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에 가위눌린 9살의 여름방학 동행 취재
경향신문 | 기사입력 2008.07.22 18:21
ㆍ서울 초등 3학년의 하루
ㆍ"친구와는 주말에만 놀아"
늦잠도 자고 컴퓨터 게임이나 운동을 맘껏 할 수 있는 여름방학. 그러나 요즘 아이들에게 이런 '즐거운 방학'은 단지 꿈이다. 아이들에게 방학은 그저 남들보다 유리한 새 학기를 맞기 위한 준비기간에 불과하다. 선행학습으로 바쁜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는 한 초등학교 3학년의 하루를 동행했다.
22일 서울 강서구 염창동 한 아파트. 오전 9시가 되자 박모군(9·초등3)의 방에서 요란한 자명종 소리가 울렸다. 박군의 기상시간이다. 이불 위에서 뒤척이던 박군은 잠이 덜 깬 표정으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빵과 우유로 아침 식사를 마친 박군은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수학 학원 수업을 듣기 위해 집을 나섰다.
수학 학원에서는 '원의 지름·반지름'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2학기 과정이지만 미리 공부해 두기 위해서다. 친구들 중에는 이번 방학에 5학년 과정을 배우는 친구도 있어 박군의 선행학습은 늦은 편이다.
수학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시간은 낮 12시. 점심을 먹고 집에서 잠시 쉰 뒤 오후 1시50분쯤 아파트 단지 앞에서 태권도 학원 셔틀버스에 올랐다. 오후 3시30분까지 태권도 수련을 끝내자마자 곧바로 영어 학원으로 이동했다. 영어 학원에서 치러야 하는 시험을 위해 'community(공동체)'라는 단어를 전날 밤 몇 번이나 외웠지만 '공동체'가 뭔지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영어 학원에서 사용하는 교재에는 한글이 단 한 글자도 없었다. 미국 교과서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기 때문이다.
학원을 모두 마치고 돌아온 시간은 오후 6시. 박군은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1시간 동안 인터넷 영어 학습을 했다. 영어 학원 수업이 없는 날에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다. 오후 7시쯤 저녁을 먹고 오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2학기 대비 국어·수학 문제집을 풀고 나면, 한자 학습지가 기다린다. 방학 동안 한자 7급 자격증을 따는 게 목표다. 또래 대부분은 이미 4급 자격증을 갖고 있다. 박군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밤 11시쯤이다.
여름방학 동안 박군의 학원 수업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1주일에 한 번은 첼로 수업을 받아야 한다.
박군은 여름 방학 동안 꼭 하고 싶은 게 몇 가지 있다. 우선 친구들처럼 줄넘기를 잘하는 것이다. 하지만 박군에겐 평일에 줄넘기를 연습할 시간이 없다. "친구들과 놀고 싶지 않으냐"고 묻자 "친구들이랑은 주말에만 노는 거 아닌가요"라고 되물었다. 가족들과 여름 휴가도 가고 싶다. 하지만 이 역시 이뤄질지 불투명하다. 학원 방학기간과 아버지 직장 휴가 일정이 맞지 않아 고심 중이다.
어머니 이모씨(38)는 "학교 선생님들도 선행학습을 마쳤다는 것을 전제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방학기간에 미리 해두지 않으면 아이가 새 학기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함께가는 시민교육 김정명신 대표는 "불안한 공교육 정책과 사교육 업체의 선행학습 부추김이 초등학생들의 방학마저 빼앗아갔다"고 지적했다.
< 유정인기자 jeongin@kyunghyang.com >
ㆍ"친구와는 주말에만 놀아"
늦잠도 자고 컴퓨터 게임이나 운동을 맘껏 할 수 있는 여름방학. 그러나 요즘 아이들에게 이런 '즐거운 방학'은 단지 꿈이다. 아이들에게 방학은 그저 남들보다 유리한 새 학기를 맞기 위한 준비기간에 불과하다. 선행학습으로 바쁜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는 한 초등학교 3학년의 하루를 동행했다.
수학 학원에서는 '원의 지름·반지름'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2학기 과정이지만 미리 공부해 두기 위해서다. 친구들 중에는 이번 방학에 5학년 과정을 배우는 친구도 있어 박군의 선행학습은 늦은 편이다.
수학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시간은 낮 12시. 점심을 먹고 집에서 잠시 쉰 뒤 오후 1시50분쯤 아파트 단지 앞에서 태권도 학원 셔틀버스에 올랐다. 오후 3시30분까지 태권도 수련을 끝내자마자 곧바로 영어 학원으로 이동했다. 영어 학원에서 치러야 하는 시험을 위해 'community(공동체)'라는 단어를 전날 밤 몇 번이나 외웠지만 '공동체'가 뭔지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영어 학원에서 사용하는 교재에는 한글이 단 한 글자도 없었다. 미국 교과서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기 때문이다.
학원을 모두 마치고 돌아온 시간은 오후 6시. 박군은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1시간 동안 인터넷 영어 학습을 했다. 영어 학원 수업이 없는 날에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다. 오후 7시쯤 저녁을 먹고 오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2학기 대비 국어·수학 문제집을 풀고 나면, 한자 학습지가 기다린다. 방학 동안 한자 7급 자격증을 따는 게 목표다. 또래 대부분은 이미 4급 자격증을 갖고 있다. 박군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밤 11시쯤이다.
여름방학 동안 박군의 학원 수업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1주일에 한 번은 첼로 수업을 받아야 한다.
박군은 여름 방학 동안 꼭 하고 싶은 게 몇 가지 있다. 우선 친구들처럼 줄넘기를 잘하는 것이다. 하지만 박군에겐 평일에 줄넘기를 연습할 시간이 없다. "친구들과 놀고 싶지 않으냐"고 묻자 "친구들이랑은 주말에만 노는 거 아닌가요"라고 되물었다. 가족들과 여름 휴가도 가고 싶다. 하지만 이 역시 이뤄질지 불투명하다. 학원 방학기간과 아버지 직장 휴가 일정이 맞지 않아 고심 중이다.
어머니 이모씨(38)는 "학교 선생님들도 선행학습을 마쳤다는 것을 전제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방학기간에 미리 해두지 않으면 아이가 새 학기 수업을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함께가는 시민교육 김정명신 대표는 "불안한 공교육 정책과 사교육 업체의 선행학습 부추김이 초등학생들의 방학마저 빼앗아갔다"고 지적했다.
< 유정인기자 jeongin@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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