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성경배경사

메소포타미아의 제국들 ⑶

은바리라이프 2008. 5. 2. 15:10
메소포타미아의 제국들 ⑶  
[박준서 교수가 본 포연속의 성지 (19)] 메소포타미아의 제국들 ⑶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한 시대를 풍미하던 중심 인물이 있다. 주전 6세기 전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주인공은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 2세)이었다. 그는 재위기간 43년동안 바빌로니아를 어떤 세력도 감히 도전할 수 없는 강력한 제국으로 만들었다.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는데 혈안이 되었던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까지 쳐들어가 이를 함락시키고 불을 질러 초토화시켰다. 이로써 다윗 왕 이래로 400년 이상 이어온 유다왕국은 끝이 나고 많은 유다 백성은 포로로 잡혀가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이때가 주전 580년대였다.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느부갓네살 왕은 유프라테스 강변의 도성 ‘바벨론’에 제국의 위상에 걸맞은 웅대한 궁전들을 건축했다. 그의 왕비는 ‘메대’ 왕국의 공주였다. ‘메대’는 산악지대였고 왕비는 떠나온 고향의 산을 그리워했다. ‘바벨론’ 주위 지역은 평야라서 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느부갓네살은 왕비의 향수를 달래주기 위해 기발한 생각을 했다. 큰 궁전을 짓고 그 지붕 위에 계단식으로 작은 산을 만들어 각종 꽃들과 진기한 나무들을 심게 하였다. 멀리서 보면 마치 아름다운 동산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이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바벨론의 ‘공중 정원’(Hanging Garden)이다.

한편 포로로 잡혀온 유다 백성들의 생활은 어떠했을까? 일반적인 생각처럼 그들은 발에 차꼬를 차고 채찍질을 당하는 노예생활을 했던 것은 아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유다 왕국의 지도층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으나 노예로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생활했던 곳은 어디였을까?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서 포로생활을 하던 중 예언자로서 부름을 받았다(에스겔 1:1). 그발 강가는 바벨론 남쪽의 유프라테스 강의 지류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약성경에는 포로 생활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있다. 그것은 예언자 예레미야가 포로민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예레미야 29장에 수록된 편지의 1절을 읽어보자.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田園)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취하여 자녀를 생산하며…거기서 번성하고 쇠잔하지 않게 하라”(예레미야 29:5∼6)

포로지에서 절망과 낙심하지 말고 집도 짓고,과수원도 가꾸고,결혼도 해서 자녀도 낳고,쇠잔하지 말고 번성하라는 권면의 말씀이다.

이것으로 비추어보면 포로들은 그발 강가의 땅을 배정받고 어느 정도 육체적으로 자유로운 생활을 했던 것 같다. 더구나 당시 바벨론 지역에서 출토되는 고고학적 자료를 보면 그들은 상당히 활발한 상업활동을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포로지에서도 살 길을 찾아야 했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장사였던 것이다.

참고로 한 가지 언급할 것은 포로시기부터 나라 잃은 유다 왕국 사람들을 부르는 새로운 이름이 생겨났다. 그것은 ‘유대인’(猶太人·Jew)이다. ‘유다 왕국’이 멸망한 후 그곳은 ‘유다’지역이 되었고 ‘유다’ 출신이라는 뜻에서 ‘유대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오늘날 유대인은 1600만명 정도이고 이들은 이스라엘을 비롯해서 80개국 이상에 흩어져 살고 있다.

영화와 권세를 자랑하던 바빌로니아 제국도 느부갓네살 왕이 죽자 급속히 기울기 시작했다. 불과 7년 사이에 바빌로니아 왕좌의 주인공이 3번이나 바뀌었고 정치적으로 극히 불안정하게 되었다. 제국의 말기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제국의 마지막 왕은 왕위에 오를 어린 왕자를 제치고 왕위를 찬탈한 인물이었다. 그는 어리석게도 제국 내에 종교적 분쟁을 일으켜 내부적 분열을 가져왔고 민심을 크게 잃었다.

이때 바빌로니아 제국의 동쪽 땅(오늘날 이란)에서 새로운 영웅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는 페르시아(바사)의 ‘키루스2세(Cyrus·고레스)’ 왕이었다. 그는 오늘날의 이란 지역을 통일하고 여세를 몰아 바빌로니아 제국의 심장부 바벨론으로 진격했다. 당시 고대 기록을 보면 바벨론 사람들은 저항하지 않고 성문을 열어주었고 페르시아 군대는 무혈입성하였다고 한다. 이미 대세가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다. 역사의 무대에 갑자기 등장했던 바빌로니아 제국은 100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허망하게 역사 무대에서 퇴장하고 말았다.

이제 한 시대는 가고 페르시아 제국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주전 539년). 새 시대의 주역은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황제였다. 그는 고대의 정복자로서는 상당히 계몽적이고 관용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피정복민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고 포로들에게 해방을 선언했다. 그것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고레스 황제의 칙령’이다. 이 칙령은 포로민들에게는 학수고대하던 기쁜 소식이었다.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역대하 36:23,에스라 1:2∼3)

포로민들에게 꿈과 같은 해방의 날이 온 것이다. 여기서 유대인 포로민들에게는 두가지 선택의 길이 있었다. 첫째는 꿈에도 그리던 고향땅으로 돌아가는 것이었고 실제 많은 사람이 귀향길에 올랐다. 반면 나라가 멸망한 이상 이제는 넓은 세계로 나가서 새롭게 운명을 개척하겠다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 학자들은 귀향민보다도 넓은 세계로 흩어져 나간 사람의 수가 더 많았을 것으로 추산한다. 흩어진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해서 유대인의 디아스포라 역사는 시작된다.
박준서(연세대 교수·한국기독교학회 회장)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