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증거/창조의 증거

김성교수의 문화와 역사 - 에덴 동산과 파라다이스

은바리라이프 2008. 7. 31. 13:39
김성교수의 문화와 역사 - 에덴 동산과 파라다이스

에덴 동산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예루살렘으로 추정
노화·질병·죽음 없는 풍요와 기쁨의 땅, 낙원


 ▶ 에덴 동산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 동산’의 히브리어 표기는 ‘간 베에덴’으로서 ‘에덴에 있는 정원’이라는 뜻이다. 이 경우 에덴을 특정한 지명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해석은 그 다음에 나오는 ‘동쪽의(미케뎀)’이라는 단어를 통해 유추가 가능하다. 그런데 히브리어 표기 ‘간 베에덴 미케뎀’은 각각 ‘동방의 에덴에 있는 정원’과 ‘에덴의 동쪽에 있는 정원’ 둘 다 해석이 가능하다. 만일 히브리어 에덴이 아카드어 에디누(edinu)에서 유래되었다면 그 뜻은 들판이나 평원이기 때문에 에덴 동산은 실제로는 ‘들판에 위치한 정원’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아카드어 에디누는 수메르어 에덴(eden)에서 유래되었는데 ‘풍요로움’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우가릿어와 고 아람어에서도 에덴이 ‘풍요롭고 기쁨이 충만한 상태’를 의미하고 있다. 과연 창세기의 저자는 어떤 의도로 에덴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을까?

 

 ▶ 파라다이스
 파라다이스는 원래 고 페르시아어로 ‘정원’을 의미하는 ‘파이리-다에자(pairi-daeza)’로부터 유래되었다. 히브리어 파르데스는 바로 이 단어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왕 아르타크세륵세스에게 파괴된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 복구에 필요한 목재를 왕의 ‘파르데스’로부터 채취할 수 있는 벌목 허가권을 달라고 부탁하였다(느 2:8). 이 경우 파르데스는 단순한 정원이라기보다는 고급 목재를 얻을 수 있는 백향목 숲을 말하며 지리적 여건 상 예루살렘에 가까운 레바논 산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기록된 다른 구약성서의 구절에서는 파르데스가 단순한 정원이나 과수원으로 등장한다(아 4:13, 전 2:5). 또한 유대교 문헌 중에서 서기 200년경 편집된 미쉬나와 서기 600년경 편집된 바빌로니아 탈무드에서도 파르데스는 각각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정원을 의미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약성서와 후기 유대교 문헌에서의 파르데스, 즉 파라다이스는 이상향이라기보다는 구체적으로 과수원이나 정원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파라다이스가 낙원을 지칭하게 되었을까?

 낙원으로서의 파라다이스는 히브리어 구약성서가 그리스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서기전 200년경 구약성서가 그리스어로 번역될 때 창세기에 등장하는 에덴 동산이 바로 파라데이소스로 대체되었고 비로소 파라다이스가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최초의 지상낙원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 때부터 주로 그리스어 구약성서인 칠십인역을 자주 읽었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낙원은 더 이상 에덴 동산이라기보다는 파라다이스라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따라서 그리스어 구약성서를 자주 인용했던 신약성서에서 파라다이스는 초월적 의미의 낙원으로 통용되었고(눅 23:43, 고후 12:4), 나아가 요한계시록(2:7)에서는 파라다이스가 종말에 건설되며 한 가운데 생명나무가 있는 낙원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곧 첫 번째 인간이 추방되었던 태초의 에덴 동산이 종말에 회복되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 딜문(바레인)
 한편 메소포타미아의 전통적인 낙원 사상은 수메르 신화 <엔키와 세계질서>, <엔키와 닌후르삭>에 등장하는 딜문(Dilmun)에서 찾아볼 수 있다. 딜문은 순순하고, 깨끗하며, 빛나는 땅이다. 딜문에서는 맹수나 혐오스러운 동물들이 설치지 않는 곳이며, 더 이상 질병이나, 노화, 죽음이 없는 기쁨의 땅이다. 오늘날 페르시아 만의 섬나라 바레인으로 알려진 딜문은 고대 세계에 있어서 중계무역의 중심지로서 모든 상품이 넘쳐흐르는 장소로서 낙원으로 묘사된 것으로 보인다.

 

“딜문에서는 까마귀가 울지 않는다.
매도 울지 않는다.
사자는 잡아먹지 않는다.
늑대는 어린양을 잡아채지 않는다.
새끼 염소를 죽이는 들개도 없다.
곡식을 먹어치우는 곰도 없다.
눈 아픈 사람이 눈 아픈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고,
머리 아픈 사람도 머리 아픈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늙은 여자는 늙은 여자라고 말하지 않고,
늙은 남자도 늙은 남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가수는 슬픈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이러한 수메르 판 에덴 동산인 딜문에 관한 묘사는 구약성서 이사야(11:6∼9)에 등장하는 종말에 건설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묘사와 연관이 있는데 이 구절에도 맹수들의 포학성이 없고 질병이 없는 장소로 언급되어 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니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 에덴 동산은 어디에 있었는가?
 우리가 에덴 동산의 지리적 위치를 알 수 있는 근거는 그 곳에서부터 네 강이 흘러나온다는 구절이다(창 2:10∼14). 이 중 힛데겔과 유브라데는 각각 오늘날 터키에서 발원하여 시리아를 거쳐 이라크로 흘러 들어가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말한다. 이 둘을 놓고 본다면 에덴 동산은 두 강의 수원지인 터키 동쪽의 아르메니아 고원지대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첫 번째 비손 강과 기혼 강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기혼 강이 흐르는 구스 땅은 구약성서에서는 오늘날 이집트의 남부인 수단 지역을 말하는데 그렇다면 기혼 강은 나일 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첫 번째 비손 강이 금이 많이 나는 하윌라 땅을 적신다고 했는데 고대 성서의 세계에 있어서 황금이 가장 많은 곳은 다름 아닌 이집트였기 때문에 이 강도 나일강과 비교될 수 있다. 아직도 몇 몇 아마추어 고고학자들이 에덴 동산을 중동 지방의 지도상에서 찾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고 있다. 네 강 중에서 적어도 세 강은 성서 시대의 대표적인 두 문명이었던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가능케 했던 강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기혼 강이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기혼 샘은 바로 예루살렘의 기드론 골짜기에서 지금도 흘러나오는 샘이고 바로 예루살렘 도시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되는 물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에덴 동산은 당시 최고로 발달했던 두 문명권, 즉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그리고 야웨의 성전이 있었던 예루살렘을 모두 포함하는 지리적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