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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기록은 選民의 불순종으로 인해

은바리라이프 2008. 5. 23. 14:14
성경의 기록은 選民의 불순종으로 인해
2008년 05월 20일 (화) 18:20:11 편집국장 webmaster@allthatnews.co.kr

신앙생활을 하면서 또는 늘 성경을 접하고 있으면서도 이 성경이 왜 기록되었는지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성경이 기록된 이유를 알고 나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기회 또한 될 줄로 믿는다.

한마디로 그 이유를 말한다면 선민(選民)의 불순종이다. 이 대목에서 좀 더 정확하게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믿으면 구원’에서 ‘지키면 구원’으로 신앙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성경은 구약과 신약이라 하듯 약속(約束)의 글이기 때문이다. 약속이란 단어의 뜻이 그러하듯, 지킨다는 가정이 없다면 약속은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이 증거하기를 시대마다 선지자를 보내 경고하고 질책하지만 선민과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약속이라 하지만, 사실은 법이자 명령이므로 지키지 않으면 불순종이라 하는 것이다. 결정적인 불순종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해당됨을 알 수 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얘기가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선 한 뜻을 세우시고 그 뜻을 이루는 날까지 쉬지 않고 일하신다고 하시고, 예수님도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하신다고 하신다. “나 여호와의 노(怒)는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렘 23:20)”

성경의 역사는 온통 불순종 즉, 배도(背道)의 역사이지만 대표적으로 몇 가지를 들어서 거울과 경계로 삼아보자. 먼저는 창세기 에덴동산의 약속이며 사건을 보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 그러나 뱀의 유혹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의 말씀을 등지고 말았으니 성경의 첫 배도자(背道者)가 되었고 불순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노아를 시켜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그들은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물로 심판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는 당대의 의인인 노아를 통해 새 시대를 열었으나 그 시대마저 불순종하자, 하나님께선 아브라함을 택해 장래를 약속하시니 바로 육적이스라엘의 시작이다. 그 약속은 모세를 통해 이루시고 결국 불순종한 노아의 세계를 멸하시니 곧, 가나안 정복이다. 모세의 후예 여호수아에 의해 가나안 땅은 정복했으나, 솔로몬왕 때 다시 이방신을 섬기게 되므로 결국 육적이스라엘은 분열의 시대가 시작되고 이방의 포로가 되며, 결국은 종말을 맞게 되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는 칠흑같이 어두운 가운데 구약의 약속대로  빛을 비추셨으나 어두움은 빛을 싫어하므로 또 다시 불순종을 하고 만다.

그런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으로 성령의 역사는 시작되어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 7:3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 땅 끝인 이 땅에 복음의 씨가 떨어져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러나 이 땅의 기독교역사 가운데서도 배도와 불순종의 역사는 지울 수 없는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으니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하는 과제다. 즉, 일제의 신사에 대한 참배행위다. 그것은 하나님의 신에 대한 명백한 모독이요 배교(背敎)행위다.

중요한 것은 신사참배를 시작했고 선동했던 그 장본인들 또는 후예 그리고 그 교단이 한국의 기독교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정신은 회개와 용서가 그 본질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국가와 국민과 신앙인들 앞에 고백하고 회개할 때만이 용서가 따르고, 분열과 분파는 다시금 하나가 되는 성령의 역사로 이어지지 않겠는가.

그리고 회개와 용서가 필요한 절대적 이유는 믿음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한 선열들의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이상은 배교로 인한 성경의 기록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처럼 중차대하고 엄연한 선결과제를 뒤로한 채, 한국교단이 교권과 명예욕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교권과 명예욕에 사로잡혀 한국교계를 바로 이끌어가지 못한다면 절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에 서 있고, 진정 기독교를 위하고 기독교인을 위해 존재한다면, 진실과 진리와는 전혀 관계없이 자신들의 권력과 욕망을 위해 심판하듯 저주하고 핍박하는 일은 삼가는 것이 마땅하리라 여겨진다. 초림 때 예루살렘성전이 누구의 굴혈이 되었었는지를 깨닫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