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사무엘상

제24과 다윗의 왕권 회복

은바리라이프 2009. 2. 12. 19:03

제24과 다윗의 왕권 회복

읽을 말씀  삼하 19:1-20:26
외울 말씀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혹이 모든 백성에게 고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시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앞으로 나아오니라 … ”(삼하 19:8)
관련 찬송  찬송가 397, 27장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으로 인해 슬픔에 잠겨 있자, 요압은 다윗에게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국정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습니다. 이에 다윗은 요압의 충고를 받아들였는데, 때를 같이 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다윗의 환궁 문제를 논의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윗은 유다 지파가 주도권을 가지고 그 일을 추진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자 다윗의 처사에 불만을 품게 된 다른 지파들과 유다 지파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면서 세바의 반란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또한 다윗은 반란군의 군장이었던 아마사를 요압 대신 군대 장관으로 세웠는데, 이에 적개심을 품은 요압은 결국 세바의 반란 사건 때 아마사를 살해하고 맙니다. 한편 다윗은 압살롬을 피해 도피할 때 자신을 저주했다가 왕위가 회복되자 다시 자기 편에 선 교활한 시므이에게 관용을 베풀고, 자신의 고난에 동참했던 므비보셋에게는 시바에게 빼앗겼던 소유 일부를 돌려주었으며, 자신을 헌신적으로 공궤해 준 바르실래에게 감사를 표하였습니다.

1. 다윗은 압살롬의 전사 소식을 접하고 계속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삼하 18:33; 19:1∼4). 이러한 다윗에게 군대 장관 요압은 어떠한 충고를 했습니까?(삼하 19:5∼7)
▶ 다윗이 목숨을 바쳐서 반란군을 진압하고 돌아온 백성들을 환영하지 않고 압살롬의 죽음만을 과도하게 애도하는 것은 그들의 노고를 무시하는 처사이며, 그러면 후에 더 큰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충고함 : 반란군을 진압하고 승전한 것은 전 이스라엘 공동의 기쁨이었다. 그런데 다윗이 사사로이 슬픔에 빠짐으로써 오히려 백성들의 사기가 저하되자, 요압은 다윗에게 이스라엘 왕으로서의 신분을 잊지 말라는 충정어린 조언을 하였던 것이다.

2. 이스라엘의 많은 지파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다윗을 기쁨으로 환영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앞에서 불만을 토로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삼하 19:11∼15, 40∼43)
▶ 다윗이 자신의 예루살렘 귀환을 추진하는 일의 주도권을 유다 지파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에 가담한 바 있는 유다 지파에 대한 유화 정책으로 그의 예루살렘 귀환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는 다른 지파들의 불만과 갈등을 초래하였고, 후에 민심이 분열되는 불씨 역할을 하였다.

3. 베냐민 출신의 난류인 세바의 반란 사건 때 요압이 아마사를 살해하는 불상사가 생겼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원인은 무엇입니까?(삼하 20:4∼10)
▶ 다윗이 요압 대신 압살롬을 추종했던 아마사를 군대 장관으로 임명하고, 세바의 반란 진압을 위해 요압이 아닌 아마사를 등용했기 때문이다 : 다윗은 유화 정책으로 유다 지파로 하여금 자신의 환궁을 추진하는 일에 주도적 역할을 하게 하는 한편, 아마사를 군대 장관으로 삼았다. 그러자 오랫동안 다윗의 군대 장관으로 있었던 요압이 불만과 적개심을 품고 있다가 결국 세바의 반란 진압 때 아마사를 살해하고 만 것이다.

나눔

 다윗이 자신의 환궁을 추진하는 일에 있어서 유다 지파에게 주도권을 주고, 요압 대신 아마사를 군대 장관으로 삼은 일은, 지파간의 분쟁과 살인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이는 다윗의 지혜롭지 못한 처사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 가운데 생긴 갈등이나 분쟁을 지혜롭게 해결한 경우를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적용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진압한 후 펼친 유화 정책은 오히려 많은 갈등과 분쟁, 심지어 살인까지 야기시켰습니다. 당신은 매사를 지혜롭게 처리하고 있습니까?

오늘의 만나 - 삼하 19:8∼15

 다윗을 통한 교훈

 에브라임 수풀 전투에서 압살롬의 군대가 다윗 군대에게 섬멸되고, 압살롬이 요압에게 죽임을 당함으로써 마침내 압살롬의 반란은 진압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승전 소식에도 불구하고 계속 아들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모든 결과는 바로 자신의 범죄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자책하면서 말입니다. 그러자 군대 장관 요압은 다윗에게 반역자들을 토벌하고 승리를 거둔 백성들을 환영하지 않고 압살롬의 죽음을 과도하게 애도하고 있는 것은 병사들의 노고를 무시하는 처사이며, 민심의 동요를 부추기게 되어 더 큰 반란을 일으킬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질책하였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요압의 충고를 받아들였는데, 때를 같이 하여 이스라엘 각 지파들은 다윗의 환궁 문제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윗은 사독과 아비아달을 유다 지파에 파견하여 자신의 환궁 문제에 대해 유다 지파가 독단적으로 처리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다윗의 처사는 다른 지파들의 불만을 초래하게 되었고, 유다 지파와 다른 지파들 간에 끊임없는 주도권 싸움을 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한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다윗은 오랫동안 함께 했던 요압을 군대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하고 대신 압살롬을 추종했던 아마사를 군대 장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이로 인해 요압은 심한 불만과 적개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실상 압살롬의 반란 진압에 가장 공이 컸던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세바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다윗이 진압 대장으로 요압이 아닌 아마사를 등용함으로써 요압의 불만과 적개심은 극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요압은 세바의 반란 진압 과정에서 아마사를 죽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다윗이 취한 태도를 통해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면 가능한 한 빨리 과거의 아픔과 슬픔을 청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죽음 때문에 반란군을 진압한 병사들의 노고를 무시하고 그들로 하여금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다 바쳐서 다윗은 물론 왕실 가족의 생명을 지켜 주었고, 다윗의 왕권 회복에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혀 이들이 귀환할 때 기쁘게 환영해 주지 않았고, 예루살렘으로의 귀환도 소홀히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에서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려 할 때, 과거 우리의 아픔과 슬픔의 상처가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가능한 한 빨리 하나님께 치유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매사를 지혜롭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적극 지지했던 아마사를 요압 대신 군대 장관으로 세운 것은 무리한 인사 처리였습니다. 아마도 다윗은 오랫동안 자신의 군대 장관이었던 요압이 때때로 자신의 명령에 불복종하며 자기 의지대로 과격하게 행동하는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더욱이 요압이 자신의 아들 압살롬을 죽인 일로 인해 요압에 대한 다윗의 감정은 매우 악화된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화 정책의 일환이란 명목으로 아마사를 군대 장관으로 임명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다윗과 요압 그리고 아마사 간의 갈등은 극에 달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요압은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아마사를 죽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후 다윗은 행정을 재정비할 때 요압을 군대 장관으로 재임용하였습니다(삼하 20:23).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모두 다윗의 지혜롭지 못한 처사 때문에 빚어진 일들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가 매사를 지혜롭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우리의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어 일을 그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교훈해 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