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 장 |
2:3과 2:4절 사이: 아무래도 2:1-2:3은 1장의 내용과 더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천지창조의 마지막 날을 설명하는 것이니까. 반면에 2:4 이하는 인간창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것이다. 2:4부터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래서 하나님을 ‘엘로힘’이라고 부른 문서(1:1-2:3)와 ‘여호와’라고 부른 두 가지 문서가 혼합되어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소위 문서설이 한 때 신학의 주류를 이루기도 했지만 고고학이 발달하면서 많이 퇴색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창조주요, 심판자적인 모습일 때는 ‘엘로힘’이라는 이름이 사용되고 자기 백성과 언약을 맺고 그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친근한 분으로 나타날 때는 ‘여호와’란 이름이 사용되었다. 2. 하나님은 피곤하실 이유가 없다. 왜? 말로만 창조하셨으니까(1점), 3. 하나님이 안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피곤해서? 만드신 것을 즐기며 감상하고 기뻐하는 것: 하나님은 피곤해서 쉬실 이유가 없으신 분이다. 안식일이 확장되면 안식년이 되고 안식년이 확장되면 희년(禧年)이 된다. 공통점은 기쁜 날이다. 하나님의 안식이란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희년이 확장되면 새 하늘과 새 땅이 될 것이다. 창조세계를 바라보시며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하는 것이 진정한 안식이다. 4. 한자의 아주 기본적인 것들은 창세기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한자를 처음 만들었던 사람들이 창세기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만들 조(造)자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 지 빈 곳을 채워보자. 만들 조(造) = 土(흙) + 口(사람) + (움직임=생령) + ____(생기) 5. 1장의 창조 순서와 약간 달라 보이는 점이 있다. 무엇이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cf) 우리나라의 중심지는 어디일까? 답을 서울이라 하니까 서울은 우리나라의 한쪽에 치우쳐 있다고 반론이 생겼다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 지를 생각해보자. 서울은 지리적 중심지가 아니라 행정적 중심지이다. 즉 1장은 전체적인 순서에 따라 기록했다면 2장은 사람의 창조를 중심으로 기술한 것이다: 동일한 사건을 조금씩 다르게 반복해서 기록한 것을 성경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이는 기록조차 있다 (가령, 노아 홍수 때 방주에 들어온 짐승의 숫자같은 경우). 우리의 독해력이 부족하거나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시대적 배경이나 사고유형의 차이에 따른 지식이 부족해서 달라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조점이 다르거나 관점이 다를 때 조금씩 다르게 되풀이하는 것은 히브리 문학의 한 양식이다. (전형적인 예가 여호수아 3, 4장의 요단 강 건너는 사건이 세 번, 출애굽기의 유월절 기사도 세 번이나 반복되는 것을 들 수 있다) 서로 내용상 차이가 있을 때 이것이 여러 가지 자료들을 편집한 증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지만 만약 여러분들이 여러 가지 자료들을 모아서 하나의 글로 만든다고 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글을 그대로 연결시키겠는가? 적절하게 문맥을 다듬는 것이 정상 아닐까? 아니면 성경을 편집한 사람은 그 정도 눈치도 없는 무식한 사람이란 말인가? 6. 사람의 구성성분은 뼈와 살이라고 하면 되지만 그것은 초등학교 수준의 답일뿐이다. 중, 고등학교 수준이면 C, H, O, N과 같은 원소를 주로하여 각종 무기물질로 구성되어 있다고 답해야 한다. 그런데 성경이 기록될 때에는 이런 단어나 개념이 없었고 거의 대부분의 원소가 자연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한 근대에 와서야 발견되고 이름지어졌다. 그러면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이러한 각종 원소와 무기물들을 가리켜 무엇이라고 했을까? 흙: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것이 아이들이 흙으로 장난감 만들 듯이 만드신 것이 아니다. 고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그렇게 표현한 것 뿐이다. 7. 아담은 사라를 뼈와 살이라는 말로 묘사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는 과정을 보면 사람은 어떤 두 가지의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영혼(하나님의 생기)과 육체(흙): 우리에게는 두 요소 중에 어느 것이 더 크게 작용하는가? 우리는 육적 존재인가, 영적 존재인가? 육체적인 요소보다 영적인 요소가 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8. 생령이란 육적인 존재인가? 영적인 존재인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처럼 육체가 있으되 영처럼 움직이는 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먹을 것을 찾으신 것은 육체가 있음을 보여주시려는 것이다. 각종 초능력이나, 영력이 있는 사람은 잃어버린 우리의 옛 모습을 조금 가진 사람? 9. 에덴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다는데 지킨다는 것은 훔쳐갈 사람이 있기 때문인가? 사탄이라고 대답해도 좋겠지만 더 좋은 대답은 훔쳐가지 못하게 지킨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께서 만든 이 아름다운 동산을 유지, 보존하라는 뜻이다. 영어로 Keep는 지킨다기보다는 유지, 보존시키다 라는 뜻을 가진다. 우리말로는 동산이라고 번역되었지만 영어로는 garden으로 번역된 것처럼 원어는 ‘(울타리가 있는) 정원’이라고 한다. 10. 에덴 동산에서 시작된 강의 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내보면 일반적인 강의 모습과 다르다. 어떻게 다른지 그려보자. 일반적인 강: 나무가지와 비슷하다. 11.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잘못이 하나님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은 대단히 염치가 없는 사람이다. 왜 그런지 16절, 17절 말씀을 근거로 설명해보자. 수 없이 많은 과일 중에서 유독 하나만 먹지 말라고 했는데 하필이면 그것을 먹었다: 집안 가득히 먹을 것을 쌓아두고 단 하나만 해로우니 먹지말라고 했는데 하필이면 그것을 먹었고 그래서 왜 그것을 거기다 두었느냐고 한다면 염치없는 짓 아닐까? 하나님의 강조점은 16절에 있다. 그 모든 것을 즐기라는 것인데 하필이면 단 하나의 금지사항에 빠지는가? 그리스도인은 삶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베풀어 두신 것을 즐기는 삶이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원하심이기 때문이다. 너무 ‘하지 마라’에 관심을 쏟는 것은 옳지 않다. 12. 남자의 갈비뼈를 뽑아서 여자를 만들었으니 남자는 갈비뼈가 하나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실제로 갈비뼈가 하나 부족한 것은 아니다. 어느 구절을 무시했기 때문에 그런 잘못이 생겼을까? 살로 대신 채우시고: 갈비뼈 개수가 몇 개냐는 둥 이런 데 너무 신경 쓰는 것도 잘 하는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참 관심이 많다. 왜 갈비뼈로 만들었을까? 남자는 흙으로 만들었고 여자는 갈비뼈로 만들었으니 재료상으로 보면 여자가 월등히 우수하다? 비싼 물건은 깨어지기 쉽다? 머리나 다리나 살 많은 궁둥이는 놔두고 왜 갈비뼈로? 머리를 떼어서 만들면 너무 교만하고 다리에서 떼어 만들면 너무 천대받을 것이고 그래서 중간의 갈비뼈로 만들었다? 그딴 데 신경 그만 쓰고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어 서로 돕고 살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남자가 여자 위에 군림해도 안 되고, 여자가 남자를 짓밟아도 안 된다. 13. 생물학적으로 보면 남자를 재료로 해서 여자를 만들 수는 있어도 여자를 재료로 해서 남자를 만들 수는 없다고 한다. 그것은 남자의 염색체는 ( ) 두 종류로 되어 있으나 여자의 염색체는 ( ) 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XY, XX : 성경이 과학적이니 아니니 떠들어대니 이런 소리도 해보는 것 14. 사람은 언어를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어떤 언어라도 배울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언어를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아무도 그에게 말을 하지 않으면 어떤 말을 쓸까? 그것이 천국의 언어일까? 정답은 말을 배우지 못한다. 사람의 언어도 외부에서 주어져야 한다. 그러면 무슨 언어든지 배울 수 있다. 진화론은 언어조차도 진화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생겼다고 한다. 사람의 구강구조가 말을 할 수 있도록 얼마나 설계가 잘 되어있는 지 알고 하는 소릴까? 잘 지어진 음악당은 사람의 구강구조를 본따서 만들어진다. 사람의 입안이 소리를 만들고 증폭시키는 묘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입술, 치아, 치경(이빨의 바로 뒷부분으로 딱딱하면서 우둘투둘한 부분), 경구개(치경의 안쪽, 딱딱하면서 매끄러운 부분), 연구개(경구개 다음의 말랑말랑한 부분) 등으로 이루어진 깊은 곡선이 잘 설계된 말하는 장치인 것이다. 본문에서 언어의 출발점도 하나님인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구절은 몇 절인가? 19절: 하나님께서 마음에 정하신 데서 언어가 시작되었음을 말한다. 언어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었다. 15. 6:2에 보면 홍수의 원인을 사람이 육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원래는 육체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 우리는 무엇인가? 생령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만들어진 살아있는 영) 16. 사람과 모든 생물의 재료는 무엇인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 (1장과 좀 다름) 재료는 흙으로 같다: 원어상으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사람의 단백질과 짐승의 단백질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그런 것을 암시하듯 원어상으로 사람의 재료는 ‘아다마의 아파르’이고 짐승의 재료는 ‘아다마’이다. 17. 누가 ‘말’을 보고 ‘말’이라고 했을까? 우리 주변 모든 사물에 이름이 있게 하신 것은 누구인가? 아담(1점), 하나님(2점): 하나님께서 먼저 사물에 이름이 있도록 의도하셨다는 점과 아담의 작품을 결재했다는 점에서. 설리반이 헬렌켈러에게 글을 가르치기 전에 사물마다 이름이 있다는 것을 먼저 깨우쳐 주어야만 했다. 사물의 이름을 붙이는 일도 하나님의 주도 하에서 이루어진 것과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점에서 하나님께서 이름을 정하였다고 해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8. 삼위일체라는 말과 표현방법상으로 가장 비슷한 표현을 찾는다면?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삼위일체를 무리없이 잘 설명하면 이단이란다. 그만큼 사람의 지혜로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성경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은 삼위이면서 동시에 한분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쩌면 영원한 수수께끼일 지도 모른다. 다만 둘이서 하나가 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부부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그렇게되면 하나님의 존재양식을 얼마정도는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자신의 모습을 말씀대로 사는 사람만이 실감하도록 교묘하게 장치해둔 것이 결혼이라는 말이다. 19. 하나님께서 아담의 몸()에 손을 넣어(入) 갈빗대(人)를 빼낸 글자는? 肉: 한자를 배울 때는 고기의 결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배웠는데 글쎄? 20. 하나님께서 하와를 데리고 왔을 때 아담이 어떻게 그 여자의 살과 뼈가 자신의 살과 뼈임을 당장에 알아차렸을까? 그만한 지혜는 있었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 우리가 없을 뿐이지(22번 참조).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 말을 다른 표현으로 고치면 ‘오, 마이 엑기스’가 아닐까? 우리말에는 없지만 원어에는 now에 해당하는 단어가 있다. 맨날 동물들과만 지내다가 ‘이번에야,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을 발견한 셈이다. 21.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셨을까? 교제의 대상이 필요함을 자신에게서 앎: 하나님 자신이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교제를 위함이었다는 사실은 자신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았기 때문 (김성일 장로의 글에서). 반드시 그러하냐 아니냐를 떠나서 하나님의 마음 한 구석을 읽을 수 있을 것만 같다. 22. 영국의 어느 유명한 사전에 나오는 이야기란다. 아담이 처음에 하와를 보고 소리친 말 “Wo! man(우와! 사람이다)"에서 woman이란 단어가 생겼단다. 성경적인가? 아니라면 이유를 말하시오. 아담과 하와가 영어를 사용했다는 증거가 없다: 사실은 남자를 ‘이쉬(ish)’라고 하는데 여자는 거기에 여성형 어미 ‘아’ 발음만 덧붙여서 ‘이샤 (isha)’가 됨 23. 아담이 모든 생물에게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일을 맡기셨다면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일까? 밑천이 딸리는 것(동물이나, 식물이나 몇 가지 이름을 댈 수 있는가?) 24.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주시려고 마음을 먹었으면(18) 바로 여자를 만드는 이야기로 넘어가야지 중간에 짐승들의 이름을 붙인 기사(19)가 왜 들어갔을까? 이름을 붙였다는 것은 단순한 작명의 차원이 아니라 그 본질을 꿰뚫어 본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모든 피조물의 본질을 다 이해하고 파악해도 진정으로 자신의 돕는 배필은 없더라는 뜻이다: 가령, 컴퓨터를 들여와서 우리말로 제대로 이름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컴퓨터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전자계산기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로 계산하는 일에 사용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컴퓨터를 전자계산기라고 말하는 것은 어색하다. 세상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남녀가 있어도 진정한 자신의 배필은 한 사람밖에 없다. 부인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바를 따라서 살자. 25. 2장의 ‘(그)사람’이라는 단어는 원어상으로 ‘(하)아담’이다. 사람을 전부 아담이라고 바꾸어서 읽어보자. 반대로 아담을 사람이라고 읽어보자. 그렇게 읽어도 별 무리가 없는 것이 몇 개나 있는가? 최대 6 + 전부, 의도적인 애매성이 보인다: 아담이 곧 사람이다. 그가 사람의 대표성을 띠고 있음을 밝히려는 의도로 이렇게 애매하게 기록한 것은 뛰어난 문학가의 소질을 갖고 계신 분의 작품이다. 우리 개역 성경은 2:19절을 아담으로 번역하였지만 어느 ‘아담’이 고유명사인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아서 번역한 성경마다 다소간의 차이가 있다. (NASB, RSV, NRSV, 새번역 등을 비교해 보라) <추가할 부분> 1. 아담에게 배꼽이 있었을까? 없었을까? 혹은 닭이 먼저일까? 계란이 먼저일까? 분명히 닭이 먼저 창조되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성숙한 모습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아담도 성숙한 청년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 성숙한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면 배꼽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중요한 것은 배꼽의 유무가 아니라 성숙한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창조를 인정하지 않는 연대 측정은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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