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공동서신

연구 2 성도의 복종(벧전2:13-3:12)

은바리라이프 2008. 4. 26. 21:50
연구 2 성도의 복종(벧전2:13-3:12)
연구 2 성도의 복종(벧전2:13-3:12)

그리스도인은 자유자이다. 그러나 그 자유를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선을 위하여 쓰라고 바울과 베드로는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 선이란 바로 주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그리고 다른 이들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이 속해 있는 국가, 가정, 사회의 질서 가운데서 순복하는 생활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속해 있는 국가, 사회, 가정은 순복하기 쉬운 이상형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행해야 할 바를 베드로는 서신을 통해 명령하고 있다.

 

1. 모든 지도에 순복하라(벧전2:13-17)

 

예수님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마22:21)라고 하셨으며, 바울도 "…권세들에게 굴복하라"(롬13:1) 하셨듯이 국가에 대한 복종은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이다. 그러나 악하고 독재적인 정부에 대해서도 복종해야 할 것인가? 그러면 그 복종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그리고 어떤 자세로 복종해야 하는가?

 

1) 복종의 이유

성경은 이에 대해 국가에 순복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벧전2:13의 왕은 분명히 로마 황제를 의미하며 그가 보낸 방백은 각 식민지의 총독이나 헤롯 왕과 같은 로마 정부가 증인한 지방의 왕일 것이다. 그러나 그 복종의 범위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무조건적인 복종을 의미한다면 일제하의 우리 선배 그리스도인들은 독립 운동도 하지 말고 그저 식민지 정책을 따라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십계명에 위배 되는 '신사 참배'만을 제외한다면 '정신대 운동'등도 적극적으로 순복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 범위와 복종의 이유를 "주를 위하여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표창하귀 위하여"라고 밝히고 있다. 즉 그 복종의 이유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평온한 가운데서 신앙 생활하기 위함이요, 주의 복음을 위하여 우리 자유를 사회적·도덕적으로 선한 일에 쓰임받기 위함이다.

 

2) 복종의 의미

바클레이(Barclay)는 우리가 사회 구조상 절대 권력에 복종하는 것이 아닌 참여의 의미가 중요시되는 민주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복종하는 수동적인 단계를 뛰어넘어 시민이 해야 할 여러 의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능동적 의무를 행해야 한다. 즉 각국 선거와 단체 활동에서 우리의 자유를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민주적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여야 할 것이다.

 

2. 주인들에게 순복하라(벧전2:18-25)

 

노동 조합이 발달하고 개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명령이 본문에 나타난다. 사환들이란 그 원어적 의미로 노예를 뜻하는데, 과연 오늘날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이 노예 제도를 인정해야 하는가? 그리고 악한 고용주에게 무조건 순복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1)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성경은 결코 노예 제도를 합법화하지는 않았다. 바울은 빌레몬서에서 노예 오네시모를 형제처럼 대할 것을 권면하였고, 구약의 노예 제도도 안식년에 '해방'을 그 전제로 하고 있다. 즉 성경의 문자적 해석보다 그 의미를 중요시한 예수님처럼, 성경 속에 담겨 있는 인권 존중 사상으로 의미를 중요시한 예수님처럼, 성경 속에 담겨 있는 인권 존중 사상으로 노예 해방을 부르짖은 링컨의 주장이 옳았다. 그러나 악한 주인이나 고용주에게 순복해야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리스도가 그리하였기 때문이다(벧전21-25장). 즉 죄 없으신 그리스도도 억울하게 죽으셨으므로 우리도 애매한 고난을 참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2) 인내의 신앙

현대 사회에서도 억울하게 고용주에게 고난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럴 때마다 다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참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나 반항하고 다투면 이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3. 남편에게 순복하라, 아내를 귀히 여기라(벧전3:1-13)

 

이혼율이 급증하고 '남녀 평등'의 주장이 커지는 현대 사회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그리고 불신자 남편을 둔 아내들이 어떻게 행해야 하는 것인가? 이런 문제에 베드로는 바울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엡5:22-33).

 

1) 부부간의 관계

성경에 아내에 대한 명령이 남편에 대한 명령보다 많은 이유는 그 당시도 오늘날과 같이 불신자 남편을 둔 여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남편이 신자이면 불신자인 아내가 신자가 되는 것은 별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당시 사회에서 여자의 권리는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여성이 남편과 다른 신앙을 가질 때에는 이혼당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불신자와의 이혼을 성경이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불신자 남편의 구원을 위하여 신자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정결하게 행해야 하였다. 그리고 남편들은 아내를 귀히 여기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는 고대의 남존여비(男尊女卑) 사회에 비추어 보아 매우 이례적인 명령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들어가는 곳마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수 있다. 즉 신앙인들은 아내도 동등한 영적 지위가 있음을 알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서도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한다.

 

2) 부부간의 의무

이혼은 결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아내가 남편을 무시하고 남편의 머리 위에 앉는 것도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그렇다고 남편이 아내를 마음대로 주장하는 것 역시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성경은 가정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남편과 아내의 동등한 지위 가운데 남편과 아내의 질서를 강조한다. 즉 아내는 남편에게 순복하고 남편은 아내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결코 남녀 평등을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하여 아내가 필요 이상으로 권리를 요구해서도 안 되며 여성을 남존여비 사상으로 무시해서도 안 된다. 비록 이혼율이 높아가는 현대 사회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의 가치와 질서를 지켜야 한다.

 

자유자인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와 사회와 가정에서 질서와 순복의 생활이 요구된다. 그 이유는 바로 주를 위함이요, 이는 복음이 편안히 전파되기 위함이며, 불신자를 신자로 얻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서 바로 그리스도가 죄 없이 순복함으로 모범을 보여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