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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에 관하여

은바리라이프 2008. 12. 4. 21:20

새벽기도에 관하여

(이 글은 서울에서 신앙생활을 하시는 김종숙 자매님의 질문에 대한 이광호 목사님의 답신입니다)

김종숙 자매님, 안녕하세요? 여러모로 힘을 주심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 뵐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저는 지난 얼마간 중국에 다녀오느라 조금 바빴습니다. 그래서 이제야 메일을 확인하고 답신을 드립니다. 새벽기도에 대한 저의 생각을 물으셨더군요. 간단하게나마 저의 소견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성도의 기도하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두말 할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삶과 기도하는 행위 사이에는 다소간 차이가 날 것입니다. 참 성도다운 삶이 배제된 기도 행위 자체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즉 형식적인 기도는 기도할 때만 일시적으로 하나님을 부를 뿐 일상의 삶 가운데서는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게 할 우려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고백적 교제의 표현이어야 할 기도가 형식적 기도 행위에 머물게 된다면 종교적 자기 만족을 채울 수 있을지언정 그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기도를 많이 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매일의 새벽기도, 매주 있는 철야기도, 산기도 등은 한국교회 밖에서는 보기 힘든 형태의 기도들입니다. 과거 중세시대 일부 수도원에서 새벽시간의 기도수행이 있었으나 그것은 한국교회의 새벽기도와는 성격이 달랐습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기도는 거의 엉터리이거나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요?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열심히 기도하고 있지만 기도의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경건의 외양은 갖추고 있을지 모르지만 내용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대다수 한국교회의 목사, 장로 등 지도자들이 날마다 새벽기도를 하고 있으나 그들의 삶은 참된 기도와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도로서 올바른 기도를 하는 삶을 산다면 한국교회가 이처럼 세속화되고 부패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교인들은 대개 잘못된 기도를 지속하면서도 종교적 기도 행위를 통해 자기 위안을 삼고 있을 따름입니다.

저는 한국교회의 새벽기도가 한국의 전통종교에서 유입된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몇 년 전 한국학술진흥재단 연구과제 발표논문에서 그에 대한 저의 입장을 다룬 바 있습니다. 혹 관심이 있으시면, [이광호, "한국 개신교에서의 한", 한의 학제적 연구, 서울: 철학과 현실사, 2004]를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한국에 복음이 들어올 당시 한반도에 산재해 있던 민간종교의 기도행위가 교회에 유입되면서 성경이 가르치는 올바른 기도보다는 종교적 기도 행위에 치중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새벽에 기도하는 삶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경건하게 살고자 애쓰는 성도들 중에는 새벽시간을 할애하여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과 교제하는 특별한 시간으로 삼아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벽시간 뿐 아니라 항상 주님과 교제하는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여기서 기도를 쉬지 않는다는 말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성도의 삶을 의미합니다.

한국교회의 새벽기도는 말씀을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가 아니라 대개 자기가 바라는 것을 간구하는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설령 사심이 없고 좋아 보이는 기도 내용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종교적 욕망일 수 있음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올바른 기도는 자기 요구를 하나님 앞에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귀담아 들음으로써 그와 교제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부자간의 대화를 예로 들어볼까 합니다. 성숙한 자녀는 아버지의 말씀을 경청함으로써 교제에 임합니다. 비율로 따진다면 약 80-90%는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고 자식은 그저 10-20% 정도만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응답할 것입니다. 만일 어떤 자식이 아버지와 한 시간 동안 마주 앉아 있으면서 자기 요구만 늘어놓고 되돌아 나온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날마다 동일한 행동을 되풀이 한다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부자간의 대화에서 진행되는 그런 상황은 결코 인격적인 교제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기도에 대해서도 그와 유사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데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그러나 상상력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한다면 그보다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말씀을 떠난 인간의 상상력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는데도 마치 그런 것처럼 스스로 가정하고 믿어버릴 우려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계시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이 기도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 본문과 시편의 말씀을 조용히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추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주님께 순종하며 고백하는 것이 곧 기도인 것입니다. 올바른 기도가 무엇인지 아는 성도라면 결코 새벽에 하는 기도가 더 효과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며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새벽시간에 공을 드리며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일은 새벽기도가 마치 신앙의 정도를 가늠하는 기준처럼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잘못된 기도를 되풀이 할 바엔 차라리 기도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어린 신앙인들은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주실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행위 때문에 성도가 바라는 모든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 성숙한 자는 제대로 기도하지 못했는데도 날마다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즉 말씀에 따라 올바르게 기도하지 못했는데도 여전히 은혜를 베풀고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쓴 다른 논문 중에 기도에 관한 글이 있습니다. 혹 원하신다면 그것을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기도에 대한 성경신학적 고찰", 교회와 문화, 13, 한국성경신학회, 2004년 여름]. 한국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통해 참되게 기도하는 때가 속히 오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채 종교적 욕망을 쏟아내는 것은 결코 참된 기도가 아님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앙이 성숙해 감에 따라 온전히 기도할 수 있는 자리에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되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자매님의 가정과 섬기시는 교회 가운데 주님의 풍성한 은혜가 넘쳐나기를 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5. 5. 11

이광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