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하나님의 백성 나다나엘
본문: 요1: 43- 51
오늘은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이며, 간사함이 없는 참 이스라엘인 나다나엘에 대해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나다나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께서 주심'이라는 의미입니다. 갈릴리 가나 출신으로(요21:2)으로 가나인이요 다른 이름(별명)은 바돌로매이니 12사도 중의 한 사람입니다.(마10:3)
친구 빌립의 소개로 예수님께 나아오매 그의 품행을 칭찬하시니 자기의 비밀한 행동을 아시므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믿고 사도가 되었습니다.(요1:47-50)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디베랴 바닷가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때에 나다나엘도 시몬 베드로와 함께 있었습니다.(요21:2) 그의 성품은 진실하고 마음에 간사한 것이 없는 참 이스라엘인이며(요1:45) 예수님을 진실히 믿고 예수님을 사랑하며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요1:49)
나다나엘은 친구 빌립의 전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러한 참된 신앙의 친구가 필요합니다. 또한 나다나엘은 그리스도에 관해 대화를 나눌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메시야 성에 대한 회의(요1:46)를 극복하고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의 신앙은 예수님을 기쁘게 했으며, 주님은 그에게 많은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아라비아와 인도에 가서 전도하다가 비참한 모습으로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1:49)
예수님의 12제자 중의 한 사람인 나다나엘에 대하여 좀 더 살펴 보도록 합시다.
1. 시대적 배경
A.D. 27년 경 예수님의 공생애 개시 얼마 후에 제자로 부름받아 A.D. 1세기 중반 이후까지 활동한 인물입니다. 당시 로마의 식민 통치를 받고 있던 유대인들 사이에는 여러 형태의 종말론적인 메시야 대망 사상이 널리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기대한 메시야는 정치적 메시야로서 이스라엘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어 행복을 누리게 할 자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나다나엘과 같은 일부 경건한 사람들은 구약 성경에서 예언한 바대로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장차는 천국으로 인도하실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이런 메시야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2. 성품
1) 마음에 생각한 바를 그대로 표현할 정도로 간사함이 없고 정직한 사람입니다.(요1:46)
2) 빌립과 대화한 내용을 보아 말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메시야를 대망한 사람입니다.(요1:45, 46)
3) 메시야를 대망하면서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으냐?"고 한 것으로 보아 편견이 많았던 사람입니다.(요1:46)
4) 자신의 심중을 꿰뚫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신앙 고백을 드린 것으로 보아 영적 통찰력을 지닌 사람입니다.(요1:49)
3. 주요 공적
1) 예수님을 메시야로 고백함(요1:49)
2) 12사도 중 한 사람으로서 사명을 감당함(막3:18)
4. 주요 실수
1) 예수님이 비천한 나사렛 출신이라 하여 그가 메시야라는 사실에 대해 회의를 품음(요1:46)
2) 예수님께서 붙잡히실 때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감(막3:18)
5. 참 이스라엘 사람 나다나엘
뉴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시골에서 뉴욕 아들집에 놀러온 노부부가 한국 슈퍼마켓에서 "순참기름" 이라는 제품을 사서 먹었더니 ‘가짜’였습니다. 한국 시골에서 직접 짜서 만들어 먹던 그 진짜의 맛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노부부는 자신들이 한국에서 직접 참기름을 짜서 이곳 뉴욕에 와서 장사를 하면 엄청난 돈을 벌겠다고 포부를 가지고 한국에 돌아가 진짜 참기름을 짰습니다. 미국에 가져와 가게에서는 팔 수 없어 주위 사람들에게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 참기름의 이름을 이렇게 붙였습니다. "진짜 순 참기름"
엄청나게 팔릴 줄 알았던 그 참기름은 팔리지 않아 망하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먹어 본 사람들이 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만든 것이 가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할머니 할아버지는 증명할 길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가짜에 적응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짜가 진짜를 이긴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도 가짜 신앙인이 많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갖췄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자들이 많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빙자한 거짓, 하나님을 빙자한 거짓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날 참 하나님의 백성과 참 크리스천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리고 거짓 지도자, 외식하는 성직자(마태복음 23장 참조), 삯꾼 목자가 많습니다. 가짜가 진짜같이 활보하는 세상입니다. 거짓 목자들에게 속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을 여러 각도로 진단하고 있습니다. 틸리히 교수는 현재 기성교인 중에 10%는 이미 죽었고, 80%는 잠들어 있고, 오직 10%만 이 살아서 교회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알렌 교수는 교인 중 20%는 주일예배에 출석하지 않고, 25%는 기도를 드려 보지 못했고, 35%는 가정에서 성경을 읽는 일이 없고, 40%는 하나님의 명령인 십일조 헌금을 안하고 있고, 60%는 기독교 서적을 읽지 않으며, 75%는 교회에서의 책임을 회피하고, 85%는 전도를 한 명도 못했으나 교인들 100%는 천국에 가기를 원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이사야 29:13)
예수님께서는 친구 빌립을 통해 당신께 나아온 나다나엘을 가리켜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로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참 이스라엘 사람이란 참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값지고 귀한 칭찬입니까? 더욱이 이러한 칭찬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답지 못한 자들, 참 하나님의 백성답지 못한 자들이 많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 할 때, 참으로 의미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다나엘의 어떤 면이 참 이스라엘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 속에서 그런 칭찬을 듣게 했을까요?
1) 그는 편견을 극복했습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칭찬받게 된 배경은 첫째로 그가 지역적 편견을 극복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빌립이 전도햇을 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으냐?"라고 되물음으로써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지역적 편견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사실 성도 여러분! 당시 나사렛 사람들조차도 자기 고향에서 나신 예수님을 배척했을 정도이니(막6:3) 다른 지방, 특히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이야 오즉이나 우습게 여겼겠습니까? 하지만 나다나엘이 끝까지 빌립의 전도를 물리쳤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와 보라"는 빌립의 말을 듣고 그를 따라나섰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친구의 말을 무조건 무시한 것이 아니라 직접 예수님을 만나보고 자신이 확인해 본 후 결정하겠다는 태도 아니겠습니까? 한 마디로 그는 열린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바로 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도 사람인 이상 학벌, 재산, 지역 등에 대한 세상적인 편견을 아니 가질 수는 없습니다. 다만 거기에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안에 그러한 편견과 독선과 아집이 있다면 이 시간에 그것을 버립시다. 마음을 활짝 열어 놓읍시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지혜로운 분별력으로 진리를 받아들입시다.(엡2:13- 18)
2) 그는 간사함이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나다나엘이 칭찬받은 두 번째 이유는 그가 간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바리새인들은 아주 간사했습니다. 그들은 전혀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도(마23:3,4),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마3:9) 또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킬 정도로 아주 비윤리적인 삶을 살면서도(눅20:47) 의롭고 거룩한 자로 위장했습니다.(눅18:11, 12)
성도 여러분! 세상에 이러한 위선에 대한 유혹을 한 번쯤 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나다나엘은 이러한 유혹으로부터 초연했습니다. 그것을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증거하고 계십니다.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여러분에게도 바로 이러한 순수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가식적인 행위와 탐욕, 그리고 허탄한 명예욕으로부터 초연한 여러분이 되시란 말입니다.
3) 그는 고요한 가운데 늘 기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에게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하셨습니다. 당신 무화과 나무 그늘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고요히 묵상하며 기도하는 장소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나다나엘이 어쩌다 한 번 무화과 나무 아래서 기도한 걸 가지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아닙니다. 이는 그가 고요한 가운데 늘 기도에 힘쓰며 메시야의 도래를 기다렸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 회당과 큰 길 어귀에 서서 나보란듯 기도했던 바리새인들(마6:5)과는 크게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성도 여러분, 바리새인과 나다나엘의 모습, 어느 것이 진실하고 올바른 모습입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모습을 진실한 행동으로 받아 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고요한 가운데 겸손하게 무릅꿇고 은밀히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뿐만 아니라 선을 행하든 봉사를 하든 은밀한 가운데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나다나엘을 통해 배울 교훈이 무엇인가를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들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나다나엘처럼 예수님께 좀 더 가까이 나아가 주님이 부르시면 과감히 일어나 제자의 길을 가는 신앙인이 됩시다.
2. 빌립에게서 나사렛 예수에 대해 들은 나다나엘은 자신의 회의적인 생각까지도 정직히 표현하였습니다.(요1:46) 이같은 그의 정직함은 예수님께로부터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칭찬을 듣게 했습니다.(요1:47)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비록 회의와 의심의 모습일지라도, 성도들이 모든 것을 솔직하게 내어 놓고 당신께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주님앞에 내어 놓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즉 나다나엘은 진실하고 마음에 간사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거짓됨이 없는 정직하고 진실한 마음을 갖고 신앙생활을 영위합시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시15:1-2)
3.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적 상황을 직시하며 메시야에 대해 묵상하던 나다나엘은 예수님과 인격적 만남을 통해 구원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더 나아가 현대의 성도들이 현실을 직시하며 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해 기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하에(롬8:34), 하나님께 상달되고 응답을 받을 것임을 나타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계8:3-5)
4. 나다나엘은 오실 메시야에 대한 구약의 말씀을 깊이 이해하고 잇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즉시 그가 메시야임을 알 수 잇었습니다.(요1:49) 더욱이 그는 예수의 메시야성에 대한 회의(요1:46)를 극복하고 예수님을 영접함으로써 예수님을 기쁘게 했으며, 주님으로부터 많은 복을 약속받았습니다. 이렇듯 우리도 성경 말씀을 늘 상고함으로써 진리를 이해하고, 혹 마음에 회의되어 오는 문제가 있다면 오직 기도와 말씀으로 극복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5. 나다나엘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진리를 깨달앗을 때 이를 즉시 입술로 시인하고 고백함으로써 예수님을 바로 아는 신앙에 굳건히 설 수 있었습니다.(요1:49) 이와 같이 마음에 생각하는 바를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도 "너희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고 했습니다. 이에 성도들도 우리가 가진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늘 고백함으로써 더욱 굳건한 신앙위에 서도록 합시다.
또 올바른 삶은 앎과 행함, 즉 지식과 실천이 병행하는 일관성을 지닌 일관성을 지닌 삶이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나다나엘과 같이 참 하나님의 백성으로 주님께 인정받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온갖 편견과 독선과 아집을 버리십시오. 겉으로만 잘 보이려는 간사한 마음, 위선된 마음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이 보시는 고요하고 은밀한 가운데 기도하고 봉사하고 구제하시기 바랍니다.
골로새서 3장 12- 17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참 하나님의 백성, 참 크리스천은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의 옷을 입고 서로 용서하고 사랑의 띠를 매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가 온유하고 겸손하고, 오래참고, 용서하고,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자기가 맡은 일에 성실하고 책임을 다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참된 크리스천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하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며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진실한 마음을 갖게 하소서. 제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저를 포기할 수 있는 믿음으로 성장하게 하소서. 배신과 음모로 가득한 세상에서도 예수님의 제자답게 성실하고 당당한 삶을 살게 하소서. 또한 내게 주신 소명을 기억하며 좁은 길을 기쁨으로 걷는 믿음을 허락해 주소서. 주님 안에서 말씀 안에서 사랑 안에서 복있는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사랑을 나누며 진리를 전하며 이웃을 섬기며 정직하게 살게 하소서. 예배드리며 찬양드리며 기도함으로 복있는 성도의 삶을 살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나다나엘
* 개요: 나다나엘은 갈릴리 가나 출신으로 빌립의 전도를 통해서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분명하게 증거하지는 않으나 바돌로매가 그의 별명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1) 친구의 전도
나다나엘이 예수를 좇아다니는 제자가 된 것은 친구인 빌립의 전도로 말미암았습니다. 예수를 만나 예수의 제자가 된 빌립은 친구인 나다나엘을 찾아가,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메시야를 만났는데 그가 바로 나사렛 예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때에 나다나엘의 반응은 매우 회의적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은 나사렛과 같은 동네에서 메시야가 나온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의 회의적 응답에 대해 논박하지 않았고 단지 '와보라' 고 말했을 뿐입니다. 빌립의 말을 들은 나다나엘은 예수를 泰?만나 보게 되었고 예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나다나엘은 친구덕분에 메시야를 만나고 복음의 사역자라는 귀한 사명을 받아 감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우정은 친구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진리로 인도하는 일이 제일 우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죄인의 친구가 되시어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의 고난을 몸소 담당하셨습니다.
2) 참 이스라엘 사람
나다나엘이 빌립의 청을 받아들여 예수를 만나러 나올 때, 예수께서는 그를 보시고 참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시면서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참 이스라엘 사람이란 말은 그의 경건한 신앙을 가리킨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으로서, 이방인들과는 달리 구별된 거룩한 백성입니다. 예수께서는 혈통으로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구별하시지 않고,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충실하지 불충실한지에 따라서 참 이스라엘사람과 거짓 이스라엘사람을 구분하셨던 것입니다. 당시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사랑을 잊어버리고 형식적인 종교 의식에만 사로잡혀 가증히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다나엘은 율법의 진정한 정신을 지켜 실현하려고 애쓰는 경건한 유대인이었던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는 간사함이 없이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한 순전하고 진정한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3)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해 말씀하시자 나다나엘은 예수께 어떻게 자신을 아시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립이 그를 부르기 전에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은 그 말씀을 듣고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임금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심을 예수를 만나서 얘기하는 중에 확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와 보라고 청했던 것이 효과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직접 만나 보는 것보다 확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신앙 고백은 예수님을 직접 만날 때에 나올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성령께서 사람의 심령에 오셔서 예수를 주로 고백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것은 영으로서만 가능하고 육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주로 시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묵상 및 토의
0 나다나엘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 해보세요
0 나는 나다나엘의 어떤 면을 닮고 싶은지 이야기 해보세요.
0 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진실하고 정직한 자가 되려고 힘쓰고 애쓰는가?
0 나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부패한 세상에 소금 노릇을 하고 있는가?
0 나는 참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 있는가?
0 나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모범을 보이고 있는가?
0 거짓말하고 간사한 기독교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0 성도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이야기 해 보세요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생각해 볼일
미국에 이민해서 살고 있는 한국인 2세가 명문 컬럼비아대 의과대학에 지원했습니다. 공부도 잘해서 SAT 시험에 만점을 받았습니다. 집안 형편도 부유해서 무난히 합격되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불합격 통지서가 날라 왔습니다.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귀하의 성적은 아주 우수합니다. 가정형편이나 여러 조건들도 만족스럽습니다. 그런데 귀하의 서류 어디를 보아도 헌혈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남을 위해서 헌혈한 경험도 없는 귀하가 어떻게 환자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 귀하는 의사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요즘은 능력위주의 시대이다. 그래서 대학이든 기업이든 우수한 인재만을 뽑는다. 거기다가 재정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우선 선발한다. 심지어는 기여입학제라는 것을 시행하려고도 한다. 실력이 참작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실력은 좀 모자라더라도 경제력으로 대학을 들어가는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인재 선발원리를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와 견주어 본다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 주님이 만일 세상적인 기준을 가지고 사도들을 선발하셨다면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과 안드레가 12제자의 수에 포함될수 있었을까? 학력이 우수한 사람은 나다나엘 한 사람뿐이었을 것이다. 주님이 사람을 선택하시는 원리는 지식정도가 아니라 영성의 수준이었다.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할수 있느냐가 선택의 기준이었지 공부를 많이 했느냐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러고도 주님은 그들을 인류최대의 실력자로 길러 내셨다. 주님은 세상의 천한 자들도 능력있는 자로 길러내실수 있었기에 약한 자들을 부르셨다. 그러나 세상은 능력있는 사람으로 길러낼수 없기에 실력있는 사람만을 골르는 것이 아닐까? 진짜 실력이란 아주 못한 사람을 택해서 조금 나은 사람으로 키우고 조금 나은 사람을 선발해서 더 나은 사람으로 길러내는 것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는 말은 영성의 깊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대학이나 기업이나 오늘날은 영성의 깊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소위 유명한 간판을 본다. 간판으로서 간판을 따는 것을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 예화(2): 구두쇠 영감과 딸
어느 해수욕장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었다. 한 젊은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바다에서 구출해낸 소녀에게 인공호흡을 하고 있었다. 그때 마을에서 구두쇠로 소문난 소녀의 아버지가 달려왔다. 그는 청년에게 간절히 당부했다.
“여보게, 내 딸을 꼭 살려주게. 저 애는 외동딸이라네. 딸을 살려주면 그 대가로 10만원을 주겠네” 그때 딸이 물을 토해내며 의식을 회복했다. 구두쇠 영감은 딸을 끌어안으며 기뻐했다. 그리고 딸을 구한 청년을 향해 말했다.
“딸이 살아났으니 이제 5만원만 줘도 되겠군. 내 딸은 그리 쉽게 죽을 아이가 아닐세”
사람은 참 간사한 존재다. 위급할 때는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간구하지만 일단 그 위험에서 벗어나면 당시의 상황을 모두 망각한다. 역경의 순간을 잊지 않고 그것을 인생의 소중한 자산으로 간직하는 사람에게는 동일한 위험이 닥치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고난의 날이 준 교훈을 귀하게 간직한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나다나엘 처럼 마음에 간사함이 없는 진실한 성도가 되자
* 예화(3):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
주님을 알고 난 후 우리 안에 넘치는 기쁨과 평안은 마치 생수의 강물과 같아, 흐르고 넘쳐 주변을 풍성하게 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고, 구원의 비밀을 알리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사람. 그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크리스천의 모습, 혹시 ‘사랑’ 보다는 ‘죄’를 이야기하기에 바쁜 사람들은 아닌지요. 죄에 대해 설교하는 것만으로는 죄인들을 하나님께 인도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죄를 자각하게 하고 더불어 하나님의 선하심을 강조함으로써 그들을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더 나은 인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인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행하라고 원하시는 것 중에서 가장 어렵고 또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우리의 믿음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이웃과 친구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거듭났다면,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묻기 전에 먼저 우리의 모든 것을 용납하고 사랑하셨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크리스천의 다른 점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먼저 알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실천하는 사람들. 죄를 묻기보다는 용납하고 품어주는 사람들. 진정한 크리스천의 모습을 가진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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