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국의 순교자와 박은조 목사 | ||||||||||||
교인들이 아니라 박은조 목사가 순교자가 되어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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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다니면서 내가 본 사람 중 특별히 기억나는 세 사람이 있다. 그 중의 한 명은, 민주화와 지역을 지키고자 나섰던 광주시민들을 순교자로 만든 광주학살 주범 전두환의 딸, 전효선이고, 다른 한명은 루게릭이라는 병으로 몸은 비록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록 비틀려도 순교적인 자세로 우주의 역사를 연구한 스티븐 호킹이며, 마지막 한명은 노벨문학상후보까지 오를 정도로 『순교자 』(The Martyred)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김은국 교수이다. 당시 전효선은 필자와 같이 인문대학에서 공부했고, 스티븐 호킹은 특강강사로 왔으며, 김은국 교수는 교환교수로 있었다. 김은국의 순교자 김은국 교수는 미국에서 『순교자 』(The Martyred)라는 소설을 써서 일약 대스타가 되어 미국에서 대학교수까지 지냈고, 1969년에는 스웨덴 한림원에 의해 정식으로 노벨상 수상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그의 작품은 까뮈와 도스프예스키의 작품과 맞먹는 수준으로 평가되었다. 『순교자 』(The Martyred)가 1964년에 뉴욕에 있는 조지 브래질러 사(George Braziller)에서 출간 발표되자, 그는 일약 미국문단에서 이름을 떨치게 되었고 그의 소설은 소설 분야에서 20주 동안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김은국의 <순교자>가 이처럼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점은 한국전쟁이 바로 끝나자마자, 당시 세계의 조류였던 실존주의적인 철학과 허무주의적인 사상을 통해 6.25전쟁의 상황속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을 문학을 통해서 승화시킨 것이었다. 소설의 주제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을 종교의 신념까지도 초월해서 표현했기 때문이며, 기존 기독교에서 추구하는 순교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버렸기 때문이다. 종교나 기독교에서의 순교개념은 특정종교가 선포하는 교리와 진리를 고수하기 위하여 압박세력에 굴하지 않고 죽음으로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었다. 불교의 이차돈이나 기독교의 주기철목사, 천주교의 김대건 신부의 순교 등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순교의 Martyr는 헬라어 ‘증인’이라는 뜻의 ‘마르튀스’에서 온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순교자라고 말을 할 때는 죽는 그 순간까지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다 죽으면 순교가 되는 것이다. 김은국의 순교자는 기독교의 순교자 개념과 달라 그러나 김은국의 순교자의 개념은 기존의 기독교에서 내포하는 뜻과 전혀 상반된 것이다. 그것은 신앙과 신학이 아니라 실존주의와 인간적 낙관주의가 뒷받침된 것이다. 초점은 신의 영광을 위해 그를 증거하다가 죽는 사람이 아니라 신의 존재와 상관없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절망한 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다. ‘순교자’라는 소설속에 나오는 신목사는 신앙과 상관없이 인간의 양심과 성실성으로 고난의 상황을 극복해 가는 인간상이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을지라도 다른 인간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그들에게 희망을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허무와 절망을 나누어 진다. 김교수는 이러한 삶이 십자가의 삶이며 참된 순교라는 것이다. 6.25 당시, 14명의 목사들이 공산당에 잡혀서 12명이 처형되고 두 명이 남게 된다. 남은 한 명은 정신이상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끝까지 신념을 지킨 신목사이다. 사람들은 죽은 12명이 진정 순교자라고 말을 했고, 살아있는 두 사람의 목사는 배교자라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 당시의 처형현장의 주범인 공산당원을 통해서 알려진 사실은 자신은 비굴한 목사를 처형했고, 오히려 신념이 견고한 목사는 살려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신목사는 전쟁의 참화속에서 신에 대한 회의가 생기게 된다. 과연 지옥과 같은 전쟁의 참화 속에서 처절하게 고통 받고 있는 인간을 외면하고 있는 신(神)은 정말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 발생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 고통 속에 처한 인간들이 살아갈 수 있는 의미를 신을 대신해서 부여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이 비겁자, 배교자의 소리를 듣는 것은 얼마든지 감수하면서, 살아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절망 속에 함께 하면서, 자신의 믿음과는 상관없이 신 대신에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다. 신이 없는 곳에, 신이 다하지 못한 곳에, 절망과 허무속에서 허덕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같이 고통을 나누면서 그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위안과 꿈을 주는 것이다. 신목사는 월남도 하지 않고 끝까지 북한의 교인들을 지켰다. 신이 가슴속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마지막까지 함께 하며,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순교자로서의 삶을 살아갔다. 이것이 순교자에 나오는 신목사의 삶이었다. 그는 자신에게는 잃어버린 신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끝까지 희망을 가지라고 역설한다. 다른 인간들로부터 오해를 받을지라도 인간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그들에게 희망을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허무와 절망을 나누어 짊어지려는 삶이 십자가의 삶이며 참된 순교라는 주장이다. 즉 신이 죽은 시대에 신이 베풀지 못하는 사랑을 베푸는 그 인간이야 말로 참된 순교자의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 소설은 우리 인류 전체의 가장 소중하고 보편적인 가치인 인간에 대한 사랑과 그에 따른 영혼의 고뇌를 표현한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은국의 소설속에서 순교자는 기독교의 순교자개념과 전혀 다른 것으로, 기독교의 신이 다하지 못한 곳에, 자신을 희생시키면서 허무와 고통, 절망을 나누어지면서 미래의 희망을 주는 사람이다. 샘물교회 박은조 목사
한국교회는 그간 사학법재재정, 종교인들의 소득세 납부, 세습, 횡령, 교회당 건축, 필립핀 선교사와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성범죄, 총회장 금권선거 등으로 얼룩져 부패와 비리의 친구가 되어왔다. 따라서 한국 사회는 교계개혁을 위해 누군가의 순교자를 필요로 했다. 사학법이 재개정되고, 종교인들의 소득세 납부문제 등으로 기독교가 계속 얻어맞자, 아프간 선교인질사태는 오비이락으로 샘물교회에 날벼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박은조 목사는 누구보다도 고뇌에 차 있을 것이다. 담임목사 자리를 던지고 어데론가 사라지고 싶기도 할 것이고, 차라리 아프간에서 배목사와 심성민 대신 자신이 희생당했더라면 차라리 나을 뻔했다는 생각을 먹은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적어도 박은조 목사의 이제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볼 빼, 얼마든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그러나 사회여론과 일부 교인들, 교단, 교계로부터 비난의 소리를 감당해야 할 것이고, 심지어는 책임지라는 행동도 요구되며, 압박도 거세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들이다. 박목사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의 짐이 생각보다 가볍지는 않을 것이다. 공영 방송관계자들도 기독교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제작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면 샘물교회가 주연으로서 있게 될 것이다. 박은조 목사는 순교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박은조 목사에게 순교자의 삶을 요구할 것이다. 누군가가 희생당해야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는 의미에서 박은조 목사는 순교자가 되어야 한다. 그 순교자는 김은국이 말하는 전쟁속에서 침묵한 신을 보며 좌절한 신목사의 그런 순교자로서의 삶이 아니라 아프간의 침묵속에서도 이 시대에 무언가를 말씀해 주고 있으며, 순간순간 우리의 삶속에서 고통을 함께 나누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마음속에 부여안고, 자식들을 잃어버린 고통과 절망 중에 있는 가족들과 아직도 석방되지 않아 하루하루 불안하고 초조하게 지옥의 삶을 보내고 있는 인질가족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하며, 그들에게 새로운 소망을 안겨주는 순교자가 되어야 한다. 자포자기나 뒤로의 후퇴가 아니라 박목사가 희생함으로 연약한 이들과 절망 속에 처해있는 형제들과 삶을 나누고, 미래의 새로운 희망을 주어야 한다. 그 희망은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한 종말론적인 부활의 희망이다. 말씀이신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고 말하고 계셨다 하나님은 분명히 침묵하지 않으셨다.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가 죽어가도 침묵한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를 통하여 온세상에 말씀하고 계셨다. 이번에 한 탈레반에 의하면 원래는 다른 사람이 석방되려고 했는데 한 자매가 자기대신 더 몸이 약한 다른 자매를 석방시키라고 했다고 말한 바가 있다. 하나님은 피랍상황에서도 침묵하신 것이 아니라 그 자매의 헌신적인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희생의 정신을 온 세상에 말하고 계셨다. 기독교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언어철학자 비트겐쉬타인은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은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다. 즉 형이상학속에 있는 세계는 삶이나 언어를 통해서 보여주어야 한다. 이제까지 샘물교회가 한국교회의 부패와 타락의 죄를 온통 뒤집어쓰고 있는 것은 한국교회가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계시와 정신을 온 세상에 드러내지 못하고, 인위적인 요인들만 드러냈기 때문이다. 성경은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했는데, 한국교회는 항시 운동장이나 광장에서 남보란 듯이 통성기도를 하였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지 못하도록 일을 하라고 있는데 한국교회는 삼척동자까지 다 알도록 행동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의 친구였는데 한국교회는 기득권자들의 친구였다. 예수는 머리 둘 곳 하나도 없었고, 전도자를 파송하면서도 지팡이와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은 고급아파트에 고급 세단차, 고급 골프채를 갖고 있다. 예수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는데, 한국교회는 가이사에게는 바치지 않고 하나님께만 바친다. 이상, 한국교회는 기독교의 참본질은 하나도 드러내지 않고, 인간의 본질인 부패와 기득권, 금권, 소유, 범죄, 탈세, 세습, 힘있는 정치인과 야합 등으로 말해질 수 없는 하나님의 본질이 아니라 누구나도 알 수 있는 인간의 본질만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죽었다 아프간의 사태로 인해 한국의 기독교는 죽었다. 배형규와 심성민,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인질들, 이들 모두는 부조리한 한국의 기독교를 위해서 희생된 것이다. 기독교는 얼마 전까지 삭발 사학법재개정투쟁에서 승리했다고 하여 감사예배를 드렸고, 종교인 납세의무에 대해서도 철두철미하게 내지 않으려는 기득권적 자세를 견지했고, 대형교회는 서로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변호사비와 용역들을 동원하여 기득권이 하늘에 달했음을 보여주었다. 광성교회는 재산이 2,000억 이상 된다고 한다. 2,000억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교회분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박은조목사는 이제 순교해야 한다. 그 순교는 모든 것을 위해 자포자기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극심한 불안과 고통을 겪고 있는 인질가족들과 교인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몰락한 한국교회를 위해 새로운 개혁의 고삐를 쥐고 헌신하는 순교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김은국의 무신론적 순교자로서의 삶이 아니라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에 기초한 유신론적 순교자로서의 삶을 말한다. 신이 없는 아프간이나 북한, 모슬렘권, 공산권, 아프리카에 처해있는 굶주림과 병에 찌든 사람들을 위해, 진정으로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마음껏 전파하는 순교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기독교의 순교자는 신의 영이 충만한 상태에서 신의 의지를 실현하는 사람 김은국의 순교자는 신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은 절망스럽고 고통스럽지만 남에게 기쁨과 희망 꿈, 위안을 주는 실존에서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순교자는 배형규목사 처럼 신의 영이 충만한 상태에서 신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이 땅에서나 사지에서 헌신자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박은조목사의 어깨는 점점 무거워질 것이다. 교회안에서는 피랍된 인질들의 가족과 죽음을 당한 가족들, 교인들과 고통을 함께 감수하고, 한국교회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개혁의 박차를 가하고, 모슬렘, 공산국가 상관없이 이념과 종교를 초월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아낌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함으로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제대로 보여주어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이제까지 한국의 기독교는 행함이 없기 때문에 죽었던 것이다. 이제 박목사가 그리스도의 충만한 영을 가슴에 부여안고 피랍된 인질 가족, 고통당하고 희망이 없는 사람들, 어둠에 처한 사람들, 부패한 한국교회를 위해 다시 일어나 순교자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적어도 박목사의 가슴에는 신목사와는 달리 살아 숨쉬는 하나님의 호흡이 넘쳐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목사의 순교자적인 삶을 통해서 말해질 수 없는 하나님의 세계를 온 세상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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