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사도직 변호와 선교 원칙
1. 기억을 새롭게 하는 전도자
바울은 길게 이어지던 교리적 논의와 윤리적 권고를 마치고 이제 대단원에 이르러 서신을 정리하면서 몇 가지 개인적인 신상발언을 한다. 앞서 워낙 심각한 교리문제를 다뤘기에, 얼핏 보면 서신 말미의 사적인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주요 배경은 이와 같이 소소한 언급을 통해서 더 잘 드러난다. 본문에서 바울은 통상적인 인사말 외에도 그가 지금까지 이룬 선교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 기도와 협력 부탁을 하고 있다. 바울이 다른 서신들과 달리, 마지막 인사말을 비교적 장황하게 전개하는 이유는 로마교회에 자신을 소개해야할 처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익명의 개척자가 세운 로마교회는 바울에게 아직 생소한 상태였다. 그래서 어쩌면 로마서 전체가 사도 바울의 소개장 기능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 만나는 로마 교인들에게 신뢰감을 주려면 그 자신이 누구인지를 조심스럽지만 소상하게 밝히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바울은 먼저 로마 교인들에 대한 자신의 확신을 마음에 가득한 선함, 온갖 넘치는 지식, 서로 권면할 능력의 보유 등 세 가지 측면에서 말하고 있다. 그는 종말론적 구원에 대한 확신(8:38)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로마 교인들과의 관계도 개인적 기대와 신뢰감의 피력에서 출발한다.
상대방에 대한 개인적 신뢰 수준이 어떠한가의 문제는 대인관계에서 무척 중요하다. 내 기대와 신뢰도가 높을수록, 상대도 가능한 한 스스로 삼가면서 기대치에 맞는 행동을 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러니까 바울이 말한 로마 교인들에 대한 세 가지 확신은 추켜세우는 찬사임과 동시에 보기에 따라서는 무거운 권면으로 읽힐 수도 있다. 이처럼 바울은 ‘개인적 확신’을, 수신자의 순응이나 수락을 당연시하거나(갈 5:10 ; 몬 21 ; 살후 3:4), 무언가 요청하면서 이유를 대고 변명할 때(고후 9:1-2 ; 롬 15:14-15a) 수사학적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굳이 수사학적 기법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사도의 별 다른 도움 없이 성장한 로마 교회의 실체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견스러웠을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편지를 쓴 동기에 대해 말하면서 ‘여러분의 기억을 새롭게 하려고’라는 겸손한 표현을 사용한다. 바울은 로마 교회가 자신과 직접적인 연고가 없었으므로 편지를 쓸 때 ‘매우 담대하게 써’야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무턱대고 쓰고 싶어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쓴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하나님의 은혜’는 바울의 이방인 사도된 근거(롬 1:5)였으며, 그가 자신의 사도적 발언권을 주장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문구다.
2. 이방인을 위한 예수의 일꾼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도인 자신의 주된 사역이 ‘이방인을 위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복음 전파의 사역을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에다 비유한다. 비록 히브리서가 그리스도를 위대한 대제사장이라고 강조하고 있을지라도, 그것과 바울의 제사장 직무의 언급과는 별다른 관련성이 없다. 바울이 하나님의 복음을 제의적 맥락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 당시 주변의 제의 종교들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종교라면 기본적으로 신(神)과 예배자, 제사장, 제물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제사장은 예배자가 가져오는 제물을 신에게 살라 바치는 직무를 감당하면서 신과 예배자의 관계를 중재한다. 바울은 이러한 이해를 전제로, 이방인들을 하나님이 기쁨으로 받으실 제물이 되게 하는 일이 제사장인 자신의 직무라고 보고 있다. 그는 같은 취지에서 이미 로마 교인들에게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롬 12:1)고 권면했고 빌립보 교회에 대해서는 ‘믿음의 제사(빌 2:17)’를 언급하기도 했다. 아무리 좋은 예물일지라도, 거룩하게 구별된 것이 아니면 하나님이 기쁨으로 받으실 제물이 될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이 속된 제물을 거룩하게 성별하는 역할을 감당한다고 이해한다. 이처럼 성령은 복음 전도자가 맡은 제사장 직무의 한계를 정해주고 그에게 소망과 능력을 공급한다(15:13).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자신의 모든 사역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이는 자신의 개인적 성취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아니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바울은 항상 스스로를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도구)으로 보면서 그 자신을 내세우며 자랑하지 않았다. 그가 하는 복음 전파의 사역은 ‘말과 행동, 표징과 이적, 성령의 권능’으로 이루어졌다. 그의 사역이 단지 유창한 말이나 특별한 행동에 머물지 않고, 성령의 권능에 따른 표적과 기사를 동반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헬라인들은 ‘지혜’(말)를 구하고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했으나, 바울은 말과 행동, 성령의 권능에 따른 표징과 이적이 규형을 이룬 사역을 펼쳤음을 알 수 있다. 하여 그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일루리곤에 이르기까지 두루 복음을 전파했다고 다소 과장되게 말한다. 일루리곤은 현재의 알바니아 국토에 해당된다. 바울이 벌써 그 넓은 지경을 복음으로 가득 채웠다는 증거는 불명확하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선교사역이 미치는 경계를 어디까지 설정하고 있었는지가 여기서 드러난다. 바울은 자신의 선교 영역이 예루살렘부터 시작하여 로마와 그 동쪽 지중해 연안까지 아우르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3. 사도 바울의 선교 원칙
바울은 자신의 드넓은 선교영역을 말하면서도 복음 전도자의 선교윤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진 곳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명예로 삼았다고 했다. 자신이 개척한 교회를 근거지로 복음의 팽창을 꾀하면서 선교의 열매를 거두려했지 ‘남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우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울이 이러한 자신의 선교 원칙을 밝히고 있는 것은 혹시 로마 교회가 그에 대해 갖고 있을지 모를 경계심을 허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요컨대 그는 로마 교회에 대해 아무런 사욕이 없음을 밝히면서 같은 그리스도의 형제로 만나 은혜를 나누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 교회는 특정 사도가 세운 교회가 아니라 자생 교회였으므로 바울의 방문이 그의 선교 원칙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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