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기독교 신앙은 역사상의 한 인물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 예수가 누구였고, 무엇을 가르쳤으며,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살펴보려 하자마자 우리는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예수에 관한 우리의 자료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수에 관한 비기독교적 자료들은 빈약하다. 주후 115-117년경, 로마의 사가 타키투스(Tacitus)는 그의 「연대기」에서 그리스도가 티베리우스 황제의 통치 기간 중, 총독 빌라도의 선고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수에토니우스(Suetonius)는 그의 「열두 황제의 생애」에서 '크레스토스(그리스도)' 때문에 유대인들이 자주 소요를 일으키자 클라우디오 황제(주후 41- 54년)가 그들을 추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로마 사가들은 예수라는 이름을 알지 못했고, 그리스도를 하나의 고유명사로 오해했다. 주후 111년경, 로마 황제 트라얀에게 보낸 플리니(Pliny)의 편지들 중 하나에, 소아시아에서 플리니 자신이 만났던 기독교인들이 언급되어 있으나, 이 편지는 물론 트라얀의 답장 속에서도 예수의 생애나 교훈에 관한 언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은 1세기의 예수나 그 추종자들의 운동이 적어도 당시 로마 제국의 눈에는 미미한 사건들로 비추어졌으리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해준다. 한편, 주후 1세기에 활동했던 유대인 역사가 요세퍼스(Josephus)의 「고대사」에도 예수가 언급되기는 하나, 예수가 메시아였다는 보도를 포함한 그 해당 단락들은 기독교적으로 각색된 것이어서 예수에 관한 비기독교 자료로 분류되기 어렵다. 유대교의 랍비적 작품들도 예수에 관해 간헐적으로 보도한다. 그런 작품들에는, 주후 200년경부터 편찬되기 시작한 히브리 법전인 「미쉬나(Mishnah)」와「미쉬나」에 관한 주석서 또는 보충서로 350-500년경에 완성된 「탈무드(Talmud)」가 있다. 이 작품들은 주후 1세기에 활동했던 랍비들을 빈번히 인용하고 있다. 여기서 예수는 주로 '한 어떤 사람'으로 언급된다. 예수의 이름을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예수에게 과도한 명예가 되리라는 가정 때문에 이름을 억제시켰다. 예수는 여기서 비합법적인 아들로 암시된 채, 벤 스타다(Ben Stada), 또는 벤판디라(Ben Pandira), 또는 벤 판테라(Ben Panthera)로 불리어졌다. 이러한 유대교의 랍비적 작품 속에 예수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어느 정도 보존되어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접어둔다 해도, 예수와 관련된 해당 단락 자체의 양이 극히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 자료들은 우리의 주제를 위해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신약 정경과 외형이 비슷한 외경 복음서들도 예수에 관해 보도한다. 그레펠(B. P. Grenfell)과 헌트(A. S. Hunt)는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에 카이로 남쪽 120마일, 서부 사막 가장자리에 위치한 고대 이집트 마을인 아크시링쿠스(Oxyrhyncus)-현재는 베네사(Behnesa)-를 발굴했다. 그 곳에서 발견된 상당한 양의 단편적인 파피루스들이 1983년 책으로 발간되었다. 아크시링쿠스 파피루스(이하 아크시링쿠스) 1장 1절은 누가복음 6장 42절과 단어 하나가 다를 뿐이고, 아크시링쿠스 1장 31-36절은 '예언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정경 복음서의 내용에 비해 보다 확장된 형태를 보여준다. 곧 '의사는 자신을 아는 자들을 치료할 수 없다'는 말이 부가되어 있다. 그러나 아크시링쿠스의 다른 자료들은 정경과 병행되지 않을 뿐 아니라, 정경과 대조적이다. 예수가 안식일을 어기고, 금식에 관한 규칙들을 지키지 않않다는 정경 복음서들의 예수에 관한 묘사와는 대조적으로 아크시링쿠스 1장 4-11절은 이렇게 보도한다. "예수가 말했다. 너희가 세상에 대하여 금식(절제)하지 않으면 너희는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고, 너희가 안식일을 안식일답게 지키지 못하면 너희는 아버지를 보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예수는 금욕주의자로, 또는 안식일과 금식에 관한 유대교 율법의 엄격한 준수자로 묘사된다. 이것은 유대교의 율법과 관습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사람으로 제시된 정경 복음서의 예수상과 긴장 관계를 유지한다. 물론 아크시링쿠스의 모든 단편들이 정경 복음서와 대조적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아크시링쿠스 10장 175절은 천대받는 자들에 대하여 예수가 깊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 마가 2장 16-17절과 유사하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예수를 보았을 때 그들은 그가 죄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은 데 대해 화를 냈다. 그러나 예수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건강한 자들은 의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외경이 정경과 유사한 내용을 지니고 있는 경우, 그것은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외경의 어떤 내용이 정경과 대조적일 경우, 그것은 예수에 관한 새로운 정보가 된다. 외경 복음서 중 정경 복음서와 비견될 만한 것은 고대 센노보스키온(Chenoboskion) 근처에 있는 북부 이집트의 한 마을인 나그함마디(Nag Hammadi)에서 1945년에 발굴된 영지주의 문헌들 중 몇 편의 복음서들이다. 그 중에서도 도마복음서가 단연 돋보인다. 모두 114편의 어록으로 구성된 도마복음서의 몇몇 단편은 이미 위에서 소개한 아크시링쿠스에도 담겨 있다. 이 도마복음서는 정경 복음서가 보여주고 있는 '복음서 장르'의 기준에 따른다면 복음서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예수의 어록집으로 유포되었으리라고 가정되고 있는 큐(Q) 문서와 그 성격이 유사하다. 도마복음서의 어떤 부분은 정경 복음서에 나타나지 않는다. 가령, 도마복음서 어록7은 이렇게 되어있다. "예수가 말했다. 사람이 먹는 사자는 복이 있다. 사자가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자가 먹는 사람은 화가 있다. 사람이 사자가 되기 때문이다." 어록4의 전반부도 도마 복음서만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것이다. "예수가 말했다. 날이 찬 노인은 7일된 아이에게 삶의 장소에 관하여 묻기를 주저하지 말라. 그러면 그는 살 것이다." 어록77도 정경 복음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예수가 말했다. 나는 전체 위에 비치는 빛이다. 나는 전체이다. 전체는 나로부터 나왔고, 전체는 나에게 돌아왔다. 나무를 베어보라. 내가 거기에 있다. 돌을 들어보라. 너희는 나를 거기서 발견할 것이다." 도마복음서의 어떤 부분은 정경 복음서와 외견상 유사하나, 강조점을 달리하고 있다. 가령,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가 10.15 병행)는 말씀과 유사한 어록22는 이렇게 되어 있다. "품속에 있는 이 어린아이들은 왕국에 들어가는 자와 같다. 그들이 그에게 말했다. 그러면 우리가 어린아이들이 되어 왕국에 들어가야 합니까? 예수가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둘을 하나로 만들고, 안을 밖으로, 밖을 안으로, 위를 아래로 만들고, 남자와 여자를 하나로 만들어 남자가 남자가 아니고, 여자가 여자가 아닐 때……, 그 때 너희는 왕국에 들어갈 것이다." 정경 복음서에서 '순수성'이나 '의존성' 또는 '힘 없는 자' 등으로 상징되는 어린아이는 여기서는 모든 구별이 폐지된 '통전'의 상징으로 제시된다. 도마복음서 이외에도 빌립복음서, 진리복음서, 마리아복음서 등의 영지주의적 복음서들은 모두 정경 복음서와는 다른 전승 궤도 속에서 산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영지 복음서들은 예수의 말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예수의 행동과 그 배경에 관해서는 거의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가 무엇을 행했는가를 규명하려는 작업을 위해서는 적절한 자료가 될 수 없다. 결국, 예수의 정체와 교훈과 행동을 유기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예수에 관한 현존하는 가장 현저한 증언집인 신약성서 중 네 복음서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신약성서의 또 다른 큰 부분을 이루고 있는 바울 서신들마저 이 주제를 위해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바울은 역사적 예수의 활동과 가르침은 거의 소개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바울은 "살과 피 (sarx kai heima)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전 15.50)고까지 선언했다. 물론 이것은 바울이 예수가 역사적으로 존재했다는 것 자체마저 부정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예수의 역사적 실존을 확고하게 전제한다. 바울은 예수가 "여자에게서 났다."(갈 4.4)는 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활 이전의 역사적 예수를 단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바울은 역사적 예수와의 실제적인 만남을 결정적인 경력으로 내세웠던 사도들에 대해 다른 품목으로 경쟁하려 했다. 이것이 바울이 역사적 예수에 관해 거의 침묵하고 있는 이유들 중 하나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담겨진 네 복음서로 돌아오게 된다. 물론 예수의 말과 행동에 관한 이야기들은 네 복음서에 기록된 것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복음서 기자들의 전망에 따라 각기 달리 선택되고 편집된다. 네 복음서는 예수의 사건들을 담고 있으나, 그 사건들은 엄밀히 말해 '해석된 사건들'이다. 따라서 복음서 기자들의 '해석'을 무시하고 직접 역사상의 예수를 기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뿐 아니라, 그 해석의 다양성은 보편적인 예수상을 갖는다는 것이 적절하지 못한 바람임을 일깨워 준다. 이 글의 목적은 마가, 마태, 누가, 요한이 예수에 관해 각기 독특하게 묘사하고 있는 그 단편들의 뚜렷한 빛깔들을 차례대로 규명하려는 것이다. |
(각 복음서가 설정한 예수의 공생애 기간 자체가 다르다. 마가의 경우, 예수의 사역은 1년을 넘지 못하고, 예수는 11-15장에 따르면 예루살렘에 약 1주일 정도를 머무는 것으로 설정되나, 요한의 경우, 예수의 사역 기간은 3년 이상이고(5장 1절의 명절을 유월절로 간주하지 않는다 해도 2년 이상), 그 중 후반 6개월은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머무는 것으로 설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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