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역사/성경세계사

제목 : 가이난의 비밀

은바리라이프 2008. 5. 7. 01:27
제목 : 가이난의 비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2001-10-04
우리는 흔히 야곱의 후손들을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부르거나 유대인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은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환도뼈가 위골될 정도로 하나님과 씨름한 끝에 얻은 이름이요(창32:28), 유대인이란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서 주도권을 잡았던 그 넷째 아들 유다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 이름들 외에도 우리는 때로 그들을 히브리인이라 부른다. 애굽땅에서 종살이 할 때에도 그들은 히브리인이라 불리워졌으며(출2:6)바나바가 기록하였다고 알려진 서한도 우리는 그것을 「히브리서」라고 부른다. 바울 사도는 자기 자신을 가리켜 '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라고 부르고 있다.(빌3:5)
도대체 이 히브리인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온 것일까? 왜 그들에게는 이스라엘도 유다도 아닌 또 하나의 이름 '히브리인'이 붙은 것일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나는 도대체 성경의 어디서부터 그 호칭이 등장하기 시작하는가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성경에 '히브리인'이라는 호칭이 처음 등장하는 대목은 창세기 14장이었다. 조카 롯과 함께 아버지 데라를 따라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 이주했던 아브람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다시 가나안 땅으로 떠난다. 그러나 아브람은 본래 하나님의 지시에 잘 따르기는 했어도 성품이 모질지 못하고 심약한 것이 결점이었다.
그는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축과 재산이 불어나자 조카 롯에게 서로 갈라질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계산이 밝은 롯이 비옥한 동편들을 택하자 그는 험악한 산지 헤브론을 택하여 옮겨간 것이었다. 이 어리숙한 아브람을 하나님을 격려하신다.
아브람은 전쟁에 끌려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데리고 있던 겨우3백 18명의 군사를 이끌어 이 엄청난 세계대전에 휘말려들게 된다. 그러나 결과는 아브람의 대승리였다. 이 전쟁에서 아브람은 세계 제일의 강자가 되었고 떡과 포도주를 들고 나온 할렘 왕멜기세덱으로부터 축보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히브리사람' 아브람에 대한 하나님의 엄청난 격려였던 것이다.
나는 다시 이 '히브리'의 어원을 찾기 시작하였다.
홍수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간 노아의 자손들을 적어놓은 창세기 10장의 족보들을 읽으면서 나는 결국 그 모든 족속들이 모두 자기 나름대로의 신들을 섬기게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많은 자들 가운데서 우리가 아는 여호와 하나님은 노아에게서 셈에게로, 셈에게서 아르박삿에게로, 아르박삿에게서 다시 셀라에게로, 셀라에게서 에벨에게로 가느다랗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나마 히브리 사람들의 자존심 회복을 다행스럽게 여기며 다른 성경들 속에서 에벨의 이름을 확인하였다. 에벨의 이름은 역대기에도 있었다.
나는 다시 누가복음3장을 찾아보았다. 거기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거꾸로 올라가며 아담까지 이르게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족보를 펼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이상은 야곱이요, 그 이상은 이삭이요, 그 이상은 아브라함이요, 그 이상은 데라요, 그 이상은 나흘이요, 그 이상은 수룩이요, 그 이상은 르우요, 그 이상은 벨락이요, 그 이상은 헤버요, 그 이상은 살라요, 그 이상은 가이난이요, 그 이상은 아박삿이요, 그 이상은 셈이요..."(눅3:34∼36).
물론 헤버는 에벨, 살라는 셀라, 아박삿은 아르박삿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살라와 아박삿 사이에 있었다.
"...그 이상은 헤버요, 그 이상은 살라요, 그 이상은 가이난이요, 그 이상은 아박삿이요..."
분명히 살라(셀라)와 아박삿(아르박삿)사이에 '가이난'이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여기서부터 내 생각은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혹시나 하여 70인 역과 거의 동시대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외경 「요벨서」를 뒤지다가 가이난의 이름을 발견하고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벨서」는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문서 중의 하나로서 말하자면 창세기의 외경같은 것이었다. 외경 요벨서의 제 8장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아르박삿의 아들 가이난은 성장하여 도시로 나가 점성술사의 가르침을 받고 일월성신의 징조로 점을 쳐서 죄를 범하였다...가이난은 셀라를 낳았고 가이난의 아우 게세대는 에벨을 낳았다..."
물론 요벨서가 정경(正經)이 아니므로 우리는 이 기록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가이난의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한가지 분명한 것은 가이난이 성경의 족보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그 자녀들의 '신앙의 계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힘겹게도 그 계보는 다시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은 셀라가 에벨을 길러냄으로써 간신히 에벨에게로 이어졌던 것이다. 에벨은 밧단 아람의 하란 땅에 에블라 왕국을 세웠다. 그러나 그 에블라 왕국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부는 죄악의 바람이 너무나 강했다. 바벨탑의 사건이 일어났다. 온 땅의 언어는 갈라지고 사람들의 갈등과 투쟁은 더욱 깊어갔다. 에블라 왕국은 다시 타락하고 사람들은 뿔뿔이 우상을 따라 흩어져 갔다. 동쪽으로 흘러들어간 스룩의 아들 나흘과 나흘의 아들 데라는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들에 파묻혀 살았다. 어느 날 데라는 갈대아 우르의 타락한 도시생활에 환멸을 느꼈다. 그는 아들 아브람과 손자 롯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다.
그러나 그는 늙었을 때 그 종 엘리에셀에게 말한다.
"이 지방 가나안 족속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족속에게로 가서(밧단아람)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창24:4)
그 아들 이삭도 나이 많아 늙었을 때에 집을 떠나는 야곱에게 명령한다.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창28:1,2)
이토록 밧단아람, 즉 에덴의 옛터요 에블라 왕국의 그 자리는 히브리 사람들의 고향이요, 집념이었던 것이다. 그 분은 기어코 에블라 왕국보다도 더 크고 장엄한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셨던 것이다.
그 성에 입성할 수많은 이름들 가운데서 가이난처럼 삭제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우리의 집념을 하나님의 나라에 단단히 걸고 우리 '믿음의 계보'가 끊어지지 않도록 우리 믿음의 아들들을 길러내야 하는 것이다. 셀라가 에벨을 길러 냈듯, 바울이 디모데를 길러냈듯 우리는 그계보를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
(자료출저 : 김성일님의 "성경과의 만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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