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호순 사건'과 그리스도인 (1) | ||||
| 생명 경시 풍조 직시하고 인간 존중해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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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3일 검찰이 송치한 강호순의 연쇄 살인 사건을 바라보면서 한국 사회는 여러 생각을 하고 이야기도 많다.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좋은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부터 사이코패쓰(psychopath·반사회적 인격 장애)와 이에 대한 테스트(PCL-R)에 대한 논의들, 이 사건의 배경인 경기 서남부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그리고 '사형제'에 대한 생각과 말들이 많다. 이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사건의 본질, 문제의 본질로 나아가야 한다. 대개 어떤 사건이 나타나면 많은 사람들은 그 사건과 관련한 지엽적이고 주변적인 것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모든 사건은 단순하지 않아서 관련한 모든 것을 다 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모든 사건에 대해서 자신의 전문 분야와 관련해 깊이 있게 생각하며, 좀 더 나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를 잘 생각하고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것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연구를 잘 축적해 이와 같은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일에 유용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 전체와 관련해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 블랙 코미디에서와 같이 사회 전체가 문제의 본질은 뒤로 하고 사소한 일들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모습을 드러내기 쉽다. 문제의 본질을 떠나 이런 범인들은 어떤 성격의 사람이고 평소에 그가 어떠했으며 그로부터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한다는 등 다양한 논의만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본질적 문제는 과연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 사회에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용산 참사나 수많은 자살 사건에서도 그러하며 우리 사회 일반에 나타나는 생명 경시 풍조는 심각하다. 일반적으로 다 생명을 존중한다고 하지만, 이와 같은 사건에 직면해서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끔직한 일을 여러 차례 저질렀나?"라고 강한 힐난조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마음은 없는 것 같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사건 앞에서 강호순이라는 한 개인만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 물론 수사팀은 이 일을 수사하고 증거를 제시하여 혐의를 사실대로 확정하고 그에 따른 구형해야 하므로 개인의 구체적인 문제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일반인들이 그 안에 있는 우리를 보지 못하고 사실 문제의 본질을 보지 않으면, 주변의 사소한 것들만 쑤시면서 소란을 떨지, 문제의 본질을 보고 해결로 나아가지 못한다. 우리들은 이와 같은 사건에서 뿌리 깊은 죄악적 본성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강호순 사건이나 용산 참사, 여러 자살 사건에서와 같이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풍조를 직시해야만 한다. 이런 사건 앞에서 우리는 살인자가 아니고 저(강호순)는 흉악한 자라고 생각하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은 모든 것의 겉만을 바라보고서 판단하려는 바리새주의적 태도의 하나다. 사람의 내면을 깊이 있게 보고서 그 내면의 문제를 드러내지 못한다. 겉으로는 이번에 강호순이 여러 차례에 걸쳐 참으로 흉악한 범행을 저지른 것이 사실이다. 검찰이 그것을 소상하게 밝힐 것이고, 또한 앞으로 법원은 그에 합당한 판결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여 강호순만을 죄인이라 치부하고 넘어 간다면, 우리는 또 문제의 본질을 비껴간다. 가장 심각한 증상을 드러낸 한 개인을 우리 문제의 주범으로 몰아 버리고 우리는 그런 문제와는 관련 없는 듯이, 우리는 깨끗한 듯 지나간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안에 있는 심각한 죄악성을 깊이 있게 보아야 한고, 사회적으로는 우리 사회에 인간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해 가는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강호순만이 아니라 우리는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다 하려 한다. 심지어 우리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뱃속의 아기도 인간의 생명이 아닌 것처럼 죽인다. 7명 정도가 아니라 1년에 150만 명 이상을 죽이는 데도 그것에 대해 아무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현실성이 없음에도 앞으로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인간 배아를 수없이 파괴하면서도 배아 줄기세포를 연구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건 인간 생명을 손상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 2007년에는 하루 약 33명꼴, 결국 10만 명당 24.8명이 자살했다. 미국의 두 배가 넘는 자살률이다. 우리 사회는 과연 생명을 경시하지 않는 사회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생명을 경시하며, 인간 생명이 무엇인지를 가볍게 생각하는 풍조를 일소(一掃)하는 일에 앞장서 진정한 인간 생명 존중 운동에로 나아가야만 한다. 이 일에 원칙적으로 가장 잘 준비된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은 항상 살리는 생명 운동을 하는 분이며,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때에만 진정한 생명을 회복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생명적 관계를 지니지 않은 사람들은 결국 생명 문제의 본질을 왜곡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 우리 사회의 진정한 생명 존중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강호순 사건을 바라보며 우리 사회 만연한 생명 경시 풍조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적하면서 우리 모두 진정한 생명 존중으로 나아가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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