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1년간 가출하고 싶다" '엄마가 뿔났다' 신드롬
▶김한자, 당신의 용기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김한자를 지지하는 이들은 그녀의 독립선언을 희생과 헌신으로 점철된 인생에 주어진 마땅한 대가로 받아들인다. 결혼이란 제도에 묶여 40년간 시부모를 모시고, 3남매를 키워내고, 시동생과 시누이까지 떠맡아야 했던 그녀의 인생에 쉼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혼 33년차 박진숙(53·여) 주부는 "쉰을 넘어서면서 자식과 남편에게 향하던 관심이 나한테 향하는 것을 느낀다."며 "허망함을 시인하면 지난 삶을 부정하는 것 같아 인정하지 않았는데 한자를 보면서 내 안에 꿈틀거리던 감정의 실체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한자가 '나도 꿈이 있었다. 소망이 있었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고 전하기도 했다.
두 딸을 둔 전업 주부인 배진옥(45·여·수성구) 주부는 한자의 가출을 현명한 선택으로 진단했다. 배 씨는 "결혼 후 모든 열정을 자식과 남편에게 쏟아 부은 후 허망해져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식만 쳐다보며 사는 어머니들이 많다."며 "이와 달리 허탈감과 의존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자존감을 찾기 위해 독립을 선언하는 한자의 모습은 이 시대 어머니들의 위대함과 성숙함"이라고 평가했다.
▶김한자, 이 시대 어머니를 욕하지 마라.
김한자의 가출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은 김한자가 부정하는 '어머니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40년 결혼 생활을 모두 부정하는 김한자의 태도와 엄마와 며느리, 아내로서의 삶이 얼마나 버거웠냐를 토로하는 부분에선 "복에 겨워 삶을 투정한다."는 비아냥과 함께 "평범한 주부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한다."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실제 KBS '엄마가 뿔났다' 홈페이지 시청 소감란에 mom6000이란 아이디의 네티즌이 올린 '이 시대 어머니를 욕하지 말라'는 글이 네티즌 사이 공방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 자식이 내 마음 같지 않아도 그저 한없이 보듬고 보듬어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과 보람과 삶의 열매를 찾아 스스로 기뻐할 줄 알고 만족할 줄 아는 분이 이 시대 진정한 어머니다"며 김한자가 이 시대 어머니를 대변하는 역할이 아님에 명확한 선을 그었다.
또 다른 한편에선 김한자의 남편 나일석(극중 백일섭)과 시아버지 나충복(극중 이순재)에 대한 동정론이 일었다. 김한자가 결혼 생활 40년을 모조리 부정하며 독립을 주장할 만큼 남편이 무엇을 잘못 했느냐는 것이다. 결혼 20년 차인 김희곤(50) 씨는 "아내와 자식만 바라보며 평생 사회생활을 해온 남편에 대한 배려는 어디에도 없다."며 "김한자가 1년 후 집으로 돌아오면 자식들이 엄마와 똑같이 아버지에게도 월 100만 원의 용돈을 드릴 것이냐."고 반문했다. 미혼 직장 남성인 김진태(32) 씨는 "작가 김수현이 만들어낸 설정 자체가 있을 수 없으며, 60대 여성의 페미니즘일 뿐." 이라며 평가 절하하기도 했다.
▶정신과 전문의가 바라본, 김한자
지극히 평범했던 주부 김한자가 온 가족 앞에서 가출이라는 폭탄선언하며 40년을 모셔온 시아버지와 맞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김성미 마음과마음 정신과 원장은 김한자가 가출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3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세대 간 자식 역할의 차이에서 오는 좌절감. 김한자는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며, 자식 역시 없는 살림 쪼개가며 공부시켰다. 하지만 정작 잘 키워낸 자식들은 애 딸린 이혼남에게 시집을 가고, 다섯 살이나 연상인 여자에게 장가를 가는 등 기대에 못 미치는 방향으로만 틀어졌다. 게다가 아들은 손자까지 봐 달라고 당당히 주장한다. 전통적인 가치관에 얽매여 살아온 그녀는 희생적인 삶의 대가와 자식들의 태도에서 좌절감과 인생의 허무함을 느꼈을 것이다.
둘째, 나를 위해 살기엔 너무나 늙어 버린 몸뚱이. 김한자는 이미 폐경을 넘어 여성으로서 상실감을 맛 봤을 나이다. 자신을 돌보기에도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다. "이제 자리보전하고 누워 죽는 일밖에 없다."는 한자의 독백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어느 순간 늙어버린 자신의 몸뚱이가 주는 상실감이 그토록 애타게 자존감을 찾게 만든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셋째, 빈 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중년의 주부가 자기 정체성 상실을 느끼는 심리적 현상)의 일환이다. 한자는 직장생활을 통해 사회와 소통해 온 남편과 달리 40년을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지냈다. 가족의 삶을 중심으로 모든 시계를 맞춰 살아야 했던 세월이 깊어지면서 자신을 잃어갔다. 실제 한자는 "나만 생각하고, 나 하고 싶은 대로 1년만 살아보고 싶다."고 외쳤다. 김 원장은 이 세 가지 원인 외에도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지 않은 한자의 성격과 책을 좋아하던 모습 등 그녀가 가진 성향이 이 같은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 김한자(김혜자) 어록
<시아버지에게>
아버지, 전 이 집을 나가고 싶어요. 아니 나갈래요. 나갈 테야. 아버지 휴가 좀 허락해 주세요. 아버지 며느리로 40년 동안 단 하루 쉰 날 없어요. 1년만 쉬게 해 주세요. 아버지 저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살다 죽는 것 억울해요. 1년만 다 놓고 나가 아침에 무슨 국 끓일까 저녁에 뭐 해 먹을까.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저 쉬고 싶어요.
<딸들에게>
내 의무, 내 책임 다하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아무 쓸모없어. 쓰레기통에 던져질 껍데기만 남겨진 것 같아. 나도 꿈이 있었다. 소망이 있었다. 아무런 자존감과 자족감도 없이 이렇게 살면 너무 허망해. 나 바보 아니야. 그냥 그러고 싶어. 탈출이 하고 싶어. 니들 번갈아가며 내 속 썩였잖아. 나도 죽기 전에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단 말이야.
<남편에게>
당신 내가 딱하지 않아? 불쌍하지 않아? 미안하지 않아? 저런 소리를 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생각 안 들어? 다 살았기 때문에 죽기 전에 자리보전하고 눕기 전에 하고 싶은 거야. 귀 쫑끗 세우고 일어났다 앉았다 안 하면서 살고 싶어. 목에 매진 줄 좀 다 뜯어내 버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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