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역사서

좋은 왕과 나쁜 왕에 대한 열왕기 기자의 평가 기준

은바리라이프 2009. 1. 17. 11:05

좋은 왕과 나쁜 왕에 대한 열왕기 기자의 평가 기준



김영욱



1. 들어가는 말
왕정제도에 있어서 왕은 핵심적인 인물이다. 왕은 군사, 사법, 정치, 사회, 종교 등의 모든 영역에서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다. 왕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백성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며, 내부적으로 사회에 정의를 실현해야 할 백성의 지도자이다.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은 자연히 백성과 나라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다. 왕의 통치 이념과 사상들이 그 나라의 번영과 쇠퇴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에 의해 선택을 받은 자이며,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을 통치하며 다스리는 자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에서 왕은 절대 권력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왕 역시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며 순종해야 한다(신 17:18-19).
열왕기서에는 유다와 이스라엘 왕들의 업적과 통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다윗 이후 솔로몬의 행적부터 시작해서 유다에는 다윗의 추손들인 20명의 왕들의 통치 행적과 북이스라엘에는 다윗의 가문과는 상관없는 19명의 왕들의 통치 행적이 서술되어 있다.
열왕기서를 읽어 가면 솔로몬 왕의 찬란한 영광도 잠시이며, 역사가 진행될수록 암울하고 쇠락해가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정 역사를 볼 수 있다. 결국 유다와 이스라엘은 외적의 침략에 의해 멸망한다. 하나님의 선민인 유다와 이스라엘이 왜 비극적으로 종말을 고하는가?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여기에 대한 답은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한 왕들의 사상과 통치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열왕기의 저자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실패한 왕정사를 묘사하면서 왕들을 어떻게 평가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왕들을 평가할 때, 어떠한 기준들이 사용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2. 비교의 모델
열왕기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에게 동일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많은 왕들 가운데서도 선별적으로 몇 왕들에게 -솔로몬, 여로보암, 아합, 히스기야, 요시야 등-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왕이 아닌 엘리야와 엘리사의 행적에도) 그 외의 대부분의 왕들은 간략하게 언급한다.
열왕기 기자는 왕들의 행적을 서술하는 데 있어서 일반적으로 왕의 즉위 연대와 왕이 즉위 할 때의 상대 왕국의, 유다 혹은 이스라엘 왕의 통치 연대, 왕의 나이, 왕이 통치할 때의 수도 이름, 왕의 통치 기간, 왕의 어머니 이름 그리고 왕에 대한 평가를 기록한다(참고 왕상15:1-3, 9-15, 25-26, 33-34; 16:8-11, 29-33 등등). 하지만 이러한 형식이 모두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일부가 생략되어 기록된 경우도 있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왕들에 대한 열왕기 기자의 간단한 논평이다. 이 논평 가운데서 왕의 어떤 행동이 좋은지 어떤 행위가 나쁜지 기록되었다. 그런데 열왕기 기자는 왕들이 좋다 나쁘다를 평가할 때, 한 모델 왕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 모델과 다른 왕들을 종교적인 면에서 그리고 윤리적인 면에서 비교하여 평가한다.

좋은 왕의 모델로서의 다윗
열왕기 기자가 다른 왕들을 평가할 때 비교 모델로서 다윗을 제시한다. 열왕기에서 어떤 왕이 평가될 때, 다윗이 "그의 아버지 다윗"[개역: 그 부친(혹은 조상) 다윗]으로 소개되며 그 왕과 비교되는 것이 자주 나타난다(왕상11:6,33; 15:3 등등).

"다윗과 같이" - 왕국의 번영에 대한 조건적 약속
다윗은 좋은 왕의 모델로서 다른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다른 왕과 다윗을 비교할 때 자주 사용된 표현은 "-처럼" 또는 "-같이"를 의미하는 전치사 "케"이다. 열왕기 저자는 왕들을 ‘다윗과 같았다’ 또는 ‘다윗과 같지 않았다’라고 논평한다. 흥미롭게도 다윗 이후 통일 왕국의 첫 왕인 솔로몬과 북 왕국 이스라엘의 첫 왕인 여로보암에게 이 전치사 "케"가 사용되어 왕국의 번영에 관한 하나님의 조건적인 약속이 주어진다.
다윗 이후 유다 왕국의 첫 왕인 솔로몬의 경우,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과 자신의 왕궁을 다 지었을 때, 만일 그가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지키면 하나님은 솔로몬의 왕위를 굳게 하실 것이라는 축복을 약속하신다(왕상 9:4-5). 반대로 솔로몬과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면 성전의 파괴와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서 쫓겨 나가는 저주를 선언한다(왕상9:6-9). 여기서 중요한 점은 4절의 조건절 속에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행하면 왕국의 번영이 약속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조건적인 약속이 북 왕국 이스라엘의 첫 왕인 여로보암에게도 똑같이 주어진다. 아히야 선지자는 여로보암에게 “내 종 다윗의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다윗의 왕국이 번성했던 것처럼 이스라엘 왕국이 굳게 서며 번영해 나갈 것이라고 예언한다. 아히야는 왕국을 건설하며 번창하게 하는 것은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위의 두 왕의 경우, 특이한 점은 왕국의 번영은 왕의 어떠한 정치적인 행정력이나, 군사력, 사법적인 판단력, 또는 성전과 같은 종교적인 제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왕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아버지 다윗 같이
전치사 "케"와 같이 나오는 다른 표현은 "그의 아버지 다윗 같이" 이다. 이 형식으로 비교되는 왕들 가운데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왕, 솔로몬과 아하스,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담고 있는 아마샤와 아사가 있다.
솔로몬은 이미 왕상 9장에서 ‘다윗과 같이’ 행하면 그의 왕국이 번영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의 아버지 다윗 같이" 아도나이를 온전히 좇지 않았으며, 아도나이의 눈 앞에서 악을 행했다(왕상 11:6). 그 악은 우상 숭배이다. 솔로몬이 늙었을 때, 그의 이방 아내들은 솔로몬을 유혹하여 다른 신을 섬기게 하며 그 신들을 위해 산당을 짓게 만들었다(왕상 11:4-8). 이스라엘의 최고 지혜로운 왕 솔로몬, 외국인 아내들의 유혹에 그의 지혜가 흐려지며 그의 사고가 분별력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더 나아가 아히야 선지자는 왕국의 분열을 예언한다. 여기서 아히야는 솔로몬과 백성들의 행위가 그의 아버지 다윗과 같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들의 죄는 우상 숭배이며,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눈 안에서 옳은 것을 행하지 않았다(왕상11:33). 다윗과 같지 않았던 솔로몬의 행위 때문에 결국 왕국이 분열되었다.
유다 왕 아하스는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아도나이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는 북왕국 이스라엘 왕들의 행위를 본받았기 때문이다(왕하 16:2-4).
유다 아마샤 왕은 긍정과 부정을 다 포함하고 있다. "아마샤가 아도나이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는 길지 아니하였으며"(왕하14:3). ‘다윗과 같지’ 않았다는 부정적인 판단에는 아마도 그가 산당을 제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왕하 14:4).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유다 왕 아사 역시 다윗과 비교된다. "아사가 그 조상 다윗같이 아도나이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왕상15:11). 아사 왕이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이유는 그가 남색 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우상을 없애고 성전에 은과 금과 기명을 바쳤기 때문이다(왕상 15:12-15). 하지만 그 역시 산당을 제하지 않았다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다윗의 마음
그 형식 "그의 아버지 다윗 같이"에 ‘마음’이란 단어가 더해진 표현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 같이"는 두 번 발견된다. 즉 다윗의 마음이 다른 왕들의 마음과 비교되는 것이다. 두 번 모두 부정적이다. 솔로몬의 경우에서 그의 외국인 아내들이 아도나이께 향했던 왕의 마음을 바꾸어 놓아서 솔로몬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아도나이 앞에 온전치" 못하였다(왕상11:4). 유다 왕 아비얌의 경우, 그는 그 아버지의 모든 죄를 따라가서 그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였다(왕상 15:3).
다윗의 마음은 일찍이 하나님께 합격 점수를 받았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가서 다윗을 왕으로 선택할 때,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와 신장을 보지 않으시고 그 ‘마음’(개역 성경 "중심")을 보신다고 선언하셨다(삼상16:7).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을 보시고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하시고 사무엘로 기름을 붓게 하셨다.

종교 개혁자 - 히스기야와 요시야
다윗과 비교되는 또 다른 두 왕은 유다의 유명한 종교 개혁가들인 히스기야와 요시야이다. 먼저 히스기야는 전치사 "케"가 사용되어 다윗과 대조되고 있다.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아도나이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왕하 18:3). 여기서 주목해야 할 표현은 ‘모든’ 즉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이다. 종교 개혁자 히스기야는 다윗의 모델을 모두 따라갔던 왕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요시야 왕의 경우 전치사 "-같이"는 사용되지 않았고 다른 표현인 ‘다윗의 모든 길’이 나타난다. "요시야가 아도나이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왕하 22:2). 요시야 왕 역시 다윗의 선례를 ‘모두’ 따라갔던 왕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조 읽기에서 드러나는 다윗의 모습
전치사 "~같이"에 의한 다윗과 다른 왕들에 대한 대비에서 우리는 다윗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을 우리는 "대조 읽기"(a contrastive reading)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다른 왕들이 행했던 모습 속에서 다윗의 모습을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열왕기는 이러한 다윗의 모습을 직접 묘사하지 않고 다른 왕들의 행위 속에서 서술하며, 이것을 ‘다윗과 같이’ 또는 ‘다윗과 같지 않다’라는 표현으로 말하고 있다.
다윗의 종교적인 모습에 대한 묘사는 사무엘서에서 나타난다. 다윗은 언약의 궤를 다윗성으로 옮기기도 하며(삼하 6장), 언약의 궤를 위한 하나님의 집을 건설하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삼하 7장). 하지만 열왕기서에는 다윗의 어떠한 종교적인 면에 대한 직접적인 강조가 없다. 하지만 다른 왕들을 다윗과 비교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다윗의 종교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히스기야와 요시야는 다윗의 모든 행위를 본받았던 왕들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종교 개혁에 힘썼는데, 우상 숭배를 철폐하고 우상숭배로부터 순수한 아도나이 예배를 지키려고 했다(왕하 18장,23장). 아사 역시 다윗과 같았다고 평가되는데, 왜냐하면 그가 우상 승배를 몰아내고 아도나이의 전에 은과 금을 드렸기 때문이다.
다윗과 같지 않았다고 평가를 받는 왕들도 그들의 종교 행위와 종교 정책 때문이다. 솔로몬의 경우 젊었을 때, 그는 하나님께 진실했다. 기브온 산당에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지혜를 간구했으며 , 언약의 궤를 위해 성전을 지었으며, 이스라엘을 최고로 부강한 제국으로 성장시켰던 왕이다. 하지만 솔로몬은 다윗과 같지 않았다는 판결을 받는다. 그 이유는 솔로몬이 노년에 이방신들을 위한 산당을 지었기 때문이다(왕상 11:6-8). 아마샤의 경우에는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윗과 같지 않았다는 판결을 받는다(왕하14:3). 또한 아하스도 다윗과 같지 않았는데,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 지나게 하며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기 때문이다(왕하16:2-4).
위의 사실을 숙고해 볼 때, 다른 왕들과 다윗과의 비교 또는 대조에서 다윗 왕은 ‘순수한 아도나이 예배를 유지했던 왕’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열왕기 기자는 다른 왕들을 평가하는 ‘숨겨진 기준’이 있는데. 그것은 다윗의 아도나이 예배를 위한 종교적인 면이었다.

나쁜 왕의 모델로서의 여로보암
열왕기의 저자가 다윗을 좋은 왕의 모델로서 제시하며 다른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았던 것과 반대로 여로보암을 나쁜 왕의 모델로서 사용하고 있다.
솔로몬의 집권 말기에 많은 공사로 인하여 백성들의 인심이 피폐해지며(왕상 12:1-20), 종교적으로도 그는 아도나이 신앙에서 떠나 우상 숭배의 길로 치달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히야 선지자는 여로보암에게 이스라엘이 분열될 것을 예언하며, 하나님이 여로보암을 이스라엘의 10지파의 왕을 삼으신다고 말한다. 여로보암은 ‘다윗 같이’ 행하면 그의 왕국이 건실하게 되며. 그의 왕조가 든든히 설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다. 하지만 여로보암은 열왕기 기자에게 나쁜 왕의 모델로서 간주된다.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을 범죄하게 한 왕’이라는 것이다(왕상 14:16; 15:26,30,34; 16:26; 22:52; 왕하 3:3; 10:29,31; 13:2,6,11; 14:24; 15:9,18,24,28; 23:15).
여로보암의 행위는 또 다른 표현 "여로보암의 죄" 그리고 "여로보암의 길"로 특징 지워진다. 여로보암의 행위를 본받아 따라가는 왕들은 나쁜 왕으로 정죄된다. 바아사(왕상15:34; 16:2), 시므리(왕상 16:19) 오므리(왕상 16:26), 그리고 아하시아(왕상 22:52)는 ‘여로보암의 길’을 걸어갔던 왕들로 선언되며, 아합은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갔던 왕이다(왕상 16:31). 예후(왕하 10:29.31), 여호아하스(왕하 13:6), 요아스(왕하 13:11),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왕하 14:24), 스가랴(왕하 15:9), 므나헴(왕하 15:18), 브가히야(왕하 15:24), 그리고 베가(왕하 15:28)는 "여로보암의 죄" 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다. 여호람(왕하 3:3)은 "여로보암의 죄" 에 붙어 있었다. 많은 왕들이 여로보암의 행위를 본받았다. 이들은 아도나이의 눈에 악한 왕들로 보여졌다.
"여로보암의 죄" 또는 ‘길’로 표현된 여로보암의 행위는 그의 종교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가 왕이 된 후에 가장 염려했던 것은 북이스라엘 왕국에는 유다와 같은 성전이 없다는 것이었다. 성전이 없다는 것이 그의 정치적인 생명을 위협한다고 생각했다. 여로보암의 판단에 따르면, 그의 왕권은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민심에 달려있었다.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민심을 사로잡는 것이 그의 왕권을 견고하게 세우는 비결이었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 대항하는 성소를 벧엘과 단에 세운다. 그리고 이곳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두었다(왕상 12:25-33). 성전이 있는 유다에 이스라엘의 민심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성소가 있어야 한다는 여로보암의 판단은 적중했다.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 대신에 벧엘과 단에 가서 금송아지를 숭배했고 그의 왕귄은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우상숭배는 아도나이 신앙과 예배에서 떠난 잘못된 길이었다. 하나님은 아히야의 예언에서 종교적 제도인 성전을 요구하지 않았다. 성전이 없어도 여로보암은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면 그의 왕국을 견고하게 세울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 민심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으며, 정치적 생존을 위해 예루살렘 성전의 라이벌 성소로서 벧엘과 단을 지은 잘못된 사상과 종교 정책으로 이스라엘을 범죄 하게 한 것이었다.
여로보암의 행위가 후세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예후의 경우에서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바알 선지자와 추종자들을 전멸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던 예후도 아도나이의 법에 불순종하며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왕하 10:31). 여로보암의 죄는 확실히 이스라엘에서 우상 숭배를 조장했다. 여로보암의 행위를 본받았던 아합과 아하시야는 더 나아가 바알을 섬겼던 것이다(왕상 16:31-32; 22:52-53). 결국 여로보암의 집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심판의 모델이 되었다. 하나님은 바아사와 아합의 집을 "여로보암의 집"과 같이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신다(왕상 16:3; 21:22).

3. 아도나이의 눈
다른 한편으로 열왕기의 왕들을 평가하는 더 포괄적인 형식이 있다. 그것은 ‘아도나이의 눈’ 이다. ‘아도나이의 눈’이란 표현이 들어가는 형식이 왕들의 행위와 관련해서 많이 사용되었다. 아도나이의 눈은 왕들이 옳은 행동을 하는지 악한 행동을 하는지를 보신다. 여기에는 두 종류의 형식이 있다.

좋은 행위를 보시는 아도나이의 눈
아도나이 앞에서 옳은 행동을 하는 왕들에 대하여는 "아도나이 눈 안에 옳은 것을 행하다"(개역 :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라는 형식이 쓰였다. 여기서 "아도나이의 눈들 안에"는 복수형이며, "아도나이 앞에"로 번역 될 수 있다.
이 ‘아도나이의 눈’은 왕의 옳은 행위를 보는 객관적인 표현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형식이 사용되었다고 해서 그 왕의 행동들이 100퍼센트 옳은 것은 아니다. 열왕기 기자는 이 형식과 함께 왕의 다른 행위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 형식은 좋은 왕의 모델인 다윗과 관련해서 나타난다. 열왕기 기자는 다윗은 밧세바의 일 외에 ‘다윗이 아도나이 눈 안에서 옳은 것을 행했다’고 진술한다(왕상 15:5). 즉 밧세바 사건 외에는 다 옳은 행위로 인정을 받았다.

‘아도나이의 눈’은 산당을 제하지 않은 것을 보고 계신다. 아사 왕과 그의 아들 여호사밧 왕, 아사랴 왕 그리고 요담 왕은 아도나이의 눈 안에서 옳은 행위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산당을 없애지 않았다(왕상 15:11; 22:43; 왕하 15:3). 요아스와 아마샤 역시 산당을 없애지는 많았다. 하지만 아도나이 눈 안에 옳은 행위를 한 왕들로 선언되는데 이들에게는 단서가 붙었다. 요아스 왕은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가르치는 날들 동안에 아도나이의 눈 안에 옳은 행위를 했으며(왕하12:3), 아마샤는 아도나이의 눈 안에 옳은 일을 했지만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는 않았다(왕하 14:3).
유다의 위대한 종교 개혁자들인 히스기야와 요시야는 어떠한 부정적 논평도 따라오지 않는다. 이들은 다윗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아도나이 눈 안에서 옳은 것을 행한 왕들로 인정된다(왕하 18:3; 22:2).
이 형식이 부정적으로 쓰인 것은 아하스 왕이다. 아하스는 다윗과 같지 않았고 아도나이 눈 안에 옳은 것을 행하지 않았다(왕하16:2).
위의 형식은 아니지만 비슷한 형식으로 ‘나의 눈 안에 옳은 것을 행하다’가 발견된다. 예후가 바알의 추종자들을 전멸하였을 때 이 표현이 쓰였다. 하지만 예후는 온 마음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으며,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설명이 뒤따르고 있다(왕하 10:30-31).
위의 사실을 고려해 볼 때, 그 표현 "아도나이의 눈 안에 옳은 것을 행하다"는 왕의 모든 행위들을 포함하지 않는다. 즉 왕의 행위가 100퍼센트 옳고 정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특히 열왕기 기자는 선한 행위를 하는 왕들일지라도 산당을 제거하지 않은 것을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악한 행위를 보시는 아도나이의 눈
위의 형식과 유사하게 ‘아도나이 눈들 안에 악을 행하다’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 형식은 많은 왕들과 관련해서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에게서 발견된다. 아말렉과 그들의 모든 소유물을 전멸시키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불순종하는 사울은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겨두었다.
이때, 사무엘은 사울의 마음속에 있는 탐욕을 지적하며, 사울의 행위가 "아도나이의 눈" 안에서 악하다고 비판하였다(삼상15:19).
그 외에 많은 왕들이 ‘아도나이의 눈’에 악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도나이 눈들 안에 악을 행하다"는 표현이 발견되는 왕과 그의 악한 행위를 간략하게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솔로몬 - 아도나이를 따르지 않았다(왕상 11:6)
나답 - 그의 아버지 여로보암의 길을 걸었다(왕상 15:26)
바아사 - 여로보암의 길을 걸었다(왕상 15:34)
시므리 - 여로보암의 길을 걸었다(왕상 16:19)
오므리 - 여로보암의 길을 걸었다(왕상 16:25)
아합 - 여로보암의 죄 안에서 걸었다(왕상 16:30; 21:20,25)
아하시야 - 여로보암의 길을 걸었다(왕상 22:52)
여호람 - 여로보암의 죄에 붙어 있었다(왕하 3:2)
여호람 - 아합의 집과 같이 행했다(왕하 8:18)
아하시야 - 아합의 집과 같이 행했다(왕하 8:27)
요아스 - 여로보암의 죄를 좇았다(왕하 13:2)
요아스 -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 (왕하 13:11)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왕하 14:24)
스가랴 -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왕하 15:9)
므나헴 -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왕하 15:18)
브가히야 -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왕하 15:24)
베가 -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왕하 15:28)
호세아(왕하 17:2), 므낫세 - 우상숭배(왕하 21:2,6,16)
아몬 - 아버지 므낫세의 길을 걸었다(왕하 21:20)
여호아하스(왕하 23:32), 여호야김(왕하 23:37)
시드기야 - 여호야김의 행위를 본받다(왕하 24:19)

이 형식이 아합과 므낫세에게 세 번이나 사용된 것이 두드러지며, 여로보암은 악한 행위의 모델이 되고 있다. 열왕기 기자는 많은 왕들이 아도나이 신앙을 떠나 우상 숭배를 하는 것을 악한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덧붙여서, ‘아도나이의 눈’은 이상적인 왕 다윗의 단 한 번의 실수를 놓치지 않았다. 다윗은 밧세바의 일 외에 모든 행위가 ‘아도나이의 눈’ 에 선했다(왕상 15:5). 하지만 ‘아도나이의 눈’은 다윗이 그의 정치적인 권력을 남용하여 그의 신하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은 은밀한 윤리적인 잘못들을 다 보고 계셨다. 다윗이 밧세바를 취했을 때, 열왕기 기자는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아도나이의 눈들 안에 악했다’라고 평가했다(삼하 11:27). 다윗은 밧세바 사건을 완전 범죄로 계획했다. 그는 밧세바와 동침한 후, 임신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우리아에게 군사 휴가를 준다. 휴가 기간에 아내와 성 관계를 갖게 하여 자신의 아이를 우리아의 아이로 만들려는 의도가 숨겨진 계획이었다.
하지만 우리아의 신실한 태도로 이 계획이 무산되자, 이번에는 우리아를 술 취하게 만들어 집으로 돌려보낸다. 하지만 술 취한 우리아의 정신이 맨 정신인 다윗보다 더 경건했다. 우리아가 집에서 자지 않자 다윗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다윗은 다시 무서운 음모를 꾸민다. 다윗은 죽음의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의해 요압에게 보낸다. 치밀한 군사적인 작전으로 우리아를 암몬 사람들의 칼에 죽게 한다. 우리아가 죽자 다윗은 밧세바를 데려와 자기 아내로 삼았다. 모든 일이 극비리에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 완전 범죄도 "아도나이의 눈" 을 피할 수 없었다(삼하 11:27). 아도나이의 눈은 다윗의 성 범죄와 은폐 계획, 죽음의 편지 내용, 우리아의 죽음 등을 모두 보고 계셨다.

4. 맺는 말
열왕기 기자는 좋은 왕인 다윗과 나쁜 왕인 여로보암을 비교 모델로 삼아 다른 왕들을 평 가한다. 특별히 이상적인 왕 다윗의 종교적인 면, 아도나이의 예배와 신앙을 순수하게 유지하려는 그의 모습은 숨은 기준으로 드러난다. 여로보암의 잘못된 통치 이념과 종교 정책인금 송아지는 후대의 많은 왕들에게 악영향을 끼쳤다.
다른 하나는 ‘아도나이의 눈’으로 표현된 기준이다. ‘아도나이의 눈’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정 역사를 감찰한다. ‘아도나이의 눈’은 거의 모든 왕들의 행위를 모든 영역에서, 그들의 집안, 윤리적인 삶, 정치권력의 남용, 전쟁 중의 행위 등등 두루 평가한다. 하지만 이 ‘아도나이의 눈’이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것은 왕들의 종교적인 행동과 정책이었다. 종교개혁에 힘쓴 히스기야와 요시야는 ‘아도나이의 눈’에 선을 행하는 왕들이었다. 반면에 많은 왕들이 ‘아도나이의 눈’에 악했다고 평가를 받는 이유는 그들의 종교적인 행위 때문이었다. 즉 아도나이의 신앙과 예배에서 떠나 자신은 물론 백성들에게 우상을 섬기게 한 왕들의 사상과 행위를 악하다고 간주되는 것이다.
위의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열왕기 기자는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들을 군사적, 사법적, 정치 행정력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종교적인 관점에서 평가한다. 왕 자신이 아도나이 신앙과 예배에 신실했는가 안했는가 하는 것과 그가 백성들을 아도나이 신앙으로 잘 인도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열쇠이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역사가 비참하게 끝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왕들이 아도나이 신앙을 순수하게 유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왕하 17:1-23; 23:26-27). 왕들 역시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며 순종해야 한다(신17:18-19). 하나님의 법은 우상 숭배를 강하게 비평하며 금지한다(신 4:15-31; 5:7-9; 6:12-15; 11:16-17; 12:1-6; 31:16-18).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군주 다윗, 그의 성공 비결은 그의 탁월한 군사적, 행정적, 사법적인 재능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열왕기 기자가 중요하게 평가하는 것은 아도나이의 법에 순종하는 그의 마음과 그의 순수한 아도나이 신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