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탄생과 유아 시절
122:0.1 팔레스틴이 미가엘의 증여 대상지로 선택된 이유와, 유란시아에서의 하느님의 아들의 즉각적인 출현을 위한 직접적인 배경으로서 왜 특별히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이 선택되지 않을 수 없었는지에 대한 많은 이유들을 완벽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122:0.2 미가엘은 격리된 세계들의 지위에 대하여 멜기세덱들이 작성한 특별 보고서를 검토한 후, 가브리엘과의 상의를 통하여, 자신의 최종적인 증여를 수행할 곳으로 유란시아를 선택하였다. 이러한 결정이 내려진 후, 가브리엘이 유란시아를 직접 방문하여 인간 집단들에 대해 연구하였고 그 세계의 영적, 지적(知的), 인종적, 그리고 지리적 양상들 그리고 그것의 민족들에 대하여 조사하였으며, 그는 그 결과에 따라 대상 인종을 선정함에 있어서 히브리인들이 상대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확실한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 결정이 미가엘의 인준을 받음에 따라, 가브리엘은 12인 가족 위원회 ─ 보다 높은 우주 품성(稟性)들의 계층들 중에서 선택된 ─ 를 임명하여 유대인 가정의 생활에 대한 조사임무를 위임하여 유란시아로 파견하였다. 이 위원회의 임무가 완수되었을 때, 유란시아에 나타난 가브리엘은, 그 위원회에서 논의된 결과에 의해서, 미가엘의 투영된 육신화되기에 똑같이 좋은 조건을 가진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세 쌍의 예비부부들을 추천 받았다.
122:0.3 추천된 그 세 쌍 중에서, 가브리엘이 직접 요셉과 마리아 부부를 선택하였으며, 그 후에 그가 친히 마리아에게 나타났고, 그 때 그는 증여될 그 아이의 현세 어머니가 되도록 그녀가 선택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그녀에게 전해 주었다.
122:1.1 예수(요셉의 아들 여호수아)의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은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계(母系) 선조들에 의해 때때로 비유대적 인종 혈통이 그의 족보에 많이 첨가되었다. 예수의 아버지의 조상은 아브라함의 시대까지 올라가고, 이러한 유서 깊은 족장 시대를 지나 더 초기의 혈통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수메르인과 노다이트족을 거쳐, 고대의 청인종(淸人種)으로 이루어진 남부 지방의 종족과, 그 위로 안돈과 폰타까지 이어진다. 다윗과 솔로몬은 요셉의 직계조상이 아니었으며, 그의 조상은 아담과도 직계 혈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요셉의 직접적인 선조들은 기능공들 ─ 건축가, 목수, 석공, 대장장이 ─ 이었다. 요셉 자신은 목수였으며 후에는 하도급 업자로 일하였다. 그의 가족은 품위 있는 평민으로 오래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명한 족보에 속해있었는데, 유란시아에서의 종교적 진보와 관련하여 특출하였던 탁월한 인재들이 때때로 배출되어 줄곧 남의 눈을 끌어 왔다.
122:1.2 예수의 육신적인 어머니인 마리아는, 유란시아의 인종적 역사 중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많은 여성들을 포함하여, 뛰어난 조상들로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집안의 후손이었다. 비록 마리아가 살았던 시대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 중에서 매우 정상적인 성품을 소유한 평범한 여자였지만, 그녀의 선조들 중에는 아논, 다말, 룻, 밧세바, 앤시, 클로아, 이브, 엔타와 라타와 같은 저명한 여인들이 있었다. 그 시대의 어떤 유대 여인도 더 유명한 평민 혈통을 갖거나 더 좋은 시조(始祖)로 거슬러 올라갈 만한 가계(家系)를 갖고 있지 않았다. 요셉과 마찬가지로 마리아의 조상도, 강하지만 평범한 개인들의 탁월성이 특징을 이루었으며, 문명화 그리고 종교의 진화과정 속에서 다수의 걸출한 개인들에 의해 때때로 돋보이게 되었다. 인종적 면에서 마리아를 유대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녀는 문화와 신앙적 면에서는 유대인이었지만, 유전적 자질에서는 시리아, 힛타이트, 페니키아, 그리스, 그리고 이집트 족들에 보다 가까웠으며, 그녀의 인종적 유전성은 요셉의 그것에 비해 더욱 총체적인 것이었다.
122:1.3 미가엘이 증여를 투영하고 있을 당시에 팔레스틴에 살고 있던 모든 부부들 중에서 요셉과 마리아는 광범위한 인종적 결합과 보통 이상의 우수한 품성적 자질을 가장 이상적으로 조화 있게 갖춘 부부였다. 평범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 나타나 평범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납득하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미가엘의 계획이었고; 그래서 가브리엘은 바로 그러한 자격을 갖춘 요셉과 마리아 부부를, 증여의 부모가 되도록 선택하였던 것이다.
122:2.1 유란시아에서의 예수의 필생의 과업은 세례 요한에 의해 실제로 시작되었다. 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는 유대인 제사장 지파에 속해 있었고, 그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은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속해 있는, 대가족으로 번창한 지파(支派)의 일원이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결혼한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자식이 없었다.
122:2.2 어느 날 한낮에 가브리엘이 엘리사벳에게 나타난 것은 요셉과 마리아가 결혼한지 약 3개월 후인 기원전 8년 6월말이었는데, 나중에 자신의 현존을 마리아에게 알려준 것과 똑같았다. 가브리엘은 이렇게 말하였다:
122:2.3 "네 남편 사가랴가 예루살렘에 있는 제단 앞에 서 있고,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구원자의 도래(到來)를 염원하고 있는 이 때에, 나 가브리엘은 곧 신성한 교사의 선구자가 될 아들을 네가 곧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과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어야 할 것임을 알려 주려고 왔다. 그 아이가 자라게 되면 너희들의 하느님이신 주(主)께 헌신하게 될 것이며, 장성한 후에는 네 가슴을 기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많은 혼들을 주(主)께로 인도할 것이며 또한 네 민족의 혼을 치료해 주고 모든 인류의 영(靈)을 해방시켜 줄 그의 도래를 선포할 것이기 때문이다. 네 친척인 마리아가, 약속된 이 아이의 어머니가 될 것이며, 나는 그녀에게도 나타날 것이다."
122:2.4 이 환상은 엘리사벳을 매우 놀라게 하였다. 가브리엘이 떠난 후, 그녀는 이 경험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였고, 장엄한 모습의 그 방문자가 말한 것들을 오랫동안 숙고하면서, 다음 해 2월초에 마리아에게도 가브리엘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남편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122:2.5 아무튼, 엘리사벳은 남편에게조차도 다섯 달 동안이나 비밀로 간직하였다. 가브리엘의 방문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사가랴는 매우 회의적으로 수 주 동안이나 모든 경험들을 의심했으며,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어서야 비로소 아내에 대한 가브리엘의 방문을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정도가 되었다. 사가랴는 엘리사벳의 임신에 관하여 매우 당황하였으나, 자신의 나이가 고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정직성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사가랴는 요한이 태어나기 약 6주전이 되었을 때에야, 인상적인 꿈을 꾸게 된 결과로, 엘리사벳이 운명적인 한 아들, 메시야가 도래할 길을 준비하는 자의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확신하게 되었다.
122:2.6 가브리엘은 기원전 8년 11월 중순경에 마리아가 나사렛에 있는 자기 집에서 일하고 있을 때 그녀에게 나타났다. 그 일이 있은 다음, 마리아는 자신이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된 후, 예루살렘으로부터 서쪽으로 4마일 떨어진 유다의 성 언덕에 위치한 엘리사벳의 집을 방문할 수 있도록 요셉을 설득하였다. 가브리엘은 어머니가 될 두 여인들에게, 자신이 상대방에게도 출현할 것임을 알렸었다. 자연히, 그들은 서로 만나 각자의 경험들을 비교하고 자기 아들들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였다. 마리아는 자신의 먼 친척이 되는 그 집에 3주 동안 머물렀다. 가브리엘을 만났던 환상에 대한 마리아의 신앙에 엘리사벳이 더욱 힘을 불어넣었고, 그녀는 자신이 곧 낳게 될 아무 힘없고 이 세상의 보통이고 평균적인 운명적 아이의 어머니로 부름 받은 것에 보다 열심히 헌신하려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다.
122:2.7 요한은 기원전 7년 3월 25일에 유다의 성에서 출생하였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가브리엘이 약속한대로 아들이 생긴 것을 매우 기뻐하였으며, 태어난지 8일째 되는 날 그들은 아이에게 할례를 베풀었고, 그들은 전에 지시 받았던 대로 요한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인 세례명으로 주었다. 사가랴의 조카가 이미 나사렛으로 길을 떠났는데,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았고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할 것이라는 그녀의 소식을 마리아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였다.
122:2.8 요한은 자신이 자라게 되면 영적 지도자가 되고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모로부터 조심스럽게 전수 받았다. 그리고 요한의 가슴 밭은 그러한 씨앗이 언제 뿌려지더라도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에도 그는 자기 아버지가 봉직하는 기간 동안 성전에서 자주 눈에 띄었고, 자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의 의미에 대해 크게 감동되곤 하였다.
122:3.1 해가 질 무렵이 된 어느 날, 요셉이 집에 돌아오기 전에, 가브리엘은 돌로 만든 낮은 식탁 옆에서 마리아에게 나타났으며, 그녀가 침착성을 되찾기를 기다린 후 말하기를, "나는 나의 주(主)시며 너도 앞으로 사랑하고 양육하게 될 그 분의 명령에 따라서 여기에 왔다. 마리아야, 나는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는데, 너의 임신은 하늘이 정한 것이고, 때가 되면 네가 한 아들의 어머니가 될 것이며; 너는 그의 이름을 여호수아라고 불러야 하고, 그는 이 땅에서 또한 사람들 중에서 천국의 막을 열 것이다. 내가 이미 방문했던 네 친척 엘리사벳과 요셉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마라. 그녀 또한 요한이라 불릴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는 네 아들이 막강한 힘과 깊은 신념으로 사람들에게 해방의 메시지를 전하게 될 길을 예비할 것이다. 마리아야, 나의 말을 의심하지 말라. 왜냐하면 이 집이 운명의 아이가 이 세상에서 거주할 곳으로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축복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며, 지고자의 힘이 너를 강하게 해 줄 것이며, 또한 온 세상의 주(主)께서 너를 보호할 것이다."
122:3.2 마리아는 자신이 확실히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가브리엘의 방문에 대하여 여러 주 동안 가슴속으로만 은밀하게 숙고하였으며, 이 이상한 일들을 남편에게 감히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요셉이 이 사실을 모두 알게 되었을 때, 마리아에 대한 자신의 깊은 신뢰감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동요되어 여러 날 동안 잠을 설쳤다. 요셉은 처음에는 가브리엘의 방문을 의심하였다. 그러고 나서, 마리아가 정말로 신성한 사자(使者)로부터 음성을 들었고 그의 모습을 보았었다는 사실이 거의 믿어지게 되었을 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면서 괴로워하였다. 인간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어떻게 신성한 운명의 자녀가 될 수 있겠는가? 요셉은 혼돈되는 이 개념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여러 주 동안의 고심 끝에, 그와 마리아 모두는 예정되어진 구원자는 신성한 본성을 지닌 분이어야 한다는 유대인의 개념과는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이 메시야의 부모로 선택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중대한 결론에 이르자,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방문하기 위해 서둘러 떠났던 것이다.
122:3.3 마리아는 돌아오는 길에 자기 부모인 요아킴과 한나를 방문하였다. 그녀의 부모를 위시하여 두 오빠들과 두 언니들은, 이 때 가브리엘의 방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기는 하였지만, 예수의 이 신성한 임무에 대해 늘 심한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자기 아들이 장차 위대한 선생이 되도록 운명 지어졌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자기 언니 살로메에게 털어놓았다.
122:3.4 가브리엘은 예수가 잉태된 다음 날 마리아에게 이 소식을 전했었고, 그의 방문은 그녀가 약속의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전체 경험 중에서 일어난 단 한번의 초자연적인 사건이었다.
122:4.1 요셉은 자기가 매우 인상적인 꿈을 꾸기 전까지는 마리아가 특별한 아이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 꿈속에서 밝게 빛나는 천상의 사자(使者)가 그에게 나타나 말한 것들 중에서 주요 내용은 이렇다: "요셉아, 나는 저 높은 곳을 지배하고 계시는 그 분의 명령에 따라서 왔는데, 장차 세상의 위대한 빛이 되실 아들을 마리아가 잉태하게 될 것에 대해 너에게 설명해 주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의 안에 생명이 있을 것이며 그의 삶은 인류의 빛이 될 것이다. 그는 우선 자기 동족에게 나타내시게 되며, 그들은 그를 거의 영접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들이라는 사실을 계시할 것이다." 이 경험이 있은 후에는, 요셉은 가브리엘의 방문에 대한 마리아의 이야기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세상의 신성한 사자(使者)가 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다시는 의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122:4.2 이러한 방문들이 이루어지는 동안, 다윗의 가문에 대한 언급은 한 번도 없었다. 예수가 "유대인들의 구원자"가 되리라는 암시는 전혀 없었으며, 대망(待望)하던 메시야가 될 것이라는 암시도 전혀 없었다. 예수는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그런 메시야가 아니라 세상의 구원자였던 것이다. 그의 임무는 어떤 한 집단이 아닌 모든 인종들과 민족들을 위한 것이었다.
122:4.3 요셉은 다윗 왕의 후손이 아니었다. 요셉보다는 마리아가 다윗의 혈통에 더 가까웠다. 요셉이 로마 정부의 인구조사에 응하기 위해 다윗의 성읍인 베들레헴에 갔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요셉의 6대조 부계(父系) 조상이 고아가 되어, 다윗의 직계 자손인 사독에게 입양되었기 때문이었으며; 그로 인해 요셉도 "다윗의 가문(家門)"으로 간주되었다.
122:4.4 구약성경에서 소위 메시야 예언서들이라고 불리는 것들 중 대부분을 예수에게 적용시킨 것은 예수가 이 지상을 떠난지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이루어졌다. 수세기 동안 히브리 예언자들은 구원자의 도래(到來)를 선포해 왔으며, 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이러한 약속들은, 다윗 왕의 권좌를 계승할 새로운 유대인 통치자가 도래할 것이며, 모세와 같은 기적적인 방법을 통하여, 팔레스틴에 유대인이 통치하는 강력한 나라를 세우고, 모든 다른 나라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라고 해석되어 왔었다. 그 외에도, 히브리 경전 속에 있는 많은 상징적인 구절들이 후대에 이르러서 예수의 삶 사명에 잘못 적용되어졌다. 구약성경에 있는 많은 구절들이 너무 심하게 왜곡되어서 마치 주(主)의 삶에서의 어떤 사건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이게 되었다. 예수께서 자신과 다윗 왕가의 관계에 대하여 본인이 직접 공개적으로 부인한 적도 한 번 있었다. 심지어는 "한 여자가 아들을 잉태할 것이다" 라는 문장마저도 "한 처녀가 아들을 잉태할 것이다"로 해석되었다. 이것 역시 미가엘의 이 세상 생애 이후에 작성된 요셉과 마리아의 족보에서의 많은 것 중에서 진실이다. 이러한 족보 속에는 주(主)의 실제적인 조상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그것들은 정확한 것이 아니며 사실에 근거를 두지 않은 듯이 보인다. 초기에 예수를 추종하였던 모든 사람들은 고대의 예언적 기사들 모두가 자기들의 주(主)시며 주인이신 그 분의 삶 속에서 성취된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유혹에 너무 자주 빠졌다.
122:5.1 요셉은 온화한 성품과 매우 양심적인 사람이었으며, 자기 민족의 모든 종교적 관례와 습관에 항상 신실하였다. 그는 말이 거의 없었지만 생각이 깊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의 비참한 처지는 요셉을 매우 슬프게 하였다. 젊은 시절의 요셉은 여덟 명의 형제자매들 중에서 매우 쾌활한 편이었으나, 결혼 초기에 (예수의 어린 시절) 그는 정신적으로 약간 좌절감에 빠져 있었다. 이러한 타고난 태도는 그가 뜻밖의 죽음을 당하기 바로 전에, 그리고 그가 단순한 목수(木手)의 직업에서 유망한 하청 업자가 됨으로써 가족들의 경제적인 형편이 풀린 후에는 매우 호전(好轉)되어 있었다.
122:5.2 마리아의 성품은 그녀의 남편과는 상당히 상반적인 것이었다. 그녀는 늘 명랑하였고, 기가 꺾이는 적이 거의 없었으며, 항상 밝은 성격을 갖고 있었다. 마리아는 자신의 감정적인 느낌들을 자유롭게 수시로 표현하곤 하였으며, 요셉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전까지는 슬픔에 잠긴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었다. 그녀는 매우 빠른 속도로 자기 눈앞에서 놀라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첫 아들의 범상치 않은 생애에 대해 염려와 의문을 품게 되었을 때에도, 그녀는 아직 이 충격에서 거의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평범하지 않은 이 모든 경험들을 겪으면서 마리아는 이상하고 납득하기 힘든 맏아들과 그의 형제자매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침착하고 용기 있게 그리고 현명하게 대처하였다.
122:5.3 예수는 인간본성에 대한 굉장히 동정심이 많은 납득과 남다른 부드러움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으며, 어머니로부터는 위대한 지도자로서의 재능과 불타는 정의(正義)감에 대한 엄청난 가능성을 물려받았다. 성인(成人)으로서의 삶을 사실 때 예수의 감정적 태도 속에는, 아버지처럼 생각이 많고 신앙적이며 가끔 씩은 슬픈 듯이 보이는 성격이었지만; 마리아의 낙천적(樂天的)이고도 확고한 성품을 드러내는 경우가 더 많았다. 대체적으로, 신성한 아들이 성장하는 과정과 성인(成人)으로서의 중대한 과정을 걸어가는 그의 생애에 마리아의 기질이 더 지배적이었다. 어떤 특별한 경우에는 예수께서 부모 두 사람의 특색의 혼합된 면을 보였고; 또 다른 면에서는 두 사람의 상반되는 특색들을 보이기도 하였다.
122:5.4 예수는 유대 의식(儀式)들의 용법에 대한 엄한 훈련과 히브리 경전에 대한 보기 드문 식견(識見)을 요셉으로부터 물려받았으며; 마리아로부터는 종교생활에 대한 보다 폭넓은 관점과 개인의 영적 자유에 대한 좀 더 개방적인 개념을 얻었다.
122:5.5 요셉과 마리아의 두 집안은 그 당시로서는 교육을 잘 받은 편에 속했다. 요셉과 마리아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생활수준에 비추어 볼 때, 평균보다 훨씬 높은 교육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요셉은 깊은 사색가였던 반면; 마리아는 계획가, 적응력이 뛰어났고 즉각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실천적인 사람이었다. 요셉은 검은 눈과 검은 머리를 가졌으며, 마리아는 갈색 눈과 금발에 가까운 머리를 갖고 있었다.
122:5.6 요셉이 살아 있었더라면,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자기 맏아들의 신성한 사명을 확고하게 믿었을 것이다. 마리아는 그녀의 다른 자식들과 친구들 그리고 친척들이 취하는 태도에 영향을 받으면서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태도를 보이기는 하였지만, 그녀의 최종적인 태도는 그 아이가 잉태된 직후에 나타났던 가브리엘에 대한 기억에 의해서 항상 유지되었다.
122:5.7 마리아는 옷감 짜는 숙련자이었는데 그 당시 가내수공업 기술 대부분의 평균 수준을 훨씬 넘는 것이었으며; 훌륭한 살림꾼이었고 뛰어난 가정주부였다. 요셉과 마리아는 둘 모두 훌륭한 선생 역할을 하였으며, 자식들이 그 당시의 지식에 해박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122:5.8 요셉은 젊었을 때 마리아의 부친의 집 증축공사에 고용되었었는데, 점심 식사시간에 마리아가 요셉에게 마실 물을 가져다 준 것이 인연(因緣)이 되어, 예수의 부모(父母)가 되도록 운명이 정해진 부부로서의 구애(求愛)관계가 실제적으로 시작되었다.
122:5.9 요셉이 21살 되던 해에, 그와 마리아는 나사렛 근처에 있는 마리아의 집에서 유대전통에 따라 결혼식을 올렸다. 이 결혼은 거의 2년 동안에 걸친 정상적인 정혼 기간 후에 치러졌다. 그 직후에 그들은 나사렛에 있는 새 집으로 이사하였으며, 그 집은 요셉이 두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지은 것이었다. 그 집은 사방에 펼쳐진 시골 풍경이 매우 아름답게 내려다보이는, 가까이에 있는 구릉지(丘陵地) 밑에 위치하고 있었다. 곧 부모가 될 이 두 젊은 부부는, 자신들이 집을 떠나 유대 땅 베들레헴에 가 있는 동안에 한 우주의 중대한 사건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거의 깨닫지 못한 채, 이 집에서 약속의 아이를 맞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하였던 것이다.
122:5.10 요셉 쪽의 가족 대부분은 예수의 가르침을 믿는 신자(信者)들이 되었지만, 마리아 쪽의 사람들은 예수께서 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그를 믿는 자가 거의 없었다. 요셉은 장차 도래할 메시야에 대하여 영적인 개념에 더 치우쳐 있었지만, 마리아와 그녀의 가족들, 특히 그녀의 아버지는 메시야에 대해서 단지 현세적인 구원자나 정치적 통치자로서의 개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마리아의 선조들은 그 당시 최근 시대의 마카비 운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122:5.11 요셉은 유대교에 대하여 열정적으로 동양적 혹은 바빌로니아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으며, 마리아는 율법과 예언서들을 해석함에 있어서 보다 자유분방하고 폭넓은 서양적 혹은 헬라적인 견해에 강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122:6.1 예수의 집은 나사렛의 북쪽 지역에 있는 높은 언덕에서 그리 멀지 않고, 성읍의 동쪽 지역에 있는 마을 우물에서 조금 떨어진 있었다. 예수의 가족은 도시 외곽(外廓)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로 인하여 그가 나중에 수시로 시골길 산책을 즐기거나 근처에 있는 고원지대(高原地帶), 동쪽으로 뻗어 있는 다볼산 그리고 비슷한 높이의 나인 언덕을 제외하고는 남부 갈릴리의 모든 언덕들 중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오르는 것을 훨씬 쉽게 하였다. 그들의 집은 이 언덕의 남쪽 구릉으로부터 약간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이 언덕의 기슭과 나사렛으로부터 가나 쪽으로 가는 길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었다. 언덕을 오르는 것 외에도, 예수께서는 세포리로 가는 길과 만나게 되는 지점을 향하여 북동쪽으로 자리 잡고 있는 언덕 기슭을 따라 굽이굽이 난 좁은 길을 따라 산책하기를 즐겼다.
122:6.2 요셉과 마리아의 집은 지붕이 평평하고 방이 하나가 있는 석조 건물이었으며 가축들을 기르는 부속 건물 하나가 붙어 있었다. 가구들로는 낮은 식탁, 질그릇과 돌로 된 접시와 냄비들, 베틀, 등잔, 몇 개의 작은 의자들, 그리고 돌바닥에 깔고 자는 돗자리들이 있었다. 축사(畜舍)가 가까이 있는 뒷마당에는 곡식을 가는데 필요한 맷돌과 화덕을 보관해 두는 창고가 있었다. 그 맷돌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돌리고 다른 한 사람은 곡식을 집어 넣기 위해 두 사람을 필요로 하였다. 예수는 어린 시절에 자기 어머니가 맷돌을 돌리는 동안 곡식을 집어 넣는 일을 자주 도왔다.
122:6.3 해가 바뀌면서 가족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온 식구들은 더 넓게 만든 돌 식탁 주위에 함께 좁혀 앉아 음식이 들어 있는 접시나 혹은 냄비에서 각자의 음식을 덜어 먹으면서 즐거운 식사시간을 가졌다. 겨울 동안의 저녁식사 때에는 올리브기름으로 채워진 작고 납작한 진흙 등잔으로 식탁을 밝혔다. 마르다가 태어난 후, 요셉은 집에 큰 방을 하나 덧붙여지었으며, 낮에는 목공소로 쓰고 밤에는 침실로 사용하였다.
122:7.1 기원전 8년 3월 (요셉과 마리아가 결혼한 그 달)에 시저 아우구수투스는 로마 제국의 모든 거주자들이 인구조사를 받도록 명령하였는데, 이는 세금징수를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항상 "자기 민족이 계수(計數) 되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으며, 그리고 이것은, 유대의 왕 헤롯의 국내의 심각한 어려운 여건들과 관련하여, 유대인의 나라에 대한 인구조사를 1년간 연기하도록 만들었다. 기원전 8년에 이 인구조사(人口調査)가 로마 제국 전역에서 실시되었지만, 유독 헤롯이 지배하는 팔레스틴 왕국만은 예외였는데, 그보다 일 년 후인 기원전 7년에 실시되었다.
122:7.2 등록을 위하여 마리아 역시 베들레헴으로 반드시 여행할 필요는 없었지만 ─ 요셉에게는 가족 전체를 등록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음 ─, 모험을 좋아하고 적극적인 성격인 마리아는 그와 동행하겠다고 고집하였다. 그녀는 요셉이 집을 비운 동안에 혼자 아이를 낳게 될까봐 걱정스러웠고 게다가 베들레헴이 유다의 성읍과 그리 멀지 않았으므로 그녀의 친척인 엘리사벳을 다시 방문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였기 때문이었다.
122:7.3 요셉이 마리아의 동행을 막으려고 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으며; 3일 내지 4일의 여행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면서 그녀는 두 사람의 몫을 만들어서 자기도 여행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정작 출발하기 전에 요셉은 마리아의 동행을 수락하였으며, 그들은 새벽녘에 기쁜 마음으로 나사렛을 떠났다.
122:7.4 요셉과 마리아는 가난하였고, 타고 갈 수 있는 가축이 한 마리밖에 없었기 때문에, 임신하여 몸이 무거운 마리아가 물건들과 함께 짐승 위에 타고, 요셉은 걸으면서 그 짐승을 끌고 갔다. 요셉은 최근에 자기 아버지가 몸을 못 쓰게 되어 부모들도 부양해야 되었기 때문에 자기 집과 살림 가구 등을 유지하기가 크게 부담스러워 졌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이 유대인 부부는 기원전 7년 8월 18일 이른 아침에 초라한 자기 집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길을 떠났던 것이다.
122:7.5 여행 첫 날, 그들은 길보아산 기슭에 있는 작은 언덕에 도착하였으며, 그들은 그곳에서 요단강 가에 야영지를 정하고 밤을 보내면서 과연 아이가 태어날 까에 대해 여러 가지의 추측을 하였는데, 요셉은 영적인 지도자로서의 개념을 버리지 않았고 마리아는 히브리 국가의 구원자인 유대의 메시야에 대한 개념을 고집하였다.
122:7.6 8월 19일의 밝은 이른 아침에, 요셉과 마리아는 다시 길을 계속하였다. 그들은 요단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사르타바산 기슭에서 점심을 먹었고, 여행을 계속하여 그 날 밤에 여리고에 도착하여 그 성읍(城邑) 변두리 도로 변에 위치한 여인숙(旅人宿)에 묵었다. 저녁식사 후에는 로마의 통치에 의한 압제, 헤롯, 인구조사 등록, 그리고 유대교육과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예루살렘과 알렉산드리아의 상대적 영향력 등에 대한 많은 토론을 한 후, 나사렛에서 온 이 여행자들은 잠자리에 들었다. 8월 20일 아침 일찍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나, 정오가 되기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성전(聖殿)을 방문하고 다시 길을 재촉하여 목적지(目的地)인 베들레헴에는 오후에 도착하였다.
122:7.7 여인숙은 손님들로 가득 찼으므로 요셉은 먼 친척들과 함께 기거할 수 있는 집을 찾았으나 베들레헴에 있는 모든 방들은 이미 만원이었다. 그 여인숙 안마당으로 돌아오면서, 그는 여인숙 바로 아래쪽에 바위를 깎아내고 대상들을 위해 지어놓은 마구간들을, 숙박객을 위하여 짐승들을 치우고 깨끗하게 청소해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셉은 당나귀를 여인숙 안마당에 매어 놓은 후에, 옷 보따리와 식량을 어깨에 메고 아래쪽에 있는 숙소를 향하여 마리아와 함께 돌계단을 내려갔다. 그들의 숙소는 전에 곡식창고로 사용되었던 곳이었으며, 맞은편에는 마구간과 구유가 놓여 있었다. 천막 휘장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들은 이런 안락한 장소나마 얻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122:7.8 요셉은 바로 나가서 등록하려고 생각했었지만, 마리아는 매우 지쳐있었으며; 상당히 고통스러워진 그녀는 자기 곁에 있어주기를 간절히 원했고 그는 아내의 말대로 하였다.
122:8.1 밤새도록 마리아는 몸이 불편해서 그녀와 요셉은 거의 잠을 자지 못하였다. 해가 뜰 무렵 산통(産痛)이 심해졌고, 기원전 7년 8월 21일 정오에, 다른 동료 여자 여행객들의 친절한 도움을 받아서, 마리아는 한 아들을 낳았다. 나사렛 예수께서 세상에 태어나셨으며, 그는 마리아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가져온 옷에 싸여, 가까이에 있는 구유에 눕혀졌다.
122:8.2 그 전이나 그 후에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아기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약속된 이 아기가 태어났으며; 팔 일째 되는 날에 유대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았고, 공식적으로 여호수아(예수)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122:8.3 예수께서 태어나신 다음 날, 요셉은 인구조사에 등록했다. 그는 이틀 전에 여리고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남자는 여인숙에 머물고 있는 부유한 자기 친구에게 요셉을 데리고 갔으며, 그 친구는 나사렛에서 온 그 부부와 기꺼이 숙소를 바꾸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날 오후에 그들은 여인숙으로 방을 옮겼고, 요셉의 먼 친척되는 집에 숙소를 얻기 전까지, 거의 3주간을 그곳에서 지냈다.
122:8.4 예수께서 태어나신지 이틀 후,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자기 아이가 태어났다는 전갈을 보냈으며, 요셉에게 예루살렘에 와서 사가랴와 함께 그들이 당면한 모든 일들에 대해 상의하자는 초청을 회답으로 받았다. 그 다음 주에 요셉은 사가랴와 상의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갔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예수께서 진실로 유대인의 구원자, 메시야이시며, 자신들의 아들 요한은 조력자들의 우두머리로서 그의 오른팔 역할을 하도록 운명지어졌다는 것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되었다. 마리아도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가 자라서 다윗의 뒤를 이어 온 이스라엘의 왕좌에 오를 수 있도록 다윗의 성읍인 베들레헴에 자기들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별로 어렵지 않게 요셉을 설득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베들레헴에 일 년 이상을 머물러 있었으며, 요셉은 그 동안 목수 일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122:8.5 예수께서 탄생하신 날 정오에, 유란시아의 수호천사들이 지휘자들 밑에 함께 모여 베들레헴의 구유 위에서 영광의 찬미를 불렀지만, 이 찬미의 소리들은 인간이 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사가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보낸, 우르에서 온 어떤 사제(司祭)들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목동들은 물론 다른 어떤 필사 창조체들도 베들레헴의 아기에게 경의를 표하러 오지 않았다.
122:8.6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온 이 사제들은, 유대인들 가운데에서 "생명의 빛"이 아기의 모습으로 곧 나타날 것이라는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자기 나라에 있는 기이한 종교 지도자로부터 얼마 전에 들었었다. 그래서 세 명의 이 선생들은 그 "생명의 빛"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찾아보려던 여러 주간의 수고가 허사로 끝난 후에, 그들이 막 우르로 돌아가려 할 때, 그들은 사가랴를 만나게 되었고, 그는 그들이 찾는 대상이 바로 예수임에 틀림없다는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으며,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냈고, 그곳에서 아기를 발견한 그들은 그의 육신적인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선물을 전해 주었다. 그들이 방문하였을 때, 아기는 태어난지 3주 정도되었다.
122:8.7 이 현자(賢者)들은 별을 따라서 베들레헴에 온 것이 아니었다. 베들레헴의 별에 대한 아름다운 전설은 다음과 같이 유래된 것이다: 예수는 기원전 7년 8월 21일 정오에 태어났다. 기원전 7년 5월 29일에 물고기 별자리 안에 있는 목성과 토성이 유례없이 겹쳐지는 현상이 있었다. 같은 해 9월 29일과 12월 5일에도 이와 비슷한 겹쳐지는 현상이 있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천문학적 사건이다. 이러한 특수하지만 또 전적으로 자연적인 사건들에 대해, 선의(善意)를 가진 후세대의 열광적인 신자들은, 동방박사 세 사람이 베들레헴의 별을 따라 구유로 안내되었고 그곳에서 그 아기를 발견하여 경배를 드렸다는 흥미로운 신화를 만들어 내었다. 동양적이거나 거기에 가까운 마음을 지닌 자들은 요술 같은 이야기를 좋아하며, 그들은 종교 지도자들이나 정치적 영웅들의 삶에 관해 아름다운 신화들을 계속하여 지어낸다. 인쇄술이 없던 시절에는, 대부분의 인간들의 지식이 구전(口傳)으로 다음 세대에게 전달되어졌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신화가 전통으로 바뀌고 또 그 전통이 결국에는 사실로 와전되기가 매우 쉬웠다.
122:9.1 모세는 유대인들에게 모든 첫아들은 주(主)께 속해 있다고 가르쳤으며, 이방인 국가들 중에서 관습으로 행해지는 것처럼 그를 희생 제물로 바치는 대신에, 권한이 부여된 사제에게 그의 부모가 다섯 세겔을 바침으로써 그 아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아기의 어머니에게는 어떤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 성전에 직접 나와서 (아니면 다른 사람이 적당한 희생 제물을 바치게 하여) 정화(淨化)를 받도록 하는 모세의 율례(律例)가 있었다. 이 두 가지의 의식이 동시에 행해지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요셉과 마리아도, 제사장들에게 예수를 보이고 그에 대한 속전(贖錢)을 바치기 위하여 그리고 아이의 출산으로 인하여 추정되는 마리아의 부정(不淨)함을 정결케 하는 예식에 해당하는 희생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직접 올라갔다.
122:9.2 성전 안마당에는 비범한 두 인물들, 노래를 부르는 시므온과 여자 시인 안나가 항상 서성거리고 있었다. 시므온은 유대인이었지만 안나는 갈릴리인 이었다. 이 두 사람은 자주 서로에게 동무가 되었고, 둘 모두 제사장 사갸라와 절친한 사이였으며, 그가 요한 세베대와 예수에 대한 비밀을 그들에게 알려주었었다. 시므온과 안나 두 사람 모두 오랜 세월 동안 메시야의 도래를 고대해 왔고 또 사가랴를 신뢰하였으므로, 예수가 바로 유대 민족이 기대해 온 구원자임을 믿게 되었다.
122:9.3 사가랴는 요한과 마리아가 예수를 데리고 성전에 오기로 한 날을 알고 있었고, 그가 손을 들어 인사함으로써, 여러 명의 첫-아들들 중에서 어떤 아이가 예수인지를 가리켜 주기로 시므온과 안나와 사전에 협의하였다.
122:9.4 이 경우에 대비하여 안나가 지은 시를 시므온이 노래로 불렀는데, 요셉과 마리아를 위시하여 성전 마당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하였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첫-아들의 구원에 대한 찬미를 불렀다:
122:9.5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主)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우리에게 오셨고 자기 백성을 위하여 구원을 이루셨도다;
우리 모두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다.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함이라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라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정의로
두려움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이 약속의 아이여 네가 지고자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가서 그의 나라를 건설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느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나이다.
122:9.6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길에 요셉과 마리아는 ─ 혼동되고 겁이 나서 ─ 아무 말이 없었다. 마리아는 늙은 여자 시인인 안나의 작별 인사 때문에 매우 불안하였고, 요셉은 유대 민족이 고대하던 메시아로 예수를 공표하려는 그들의 미숙(未熟)한 노력을 납득할 수 없었다.
122:10.1 그러나 헤롯의 정탐꾼들도 가만히 보고 있지 만은 않았다. 우르에서 사제들이 베들레헴을 방문했다는 보고를 받자, 헤롯은 그 갈대아인들을 자기 앞에 출두시켰다. 그는 이 현자들에게 새로운 "유대인의 왕"에 대해 자세히 캐물었지만, 그들은 인구조사에 응하러 남편을 따라 온 한 여인이 베들레헴에서 아기를 출산했다는 대답밖에 해 주지 않았다. 이 대답에 만족할 수 없었던 헤롯은, 그의 나라는 세속적이 아닌 영적인 것이 될 것이라고 그들이 주장하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돈을 주어 보내면서, 헤롯 자신도 그 아기에게 가서 경배할 수 있도록 그 아기를 찾아 보고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 현자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자, 헤롯의 의심은 더 심해졌다. 그가 이 일들에 대해 마음속으로 숙고하고 있을 때, 그의 정탐꾼들이 돌아와서 성전에서 최근에 생긴 일들에 대해 보고 했으며, 예수의 속전예식(贖錢禮式)에서 시므온이 노래한 가사들 일부의 사본도 가져왔다. 그러나 그들은 요셉과 마리아를 추적하는 데 실패하였으며, 헤롯은 그 부부가 아기를 어디로 데리고 갔는지를 알아 내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에게 크게 화를 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요셉과 마리아를 찾도록 사람들을 보냈다. 헤롯이 나사렛에서 온 그 가족을 좇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베들레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아기는 요셉의 친척들 집으로 숨겨졌다.
122:10.2 요셉은 일자리를 구하기가 두려웠으며, 따라서 그들의 얼마 안 되는 저축은 금방 바닥이 났다. 요셉은 성전에서 마리아의 정결 예식을 위해, 모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제정해 준 정결 제물 예법대로, 어린 비둘기 두 마리만 바쳤을 정도로 가난해 있었다.
122:10.3 1년이 넘은 후까지도 그의 정탐꾼들이 예수를 찾지 못하자, 아직도 아기가 베들레헴에 숨어있다고 의심하였기 때문에, 헤롯은 베들레헴의 모든 가정에 조직적인 조사를 실시해서 두 살 아래의 남자 아기들을 모두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리고자 하였다. 헤롯은 이런 방법을 통해서라도, 장차 "유대인의 왕"이 될 아기를 없애고 싶었다. 그리하여,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는 하루 동안에 열 여섯 명의 남자 아기들이 살해되었다. 그러나 이런 음모와 살인은 헤롯의 궁내에서는 빈번한 사건들이었으며, 심지어는 그의 직계 가족들에게도 해당되었다.
122:10.4 이 아기들의 집단적 살해는 예수가 겨우 한 살을 조금 넘었던 기원전 6년 10월 중순에 일어났다. 그러나 헤롯의 측근자들 중에도 도래할 메시야를 믿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중의 하나가 베들레헴에서의 아기 살해 계획을 사가랴에게 알려 주었으며, 그는 바로 요셉에게 전갈을 보냈고; 살해 사건이 있던 전날 밤에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를 데리고 베들레헴을 떠나 이집트에 있는 알렉산드리아로 떠났다.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아무도 동행시키지 않고 예수만을 데리고 이집트로 여행하였다. 사가랴가 마련해 준 돈으로 그들은 알렉산드리아로 갔으며, 마리아와 예수가 요셉의 한 부유한 친척의 집에 머무르는 동안 요셉은 직접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꼬박 2년 동안 알렉산드리아에서 머물렀고, 헤롯이 죽을 때까지 베들레헴에 돌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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