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성경배경사

중동이야기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유대인 그리고 .. 다윗

은바리라이프 2009. 4. 13. 14:56

중동이야기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유대인 그리고 .. 다윗

2009/04/13 14:55

복사 http://blog.naver.com/matsy/40065511557

출처 자유..여행..지중해.. | 블루마블트래블
원문 http://blog.bluemarble.travel/20062351887
CCL

<가자지구>

 

최근 하마스와 이스라엘간의 전쟁, 즉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침공뉴스와  중동 정치의 맹주인 이집트에서의 두 국가의 평화 중재안으로 매일 매일 뉴스가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뉴스와 더불어 몇몇 이 두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투쟁의 역사를 다룬 기사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몇 가지 사실을 나열하고 또 분석한 후에, 성경에 기록된 사사시대부터 시작된 두 민족 사이의 갈등 (삼손 이야기로부터)이 오늘날 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말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는 두 민족 사이의 갈등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가를 강조하려고 쓴 것일 테지요.

그러나 이것은 지나친 오해라는 말을 먼저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제정로마시대 이스라엘 점령에 대한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 유대인들이 로마에 반란을 두 번씩이나 일으켰는데 기원후 66~70 1차반란 또는 대반란과 기원후 132~135 2차반란 또는 바르 코흐바 반란입니다.그러나 당시 유대의 국력이라는 것이 대로마 제국에 반란을 일으킬 정도는 결코 아니었습니다.혹 반란을 일으킬 만한 나라가 있었다면 이집트나 그리스 정도였을 터인데, 이 두 나라도 로마에 대한 반란을 생각지 못하던 때에 유대라는 작은 지방이 반란을, 그것도 두 번씩이나 일으킨 것입니다.

 

두 번째 반란 이후 당시 로마의 황제 하드리안이 유대인들에 대한 보복으로 유대라는 이름을 로마제국의 지도에서 지우고,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숙적인 블레셋 사람들의 이름을 따서 유대인들의 땅을 팔레스티나라고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때 예루살렘의 이름도 없어지고 카피톨리나라는 로마식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었지요.

즉 이 땅을 블레셋 사람들의 땅이라고 부름으로써 유대인들에게 큰 상처를 주기 위한 정치적인 의도였습니다. 로마가 세계를 다스렸기 때문에 로마가 정한 이름이 당연히 공식적인 이름이 되어그 후로부터 이 땅이 팔레스티나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답니다.

 

한편 19세기 말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시온주의 (Zionism)운동이 유대인들에 의해 일어나는데, 이때 주후 7세기 이후부터 이땅에 살고 있던 아랍 사람들도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보다는 오히려 '1,000년 이상 이 땅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 나라를 세울 권리가 있다'는 생각에서 였겠지요.

그런데 아랍 사람들은 1,000년 이상 그 땅에 살고는 있었지만, 씨족사회이나 족장(토후) 중심의 사회였지, 한번도 독립국가를 형성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국가 이름이나 민족의 이름을 정해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기왕에 이 땅에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세상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왜 유대인들이 들어와 이스라엘을 세우느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이라는 나라를 세워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하고 그들을 지지해 줄 것을 기대했겠지요.

이처럼 순전히 정치적인 배경이 있었던 것이지 지금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성서의 블레셋 사람들 사이에 어떤 혈통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성서의 블레셋 사람들은 지금의 그리스와 터키 사이의 에게 해에서 온 해양민족이며, 지금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아라비아반도에서 시작된 민족입니다.

참고로 이야기 한다면 성서에 나오는 블레셋 족속 (가나안 7족속을 포함하여) 은 이미 역사에서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결론적으로 현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성서의 블레셋 사람들과는 이름만 연관성이 있을뿐 혈통적으로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그러므로 지금 이스라엘(유대인들)과 현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의 갈등은 성서시대부터 시작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유대인들과 아랍인들과의 본격적인 갈등의 역사는, 유대인들이 이 땅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움직임을 보인 시온주의 운동 이후부터 였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제1차 대전을 전후해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서구국가들이 중동에 대한 식민지 경영을 본격화하면서 두 토착민을 분리, 갈등관계를 유발시켰던 비도덕적인 정치음모에 절대적으로 기인합니다. 세계 제1차 대전 중에 영국은 독일에 대항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 식민치하의 아랍인들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 지역에 독립을 보장해 주었죠.

하지만 동시에 영국은 비밀리에 유대인의 전쟁 참여 대가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국가 창설을 약속했습니다. 이슬람과 서구의 대결을 지울 수 없는 운명으로 바꿔놓은 사건은 1947 11 29일 유엔총회 표결이었습니다.

이 날 팔레스타인 지역을 분리해 아랍과 유대, 두 개의 독립국가로 분할하자는 안이 통과됐습니다. 찬성 33, 반대 13표였습니다.

당초 아랍인이 중심이 되는 팔레스타인 연방안이 우세했으나 미국의 집요한 제3세계 회유작전으로 결국 연방안 대신 분할안이 통과됐던 것이죠. 말이 분할안이었지 당시 인구비에서 아랍인의 1/3, 전체 면적의 7%만을 소유하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 전역의 56%를 분할한다는 내용이었고 그것도 경작가능한 대부분의 땅은 유대인 차지였습니다.

 

2,000년 동안 그 땅의 주인으로 살아온 아랍인으로서는 이주해 온 유대인을 받아들이는 연방안 자체도 억울한데 분할안 통과라니, 아마도 아랍인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과 좌절을 맛봤을 겁니다. 유엔으로부터 국가창성을 인정받은 유대인들은 영국과 미국의 지원으로 구체적인 건국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그 땅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 토착 아랍인의 저항이 워낙 완강해 큰 차질이 초래됐죠.이 때 유대 테러조직이 제2의 나치학살 사건으로 불리는 데일 야신촌 학살사건을 유발하며 비무장 아랍인들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심어줬습니다.

불과 한 달 여만에 100만 명에 가까운 아랍인들이 서둘러 인근 국가로 도피했고 이로써 소위 팔레스타인 난민문제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이로부터 한 달쯤 지난 후, 1948 5 14일 유대인들은 아랍인을 몰아낸 곳에 이스라엘 국가를 세웠습니다.

 

아랍 국가와 제3세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아랍인의 심장부에 유대국가를 건설한 것이었죠. 이스라엘은 히브리어로하느님이 지배하신다는 뜻입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30% 이상을 배출할 정도로 세계의 두뇌, 지적 엘리트 중에서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압도적입니다. 이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유대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죠.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아랍 과격분자들의 폭탄테러 소식을 접하지만 아랍인들은 그보다 더 지속적으로 이스라엘로부터 일상화된 테러를 당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배워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가 이해되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혹시 서구식 패러다임에 대한 맹신으로 남의 잣대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결론짓는 오류를 범해 온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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