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렬히 순교했던 초대교회 교인들의 신앙
국제신대 라은성 교수의 재미있게 배우는 교회사학교4 [2005-09-30 09:12]
[라은성 교수의 교회사 학교 1] 교회사를 왜 배워야 합니까?
[라은성 교수의 교회사 학교 2] 초대교회사 개관
[라은성 교수의 교회사 학교 3] 초대교회 10대 핍박
▲라은성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
핍박에 관한 주제 강의를 들으면서 성민은 이런 생각을 갖게 된다. “과연 나는 나의 신앙으로 인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이 가진 신앙과 나의 신앙과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도대체 그들이 가진 신앙은 무엇일까?” 성민은 이런 질문이 머리의 생각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래서 같이 앉아 있는 형제에게 지나가면서 물었다. 형제는 하는 말이 “나 역시 그러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고 했다. “그러면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교수님께 물어보도록 하지요. 우리로서는 대답을 찾을 수 없으니까 말이지요. 그렇게 해요. 예?”
수업이 시작되자 그 형제는 손을 들어 묻기를, “교수님! 계속하여 수업을 진행하기 전에 문의할 것이 있는데 물어도 되나요? 수업과 관련된 질문입니다.” “좋습니다. 물어보시지요. 아는 대로 대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초대교회 성도들이 가졌던 신앙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 거죠? 이렇게 질문하는 이유는요. 만일 제가 그 자리와 그 시대에 있었다면 그러한 신앙적 결단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 좋은 질문입니다. 핵심적인 질문입니다. 제가 ‘10대 박해’를 마무리한 후에 알려드리려고 했던 것인데 미리 물으시니 대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가진 절대적 신앙이 무엇인가?”
교수님은 흑판에다 책 이름을 쓰신다. “『이단과 정통』 이 책은 헤럴드 브라운 교수가 쓴 책으로서 이단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가진 신앙의 형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부터 기독교는 구원과 영생이 믿음으로 말미암고 그 믿음이 그리스도 나사렛 예수, 즉 역사적 개인이신 바로 그 분에 대한 것을 믿었다. 그 분의 생애, 죽음, 부활, 그리고 재림의 의미는 각 기독교인에게 생사를 걸 만큼 중요한 진리였다(43) …
…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우선적인 기반을 둔다. 기독교 신앙은 그의 가르침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분에 대한 가르침을 믿는다. 예수님을 믿기보다는 “예수님께서 믿으셨던 것처럼 믿기를” 원하는 프로테스탄트 자유주의자들은 기독교의 본질적 속성을 극적으로 전환시키고 있다(51) …
…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있었고, 영광 가운데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서 다스릴 것이기 때문이고, 또 가끔 죽어야만했던 경우를 직면했기 때문에 그들이 믿었던 그분을 보다 정확하게 아는 것이 (디모데후서 1:12) ― 그분이 누구셨고, 누구시며, 무엇을 하시며, 무엇을 하실 것이 ― 매우 중요했다(59).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가진 신앙은 ‘예수님 자신에 관한 가르침’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는 것’처럼 여깁니다. 다시 말하면, 영어로 표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흑판에다가 영어로 쓴다. “Christian faith is not belief in his teaching, but in what is taught about him. The appeal of Protestant liberals to ‘believe as Jesus believed,’ rather than to believe in Jesus, is a dramatic transformation of the fundamental nature of Christianity.”
“길게 썼습니다만, 핵심은 이것입니다. ‘his teaching’ (그의 가르침)에 관심을 갖느냐 아니면 ‘of him’ (그에 대한 가르침)에 관심을 갖느냐? 이 두 차이는 대단히 다릅니다. 전자, 즉 그의 가르침에 관심을 가지면 자유주의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행동주의자가 된다는 것이지요. 그분에 관한 것보다는 그분의 가르침에만 관심을 쏟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에 관심을 갖기에 도덕적 삶에만 관심을 갖게 되죠. 하지만 후자, 즉 그분에 대한 가르침에 관심을 가지면 그 분이 누구이신지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점점 그분의 가르침에 관심을 쏟는 것 같습니다. 그분이 누구이신지에 관심을 갖는 것이지요. 그분이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는 부활 신앙을 갖게 됩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부활하셨다고 믿습니다. 이처럼 주님 자체에 관심을 가지면 그분에 관한 것은 부차적인 것이지요. 마치 그분을 믿기에 부활을 믿고 창조도 믿습니다. 그런데 부활을 믿고 창조를 믿기에 그분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님들의 관심을 그분에 대한 것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여러분께서 아시다시피 마태복음 16장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자신이 가르친 것을 물으신 것이 아니라 그들과 동고동락하신 후 물으신 것은 예수님 자신을 누구라고 여기느냐고 물으신 것이요. 이런 맥락에서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대답이 무엇임을 아실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교수님의 말씀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초점을 맞춘 신앙이었고 지금 우리의 신앙은 그분의 가르침에 초점을 맞춘 신앙이라고 대조하시는 것이죠.”
“예, 그렇습니다.” “그럼, 교수님! 두 신앙의 차이점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할 수 있겠지만, 일단 진도를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고. 그것에 대한 자세한 답변은 ‘10대 핍박’이 끝난 후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와서 ‘트라얀’의 핍박에 대해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3.5. 황제 트라얀
▲1-2세기 로마제국 영토 |
▲트라얀 칼럼 |
▲트라얀이 새겨진 동전 |
3.5.1. 플리니 서신
“트라얀은 처음으로 기독교를 불법종교로 규정한 황제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와 플리니 간에 주고받은 서신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광신자 유대인들에 의해 예루살렘감독 시므온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안디옥 감독 익나티우스도 순교를 당했습니다. 간헐적이지는 했지만 공식적으로 핍박을 시행한 자였습니다. 총독 플리니는 11년 비티니아와 폰투스 지역에 총독이었습니다. 이곳에 행정을 하면서 10개의 서신을 황제에게 보냈는데 그 서신들 가운데서 기독교인들에 대한 보고서가 들어있었습니다. 111~112년에 쓰인 플리니가 트라얀에게 보낸 10번째 서신에서 96번의 내용입니다”
황제에게 제가 의혹이 가는 모든 것에 관하여 보고하는 것이 저의 의무라고 여깁니다. 나의 무지나 나의 지체함에 대해 지도하실 분은 당신밖에 없으십니다.
기독교인들의 공판에 나는 결코 참여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처벌하거나 조사하곤 해야 하는지 정확한 형벌을 결정지을 수 없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구별 짓는 것에 관해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잘못을 고백하는 자들에게는 용서를 내리도록 했습니다. 또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그 종교를 포기하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는 것만으로 형벌을 가했습니다.
▲플리니 서신을 묶은 책 |
이리하여 공소들이 널리 알려지면서 여러 가지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담고 있는 익명의 문서가 출판되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구두로 신의 이름들을 불러보라고 하며, 기독교인들임을 부인했던 자들은 당신의 형상을 향하여 향을 피우고 잔을 마시도록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저주하라고 명했습니다.
진짜박이 기독교인들은 그 명령에 불복종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형벌을 내렸습니다.…그들은 새벽이 되기 전 일정한 날에 모임을 갖고 신이라 여기는 그리스도에게 찬양을 올리곤 했습니다. 또 죄를 짓지 않고 도둑질, 간음, 사기를 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행하는 잘못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이런 의식이 끝나면 음식을 먹기 위해 모였습니다. 순결한 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이런 비밀 의식들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자 집사라 부르는 두 명의 여자 노예들을 고문하여 그들의 진실성을 알려고 했습니다. 안타깝지만 미신적인 것을 행한다는 것 외에 다른 혐의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사를 더 이상 할 수 없어 당신의 조언을 얻기로 결정하고 이렇게 서신을 띠웁니다. 당신에게 조언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그들의 나이, 지위, 그리고 성별이 예외적이기 때문입니다. 염려하는 미신의 확산이 도시만 아니라 마음과 도시까지 퍼져나갔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파악하여 처리할 수 있습니다. 소외된 성전들이 개최되었고, 오랫동안 무시되었던 기존 종교 의식들이 다시금 일어나고, 희생적 동물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할 기회가 주어지면 되돌아올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이에 대한 트라얀의 답변이 다음과 같습니다.
기독교인들임을 포기했던 자들에 대한 사랑하는 플리니 너는 적합한 절차를 행했다. 정한 기준과 같은 것으로 여겨지는 일반 규율을 어기기 말아야 한다. 만일 그들이 포기하거나 범죄 사실이 드러나면 더 이상 조사하지 말기 바란다. 하지만 신들에게 경배를 드리면서 기독교인임을 부인하는 자들에 대해 의혹심이 들면 처벌을 아끼지 말아라. 익명의 고소들을 가지고 핍박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위험한 절차이며 우리의 정신과 어긋난다.
3.5.2. 익나티우스 순교
교수님은 흑판을 등에 대시고 두 팔을 뒤로 하시면서 숙연하게 익나티우스에 관한 말씀을 시작하신다.
“초대교회 때에 교부들 중 익나티우스의 순교는 우리들에게 큰 도전과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당시 사도요한의 제자였던 익나티우스는 안디옥 기독교인들을 성실하게 목회하는 분이었습니다. 도미치안 핍박의 만고 끝에 생존하신 분이셨습니다. 이 일로 인해 여러 오해들이 있었지만 위축되지 않고 목회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여기까지 들으면서 나는 성경에 나오는 ‘안디옥’ 이라는 도시는 최초로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이 불린 도시이며 바울이 처음으로 선교사로 파송된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안디옥은 초대교회에서 대표교구로 역할 한다. 계속하여 익나티우스에 대해 말씀하시기 시작하셨다.
▲익나티우스의 순교 장면 |
“트라얀이 묻기를, ‘너는 누구냐? 너야 말로 우리의 명령들을 어기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명령을 어기라고 미혹자는 자인데 도대체 너는 누구냐?’ 라고 물었다.”
“그러자 익나티우스는 대답하기를, ‘어느 누구도 데오포루스를 악한 자라고 부를 순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악령들이 하나님의 종들로부터 떠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악령들이 미워하는 적대자입니다. 당신이 이른 일을 행하는 저를 악한 자라고 부른다면 어쩔 수 없이 저는 받아들여야겠지요. 왜냐하면 저는 하늘의 왕 그리스도를 소유했기 때문에 모든 악령들을 무찔렀기 때문입니다.’”
“트라얀은 대답하며 묻기를, ‘뭐라고 그러면 데오포루스는 누구냐?’”
“익나티우스는 대답한다. ‘자신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가진 자입니다.’”
“다시 트라얀이 묻기를 ‘우리가 적들과 싸울 때 우리를 돕는 신들이 있음을 느끼지 않느냐?’”
▲익나티우스의 순교 |
“트라얀이 묻기를, ‘네가 말하는 그리스도는 본디오 빌라도가 못 박은 자가 아니냐?’”
“익나티우스는 대답하기를, ‘그분은 저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죄악을 홀로 담당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못 박히신 것입니다.’”
“이런 대답을 들은 트라얀은 다음과 같은 평결을 내렸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자와 함께 있기를 원하는 그를 군사들에 의해 로마 시로 옮기도록 하라. 그곳에서 구경꾼들이 보는 가운데 금수의 먹이가 되도록 할 것이다.’”
“이 평결은 들은 익나티우스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당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영예로운 길을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사도바울처럼 쇠사슬에 묶이는 영예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리하여 안디옥 감독 익나티우스는 로마로 압송되었습니다. 안디옥에서 셀루치아로, 그리고 서머나를 들렸습니다. 그곳에서 익나티우스는 서머나 감독 폴리캅을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두 사람은 사도요한의 제자들이었기에 이들의 만남은 더욱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런 후 익나티우스는 계속하여 로마로 가는 길에 올랐습니다. 로마에 도착하자 여러 성도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옥중에서도 함께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이제 플라비안 암피트레테에 선 익나티우스는 야생동물들에게 던져졌습니다. 그리고 참혹한 고통을 겪으면서 장렬한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의 시신은 안디옥으로 보내졌습니다.”
“안디옥 감독 익나티우스의 순교와 함께 우리가 고려해야하는 것은 그의 서신들입니다. 신약성경이 기록된 후 기독교 신학의 발전과 당시의 초대교회 상황을 알 수 있는 귀한 자료들입니다. 특별히 장로들과 집사들과 함께 감독들이 수고했다는 것이 주목해야하는 것입니다. 모두 7개 서신의 내용은 감독들이나 장로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한 교구에는 한 감독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또 익나티우스는 안식일을 주님의 날, 즉 주일로 대처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교수님, 질문이 있는데요” 한 학생이 질문을 던진다.
“말씀해 보세요”라고 교수님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한다.
“교수님, 익나티우스의 서신에 대해 말씀하셨잖아요? 몇 개의 서신들이 있으며 그 자료를 어디서 찾을 수 있나요?” “예, 좋은 질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15서신이라고도 합니다만, 7서신들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에베소서, 마그네스서, 트랄리우스서, 로마서, 빌라델비아서, 서머나서, 그리고 폴리캅서 등입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순교자들의 생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어떤 책을 참고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추천해주실 수 있겠습니까?”하며 어느 학생이 질문했다.
“순교사에 관한 자료는 교회 역사가인 유세비우스가 쓴 『교회사』를 보면 될 것입니다. 또 존 폭스가 쓴 『기독교 순교사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인들의 순교사화를 알고 싶으면, 라은성 교수가 쓴 『위대한 여인들의 발자취』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기독신문』(kidok.com)의 2005년 5월 2일자 신문을 보면, 자세하게 익나티우스의 순교와 서신에 관해 한 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 말씀하신 교수님은 “다음 주에 이어서 세 번째 핍박의 시대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일 주일간 주님과 함께 잘 지내시며 승리하시기 바랍니다.”라며 수업을 마쳤다.
라은성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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