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기다리는사람들

세례 요한의 수태 고지-2

은바리라이프 2008. 9. 8. 09:11

누가복음 설교 항목으로...

본문: 눅1:5-23

제목: 세례 요한의 수태 고지-2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새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 보라 이 일의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 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하더라.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의 성소 안에서 지체함을 기이히 여기더니 그가 나와서 저희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 성소 안에서 이상을 본 줄 알았더라. 그가 형용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벙어리대로 있더니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 이 후에 그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매 가로되 주께서 나를 돌아 보시는 날에 인간에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누가 복음에서 말씀하는 이루어진 사실은 유대 왕 헤롯 때 그리고 제사장 가문에서 시작됩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 열국이 유다를 지배하고 있는 구원 역사적 상황 아래서 제사장과 의인들의 기도와 간구와 소원의 이룸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면서도 자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5-7에서는 역사적 배경과 세례 요한의 부모에 대한 설명이었고 8-23은 천사의 세례 요한에 대한 수태고지입니다. 천사의 수태 고지가 나타난 때는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 때입니다. 아론의 자손은 24반차로 나누어서 일상의 제사 직무를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감당하였습니다. 사가랴도 그 반열의 차서를 따라 제사 직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그가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성전 분향은 기도와 같고 그러므로 분향 하는 시간에 백성들은 기도한 것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기도하는 것이 많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사가랴와 백성들의 기도, 안나의 금식과 기도함, 그리고 예수의 기도하심, 예수의 기도에 대한 비유와 가르침, 제자들의 성소에서의 기도 등이 다른 복음서에 비하여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는 항상 성전 예배와 성전을 향한 기도와 관계됩니다. 그것은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여호와의 단 앞에서 여호와께 기도한 내용과 연관됩니다. 솔로몬은 기도하기를 다윗에게 약속하신 약속을 이루셨고 또한 그 왕위가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지켜 달라고 기도하였고, 그 일을 위하여 백성들이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말하였습니다. 심지어 백성들이 범죄하여 죄를 깨닫고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그들의 기도를 들으사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의인들의 기도는 이러한 기도와 관계된다고 하겠습니다. 단순히 개인적인 소원성취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기도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기도를 이룸으로 구약 때 약속한 구원의 일을 이루십니다. 사가랴의 기도는 자신의 후사를 통한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의 나타남에 대한 기도였으며, 백성들의 기도도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위한 기도였으며, 시므온도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으며 안나도 예루살렘의 구속에 대한 소망에 대한 기도였습니다. 예수의 기도하심도 자신을 통한 구원의 성취에 대한 기도였으며, 제자들의 기도는 그들에게서 이루어지고 성취되는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인 성령 강림에 대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사 주 앞에 앞서 가서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의 탄생을 예고하였으며, 그의 탄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하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위로와 구원을 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사역을 이룸으로 예수를 통하여 구약에 약속된 구원이 성취되었음을 나타내었으며, 제자들에게 약속된 성령을 보내었습니다.

사가랴는 분향하고 백성들은 기도하는 시간에 주의 사자가 사가랴에게 나타났습니다. 분향하고 제사하는 시간에 주의 사자의 나타남은 주의 사자가 다니엘에게 나타난 단9:21과 상응합니다. 다니엘도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 기도할 때에 그에게 이상을 보여 이방 나라의 멸망과 메시야 나라의 설립을 예언하였던 가브리엘이 나타났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자신의 죄와 및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산인 시온 산 곧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기도였습니다. 가브리엘이 나타나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로 말함으로 여호와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고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누가는 다니엘과 상응하게 기록함으로 다니엘에게 약속한 약속이 이제 성취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하고 제사 지내는 다니엘에게 나타나 약속하였던 가브리엘이 기도하고 제사 지내는 사가랴에게 나타나 그 약속의 성취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사자가 나타나자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였습니다. 놀라고 무서워 한 것은 단순히 하늘의 천사를 보아서가 아닙니다. 놀라고 무서워 한 것은 지금 이스라엘은 범죄한 백성으로 저주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천사가 일러 말하기를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제 무서워 말아야 되는 이유는 그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며 그 아들로 말미암는 온 백성의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사가랴의 기도는 자기의 아들과 관계된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식 없는 자가 자식이 있기를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위로를 바라는 것이요 그는 자기 자신의 위로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후사 없는 자신의 위로를 통하여 온 이스라엘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구약에서 아들 없는 자에게 아들을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통하여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조상 아브라함에게 자식이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아내 사라에게서 날 자를 통하여 아브라함의 자손을 번성시킬 것을 말씀하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며 그들이 여호와의 백성되리라 약속하였습니다. 또한 삼손의 부모도 아이가 없었지만 여호와의 사자가 삼손의 어미에게 나타나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나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말하였고 삼손을 통하여 블레셋의 압제 아래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였습니다. 또한 사무엘의 어미인 한나에게도 아들이 없었습니다. 하난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며 통곡하여 서원하였는데 하나님이 한나의 통곡과 원통함을 들으시고 그에게 아들을 낳게 하였습니다. 사무엘의 출생을 통하여 한나는 자기를 돌아보신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가난한 자를 일으키시고 빈핍한 자를 세우시는 여호와의 은혜를 보았고 노래 하였으며 여호와께서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보았습니다.

여기 사가랴에게 자식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자식이 없는 것은 수치요 부끄러움입니다. 이것은 지난 시간에도 말씀 드린 것처럼 단순히 한 개인의 수치와 부끄러움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약 의인들의 상태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살았어도 하나님의 위로와 긍휼의 은혜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에게 긍휼과 위로를 베풀 약속을 받았고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누가는 아들이 없음으로 긍휼을 얻지 못한 사가랴의 아들 주심을 통하여 단순히 한 가족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그 가정에 위로가 임함을 통하여 온 이스라엘 백성과 의인들의 위로가 성취되고 나타난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타난 위로의 아들을 통하여 온 이스라엘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이 예고되고 나타날 것입니다.

따라서 사가랴 가정의 아들의 출생은 사가랴의 기쁨과 즐거움일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도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아니하는 것은 구약 나실인의 서원과 같은데 그는 태에서부터 택함을 받은 것입니다. 마치 삼손이 날 때부터 나실인으로 서원 된 것과 같습니다. 그가 서원 된 것은 그 뒤에 설명되는 그의 사역을 위해 택함 받은 것입니다. 또한 그는 태에서부터 하나님의 사역을 위하여 택함을 받아 성령 충만함을 입은 자입니다. 그가 큰 자인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주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사역을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모든 선지자와 제사장이 그러한 일을 감당하였지만 이가 더 큰 이유는 그는 주 앞에 앞서 가서 그러한 일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이 난 자 중에 가장 큰 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주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은 특히 구약 말2:6에서 말하는 제사장의 참된 사역과 관계됩니다. 요한은 태에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자요 그는 참 된 제사장으로 서원 된 자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주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일을 감당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죄 아래 있는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범죄함으로 인하여 이방의 지배 아래 있고 긍휼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을 주 하나님께로 돌이킬 것입니다. 그것은 오시는 주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오실 메시야의 나라로 그들을 준비시키고 돌이켜 주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구약 엘리야의 사역과 같다 하겠습니다. 따라서 그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간다고 말합니다. 엘리야도 바알의 왕국이 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사역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례 요한의 사역도 그들을 회개 시켜 장차 올 하나님의 구원을 보도록 준비하고 돌이키도록 하는 사역인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말라기에서도 약속하기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라고 말하며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의 말씀의 응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누가도 말하기를 엘리야의 심령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그리고 첨가하여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 많은 해석이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 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말라기에서 말씀하는 것은 아비와 자식을 대명사로 하여 반목을 없애고 화목을 이룬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것은 말3:1-5에서 레위 가문의 회복과 압제 받는 자들을 위하여 심판을 행하시는 주의 강림과 그리고 그 앞서 보내는 주의 사자의 일과 관계 시켜 보았을 때 자기 백성을 엘리야를 통하여 율례와 법도를 지키도록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제사 제도의 회복과 압제 받는 자들을 위한 긍휼과 의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말라기에서 말하는 아비와 자식의 화목은 그러한 것들을 함축적으로 말한다 하겠습니다. 누가복음에서도 그러한 기본 전제가 깔려 있는데, 우리는 그 의미를 후에 세례 요한의 사역을 통하여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셀례를 베풀면서 회개하라 외침으로 하나님의 구원 볼 것을 예비하라 하였습니다. 그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불의와 압제를 버리고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특히 누가복음에서 아들의 마음을 그 아비에게란 말이 빠져 있고 아비의 마음을 그 자식에게란 말만 사용함을 통하여 어떻게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압제를 버리고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야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주의 율법을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지혜와 슬기로 돌아 오게 하는 것입니다.

천사가 전하여 준 말을 듣고 사가랴가 천사에게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 보라 이 일의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하였습니다. 사갸라는 자신과 아내의 나이 많음으로 인하여 천사의 말씀이 이루어질 표징을 구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믿음 없다 하는 것은 단순히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다는 그런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구약 때 아브라함과 사라도 그와 그의 아내가 나이 많아 늙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말합니다. 그것은 놀라움의 표현입니다. 따라서 사가랴는 표징을 구했던 것이며 그에게 벙어리됨을 표징으로 준 것이며 따라서 그가 벙어린 된 것은 때가 이르러 천사의 말이 성취되면 그 때 그도 벙어리에서 놓이기 될 것입니다.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의 성소 안에서 지체함을 기이히 여겼고 그가 나와서 저희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 성소 안에서 이상을 본줄 알았습니다. 사가랴가 형용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벙어리대로 있었고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후에 그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면서 주께서 나를 돌아 보시는 날에 인간에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냈다는 것은 그 뒤에 나오는 예수의 탄생과 연관시키는 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섯째 달에 예수의 수태 고지가 마리에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의 수태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의 수태입니다. 따라서 그의 수태의 사실은 뒤에 오시는 분의 수태 고지와 함께 알려지는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자녀가 없음으로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였지만 하나님이 주께서 그를 돌아보시고 위로하였습니다. 그의 수치를 가리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은혜가 이제 세례 요한을 통하여 온 백성에게 예비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의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가리우신 하나님, 의인인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가정에 아들을 주심으로 그들을 위로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였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출생된 아들을 통하여 그가 주 앞에 앞서 가서 먼저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심으로 뒤에 오셔서 자기 백성에게 온전히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 주의 길을 예비하게 하였습니다. 그가 곧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로 일컬어지며 영원히 야곱 집에 왕노릇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친히 자기 백성의 형제로 오셨는데 은혜의 해를 가져오고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십니다. 그를 통하여 은혜의 해가 이루어짐을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병든 자를 치료하심으로 나타내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아 이방의 권세 아래 있어서 가난하게 되고 눌리게 되고 종 된 자기 백성의 비천함을 돌아보고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는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고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는 그 온전한 성취를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으며 구약의 모세와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것처럼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썩음을 당치 아니하시고 하늘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그는 그 권세로 아버지께로부터 성령을 받으시고 성령을 자기 백성에게 보내어 능력을 입히셨습니다. 그리하여 구약에 의인들이 소망하였고 간구하였던 구원을 이루었습니다. 성령을 보내심이 그리하여 하늘의 비밀을 알고 죄사함을 얻고 권능을 입은 것이 긍휼과 자비와 위로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최종적인 위로의 선물이며 구원입니다. 이 성령의 권능은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 주님이 보내신 성령의 권능이어서 세상 권세의 나라가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세상을 이기며 흥왕하는 권능입니다. 구약 다윗의 나라는 범죄함으로 멸망하였고 썩음에 속한 나라였지만 그리스도 예수의 말미암는 나라는 썩지 아니하고 온 백성이 죄사함과 성령을 받는 의인의 나라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부요함과 자유함과 은혜의 해의 회복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듣고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을 받아 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방인들로서 긍휼의 은혜에 대한 소망이 없는 백성이었고 먹고 마심에 만족하고 사는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의인들의 소망을 온전케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있는 나라 백성이 됨으로 우리도 함께 의의 백성 위로를 받은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구약 의인들처럼 아직 위로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기도하거나 그 위로를 기다리는 백성이 아닙니다. 그들은 슬퍼 하였고 탄식하였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가난하고 병들고 자식이 없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러한 것 때문에 슬퍼하거나 탄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안에서 온전한 위로의 선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권세 있는 주의 나라의 은혜의 선물인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세상에 교만하고 높아지고 부요한 자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그들에게 위로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가난하고 병들고 자식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저주 받은 증거여서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변화 시킬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의 부요함으로 세상을 부요케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복과 은혜와 선물을 자랑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썩음에 속한 나라요 썩음의 선물입니다. 먼저는 그들의 왕이 죽음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왕인 예수는 썩음에 속하지 아니하며 하늘 보좌 우편, 하늘 성소에 나아가신 우리의 대제사장입니다. 그는 그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권능의 성령을 우리에게 부으셨습니다. 이 선물은 죽음을 이기시고 보좌에 앉으신 이가 보내신 영이기 때문에 썩지 아니하며 사라지지 아니하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지금 가난하고 병들고 늙고 자식이 없다 해도 담대히 주의 복음을 증거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중에 이루어진 위로의 은혜를 따라 온전한 의의 백성으로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백성들로 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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