광촌 마을중 현석이네 집
나오는 사람들 :
태윤 … 선미의 남편. 이 집의 가장(아빠)이다.
선미 … 태윤의 아내. 이 집의 엄마이다.
현석 … 대학생. 이 집의 장남이다.
현주 … 고3. 이 집의 딸이다.
현수 … 막내 늦둥이.
소리 … 아주머니 목소리.

소품 :
제 1 막 1 장 … 책(현주), 수건, 화염병, 전경, 몽둥이(현석)    
제 1 막 2 장 … 술병, 봉투, 담배(태윤), 이불(선미), 도시락 가방(현주)
제 2 막 … 가방(현주), 도시락 가방(선미), 수건, 담배(태윤)
제 3 막 … 책(현석)
제 4 막 … ×
제 5 막 … 인형, 책(현주)
제 6 막 … 인형(현주)
제 7 막 … 이불(선미)
제 8 막 … 인형, 책(현주)
제 9 막 … ×
제 10 막 … 이불(선미), 쟁반, 주전자, 물컵(현수)
제 11 막 … ×



제 1 막 1 장 - 막이 열린다. (F.I) - 선미가 먼저 등장. 뒤이어 현수 등장. -

선  미 : 귀찮아, 저리가, 애가 정말 왜 이럴까?
현  수 : (선미의 팔을 잡고) 엄마 히 ---- 엄-----마,  엄마 천 원만 히----
- 현주. 책을 보면서 등장. 중간쯤에 서서 공부를 한다. 그 때 코피가 터진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코를 잡고 퇴장. 현석 수건을 두르고 화염병을 들고 막 뛰어오다 중간쯤에서 넘어진다. 이 때 전경이 뛰어와 몽둥이로 때린 후 덜미를 잡아서 끌고 감. (퇴장), (D.F), (F.O) -



제 1 막 2 장 - 장소 : 안방. - - 태윤. 술병을 들고 술에 취해서 노래를 부르며 등장. (F.I) - - 이때 반대편에서 선미 등장. -

선  미 : 어이구 이 화상. 또 퍼마셨군. 지겨워 정말

태  윤 : 나 왔소. 싸랑하는 마누라.  기분이 좋아서 한 잔 했지. (안으려 한다.)

선  미 : (뿌리치며) 징그러, 저리 가요. 뭐가 맨날 그렇게 좋아.

태  윤 : 당신은 말이야. 다 좋은데 나긋나긋한 맛이 없단 말이야.

선  미 : 뭐요? 나긋나긋? 어이고.  (조금 후) 내놔요.(손을 내민다.)

태  윤 : 뭘?

선  미 : 오늘 월급, 은행에 넘어온다고 해서 내가 아침에 찾아오라고 했잖아요.

태  윤 : 아-- 그거 여기 있지! (봉투를 꺼내 준다.)

선  미 : (봉투를 들여다보며) 왜 이거밖에 안돼요?

태  윤 : 어-- 오늘 말이야. 당신도 알지. 조씨. 아 글쎄, 그 양반이 우리 현석이 잘났다고 칭찬을 하잖아. 그래서 내 한 턱 냈지.

선  미 : 뭐예요. 어이구 내가 고양이한테 생선 가게를 맡겼지. 속터져 내가. (가슴을 친다.)

태  윤 : 현석이 들어 왔어?

선  미 : 그 놈이 벌써요? 외박을 밥 먹듯이 하고, 들개처럼 싸돌아다니기만 하니, 어쩜 제 아버지하고 똑같은지.

태  윤 : 그럼, 내 아들인데.- 현수. 눈을 비비며 등장.(O.L) -

현  수 : 아 -- 빠 (매달린다.)

태  윤 : 어이구, 내 새끼 왜 안자고 일어났어?

현  수 : (코를 막으며) 어휴 술냄새. 아빠 술 마셨구나.

태  윤 : 기분이 좋아서 딱 한잔 마셨어.

현  수: 술 조금만 마셔. 많이 마시면 아프대.

태  윤 : 그래. 그래. 내 새끼.

현  수 : 그런데 아빠. 나 소원이 생겼어.

태  윤 : 뭔데? - 이때, 선미 퇴장 -

현  수 : (선미가 사라진 쪽으로 눈길을 주며) 찬석이 그 짜식이 새 로보트 샀다고 얼마나 재는 지 알아? 나도 새 로보트 갖고 싶어.

태  윤 : 엄마한테 사 달라고 하지?

현  수 : 하루종일 조르다가 얼마나 혼났다고. 나 오늘 매맞았어.

태  윤 : 아니. 우리 막둥이를 누가 때려. 여보 임자!

현  수 : 아빠 그러지마. 나 또 혼내.  난 그냥 로보트만 사주면 돼.

태  윤 : 그래, 이 애비가 꼭 사주마.

현  수 : 야! 정말이야?

태  윤 : 그럼.

태윤현수 : (태윤과 현수. 새끼 손가락을 걸며.) 약속!

현  수 : 엄마한테 비밀이에요.(퇴장) - 이때 선미. 이불을 들로 등장. 이불을 깐다. 그 뒤에 현수 다시 등장. (O.L) -

선  미 : (퉁명스럽게) 잠이나 자요. - 현수 눕고 태윤은 겉옷을 벗는다. -

선  미 : (이불을 다독거리며) 부자 지간에 무슨 대화유.

태  윤 : 사나이들끼리 약속이야. 오늘 현수 때렸어? 왜 애한테 손찌검이야.

선  미 : 사십이 넘어서 얻은 늦둥이라고 오냐오냐 키웠더니 통 버릇이 없어요.

태  윤 : 그래도 우리 현수 만한 녀석도 없어. 어린 녀석이 제법 속이 깊어.- 현주 등장. (O.L) -

현  주 : 다녀왔습니다.

태  윤 : 이제 오느냐.- 현주. 아무 말 없이 도시락 가방을 ‘툭’ 소리나게 놓고 퇴장. -

선  미 : (발끈하여) 아니, 저 놈의 지지배가 버릇없이 무슨 짓이야. (일어선다.)

태  윤 : (선미를 잡으며) 관둬. 피곤해서 그럴 거야.(담배를 꺼내 문다.), (F.O) -



제 2 막- 장소 : 거실 - - 불이 켜지면 현주가 가방을 메고 등장. 선미. 손에 도시락 가방을 들고 뒤따라 등장. (F.I) -

선  미 : (도시락 가방을 건네며) 10분만 일찍 일어나서 밥먹고 가라고 해도.

현  주 : (퉁명스럽게)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것이 보통 일 인줄 알아. 그렇지 안아도 네시간밖에 못 자는데……. 돈이나 줘.

선  미 : 넌 어떻게된 지지배가 맨날 돈타령이냐? 안돼.

현  주 : (신경질을 부리며) 엄마는 맨날 안된대.(쿵쿵거리며 나간다.)

선  미 : 얘, 도시락 가져가야지.(나가려고 한다.) 얘는 도시락도 안가지고 가고. - 이때, 현석. 등장 -

현  석 : 엄마.

선  미 : 왜? 아참, 너 나랑 오늘 일찍 좀 들어와라. 나랑 어디 갈데가 있다.

현  석 : 나중에요.

선  미 : 또 나중이야? 너 데모 계속하는 거 아니냐? 지난 봄에 데모하다가 경찰서에 잡혀가서 아버지가 사정사정해서 다시는 데모판 근처에도 안 가겠다고 약속했잖아.

현  석 : 엄마 제발요.

태  윤 :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등장) 왜 또 아침부터 애를 들들 볶아?  어제는 어디서 잤느냐?

현  석 : 친구 집에서요.

태  윤 : 옛날부터 밥은 여기저기 다니며 얻어먹어도 잠은 한 곳에서 자랬다.

현  석 : 조심하겠습니다.

선  미 : 여보, 글쎄 이 녀석이 다시 데모를 하고 다니나 봐요.  이 얼굴 좀 보세요. (현석의 얼굴을 돌려 태윤에게 보여준다.)

태  윤 : 엄마 말이 사실이냐?

현  석 : …….

태  윤 : 얼른 대답해.

현  석 : 네.

태  윤 : (현석의 빰을 올려친다.) 고얀 녀석.

선  미 : (깜짝 놀라 태윤의 팔을 붙잡으며) 아니 이이가 미쳤나.  왜 다 큰 애한테 손을 대요. 말로 해요. 말로.

태  윤 : 말로 그만큼 했으면 지나가는 개도 알아들었을 거야. - 태윤. 계속 때리려 한다. -

선  미 : (더욱 세게 잡으며) 제발 그만 두시라니 까요.

태  윤 : 임자는 들어가.

선  미 : 현석이 아버지.

태  윤 : 빨리 안 들어가. - 선미.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퇴장. -

태  윤 : (숨을 돌리고 잠시후)  난 중학교 밖에 못 나온 무식쟁이다. 그래서 못 배운 죄로 숨이 턱턱 막히는 수천길 막장까지 내려가 석탄 캐며 이날 이때껏 살았다.  못 배워서 억울한 일도 많았고 서러운 일도 많았다. 다행히 네 녀석이 애비는 닮지 않았는지 머리가 좋아 제법 공부도 잘하고, 남들 조바심하는 대학도 별 걱정 없이 턱 들어가 줘서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못 배워서 겪은 한을 현석이 네가 풀어 주겠지 하고 그 날만을 고대하며  탄 캐는 일 힘든 줄도 모르고 여태껏 버텨 왔다. 그런데 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도대체 뭐가 불만이냐. 이 애비가 더 이상 어떻게 해. 너한테 큰 절이라도 하랴?

현  석 : 아버지께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여태껏 살아오신 세상에 불만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썩었어요. 누군가가 변화시켜야 합니다.

태  윤 : 그 누군가가 왜 하필이면 너냐. 그런 것은 좋은 집에서 고기 많이 먹고 사는 힘깨나 쓸 수 있는 녀석들이나 하라고 해.

현  석 : 아버지, 배부른 자는 배고픈 자의 고통을 모릅니다. 저와 같이 운동하는 친구들 가운데도 부잣집 녀석들이 있어요. 하지만 그 녀석들은 말뿐입니다. 그 녀석들이 하는 운동은 한낱 허상일 뿐이예요. 배고픈 자의 열망은 배고픈 사람들이 이루어 내야 합니다.

태  윤 : (말없이 듣고만 있다가) 얘기는 나중에 더하자. 건너가 밥 먹어라. - 현석 퇴장. 태윤 담배를 문다. (F.O) -



제 3 막<p> - 장소 : 현석의 방. -  - 불이 켜지면 현석이 편안한 자세로 책을 보고 있다. (F.I) - - 현수 등장. 현석 앞에 서서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식식거린다. -

현  석 : 우리 도련님이 왜 화가 나셨을까? (현수의 손을 잡으려 하자 현수가   현석이의 손을 뿌리친다.)

현  수 : 형은 나빠. 씩씩.

현  석 : 왜 그래?

현  수 : 왜 엄마 아빠 말 안 들어?  대학생이면 다야? 엄마랑 아빠 속상해서 밥도 안 드시잖아.

현  석 : 현수야. 그게 말이야.

현  수 : 시끄러워. 이제 형하고 안 놀아. 형이랑 말도 안 할거야. (빠르게 퇴장) - 현석. 일어나 관중 앞에 선다. -

현  석 : (독백) 현수야, 너는 아직 어려서 잘 몰라. 세상에는 마음먹은 대로되는 일이 별로 없단다. 현수 너처럼 엄마 아빠를 졸라서 과자 값을 타내고  로보트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세상은 쉽지가 않아. 더러운 일도 아주 많지. 남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어른들도 너무 많고. 15살 짜리 여공이 각성제까지 먹어 가며 밤새워 미싱을 돌리다가 졸려서 한쪽 손을 미싱으로 박아 버려도, 전셋값 올려 줄 오만 원이 없어서 한 집의 가장이 목을 배달아 죽을 때도 어떤 놈들은 천만 원도 훨씬 넘는 골프 회원권에다 몇 백 만원씩 하는 보석에다 아무 거리낌없이 돈을 뿌리고 다니는것이 현수 네가 살아갈 대한민국이야.  난 네가 좀 더 살기 좋은 땅에서 살게 하고 싶어. 이 병든 세상을 누군가가 고쳐야지. 형은 그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단지 그것뿐이야.  - (F.O) -



제 4 막 - 장소 : 안방 - - 불이 켜지면 태윤, 현수 등장해 있다. (F.I) -

현  수 : (태윤에게 다가가며) 아빠, 아직도 화났어?

태  윤 : 아빠가 언제 화냈냐?

현  수 : 아까 형 때문에 밥도 안 먹고 담배만 피웠잖아.

태  윤 : 먹기 싫어서 안 먹은 거야.

현  수 : 형은 나빠. 아빠말도 안 듣고 맨날 싸움만 하잖아. 형은 대학생이고 너무 재. 그렇지? 아빠. 난 대학생 같은 거 안 할거야. 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아빠처럼 광부가 될 거야.

태  윤 : 형이 대학생이어서 잘란 척하는 것이 아니야. 그리고 현수도 형처럼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생이 되어야 해. 그래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아빠처럼 석탄이나 캐는 사람이 되면 안돼.

현  수 : 아니야. 아빠가 최고야. 난 꼭 광부가 될 거야. - 태윤. 조용히 웃으며 현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F.O) -




제 5 막 - 장소 : 현주의 방 -- 현주의 방에는 늘 인형이 하나 있다. 불이 켜지면 현주. 공부를 하고 있고 선미. 등장. (F.I) -

선  미 : 현주야, 너 잠깐 엄마랑 얘기 좀 하자.

현  주 : 무슨 얘기? 나중에 하면 안돼? 나 지금 바빠.  너도 나중이냐. 니 오빠 닮아 가?

현  주 : (한숨을 쉬며 책을 내려놓는다.) 무슨 말인지 해 봐.

선  미 : 아까 니 담임 선생님한테서 전화 왔어.

현  주 : (갑자기 정색을 하며) 왜?

선  미 : 니 대학 문제로 상담 좀 하자고. 내가 바쁘다고 했다니 가정 방문도 못왔다 시면서 집으로 오신 대는구나.

현  주 : (큰소리로) 안돼.

선  미 : 아니 왜 그렇게 화를 내니?

현  주 : 선생님도 못 오시게 해. 엄마가 학교로 가란 말이야.

선  미 : 학교를 빈 손으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적어도 10만원 정도는 봉투에 넣어서 줘야 하는데 차라리 집으로 오셔서 우리 집 형편 눈으로 보시는게 훨씬 낫잖아.

현  주 : 또 그 놈의 돈이야. 맨날 돈. 돈.  엄마는 지겹지도 않아? 아무튼 선생님이 집으로 오시는 거 안돼. 싫어.  창피해.

선  미 : 아니 뭐가 창피해. 가난한게 창피해?

현  주 : 그럼 엄마는 좋아? 이 토끼장 같은, 집 같지도 않은 집이 좋냐구? 난 집도 창피하고 아빠도 창피해. 빨리 집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선  미 : 너 도대체 무슨 소리야. 아빠가 왜 창피해 응?

현  주 : 우리 반에서 아빠가 광부인 애는 나 하나 뿐이야. 엄마는 몰라. 그것이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 혹시 애들이 알까 봐 보호자 직업란 한 번 맘놓고 못 써 봤어. 엄마는 몰라. 아무것도 몰라. (뛰쳐나간다.) - 이때 태윤 등장. (O.L) -

태  윤 : 무슨 일이야. 저 녀석 왜 저래.

선  미 : 아무것도 아니에요.(황급히 퇴장), (F.O)




제 6 막<p> - 장소 : 현주의 방 -- 불이 켜지며 현주 홀로 무대 중앙에 서 있다. (F.I)

현  주 : (인형을 안고 독백) 난 대학에 가야 해. 꼭 4년제 번듯한 대학에 들어가야 해. 엄마는 기집애가 무엇 하러 4년제 대학에 가느냐. 전문 대학이나 들어가 빨리 졸업해서 돈 벌어 시집이나 가라고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어. 오빠랑 같이 대학 보내기가 벅차다고 하시지만 나도 엄마. 아빠가 낳은 딸이야. 낳았으면 학교는 끝까지 마쳐 줘야 할 것 아니야. 능력도 없으면 무엇하러 낳아. 자식의 장래에 뭐지 필요한지 조차 모르고 있어. 난 성공해야 해. 거어이 성공하고 말 거야.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집에서, 부모님한테서 탈출하고 말 거야. (F.O)



제 7 막- 장소 : 안방 - - 현수는 자고 있고 선미만 앉아 있다. - - 태윤은 가방을 들고 힘없이 등장. (F.I) -

선  미 : 왜 이렇게 늦었어요. 오늘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다면서요?

태  윤 : 우리 앞동에 사는 성철이 당신도 알지?

선  미 : 아니 그 총각이 왜요?

태  윤 : 사고가 났어. 기계에 손가락이 잘렸어.

선  미 : 네? 아니 회사 들어간지 한 달도 안됐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태  윤 : 어떻게 되긴. 병원에 있지. 나도 거기 있다가 늦게 온 거야.

선  미 : 아니 어쩌다, 완전히 잘렸어요?

태  윤 : 음.

선  미 : 이를 어째. 장가도 안간 총각이.

태  윤 : 현석이 들어왔어?

선  미 : 아니요. 못 들어온다고 전화 왔어요. 정말 어쩔려고 그럴는지.  당신이 붙잡아 놓고 따끔하게 한번 야단 좀 치세요.

태  윤 : 어디 한 두번 했나.  젊은 혈기라 어쩔 수 없나 봐. 당분간 두고 봅시다.

선  미 : 두고 보면요. 얘 아주 망칠 셈이세요? 그나마 당신 성화에 조심하는 거지 당신마저 잠자코 계시면 물 만난 고기처럼 날 뛸걸요.

태  윤 : 현주는?

선  미 : 글쎄 자취 안 시켜 준다고 저 난리 법석이니 어떻게 해요.

태  윤 : 자취? 왜?

선  미 : 고3이 길에 뿌리고 다닐 시간이 어디 있냐고. 학교 가까운 곳에 방을 얻어 달래요.

태  윤 : 허긴 새벽 첫차로 나갔다 막차로 들어오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닐 거야.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웬만하면 줘. 하숙도 아니고 자취인데……

선  미 : 내 참 학교 근처 방값이 얼마나 비싼 줄 알아요. 우리 다섯 식구 한 달 생활비보다 많아요. 제 녀석 학교 보내는 것도 난 숨이 막혀 죽겠는데…….무슨 기집애가 4년대를 가겠다고 설치는지 원 전문대 나와서 얼른 돈벌어 시집가면 좀 좋아. 소갈머리라곤 털끝만큼도 없는 지지배라니까

태  윤 :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갈 수만 있으면 가야지. 요즘엔 여자들도 배워야 해.

선  미 : 그래요. 맨날 당신만 좋고 이해심 많은 아버지. 당신이야 돈벌어서 얼마가 됐건 나한테 맡겨 버리면 그만이지만 쥐꼬리만한 봉급으로 다섯 식구 살기가 보통인 줄 알아요.

현  수 : (깨어나며) 엄마, 아빠 또 싸워. - (F.O) -



제 8 막- 장소 : 현주의 방. - - 현주는 책을 보고 있고 현석이 등장하여 현주의 주위를 돈다. (F.I) -

현  주 : (못 참겠다는 듯이) 신경 쓰여. 가만히 있어.

현  석 : (멈추며) 우리 참 오래간만이다. (인형의 주워 들며) 현주가 아직 순수한 면도 있구나.

현  주 : 웬일이야? 오빠가 집에 있을 때가 다 있고. (계속 책을 본다.)

현  석 : (앞을 보며) 어쩌다가 인간 김현석이가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여동생에게 맨날 집에 안 들어오는 사람으로 찍혔을까?  (현주를 힐끗 돌아다보고) 현주야, 오빠 얼굴 좀 쳐다봐라. 내가 아무리 못생겼기로 교과서 보다 못하냐?

현  주 : 난 바빠, 오빠처럼 한가하게 노닥거릴 시간이 없어. 학력고사가 며칠 남지 않았다구.

현  석 : (씁쓸하게 웃으며) 대학이란 건 말야. 정말 아무 것도 아니더라. ‘배움의 전당’, 풋, 말이 좋지 고등학교 다닐 때는 대학만 들어가면 다되는건 줄 알았어. 초조해 하거나 조바심 내는 일도 없고 낭만적이고, 인간적인 냄새 물씬 풍기며 살 수 있을 줄 알았지. 하지만 그건 신기루에 불과했어.

현  주 : 대학생도 대학생 나름이겠지. 난 오빠처럼 학교에 다니지는 않을 테니까……

현  석 : 물론 그렇겠지. 너는 똑똑한 애니까.

현  주 : 빈정대는 거야?

현  석 : 아니야. 난 대학의 허상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거야.

현  주 : 그래서? 나 대학에 가지 말라고 하는 소리야?

현  석 : 글쎄, 꼭 그렇다기보다는…….

현  주 : 엄마가 시켰어? 나 대학 포기시키라고?

현  석 : 왜? 엄마가 학교 포기하래?

현  주 : 시치미 떼지마. 이 집 식구들은 하나같이 똑같아 나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들 뿐이라고.(퇴장)

현  석 : 현주야. (F.O)




제 9 막 - 장소 : 안방 - - 태윤. 지독하게 술에 취해서 등장. (F.I) -

선  미 : 아니, 어디서 또 이렇게 엉망으로 취했어요?

태  윤 : 나도 알아.

선  미 : 뭘 알아요?

태  윤 : 현석이랑 현주, 날 부끄럽게 여긴다는 거 나도 잘 알아. 현수 그 녀석. 지금은 이 애비가 최고라고 하지만 그 녀석도 크면 똑같아질 거야.

선  미 :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예요.

태  윤 : 난들 어떻해? 난 뭐 이 짓이 좋아서 하는 줄 알아 수천길 막장이 좋아서 사흘이 멀다 하고 사람이 죽고 다치는 그 곳이 좋아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하다 못해 넝마주이를 해도 그 곳에서 벗어나는 게 내 소원이야. 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재주가 그것 밖에 없는걸.

선  미 : 당신 너무 많이 취하셨구요. 어서 주무세요.

태  윤 : 당신한테 늘 미안해. 제법 곱고 똑똑했었는데. 나 같은 놈 만나서 좋은 옷 한번 제대로 못 입어보구. 세 아이들하고 실갱이를 해도 도와주지도 못하고. 미안해. 임자한테 미안해. 미안하다구.(쓰러져서 잠이듬.) - 선미. 주저앉아 흐느껴 운다. (F.O) -




제 10 막 - 장소 : 안방 - - 태윤. 자고 있다. 현수. 그 옆에 앉아 있다. (F.I)

현  수 : 아빠! 빨랑 일어나. 아빠!

태  윤 : (일어나 앉으며) 현수야 물 한 잔 다오.- 현수. 나갔다 쟁반에 주전자와 컵을 갖고 들어옴. -

태  윤 : (받아 마시며) 어, 시원하다.

현  수 : 아빠.

태  윤 : 응.

현  수 : 엄마랑 싸웠어?

태  윤 : 아니. 왜?

현  수 : 이상하다. 엄마 눈이 퉁퉁 부었던데 - 이때, 선미 등장. -

태  윤 : 어제 내가 많이 취했지. 무슨 실수했나?

선  미 : 아니에요.

태  윤 : 정말 실수 안했어?

태  윤 : 정말 이라니 까요.

태  윤 : 저번에 내가 말했지? 성철이.

선  미 : 그 총각 병원에 있다고 했잖아요. 많이 나았대요?

태  윤 : 회사에서 보상 문제를 어물쩡 넘어가려고 하나 봐. 몇 번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는데 성철이 실수라는 거야. 그래서 노동 쟁의를 생각중인가봐.

선  미 : 당신도 데모를 한단 말이에요?

태  윤 : 그래야지. 남의 일이 아니잖아. 언제 내가 당할지 모르는 일인데.

선  미 : 부자 지간에 잘해 보슈.

태  윤 : 나도 현석이 녀석이 왜 저렇게 설치고 다니는지 이해가 안됐는데 막상 내 코 앞에서 일이 터지고 보니까 조금은 이해가 가.

현  수 : (밖에서 소리만) 아빠 나 연 만들어 줘.

태  윤 : 그래. (퇴장), (F.O)




제 11 막 - 장소 : 마당 -- 무대가 밝아지면, 선미가 서 있고 현석이와 현주가 같이 등장. (F.I) -

현  석 : 아니. 왜 나와 계세요.

선  미 : 아버지가 늦으시는구나.

현  주 : 또 어디서 한 잔 하시나 보죠.

선  미 : 어이구, 그놈의 술. 내 오늘은 가만있나 봐라.

현  석 : (선미의 어깨를 감싸며) 들어가세요.- 같이 퇴장. -

소  리 :  (반대편에서 소리만) 아주머님. 아주머님.

선  미 : (무대 끝으로 간다.) 이 늦은 시간에 누구세요.  어이구 웬일이세요.

소  리 : (다급하게) 큰일 났어요. 사고가 났어요. 버팀목이 쓰러지는 바람에 그만 현석이 아버지께서 많이 다치셨어요. 병원으로 옮겼는데 위독하십니다.- 현석, 현수 등장 (O.L) -

현  석 : 왜 그러세요. 엄마

현  수 : 엄마 왜 그래?

선  미 : 현석아, 이를 어쩌면 좋니 아버지가 많이 다치셨대.

현  석 : 네?

선  미 : 병원에 가야 해.(허둥지둥 나감.)- 현석. 같이 뛰어 나감. -

현  수 : 아빠! (뛰어나감.), - (F.O) -

현  석 : (소리만) 아버지는 그렇게 가셨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어렵게 입을 움직여 말씀하셨습니다. ‘현석아, 너를 믿는다.’ 마지막 순간에도 아버지는 날 믿어 주셨는데 난, 난……. (Echo)  (잠시후) 난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외가 마을 아저씨가 물었을 때 나는 모른다고 했다. 기차 안에서 앞자리의 아저씨가 물어 왔을 때도  나는 낯만 붉히었다.  바보 같으니라구.  바보 같으니라구.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서서야  나는 큰소리로 말을 했다.  나의 아버지는 탄을 캐십니다.  일한 만큼 돈을 타고 남 속이지 못하는  나의 아버지는 광부이십니다.

- 막이 내린다. -
- 참  고 -
F.I … 화면이 밝아지는 것.
F.O … 화면이 차차 어두워지는 것.
O.L(over lap) … 하나의 장면 위에 다음 장면이 겹쳐 변해 가는 장면전환(시간 경과, 동작 생략, 회상, 인물이나 사건을 비교 할 때)을 뜻한다.
S.I(snake in) … 어느 곁에 소리가 살며시 기어든다.
D.F(double fade) … 한 음이 사라지자 연이어 다른 음이 들어오는 것.(장면전환때 쓰인다.)
On(on mic) … 마이크 가까이에
off(off mic) … 마이크에서 떨어져서
Echo … 산울림이나 메아리 등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