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리데 선교 사역 (행27:1-28:10)
1. 로마로 여정 시작
사도행전 16장 10절에서 이른바 “우리 단락”이 나오기 시작하여 21장 18절 이후로 사라졌던 “우리”가 이제 다시 등장한다. 사도행전 27장 1절-28장 16절까지 사도행전에서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하는 “우리 단락”은 가장 박진감이 넘치는 1차 목격자의 진술로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고 또한 베스도 총독이 이를 허가하여 로마에 압송하라는 계획이 확정되자 바울은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의 책임 하에 곧 로마로 이송된다. 이 때가 AD 59년 11월경으로 추정된다.
바울 일행이 로마로 가는 항해에 관한 묘사는 사도행전에서 가장 생생하게 사건들을 묘사한 압권에 속한다. 바울은 이 항해에서 누가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를 동반했다. 누가가 직접 이 항해에 참여했기 때문에 그는 이 여행에 관한 기사를 일인칭 복수로 서술한다. 아마도 누가는 이 배의 의사로 고용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리스다고는 승객 명부에 바울의 시종으로 등록을 하였거나 바울과 똑같이 죄수의 지위로서 호송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F. F. 브루스, 『바울』, 397).
2. 무라까지의 순탄한 여행
첫 출발은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된다. 가이사랴에서 율리오가 처음 선택하여 탄 배는 ‘아시아 해변 각처로’ 다니는 연안 여객선 아드라뭇데노 배였다. ‘아드라뭇데노’는 배의 이름이 아니라 이 배가 속한 도시 이름이다. 이 도시는 드로아와 버가모 사이의 소아시아 북서쪽 끝 부분, 곧 에게 해 연안의 도시이다. 이 배는 로마로 가는 배가 아니었고, 아드라뭇데노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배로서 소아시아 남부 연안들을 연결하는 여객선으로 보인다. 율리오는 이 배를 타고서 에게 해 가까이까지 가서 그 부근에서 로마로 가는 배를 갈아탈 계획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먼저 가이사랴를 출발하여 북쪽으로 약 110km 떨어진 시돈에 이르게 된다. 시돈에 잠시 정박하고 있는 동안 바울은 백부장 율리오의 특별한 배려로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시돈을 떠난 아드라뭇데노 배는 계속하여 구브로 섬 북쪽 해안을 끼고 항해를 계속한다. 시돈에서 무라까지의 항로는 구브로 섬 아래쪽을 통과하는 항로가 되겠지만, ‘바람의 거스림을 피하여’ 해안선 가까이를 따라 행선하는 방향을 택한다. 무라에 도착했을 때 마침 이탈리아로 출항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날 수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선단에 속하는 이 큰 배는 이집트의 곡물을 로마까지 수송하는 주요 화물선이었다. 로마는 엄청난 수의 노예들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식량이 필요하였고, 그리고 이 식량의 상당 부분을 이집트에서 밀을 수입하여 충당하였는데 로마에 밀을 수출하는 주요 항구가 알렉산드리아였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당시에 이집트는 연간 133,000톤의 밀을 로마에 수출하였다. 밀을 수송하기 위해서는 상당수의 선박이 필요하였는데, 로마는 이를 민간 수송 업자에게 맡겼다.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선박 소유자에게 6년 계약으로 로마에 밀을 공급하는 특권을 부여하기도 하였다. 이집트의 밀 수확은 5월에 끝났다. 그런데 11월에 지중해 항해를 할 수 없는 기간이 오기 전에, 밀을 추수하고, 건조시키고, 또 이를 배에 싣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겨울 동안에 밀을 저장해놓았다가 4월에서 6월 사이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수출하였는데 운이 좋으면 밀 수송선은 알렉산드리아와 로마를 두 번 왕복할 수 있었다. 아마도 바울이 이 때 탄 배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두 번째로 막바지로 로마에 밀을 수송하는 배였을 것인데 아마도 선장이 잘못 계산한 듯하다(A. N. Wilson, Paul : The Mind of the Apostle, 243-244). 이러한 밀 수송선은 대개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북상하여 무라까지 와서 재정비를 한 후 다시 서쪽 이탈리아를 향해 출항하였다. 지중해의 항해 시기는 대체로 9월 14일 이후 11월 11일까지는 위험 시기로 분류되고 있으며, 11월 11일 이후부터 이듬해 2월8일 까지는 항해 금지 기간으로 분류된다. 그러고 보면 바울 일행이 타게 된 배는 아마도 거의 마지막으로 곡물을 운송하는 배였던 것으로 보인다.
3. 위기와 반전
무라를 떠나면서 갈등과 위기가 서서히 다가서기 시작한다. 역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은 니도를 여러 날 만에 겨우 지나게 되고, 계속 역풍을 타고 서쪽으로 항해하기가 어렵게 되자 방향을 남으로 돌려 그레데 섬의 남쪽 해안을 따라 섬의 중남부에 있는 ‘미항’(Fair Havens)에 닿게 된다. 사도행전 27장 9절에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다’고 기록한다. 이 금식 절기는 대 속죄일을 가리키는데 이 날짜는 태양력으로 9월 말에서 10월 초에 해당한다. 바울이 로마로 출항했던 AD 59년 당시에는 속죄일이 10월 5일이었다. 로마의 달력으로 이 때부터 항구들은 겨울이 끝날 때까지 문을 닫는다. 바울이 선교를 위해 여러 번 바다 항해를 해본 경험의 결과 이번 항해는 위험한 것이었다. 그러나 선장과 선주는 무리를 해서라도 뵈닉스 항구까지 가려고 하였다. 이 항구는 미항에 비하면 훨씬 커서 과동하기에 편리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바울과 선장/선주 사이에 의견 차이가 생겼다. 물론 죄수 바울의 견해는 무시되었고, 배는 뵈닉스 항구에서 과동을 하기 위해 무리하게 미항을 떠난다(행 27:12). 처음에는 남풍이 불어 순조로운 항해가 되는 듯 하였다. 그런데 얼마 후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불어 닥쳤다. ‘유라굴로’는 ‘유로스’(Euros)라는 동남쪽 돌풍을 의미하는 헬라어와, ‘아퀼로’(Aquilo)라는 북풍과 북서풍을 의미하는 라틴어 합성어로 종잡을 수 없이 바람이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면서 배를 때리는 무서운 광풍이다. 이윽고 큰 알렉산드리아 배는 표류하기 시작한다. 우선 그레데 섬 남쪽의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간신히 좌초되지 않고 지났는데,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않았다. 이는 곧 고대 항해에서 방향을 잡는 그 어떤 기준도 없었다는 것이다. 배에 탄 사람들은 배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하였으며, 배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공포 속에서 한 순간 한 순간을 보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배에는 먹을 것이 많았으나(행 27:33-36) 풍랑으로 인하여 먹을 수가 없었다. 그들을 구출하러 배가 올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런 위기가 바울에게는 기회였다. 바울은 두려워하며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안심할 것을 말하고(행 27:25), 하나님의 뜻을 전하면서 어떤 섬에 걸려 구출될 것을 예언한다(행 27:26).
결국 바울의 예언대로 이루어졌다. 보름 가까이 아드리아 해를 표류하던 배가 육지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눈치를 챈 사람은 경험 많은 선원들이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자신들만 살겠다고 작은 거룻배(life boat)들을 바다에 내려놓았다. 바울은 백부장에게 이를 고하여 그 이기심의 끈을 사정없이 끊어버리게 한다. 이렇게 하여 바울은 이 배의 276명 전체의 영적인 지도자로 부상한다. 이와 같은 바울의 영적인 지도력은 그 배의 실질적인 지휘관인 백부장 율리오의 마음까지 감화시키고 있다. 마침내 배가 육지 가까이 다가가면서 배가 좌초되고 있는 사이에 죄수들의 도망을 우려한 군사들이 죄수들 모두를 죽이고자 하는 자리에서 율리오는 바울을 구원하고자 하여 이를 제지한다(행 27:43). 성령께서 백부장을 통해 바울을 보호하여 바울로 하여금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도록 하셨다. 그렇게 하여 바울은 또 다시 하나님의 주권적인 간섭으로 죽음의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4. 멜리데 섬에서 겨울을 보냄
바울 일행을 태운 배가 14일 동안 무서운 폭풍과 풍랑에 휩싸여 표류하다가 도착하게 된 곳은 멜리데(‘피난처’라는 의미, 지금은 몰타 섬) 섬이었다. 이곳에서 3개월을 지내게 된다(행 28:1-10, 특히 11절). 석 달이 지나야 항해하기가 안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AD 59년 11월 초순경에 가이사랴에서 출항하여 14일을 표류하고 또 멜리데 섬에서 3개월(11월-2월)을 머물고 로마로 갔기 때문에 2월 하순경에 멜리데 섬을 출발하여 아마도 60년 3월경에 로마에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어쨌든 저자 누가는 항해 이야기를 하면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불가항력적인 자연의 재해로도 파기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의 위대성을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것이 이 항해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항해 이야기를 통해 비록 바울이 죄수의 신분이긴 하지만 배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바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바울이 이토록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에 있었다. 그리고 이런 믿음에 근거한 담대함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요청 된다.
바울은 항해 동안에 있었던 온갖 위험에도 불구하고 결국 로마까지 가게 되었다. 이 항해를 계속하는 동안 바울은 얼마나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넘겼는가? 첫 번째 위기는 선장과 선주의 고집 때문에 배가 유라굴로 광풍에 떠밀려 죽음의 위협에 처하였다. 하지만 광풍도 바울의 앞길을 막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절망의 상황에서 바울에게 사자를 보내어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획은 꼭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바로 이 순간에 두 번째 위기가 발생하였다. 죄수들이 하나라도 도망가면 그들이 징벌에 처해지므로 이를 두려워하여 군인들이 죄수들을 모두 죽이자고 제안한 것이다. 바다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바울이 또 다시 죽음 앞에 섰다. 하지만 그 동안 하나님께서는 백부장 율리오의 마음을 바울에게로 열어놓았다. 이렇게 하여 바울은 두 번째 죽음의 위기를 벗어난다. 세 번째 위기가 또 닥쳐온다. 멜리데 섬에서 불을 쬐고 있을 때 타고 있는 불에 나뭇단을 올려놓는 순간 그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독사가 나와 바울의 손을 물었던 것이다. 초 겨울철에는 독사의 독이 가장 강할 때이다. 이런 시기에 독사에게 물렸으니 바울은 꼼짝없이 죽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때에도 바울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시어 살아남게 하셨다. 그 치명적인 독사의 독도 하나님의 복음 전할 사명을 가진 바울을 어떻게 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사람이 그 사명을 다하기까지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간섭하시고 개입하시는 가를 알 수 있다. 바울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로 가는 길에서 수많은 죽음의 위기를 만났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위협으로부터 바울을 지켜주셨다.
이러한 바울의 경험, 고난, 환난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나님에 대한 인도, 보호하심, 그리고 온갖 난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간섭하심, 하나님의 주권, 그리스도의 주되심 등을 철저하게 체험한 것이다. 이러한 살아있는 체험이 그가 후에 로마에서 옥중서신을 기록할 때 심오한 신학적 깊이를 가진 서신(가령, 에베소서)을 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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