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에스겔에 대해서
2-1. 제사장, 선지자, 파숫꾼으로서의 에스겔
에스겔의 사역은 주전 593년에서 571년까지 계속되었다. 그는 예레미야와 같이 제사장 가문 출신이었다(1:3). 그러나 그는 예레미야와 달리 결혼을 해서 가정이 있었다(24:15-18). 그는 바벨론 남쪽(니불 북쪽)의 유프라테스 강의 한 수로였던 그발 강가 텔아빕의 유대인 식민지역(1:1,3, 3:15)에 살고 있었다(3:24, 8:1). 에스겔은 제사장 가문의 일원으로 성전과 제사에 관한 율례를 배웠다. 이러한 점에서 그가 미래의 성전에 관해 크게 관심을 가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미래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와, 언약과, 통치의 상징이었다(왕상 8:10-11, 참고 시 132편). 그러나 에스겔은 예레미야와 같이 국제지향적인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에스겔서에 나타난 독특한 문학적 기교와 당시 세계에 대한 그의 지식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에스겔은 주전 593년에 여호와의 선지자로 부름받았다. 그 해에 그는 30살이 되었다. 유대에서 이 나이는 공적인 신분을 가질 수 있는 나이었다. 그가 이때에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다면 그는 부친(부시)과 함께 성전에서 여호와를 섬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살고 있었고, 그 곳에서 선지자와 영적인 파숫꾼으로 여호와를 섬기도록 부름을 받았다. 제사장 에스겔은 포로로 살던 중에 하나님의 영광의 환상을 보았다. 그는 모세와(출 33:18; 34:29-35), 이사야(사 6:1-5)와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목격했다. 그러나 그가 본 하나님의 모습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본 영광과는 크게 달랐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순간 깊은 죄의식을 느끼며 쓰러졌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그를 일으켜 주시고 힘을 주셨다(2:1-2).
하나님은 그를 바벨론에 포로로 살고있는 유대 공동체들을 위한 제사장으로 임명하셨다(5:3-4). 하나님은 바벨론 유대 공동체를 유대에 있는 공동체처럼 대접하셨다(5:4-7,11). 에스겔은 말과 여러 가지 상징적인 행동들을 통해서 포로 공동체의 죄악을 지적하고, 그것을 삶에 적용하는 일을 일을 했다. 그는 포로 공동체들에게 하나님이 떠나시고 무너져버린 성전이 장차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찬 곳이될 것이라는 소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에스겔은 선지자로서 포로 공동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다. 예루살렘에서 메시지를 전했던 예레미야처럼, 에스겔도 부패한 유대 백성들을 심판하는 여호와의 도구로 쓰임 받았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대하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네 이마로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두려워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말라 하시고(3:8-9)"
하나님은 자신이 선지자로 세운 에스겔을 강하게 하시고, 그를 대적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2:6-7). 에스겔은 재앙과 심판과 탄식의 신탁들이 기록된 말씀의 두루마리를 받았다(2:8-10). 이것은 바로 그가 전해야 할 메시지였다. 그것은 입에 쓰디 쓴 메시지였지만, 복종과 신뢰함으로 단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3:1-3).
에스겔은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파수꾼으로 일했다(3:17-21). 그는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하실 일을 미리 가르쳐 주었다. 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신 이유를 설명하고 회개를 촉구했다. 심판을 전하는 신탁에서(5:5-7:27) 그는 유다의 고난은 그들의 배교로 인해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때에 유대 백성들은 자신들이 조상들로 인해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서 그들이 당하는 고난이 단지 선조들만의 잘못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에스겔은 각 사람이 자기 행동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조상이 잘했어도 그 후손이 잘못하면 그 후손을 징계하실 것이며, 조상이 잘못했어도 그 후손이 잘하면 그 후손을 축복해 주실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이러한 개인적인 책임에 대한 메시지는 선지자와 영적 파숫꾼인 에스겔이 전한 메시지의 중요한 주제였다(14:12-23, 18:2, 33:1-20, 참고 렘 31:29).
에스겔은 하나님의 제사장-선지자-파숫꾼으로서의 백성들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일단 에스겔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되면, 백성들은 그 말을 듣고 자기들이 내린 선택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져야만 했다. 브라운리는 에스겔이 담당했던 선지자의 개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파숫꾼의 의미에서 선지자 개념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호 9:8). 그러나 그가 그의 사명을 수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 책임을 선지자에게 묻는다는 개념은 새로운 것이었다."
2-2. 고난의 종으로서의 에스겔
에스겔은 이스라엘 역사의 어려운 시기에 매우 특이한 삶을 살았다. 그는 예레미야처럼 백성이 당하는 고난을 경험했다. 그는 포로가 된 상태에서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고, 남은 유대인들이 포로가 되며, 다른 나라로 망명하게 될 것을 체험했다(3:22-5:17). 에스겔은 여러 가지 행동을 통해서 유다에 남아 있는 백성들의 고통을 동일하게 경험했다. 그는 포로기를 살던 유다 공동체들에게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에스겔이 사용한 상징적인 행동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는 그의 집에서 390일 동안 밧줄에 매인 채로 지내야 했다. 그는 밧줄에 묵인 채로 한 편으로 누워서 더러운 음식을 먹으면서 살아야 했다(4장). 이것은 장차 유대인들이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고 포로가 되어 부정한 음식을 먹으면서 살게 될 것을 상징하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고통의 기간을 마친 후에, 다시 칼로 그의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5:1-4). 그리고 그는 그 털 중에서 1/3을 성읍에서 불사르고, 1/4은 성읍 사방에서 칼로 베었으며, 나머지 1/3은 바람에 날려 버렸다. 이 머리털은 유다 백성들을 상징했다. 장차 유다 백성들은 멸망당할 것이며, 그들 중 1/3은 불에 타서 죽고, 1/3은 칼에 의해 살해될 것이며, 나머지 1/3은 포로가 되어 끌려갈 것이다.
또한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자신이 계시하는 것 외에 다른 말을 하지 못하도록 지시하셨다(3:26, 24:27). 이로 인해 그는 벗들과도 아무 대화를 할 수 없는 반벙어리로 지내야만 했다. 이는 장차 유대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하게 지내게 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하나님은 에스겔의 아내가 죽었을 때에도 공적으로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지 말라고 지시하셨다(24;15-18). 그러므로 에스겔은 아내가 죽은 때부터 예루살렘에 멸망당할 때까지 입을 닫고 속으로만 슬퍼해야 했다. 이는 장차 유대 백성들이 바벨론에 의해 가족들이 죽음을 당해도 공개적으로 슬퍼하지 못하게 될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을 통한 메시지는 유대 백성들에게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유대 백성들은 에스겔의 메시지를 거부하면서, 왜 에스겔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그토록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마침내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의 입을 통해서 유다의 멸망을 예고하셨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그러나 그가 유다의 멸망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그를 비난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에스겔 자신도 역시 백성들이 경험하게 될 고난을 똑같이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러 가지 상징적인 행동들을 통해서 이미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았을 때에 경험하게 될 어려움을 몸소 경험을 했다(5:8).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그것을 보고도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포로가 되어 에스겔과 같은 고난을 당한다고 해도 변명하거나 불평할 수가 없었다.
'성경주석강해 > 대선지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4. 에스겔서의 메시지 (0) | 2009.03.04 |
---|---|
3. 에스겔서의 문학 형식과 구조 (0) | 2009.03.04 |
에스겔서 서론 1. 에스겔이 활동한 시대적 배경 (0) | 2009.03.04 |
에스겔 정리1-8 (0) | 2009.03.04 |
9.에스겔 개요 초점 (0) | 2009.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