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분별/성령과 악령

하나님의 의도 신학에서 본 마귀론

은바리라이프 2008. 5. 24. 18:09
하나님의 의도 신학에서 본 마귀론  
하나님의 의도 신학에서 본 마귀론

 발행인 김 기 동


김기동 / S.B.U.(S.T.D.)·21세기선교베뢰아서울성락교회 담임감독·베뢰아대학원대학교 총장·본지 발행인

기독교회의 사명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이 땅에서 그 뜻을 이루어 드리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설정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진리를 의심 없이 믿는 일이다. 또한 이를 전파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해와 영원한 관계를 이루는 일이다.
인간은 하나님에 의하지 않고는 스스로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또한 성경으로 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원수요, 인간의 영원한 원수인 마귀를 알지 못하고 그에게 속으며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땅에서 하신 일의 진리가 무엇인지 깨닫지 않고는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그와 함께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인간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그의 영원한 계획에 의하여 우주와 세계와 인류를 창조해야 할 뜻을 정하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후사로 세우시고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려 하심이다. 하나님께 영광은 그의 영원하신 기업이다.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셔야 할 영원한 신이시다.
그러나 그를 알 자가 있는가?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붙잡지도 못하니 그를 따를 수 있을까마는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하나님의 나라를 알았고 또 그를 뵙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뜻을 깨닫는다(요 1:18).
인류는 행복을 추구한다. 첫째는 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긴다. 이보다 더 중한 것은 없으며 이 목숨을 시작으로 가족이 성립된다. 그러므로 자기 목숨과 같은 더 확대된 생명은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내 자손이다. 만물이 그러하듯 자기 자손을 사랑함이란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하신다는 의도의 성품을 깨닫게 하고 이러한 사랑은 인류 곧 내 이웃이라는 우주적 관계로 확대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어떤 문제에 빠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이웃 간의 갈등이요, 형제 간의 갈등이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자기와 자기 속사람과의 심한 갈등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종말적인 감정으로 번져 자살, 살인, 전쟁까지 이른다. 이런 문제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은 태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현실보다 더 견고한 세계를 상상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종교적 철학적 의미가 속시원한 답을 내려 주지 못해 종교적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결국 문화와 세계까지 격돌하고 있다.
인간의 노력으로 무한히 연구하고 문명으로 이를 해결해 보려 하지만 결국 문명마저 파괴와 종말을 현상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인류의 안영(安榮)을 물질에서 얻으려는 일부와 이상(理想)에서 찾으려는 일부가 서로를 견제함으로써 또 다른 갈등을 빚어낸다. 이런 사실로 보아 그 해답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이때 성경에서 그 해답을 준비하고 있으니 곧 ‘하나님의 의도’다.
하나님만이 처음이요 나중이신지라 그의 계획을 아시고, 그는 없는 것을 있게도 하시고 또한 있는 것을 순식간에 없게도 하시는 이시니 심은 것에서는 그 열매를 따시고 낮은 밤을 연결하고 또 밤은 아침을 맞이하게 하시니 그에게는 후회함이 전혀 없으시다. 그러므로 그는 영원하시다. 그가 보내신 아들과 갈등이 없으시고 그가 보내신 성령과도 갈등이 없으시니(롬 8:27, 28), 그는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서 말씀과 피와 성령으로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그에게 문제가 없으시고 인간은 여전히 오는 시대에 희망을 걸고 찾거나 기다리지만 스스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도 대로라면 인간의 큰 갈등의 문제가 무엇일까? 그것은 죄라는 성격과 윤리적, 도덕적 책임을 부정할 수 없다. 성경은 한 마디로 인류에게 죄가 침투하여 그 죄가 마침내 사망의 왕국을 형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최초의 죄에 대하여도 분명히 말하는 것은 한 사람(아담)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죄가 들어왔다고 한다(롬 5:12).
이때부터 인간의 본능적 저항은 사망에 대한 두려움이다(히 2:15). 이것을 알게 하신 이가 사망을 이길 힘을 세상에 주셨으니 그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같이 확신하여 준비된 ‘하나님의 의도’는 성경에 증거한 것처럼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 3:8)고 하신 말씀이다. 원인은 드러나 있고 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심이다.
이전에 우리가 하나님과 상관도 없고 그의 아들을 알지 못하였을 때 죄는 인간들이 그어 놓은 윤리와 도덕적 기준의 유동적 설정에서 오는 것으로 문화의 농도에 따라서 법률이 유동적인 것처럼 인간의 감정을 감시하고 능력을 제한하는 타의적 권능을 요하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면, 성경은 태초부터 계신 이가 불변의 율법으로 설정한 그 기준을 위반했기 때문에 성립되는 생존하는 인간의 부산물이라고 본다. 이를 방탕이라고도 하고 방정이라고도 한다. 이런 죄의 원인은 최초의 인간이었으나 그를 유혹하고 사주한 것은 마귀였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 법정에 나아가서 그 사람이 죄를 지은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마귀라고 증언해 준다면 과연 그 의도가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사형수가 세상 법으로는 사형을 언도 받고 집행 되지만, 그가 ‘하나님의 의도’를 받아들이고 믿었을 때 그 심령은 평안하다. 그리고 생명의 주를 의지하고 받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 의식은 즐거운 마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요일 5:4).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도를 전혀 믿지 않는 판사가 인과에 대한 책임을 사형수에게 씌우지만 하나님의 의도를 믿고 이미 율법에서 해방된 사형수는 자유케 된다.
의학자들은 병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역학 조사를 실시한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병의 원인을 각각 밝혀내야 하는 그 시간과 물리적인 여건은 발병의 뒤를 좆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도는 한 마디로 이미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이 진리를 초월하여 다른 지식을 채택하려 한다면 그가 스스로 고난의 미로를 택한 결과라고 본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도는 종교적인 의미만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현상적이고 과학을 능히 극복하고도 그 이상을 뛰어넘는 진리임을 입증한다. 두 말할 것 없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것이요, 그 죄로 말미암아 인류는 속았고 또 고통과 저주를 받은 것이다. 혹 사람들은 이를 무시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원인을 끝까지 추종하시고, 사람들이 스스로 ‘자유하다’ 하고 우상 앞에 엎드렸을 때 그 죄악을 삼사 대까지 따지시겠다고 경고하셨다. 죄는 마귀에게 속한 것이기에 사람이 우상으로 인하여 심령이 자유를 누린다 해도 ‘하나님은 그 우상의 수가 많음을 따라 형벌하신다’고 하셨다. 이는 그 원인이 마귀에게서 났으므로 하나님은 마귀를 영원히 저주하시고 멸하시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나타나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신 것이요, 그분만이 마귀의 일이 멸절되는 이유에 대해 온전히 아시고 있다. 의학적으로 병의 원인을 분석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의도’로 마귀의 정체를 밝혀내고 모든 불행의 원인을 그것에게 씌운다 해서 모순될 것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마귀의 권능을 멸하고 죄의 열매로 오는 병과 귀신을 박멸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다. 하나님의 의도로만 마귀라는 존재를 현실에서도 인정할 수 있고 그것들을 박멸할 수 있다(행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