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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출애굽기 20: 1-17 요절: 출애굽기 20: 2,3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오늘 말씀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신 사건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해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입니다. 첫째 계명부터 넷째 계명까지는 하나님께 대한 의무요, 다섯째 계명부터 열번째 계명은 이웃에 대한 의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명을 한 마디 한 마디 들을 때마다 심히 두렵고 떨려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지 말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20:19). 그만큼 십계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지게 되었고, 그들의 신앙의 근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십계명을 담은 언약궤를 중심으로 회막을 만들었고, 광야를 행진할 때도 이 언약궤를 중심으로 열 두 지파가 앞뒤좌우로 정렬하여 행진하였습니다. 이처럼 십계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중심이요, 공동체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 십계명을 마음으로 깊이 영접하고, 거룩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하나님께 대한 계명 (20:1-6)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십계명은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으로 주신 명령이 아닙니다.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애굽 땅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구속의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노예 생활로 고통하며 부르짖던 백성들의 고통을 돌아보신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또 노예 백성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시고, 그들을 통해서 온 천하만민을 구속코자 하시는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함으로 십계명을 지켜야 함을 말해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과 은혜를 마음 깊이 새길 때 십계명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율법과 부담이 아니라 축복이요,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지켜야 할 계명이 무엇입니까?
첫째,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라(3)
3절을 보십시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이 계명은 한 마디로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계명입니다. '나 외에'라는 말은 '나를 초월해서', '나의 면전에서'라는 뜻으로 하나님 외에 어떤 신도 마음에 두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을 마음의 첫 자리에 두어야 함을 말해 줍니다. 우리 인생들이 섬겨야 할 분은 하나님 한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참으로 신들이 많았습니다. 태양신으로부터 달신, 태풍신에 이르기까지, 또 하늘의 독수리에서 땅에 뱀과 개구리에 이르기까지, 온갖 신들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신들은 다 거짓 신들이요, 참신이 아닙니다. 그런데 고대 사회는 범신론과 다신숭배 사상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오랫 동안 애굽에 살면서 알게 모르게 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다른 신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런 죄악이 마침내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갈 가나안 땅은 우상숭배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는 풍요와 생식의 신 바알과 자식을 불 가운데 지나가게 하는 잔인한 몰록을 숭배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신들을 몰아내고, 그들을 구속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믿고, 그분만 섬길 것을 명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유일한 주시요, 참 신이심을 확신한다면 다른 신들을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우리의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그분께 헌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겉으로는 하나님의 섬기지만 마음에 다른 신들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대인들은 특히 자연과학의 발달로 태양을 신으로 숭배한다든지 뱀을 숭배한다든지 하지는 않습니다. 또 나무를 깎아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신들을 마음에 많이 두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을 신으로 섬깁니다. 예수님께서도 재물과 하나님은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24). 재물을 중히 여기면 하나님을 경히 여기게 되고, 재물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미워하게 됩니다. 이만큼 재물의 신(Mammon)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재물의 신은 깎아놓은 나무토막이나 돌부처와 달리 실제적으로 사람들의 도와줍니다. 생활을 편하게 해주고, 많은 쾌락과 즐거움을 가져다 줍니다.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재물의 신을 마음의 첫자리에 두고 삽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온 정열을 다 쏟아 붓습니다. 이들은 십자가의 원수들입니다(빌 3:18,19).
또 요즘 많은 젊은이들은 쾌락의 신 몰록을 숭배합니다. 눈 앞에 보이는 쾌락을 위해 자기 몸을 불태워 몰록의 신에게 산 제사를 드립니다. 우간다에는 전국민의 20%가 에이즈 감염자요,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절반 이상이 에이즈 환자들입니다. 가장 좋은 캄팔라 대학에서도 일년에 에이즈로 죽어가는 대학생들이 수십명이 됩니다. 참으로 끔찍한 일입니다. 특히 오늘날은 음란, 폭력 영화와 비디오로 인해서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쾌락의 신이 가장 위력을 떨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함으로 고통하는 때가 온다고 예언했습니다(딤후 3:1-5). 이 예언대로 오늘날은 물질주의와 쾌락주의로 많은 신자들의 마음이 병들고, 우상숭배자들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라고 하셨습니다(마 22:37,38). 하나님께서는 소극적으로 다른 신들을 우리 마음에 두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온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헌신하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4-6)
4-5a절을 보십시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이 둘째 계명과 첫째 계명이 다른 것은 첫째 계명은 다른 신을 마음에 두지 않는 문제이고, 둘째 계명은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에 대한 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돌이나 나무를 깎아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늘에 있는 새의 모양이나, 땅에 있는 짐승이나 곤충의 모양이나, 물 속에 있는 물고기의 형상이나 모두다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런 피조물의 형상을 새겨 하나님이라고 절하고,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죄악이요, 신성을 모독하는 죄악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영으로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요 4:24). 다른 물질적 형상이 필요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우상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5b,6절을 보십시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사람들이 질투하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질투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열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택하신 자들을 열정적으로 사랑하십니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우상에게 절을 하고, 섬긴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질투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자기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들과 손자들에게까지 갚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미워하고, 물질과 쾌락의 종이 되어 사는 자들의 자손들에게는 많은 질병과 나쁜 악영향이 물려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천대까지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되 절대적인 자세로,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셋째,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7)
7절을 보십시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 하리라"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십니다. 이 여호와라는 이름은 완전무결하신 하나님의 이름이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언제든지 거룩하고 신성하게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시 111:9).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제일 먼저,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마 6:9). 이름이란 그 사람의 인격과 지위와 전 존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의 명예를 아주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명예훼손죄로 엄하게 다스립니다. 죄 많은 인간들의 이름을 훼손하는 것도 큰 죄인데 하물며 선하시고 거룩하시고 완전무결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히는 죄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여호와의 이름은 거룩한 이름입니다. 영광스러운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은 감사하고 찬양하고, 경배하고, 영광돌릴 때만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또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구할 때만 그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 마음 속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는 기도, 감사가 없이 드리는 찬양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악입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결코 죄 없다 하지 아니하십니다. 이는 그 마음의 불신과 원망, 반역적인 죄악을 정죄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에 쌓은 악에서 악을 내고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냅니다. 마음에 쌓인 불경건과 불신,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에서 망령된 말이 나옵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그 입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 깊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넷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8-11)
8-10절을 보십시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 계명은 소극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계명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순종하고 실천해야 할 첫 계명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을 어떤 날로 기억해야 합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후 쉬신 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날을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고백과 같습니다. 안식일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또 거룩히 지키라는 말은 다른 날과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7일이라는 동일한 시간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하루를 구별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이는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엿새 동안 힘써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매주 엿새 동안은 열심히 일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엿새 동안 힘써 일할 때 안식일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엿새 동안 핑핑 놀고, 일곱째 날에 또 쉰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이 게으름뱅이가 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사랑의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제 칠일은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23:12에 보면 '너는 육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칠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 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고 했습니다. 주인이 쉬어야 자식도 쉴 수 있고, 종들과 소나 나귀도 쉬며 숨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임과 동시에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계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막 2:27).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무조건 쉬는 날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막 3:4). 안식일에 육체적인 노동을 쉬는 것은 기본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하루 종일 잠으로 때운다든지, TV 앞에 앉아서 오락을 즐기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2. 이웃에 대한 계명 (12-17)
12-17절은 인간 상호 간에 지켜야 할 계명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참한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밑바닥에서 살면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나 법칙보다도 감정과 혈기대로, 이기적인 욕심대로 살았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분명한 사회 질서가 서야 하고, 사회 정의가 실현되어야 하고, 평화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이웃에 대한 계명은 무엇입니까?
첫째, 네 부모를 공경하라(12)
13절을 보십시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 다섯째 계명은 적극적으로 실천하라는 계명입니다. 또 이 계명은 약속이 딸린 유일한 계명입니다.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인륜 도덕의 근본입니다. 부모는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자기를 낳아준 분입니다. 진자리 마른 자리 다 갈아 주시며 성인이 되기까지 길러 주신 분이십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공급해 주시고, 입혀 주신 분이십니다. 자기를 위해 온갖 희생을 다 치른 분입니다. 이 부모의 은혜는 평생 갚아도 다 갚을 수 없습니다. 물론 부모가 신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허물과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강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아버지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고 괴로워하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몇 년 전에 국민학생 오누이가 술만 드시면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루시는 아버지를 찔러 죽게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자식은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치 않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지 합당치 않습니다. 공경한다는 말은 마음으로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세의 징조 중에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한다고 했습니다(딤후 3:2). 특히 오늘날은 핵가족 시대입니다. 그래서 늙으신 부모님들을 모시기를 싫어합니다. 어떤 노인은 젊은 아들과 며느리에게 두들겨 맞아 죽었습니다. 이런 가정에서 태어난 자식들이 그 부모로부터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결국 자신도 그렇게 자식에게 당하게 됩니다. 21:15,17에 보면 그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이고, 부모를 저주하는 자도 반드시 죽이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공경치 않을 뿐 아니라 욕되게 하는 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사도 바울은 공경하라는 말을 순종하라는 말로 대치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우리는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둘째, 살인하지 말라(13)
"살인하지 말찌니라" 이 계명은 생명에 관한 계명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하고, 신성합니다.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천하를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어버린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또 생명은 일회적인 것입니다. 한번 잃으면 다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을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자기의 생명도 소중하고, 다른 사람의 생명도 소중합니다. 자살하는 것도 하나님 보실 때 똑 같은 살인행위입니다. 또 태아의 생명을 죽이는 것도 살인입니다. 우리는 요즘 생명의 존엄성이 땅에 떨어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요즘은 어려서부터 폭력과 잔인함을 자랑하는 영화와 오락물들을 보고 자랍니다. 그래서 더욱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미움과 원한이 가득 차 있습니다. 지존파 청년들의 살인행각이나 유부녀 납치 살인 행각을 벌인 택시 운전수나 그들의 마음 속에 세상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또 요즘은 교통 사고로 죽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는 운전하는 사람들이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살인사건의 대부분이 돈과 관계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돈때문에 부모도 죽이고, 돈때문에 청부살인을 하기도 합니다. 또 보험금을 타기 위해 남편을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미국에서는 재혼 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어린 남매를 못에 빠뜨려 죽이고, 납치되었다고 소동을 부리다가 들통이난 젊은 어머니가 구속되어 큰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사람을 죽이지 않은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형제와 화해하고, 사랑하는 데 있음을 밝히셨습니다(마 5:21-26). 사도 요한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했습니다(요일 3:15).
셋째, 간음하지 말찌니라(14)
간음은 하나님께서 짝지워 주신 아내와 남편 이외의 사람과 동침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혼전에 짓는 죄도 장차 결혼할 남편과 아내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간음죄는 하나님 앞에서 한 서약을 깨뜨리고, 남편과 아내 사이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죄악입니다. 가정이란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입니다. 그런데 남편과 아내의 부정때문에 하나님께서 창설하신 가정이 파괴되고 맙니다. 파괴된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집니다. 또 인격적으로도 안정되지 못하고, 파괴적이 됩니다. 우리 나라의 청소년들의 범죄가 늘어나는 이유도 가정의 파괴로부터 비롯됩니다. 가정의 파괴는 곧 사회의 파괴를 가져오고 국가의 몰락을 초래합니다. 로마의 멸망이 국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부도덕한 삶과 가정이 파괴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미국과 러시아에서는 가정 파괴가 아주 심각합니다. 또 온 세계가 에이즈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지만 해결책이 없습니다. 그래서 UN에서는 올해를 "가정의 해"로 정해 놓고 많은 행사를 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간통죄(간음죄)를 죄로 받아들이지 않고, 온갖 음란물이 날개돛힌듯 팔리는 사회에서 파괴된 가정이 줄어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신약성경은 성적으로 부도덕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히 13:4, 갈 5:19-21). 계시록에서 행음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한다고 경고했습니다(계 21:8). 예수님께서는 행위로 드러난 간음죄보다 그 내면에 일어나는 음욕을 다스릴 것을 명하셨습니다.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7,28) 만일 네 오른 눈이 실족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눈을 뽑아내는 것 같은 고통이 따르더라도 몸과 마음의 순결을 지켜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넷째, 도적질하지 말찌니라(15)
이 계명은 사유재산권을 보호하는 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재물을 얻어야 하며, 그렇게 얻은 재물은 마땅히 보호를 되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이것이 경제 질서의 근본입니다. 이 경제 질서가 파괴되면 아무도 노력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 경제가 오래 동안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가 불로소득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동산 투기를 하거나, 탈세를 해서 한꺼번에 떼돈을 벌려고 했습니다. 정당한 노력과 대가를 지불하고, 푼돈을 모아서는 평생 벌어도 집 한채 살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노동의욕을 상실한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대형 참사로 국제사회에서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을 분석해 보면 설계에서부터 부정과 비리 투성이였습니다. 설계자는 양심껏 설계를 하지 않고, 건설자는 설계대로 건설하지 않았습니다. 감독자는 뇌물을 받고 온갖 비리를 눈감아 주었습니다. 모든 일을 눈가림으로 하니 사고가 안 터질 리가 없습니다. 꼭 남의 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쳐 가야 도적질이 아닙니다. 정당한 노력의 대가 없이 남의 볼펜을 챙겨넣도 도적질입니다. 시험을 칠 때 커닝을 하는 것도 남의 노력과 지식을 도적질하는 것이요, 남의 성적을 상대적으로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책을 빌려 가고 갖다 주지 않는 것도 근본적으로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이웃은 신뢰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웃에 대하여 헛소문을 퍼뜨려 이웃의 재산에 피해를 주거나, 이웃의 명예를 훼손케 하는 일은 하나님 보실 때 큰 죄악입니다. 선거 유세 때마다 상대방 후보에 대해서 온갖 비방과 흑색선전을 하여 고통을 줍니다. 심지어 국회 청문회나 법정에서까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위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과거 군사 정권 하에서는 보안법이라고 하여 간첩도 아닌 사람을 붙잡아 간첩죄로 평생을 감옥에 집어넣기도 하고, 사형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기업체들 끼리도 서로 상대방 기업에 대해서 악성루머를 퍼뜨려 치명적인 고통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거짓 증거를 하게 되면 사회 정의가 무너지게 됩니다. 아무도 믿지 못하는 불신사회가 됩니다.
여섯째,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17절을 보십시오.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 이 계명은 모든 계명을 어기게 되는 마음의 동기와 생각과 정죄하는 계명입니다. 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약 1:13,15).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 우리가 탐심을 물리치려면 현재 주어진 환경에 자족하는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무엇보다 탐심을 물리치려면 세상과 물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루 타락한 본성을 가진 인간은 탐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롬 7:24).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우리 내면에 돋아나는 탐심을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롬 7:25).
결론. "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을 마태복음 23:37-39절에서 이렇게 요약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롬 1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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