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2/메모

한국의 헬레네, 한주

은바리라이프 2008. 7. 20. 23:57

한국의 헬레네, 한주

daaknite 2008.07.14 11:15

조회 32,925

십자군 전쟁, 적벽대전과 더불어 역사를 바꾼 3대 전쟁의 하나인 트로이 전쟁은 헬레네란 여자 한 명을 빼앗기 위해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의 많은 전쟁영웅과 병사들이 죽어나갔습니다. 그런데 우리 역사 속에서도 여자를 위해 전쟁을 하고, 적진에 억류된 그녀를 탈출시킨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고구려 제22대 안장왕(安臧王)과 그의 사랑을 독차지한 백제녀 한주(韓珠)의 러브스토리가 그것입니다. 때는 6세기 초반, 안장왕의 아버지 문자왕은 장수왕의 손자로 할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영토를 확장해 나가는 가운데, 신라와 백제의 연합군 앞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뒤에 안장왕이 되는 흥안(興安)태자가 적진을 정찰을 하겠다고 나섭니다.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낸 흥안은 상인으로 위장하여, 백제 국경지대인 개백현(皆伯縣, 오늘날의 고양과 일산 부근)으로 잠입해 들어갑니다. 그러나 정체는 들통이 나고 도망을 치던 흥안은 대가로 보이는 어느 저택의 담을 넘습니다. 바로 그 집이 구슬아씨 한주의 집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호감을 느끼게 됐고, 연인사이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었다 해도 신분을 끝까지 감출 수는 없는 법, 결국 흥안은 자신이 고구려의 태자이며, 그러니 고구려로 돌아가야 하는 입장을 밝힙니다. 이를 순순히 받아들인 한주는 흥안이 군사를 이끌고 다시 돌아와 개백현을 점령하고 왕비로 삼아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그를 보내줍니다.


이리하여 흥안은 고구려로 돌아가고, 한주는 기약할 수 없는 기다림으로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던 중 개백현에 새로운 성주가 부임하게 됩니다. 그는 한주의 미모가 뛰어나다는 소리를 듣고 적극적으로 대시합니다. 이에 한주는 위기에 봉착하게 되고, 흥안이라는 자신의 남자를 밝히고 싶기도 했지만 그는 한창 칼을 맞대고 싸우는 고구려의 태자이니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성주는 급기야 한주를 잡아들이고 맙니다. 한편, 고구려로 돌아간 흥안태자는 아버지 문자왕의 사망하고 안장왕으로 등극합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개백현에서 애처롭게 자신을 떠나보내던 한주의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첩자를 개백현으로 파견하여 현지 정탐을 실시했는데, 그러는 와중에 한주의 하옥소식도 알게 됩니다. 이에 안장왕은 즉시 고구려 전군을 소집하고 개백현 침공을 지시하며 일종의 옵션을 내겁니다. 만약 한주를 구해오면 만호의 식읍을 포상한다고 말입니다. 이것을 들은 을밀선인(乙密仙人)은 왕에게 한주를 구하겠으니 포상은 필요없고 평소 은밀히 정분을 쌓던 왕의 누이동생인 안학공주(安鶴公主)와 혼인하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이에 왕은 허락을 하고 작전을 세워 자신은 주력병력을 이끌고 육로로 천천히 진격하고 을밀선인은 결사대를 데리고 수로로 들어갑니다. 그때 마침 개백현에서는 성주의 생일잔치가 성대하게 벌어지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성주는 한주를 불러내 다시 한번 간청하지만 끝내 거절당하고 이에 분노하여 그녀를 처형하려는 순간, 을밀선인이 이끄는 20명의 결사대가 현장을 급습합니다. 신속한 대처로 한주의 신병을 확보한 결사대는 본대와의 연락을 위해 인근 야산인 고봉산에서 봉화를 올립니다. 그것을 본 안장왕은 곧바로 고봉산으로 이동하여 한주와 상봉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째 이야기의 구조가 '춘향전'의 느낌도 살짝 나고,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냄새도 좀 납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등장하는 러브스토리의 원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숙한 느낌이기도 한데 그 만큼 안장왕과 한주의 러브스토리가 극적이고, 이야기로서의 완성도가 뛰어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