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태지가 참 불쌍하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솔직히 말해보자고. 한 때의 김대중 가라사대 문화 대통령이 지금은 마니아들에 둘러싸인 오타쿠 대통령이다. 그래도 베스트 앨범 때까지는 통했는데 말이야. 코엑스 상공의 UFO나 미스테리 써클 떡밥 따위 아무리 날려봐야 이효리 동영상 한 방에 무참히 발려버리는 식이잖아. 서태지라는 아이콘의 전복적인 이미지마저 이제 와서는 의심받는 형편이다. 그는 정말 뜨거운 사람이었나. 그는 정말 순수했나. 그는 정말 뭔가를 바꿀 의지가 있었던가.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라는 숭고한 가사에 어울리는 인물이었나.
그랬다고 본다. 최소한 1집과 2집 때까지는 말이다. 서태지는 사실상 기획사가 만들어내지 않은, 그야말로 작가적인 의미의 대중문화 아이콘으로서 최극단의 마지막 세대였다는 느낌이다. 서태지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기성세대와 차별화되고 있다는 선민의식을 갖던 때가 있었다. 기성세대가 서태지의 음악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했으면 하는 때가 있었다고. 3집 때부터 뭔가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태극기를 배경으로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모습은 초현실적이었다. 이를테면, 그저 섹시하고 도발적이기만 했던 소녀가 어느 날 갑자기 소주를 받아들며 고개를 뒤로 돌려 쪽하고 빨아 마시는, 그래서 그걸 지켜보는 아저씨들이 아 너에게 그런 모습도 있구나, 참 좋다, 하는 그런 풍경이었달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저기 저 대형 태극기보다 더 큰 국가대표급 욕망이 거기 있었다.
요컨대 이런 것이다. 밥 딜런은 “나는 당신들이 알고 있는 그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태지는 “나는 당신들이 알고 있는 그 사람이고 싶다, 언제까지나 그러고 싶다”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 환상을 깨지 않기 위해, 지속시키기 위해, 더 오랫동안 너희들의 그 사람이기 위해 은퇴를 감행했다. 더불어 필연적으로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특유의 신비주의 마케팅은 더욱 심해졌다. 서태지는 사랑받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의 욕망은 그 자신을 옭아매어 결국 마니아들만의 서태지로 타자화되고 말았다. 업보다. 어쩌겠어. 서태지만의 음악세계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길이라고 했지만, 실은 서태지라는 거대한 환상에 천착하고 있는 사람들을 오래도록 만족시키기 위한 길이었거든. 곧 나올 앨범, 좋았으면 좋겠다. 사랑 받았으면 좋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형차 광고에 나와 피아노를 치며 열정을 논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말이야. 서태지를 향한 우리들의 사랑마저 어쩌면, 환상이었는지 모르겠다. 뱉고 나니 그것 참 쓸쓸하다. 아이고 내 젊은 날. 허지웅 프리미어 기자 (<시사 IN> '캐릭터 열전')
[허지웅, 김현진의 라디오 킬 더 비디오 스타: 서태지 행복하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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