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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언약 : 그 구속의 파노라마 II - II. 주제연구 (7)

은바리라이프 2008. 6. 3. 20:43
8. 언약 : 그 구속의 파노라마 II - II. 주제연구 (7)
 김무현
한국창조과학회 미주 텍사스지부장
Texas A&M 대학 교수
해양|토목 공학 박사


7) 베데스다 파라독스

요한복음 5:1-14에는 베데스다라는 못과 38년 된 병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데스다는 ‘은혜의 집, 자비의 집’이라는 뜻으로 양문(sheep gate)곁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7-9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sheep gate)이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양문 곁에 은혜의 못이 있다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양문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만이 구원이 있다는 것이고, 우리의 행위로 된 것이 아니니 바로 은혜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양문을 통해서만 은혜의 못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설계하여 지으신 성막에 들어가는 문도 오직 하나, 즉 동문(양문) 밖에 없습니다. 그 문 외에는 죄사함과 구원이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 베데스다 못에는 많은 병자들이 누워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예수님의 보혈의 씻음이 없이는 죄 안에서 죽어가야 할 병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38년 된 (아마도 날 때부터) 병자를 친히 찾아가셨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불순종으로 20세 이상 모두 광야에서 죽으리라는 사형선고를 받은 후 가나안에 들어갈 준비가 완료될 때까지가 38년이었다고 신명기 2:14은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38년 된 병자는 가나안에서 소망 없이 방황과 고통가운데 삶을 영위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림자일 수도 있습니다. 영생의 소망 없이 죽음을 향하여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한복음 5:6)고 친히 물으십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복음을 들고 믿지 않는 개개인을 친히 찾아가십니다. 그리고는 “네가 낫고자 하느냐, 죄사함 받기를 원하느냐, 영생을 얻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십니다. 그 병자는 “예, 그렇습니다. 그 동안 정말 힘들었습니다. 예수님 저를 고쳐주십시오. 제가 낫기를 원합니다.”라고 응답하는 대신 엉뚱하게도 자기가 나을 수 없는 이유를 예수님께 설명하려 합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었을 때, 믿음으로 반응하는 대신, 자기가 그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오히려 인본주의적 논리를 펴 가면서 장황하게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 병자가 말하고 있는 구원의 방법은,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방법과 유사한 것이었습니다. 즉 자기 힘으로 구원의 경지 즉 득도에 도달해 보겠다는 겁니다. 그 방법은 듣기에는 그럴 듯 한데 실제로는 소망이 없는 그런 방법이었습니다. 가끔 베데스다 못의 물이 동할 때 제일 먼저 그곳에 들어가는 사람만이 병이 나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누가 제일 먼저 뛰어가 그 못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소경입니까? 앉은뱅이입니까? 누워있는 병자입니까? 아마도 무좀 정도 있는 건강한 사람일 것입니다. 오직 건강한 사람만이 먼저 달려가 나을 수 있는데, 실제로 건강한 사람은 치료가 불필요한 사람입니다. 즉, 세상적인 방법이란, 모든 다른 종교에서 주창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의 상식으로도 그럴듯한, 자기 수련과 도와 선행을 통해서 득도하고 완성하고 영적 각성에 이르면 나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처럼 모든 율법을 하나님 앞에 다 지키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스스로 온전히 의로워져서 모든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되 한 사람도 없으며, 만약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의 은혜가 전혀 필요치 않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의 다른 종교로는 영생과 구원의 소망이 없습니다.

이것이 베데스다 못의 파라독스이며 소망없는 율법주의의 문제점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건강한 사람만이 나을 수 있는데, 건강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며, 나을 필요도 없다는 것 그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병자와 같이 율법 안에서 온전히 의로워져 보려고 발버둥치던 우리에게 모든 소망이 사라진 듯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러한 좌절 가운데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그 모든 언약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죄 아래서 방황하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친히 찾아가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시며, 양문에 있는 은혜의 못으로 들어오라고 부르십니다.  또한 네가 만일 나았다면,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한복음 5:8)고 명하십니다. 즉, 주님을 믿고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겠다는 영접의 결단을 했으면,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이 세상을 향하여 힘차게 걸어가라고 하십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