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바울의 끝없는 도전 ( 로마서 15:22~29 )
하용조 목사 -2004년 9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인류의 역사가 BC와 AD로 나뉘었듯이, 한 개인의 인생사에서도
BC와 BC AD로 나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출생 결혼 직업적 성공 등에 의해서가 아 BC AD . , ,
니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에 대해 알고 느끼며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닙니
다 그런 것으로 세상이나 개인의 역사는 변화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생명 빛 사랑을 체 . . , ,
험할 때 가능합니다.
바울의 대변화
신약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인물은 사도 바울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인생이 변화된 인 .
물들이 많이 있지만 결정적인 모델을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신약 성 .
경의 권을 쓸 정도로 학문과 지성이 뛰어난 사람이었고 골수 유대인이었으며 정통 바리 12
새인이었고 행동하는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 .
는 빛으로 성령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 , .
으러 갔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빛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이 사건이 그의 인생 .
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는 큰 자 라는 뜻의 사울에서 작은 자 라는 뜻의 바울로 이름을 바꿉니다 그리고 우상 . ‘ ’ ‘ ’
처럼 섬겼던 자신의 학문 철학 신념 예술 등을 버리고 거리의 전도사로 감옥의 사도로 , , , ,
변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직업 결혼 이상 꿈 등 모든 것들을 접고 예수님을 위한 종이 , , ,
됩니다 사도 바울의 변신은 기독교사에 기록될 만한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 . .
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끝없는 도전과 열정으로 삶의 전부를 헌신하고 있습니다 절 말씀 . 22
입니다.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 ”
여기서 바울은 항상 로마로 향하는 비전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장 . 19 21
절 말씀에서 바울이 항상 로마 전도에 대한 꿈과 환상을 갖고 있음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
다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 . “
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로마 복음화를 꿈꾸는 바울
이 말씀은 바울의 차 전도 여행에 해당합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3 .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바울의 전도 여정이 끝나는 게 아니라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 ,
들러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면 체포당하고 재판을 받은 후 죄수의 신분으로 최후 변론을 하기
위해 로마로 가게 됩니다.
어느 영화나 드라마의 주제처럼 나는 로마에 가고 싶다 나는 로마를 보고 싶다 는 것이 , ‘ ’ ‘ ’
바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사도행전 . 23
장 절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11 . “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고 기록하고 있 ”
습니다.
사도행전 장에서 바울은 로마에 가고 싶다고 했고 장에서 성령님께서 바울에게 로마 19 , 23
에 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로마로 가서 예수님을 증거해야 한다는 성령님의 음성 .
을 듣습니다 바울의 로마행 동기와 목적이 분명해진 것입니다 . .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사도 바울을 죽이기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자지도 않겠다고 서약한 , ,
자객이 명이나 생겨납니다 복음을 전하는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얼마나 미움을 받았는지 40 .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바울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살해당할지도 모르는 절박한 .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바울에게 로마로 가서 예수님을 증거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
런데 바울의 꿈은 로마로 가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로마는 바울의 인생에서 종착역이 아 .
니고 통과역에 불과합니다 바울에게 로마보다 더 큰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이 절 말 . . 23, 24
씀에 있습니다.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
이 말씀에서 바울의 꿈은 로마에 정착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로 가 .
면 약간의 교제를 하고 도움을 받아서 서바나로 가려하고 있습니다 그의 서바나행에 대해 .
로마가 중간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에 대해 몇 가지 사실 .
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를 거쳐 서바나로 향해
첫째 바울의 종착역은 지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로마에 갔다가 서바나로 가도 그이 종착역 , .
이 아닙니다 바울은 서바나에서 또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가고도 남았을 것 .
입니다.
바울의 종착역은 예루살렘 사마리아 중앙아시아 차에 걸쳐 전도 여행을 했던 유럽도 아 , , , 3
닙니다 더구나 꿈에 그리던 로마도 아니고 로마에서 도움을 받아 가려 했던 서바나도 아닙 .
니다 바울의 비전은 한계가 없습니다 그는 천국으로 가는 날까지 온 땅에 이르도록 복음 . .
을 전하는 것입니다.
년 전에 하나님께서 열두 가정을 모으시고 지하실을 빌어 온누리교회를 시작하도록 인도 19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명의 젊은이들을 주시면 전 세계에 하나님을 전하겠다며 소박 . 2,000
한 기도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년 만에 명의 청년들이 온누리교회로 몰려들었습니 . 7 2,000
다 거기서 비전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과정에 불과했습니다 지난 년 동안 온누 . . . 19
리교회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천 만 이라는 비전이 심겨졌습니다 이번에 사역자로 파송 받은 2 /1 . ‘ ’
한 형제도 우리가 가진 비전에 감염된 것 같습니다 그 형제는 컴퓨터 기술을 갖고 칭타오 .
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는 선교사도 목회자도 아닙니다 선교사이나 목회자는 비 . , .
전의 열매대로 선교지로 가는 것뿐이지만 실제로 평신도들은 비전을 잉태한 채 선교지로 ,
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먼저 준비하고 꿈을 안고 가는 것입니다 . .
천 만 비전은 온누리교회가 명이 넘는 선교사들을 세계의 미전도 국가에 파송한다는 2 /1 500
것입니다 우리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도 많은 헌금을 투입해 끊임없이 선교 사역하는 이 .
유도 그런 비전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를 말합니다 . ACTS 29 . ‘ ’
처음 우리가 를 선포했을 때 인공위성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터 ACTS 29 , . ‘ ’
넷 를 경험하게 하시더니 이제 분수에 넘치도록 전 세계 오대양 육대주에 전파를 발사해 TV ,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인공위성 개 사용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인공위성은 로마와 9 .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서바나로 향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서바나행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
비전의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끊임없이 주시는 .
것은 다름 아닌 땅끝까지 복음 전파에 대한 사명감입니다.
높은 세계를 바라본 바울
둘째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항상 지평선 너머의 세계를 응시한 것입니다 그는 사람 제 , . ,
도 프로그램 등에 얽매이지 않고 인명이나 철학 그리고 사상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 .
그는 언제나 높은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삶의 현장이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은 .
자신이 살고 있는 앞마당만 바라보고 길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걸 하 .
려면 저게 걸리고 저걸 하려면 이게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말은 멋지게 하지만 손과 발은 . ,
거미줄에 걸린 양 옴짝달싹하지 않습니다 사는 것이 힘들다며 당장 눈앞에 있는 일들을 . ,
하게 되니까 다른 일을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언제나 지평선 너머 높은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얻어맞고 죽을 고비 .
를 당하며 감옥에 갇혀서도 철창 사이로 지평선 너머 더 높은 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 .
우리는 잘 먹고 잘 입으며 잘 사는 사람을 위대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좋은 집 옷 직장 . , ,
을 가진 사람을 위대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동물의 본능은 단순히 먹고 싸는 데 있습니 .
다 그들의 특징은 한마디로 비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안전한 곳에 먹을 것을 쌓아 . .
놓고 하루 세 끼를 먹는 일에 만족한다면 짐승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비전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하거나 다른 주위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거나 어떤 상황에서도 반짝이는 눈으로 높은 세계를 바라봅니다 참된 비전은 머무르지 .
않고 참된 비전은 소유하지 않으며 참된 꿈은 누리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의 자유로운 정신 세계
셋째 바울은 어떤 경우에도 지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이 어렵고 , .
힘들면 불평하고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바울에게서 끝까지 불평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
없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 어려움을 겪어도 어느 누구에게도 도와달라고 부탁하지 않습니 .
다.
바울의 정신 세계는 떳떳하고 자유로웠습니다 그에 관한 내용은 고린도후서 장 . 11 23~27
절에 잘 기록돼 있습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 . “
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
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
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
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그러나 바울은 언제 그런 고생을 했냐 싶을 정도로 항상 평안합니다 수없이 얻어 맞고 쫓 .
겨 다니며 굶주렸어도 그의 삶에서 그늘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갖고 삽니다 그래서 화려하고 찬란했던 기억들을 묵상하 .
곤 합니다 그리고 현실이 어려우면 얼굴에 가득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표정을 짓게 됩니다 . .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똑 같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보통 사람들이 겪었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통을 당했습
니다 그는 고상하고 품위 있게 살아도 되는 자격과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지만 모든 . ,
것들을 포기하고 정당한 이유도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삶을 살았
습니다 이것이 비전입니다 . .
바울은 자신이 겪었던 고난의 강도만큼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그의 꿈은 멈추지 않 .
고 계속 됩니다 끊임없는 도전이요 모험이요 열정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바울이 가졌던 . , , .
비전들을 우리에게도 주셨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대학에 가고 못가고 결혼을 하고 못하고 . , ,
취업을 하고 못하고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슴을 불태우고 관습과 문화와 제도 .
를 뒤바꿔 복음의 전도자로서 자신을 거리로 내모는 일들이 내면에서 꿈틀대기를 축원합니
다.
우리는 온누리교회가 목적이 아닙니다 인공위성도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바울로 하 . .
여금 로마로 서바나로 중앙아시아로 가게 하셨듯이 그런 것들은 하나의 과정에 불과합니 , ,
다 우리가 온누리교회를 붙잡는다면 그것은 우상으로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온누리교 . .
회를 사용하실 뿐이지 온누리교회 자체가 우리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 . ,
제도 건물 이념 등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 , .
개혁도 하나의 과정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개혁이란 우리가 잘 해보자는 의지이지 그것에 .
매달리는 순간 우리는 개혁의 노예가 돼 버립니다 돈은 사용하는 것이지 소유하려는 순간 .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절 말씀입니다 . .25, 26 .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 “
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큰 비전과 동시에 작은 사역도…
바울은 지평선 너머 높은 세계를 바라보며 엄청난 비전을 말하지만 이번엔 아주 사소한 일 ,
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인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
유대 성도들을 위해 헌금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들의 헌금을 들고 예루살렘을 .
방문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절 말씀을 봅니다 . 27 .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 “
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성령 받은 유대인들은 바울을 통해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은 . .
유대인들로 인해 예수님을 믿는 신령한 것을 나눠 갖게 되었으므로 유대인들에게 물질로 보
상하는 일은 마땅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어려운 유대 .
성도들을 위해 기꺼이 헌금한 것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 .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크고 원대한 비전을 꿈 .
꾼다면 반대로 연약하고 힘없는 개개인은 모두 소외되고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것입 ,
니다 사도 바울은 큰 비전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사소한 일도 말하고 있습니다 곧 자신을 . .
심부름꾼에 불과하다고 고백하면서 마케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의 헌금을 갖고 예루살렘의 어
려운 유대 성도들을 위로하고 상담해 줍니다 절 말씀을 읽습니다 . 28, 29 .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
가리라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인공위성 사업 후 다음 비전을 향해
바울은 작은 사건을 말하면서 동시에 서바나에 대한 큰 비전을 말합니다 저는 온누리교회 .
성도님들이 큰 비전에 열중하다가 다른 작은 일들을 소홀히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길
바랍니다 큰 비전을 가진 사람이 집에서 애나 보고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잘못된 것입 .
니다 어떤 사람이 비폭력이라는 고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사람이 무슨 말인 .
지 알아듣지 못해 자꾸 묻자 뺨을 때리면서 왜 나의 비전을 모르냐고 한다면 말도 안 되는 ,
일입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조심해야 할 것은 주위에 있는 소박한 개개인을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역으로 개인적인 사소한 일로 큰 비전을 망쳐서도 안 .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온누리교회가 큰 비전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온누리교회를 우상으로 .
만들어선 안 됩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끊임없이 도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 .
비전은 인공위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어떤 일로도 스스로 얽매이게 .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위해 끊임없이 지평선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 .
며 다음 목적지를 향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비전을 잉태하게 하옵소서.
현실이 감옥일지라도 철창 사이로
지평선 너머
높은 세계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장소와 제도와 방법을 뛰어 넘어
비전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되게
복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
출처 온누리신문 * :
'성경주석강해 > 로마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강해 목록 (0) | 2012.11.02 |
---|---|
로마서 7장 14-25절의 해석 (0) | 2009.08.29 |
권면과 마지막 인사 (0) | 2008.05.21 |
거룩한 입맞춤 (0) | 2008.05.21 |
이방인을 용납하십시오(2) (0) | 2008.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