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공동서신

연구 1 그리스도인의 성숙(벧후1장)

은바리라이프 2008. 4. 26. 21:51
연구 1 그리스도인의 성숙(벧후1장)
연구 1 그리스도인의 성숙(벧후1장)

거짓 선지자에 대하여 경고하기 전에 베드로는 먼저 자신의 권위를 밝히고 자신이 전하는 바가 참임을 전한다. 성도들이 흔들리지 말고 사도가 전해 준 가르침 위에 굳게 서서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성결한 삶을 살아 성숙하여 부르심과 택하심에 굳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1. 신의 성품에의 참여(벧후1:1-1)

 

베드로는 두 번째 서신의 서두에서 특별히 자신이 누구인가를 밝히고 있다. 왜 그는 자신을 밝히고 있는가?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주 예수를 안다'고 하는데, 이 앎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신의 성품'은 무슨 의미인가?

 

1) 그리스도를 아는 삶

시몬이라는 이름은 복음서 외에 행15:14에만 나타난다. 또 시몬이라는 본명과 '게바'의 헬라어 의미인 베드로라는 별칭이 같이 쓰여진 것도 특이하고 '종'이라는 겸비한 호칭과 '사도'라는 존귀한 호칭이 같이 쓰여진 것도 특이하다. 즉 베드로는 이런 호칭들을 통해 자신이 이 서신의 저자임을 밝히고 이 서신의 권위를 드러내 주고 있다. '앎'이란 단순히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생활 태도까지 포함된다. 따라서 당시 유행하던 영지주의(참지식의 소유와 도덕 무용론을 주장)의 '앎'과 구별된다. '신의 성품에 참예'도 영지주의와 불교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인간이 신의 본질과 같아진다거나 신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웨슬리(John Wesley)가 주장한 바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할 때 하나님의 형상이 새로 나타나게 되고 하나님과 교제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2) 하나님과의 교제

이 서신은 베드로의 권위로 우리 모두에게 쓰여진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의심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단순히 지식으로 신앙 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생활 가운데서(사회와 가정에서) 주 예수를 아는 지식을 소유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리할 때 우리는 이 세상의 죄악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성품으로 태어나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는 것이다.

 

2.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벧후1:5-11)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는 구원이 확보되었으므로 나태해져도 되는 것일까? 신앙 생활에 있어서 열매는 어떻게 얻어지는 것인가? 그리고 '부르심'과 '택하심'을 서로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겠는가? 칼빈(J. Calvin)의 '예정론'과 웨슬리(J.Wesley)의 '성화론' 가운데 이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겠는가?

 

1) 성결한 삶

칼빈과 웨슬리 모두 신앙 생활에 나태하지 말 것을 명령한다.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 모두를 갖추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신앙이 성장해야 한다. 이러할 때 하나님께 대한 봉사가 가능하고 실질적은 열매를 맺게 된다. 이런 것이 없을 때 소경과 같이 옛 죄를 씻지 못한 자가 된다. 칼빈은 믿음만 갖추고 나미지 것들을 등한시 여긴다면 참믿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라 하였다. 참믿음이란 위의 모든 요소를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라 하였다.

부르심과 택하심의 우선 순위를 놓고 칼빈의 예정론과 웨슬리의 성화론이 대립될 수 있다. 그러나 '택하심'에 신학적 중심을 둔 칼빈이나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에 신학적 중심을 둔 웨슬리에게 있어서의 공통점은 구원받은 자는 성결한 삶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2) 열매 맺는 삶

우리 주변에는 주일 교인들이 많다. 즉 세상 가운데서는 마음놓고 죄를 짓고 주일 교회에서만 그리스도인다운 사람들이 많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을 토대로 우리는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즉 평소에도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 택하심에만 의지하여 성결한 삶을 게을리하면 이는 참믿음이 못되며 '부르심'만 의지하여 확신을 갖지 못한다면 이 또한 참믿음이 못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여 실족치 않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3. 친히 본 자라(벧후1:12-21)

 

본문은 마치 유언장을 읽는 느낌이다. 베드로후서에 대한 긴박함과 강렬함이 느껴진다. 왜 베드로는 유언장과 같은 내용을 기술하였는가? 베드로는 무엇을 남기기를 원하였는가? 예언이란 왜 중요하고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1) 베드로의 증거

이 서신의 저자는 베드로임에 틀림없다. 반화산상 사건의 목격자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이기 때문이다. 임박한 죽음을 앞두고 베드로는 사도의 권위와 증인으로서 사도가 전해 준 유산을 굳게 지키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 신앙 유산은 영지주의의 것과 같이 공교히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눈으로 본 바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의 자의적 해석을 경고하고 있는데, 사도적 전통에 근거한 해석만이 권위가 있으며,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자를 경계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2) 성경의 중요성

지금 이 시대에는 사도들은 없고 그들이 남겨 준 신앙 유산만이 있다. 가장 중요한 신앙 유산은 성경이다. 그러나 이 성경을 이단들은 마음대로 풀고 해석하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사도적 전통은 먼저 성령의 인도하심이고 그 다음으로는 사도신경과 초대 교부들의 가르침일 것이다. '성서만으로'를 주장한 루터도 초대교회의 가르침을 중요시하였다. 그러므로 자의적으로 함부로 성경을 해석하여 이를 취하는 사이비 교주를 조심해야 할 것이다.

 

베드로는 유언을 하고 있다. 그것도 자신이 직접 본 바를 전하고 있다. 이는 공교히 지어낸 허황된 이야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도들의 가르침에 굳게 서서 성결한 삶으로 성숙해야 한다. 이러할 때 열매 맺는 삶을 살게 되고 신의 성품에 참예하고 부르심과 택하심에 굳게 하여 실족치 않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