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공동서신

연구 3 신앙의 적용(약3-5장)

은바리라이프 2008. 4. 26. 21:48
연구 3 신앙의 적용(약3-5장)
연구 3 신앙의 적용(약3-5장)

행함이 있는 믿음이 어떤 것인가를 야고보는 가르치고 있다. 즉 입에 대하여, 세상과의 관계에 대하여, 욕심에 대하여, 산상수훈의 실천에 대하여, 잠언의 가르침에 대하여, 부에 대하여 그리고 교회 생활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 즉 실천적인 믿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1.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약3장)

 

교하는 지혜있고 총명해야 하는데 우선적인 첫째 조건으로는 입을 잘다스려야 한다. 이런 자가 행함을 갖춘 믿음 있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러면 교사는 입을 잘 다스려야 하나? 입이 가진 힘은 무엇인가? 그리고 교사의 참된 지혜와 악한 지혜는 어떻게 다른가?

 

1) 지혜의 열매

초대 기독교는 아직 유대교 전통에 있었고 유대교 전통에서 교사(랍비)는 매우 특권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불충직한 목자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경고하였다(렘23:2). 예수님도 자기가 한 말에 대해 심판날에 심문을 받을 것이라 하였다(마12:36). 그러므로 지도자는 입을 조심해야 한다. 입의 능력은 배의 키와 큰 불을 일으키는 작은 불씨와 같다. 한 입에서 악독과 경건이 나오지 않도록 야고보는 경고하고 있다(약3:9-12). 또 참된 지혜에는 선행, 온유, 성결, 화평, 관용, 양순 등의 선한 열매가 있으며, 화평으로 의의 열매가 있고, 편벽과 거짓이 없으나 악한 지혜에는 시기와 다툼이 있어 이를 세상적이고 마귀적이라 한다. 선한 지혜와 악한 지혜는 서로 섞이지 않기 때문에 그 입의 열매로 구별할 수 있다.

 

2) 경건의 지혜

거리에서 표시를 한 차가 자주 눈에 뜨인다. 그러나 교통 사고가 났을 경우 또는 교통 혼잡시에 표시차 운전차에게서 거침없이 상소리가 나오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한 입에서 경건과 악독이 동시에 나오는 경우이다. 이외에도 상소리로 남의 인격을 파괴시키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 기독교인들이 있다. 이런 때 입을 조심하라고 가르치며 경건의 참된 지혜를 가질 것을 명하는 야고보의 가르침을 음미해야 할 것이다.

 

2. 행치 아니하는 죄(악4장)

 

이 부분은 산상수훈과 잠언을 읽은 듯한 느낌을 준다. 어떤 부분이 산상수훈과 잠언과 맥을 같이 하는가? 행하는 믿음이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한다는 의미인가? 약4:5에 "성령이 시기하기까지"라는 구절은 구약에 없다.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1) 행함이 없는 믿음

다툼의 원인은 욕심이라 하였다. 즉 욕심은 세상 것과 연결되어 있다. 잘못된 기도를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리 없다(약4:3). 이런 믿음이 행함이 없는 믿음이다. 예수님은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였다(마6:24). 약4:4에 간음하는 여인들은 약4:5과 연결해 볼 때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는 자라는 의미이다. 성령님은 우리를 시기하기까지 사랑하신다. 이에 대한 문자적 구절이 구약에는 없지만 약4:5이 구약 전체의 내용을 함축한 구절이라 할 수 있다. 구약을 읽다 보면 우리에 대한 사랑의 질투로 가득함을 알 수 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란 마음을 슬퍼하며 남을 비판하지 않고 내일 일을 주께 맡기는 등의 가르침을 지키는 것이다.

 

2) 예수의 윤리적 가르침

흔히들 산상수훈의 내용은 지키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야고보는 구약과 예수님의 윤리적인 가르침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또한 산상수훈은 톨스토이의 정신적 기반이었고, 인도의 간디는 톨스토이에 영향을 받았다. 비기독교인조차도 산상수훈의 위대함을 알고 실천하는 데 기독교인이 행하기가 어렵다고 한다면 믿음의 참본질을 저버리는 것이다. 비기독교인이 조롱하기 전에 신자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여야 할 것이다.

 

3. 길이 참으라(약5장)

 

행함이 있는 믿음의 실천적인 부분을 야고보는 재차 강조한다. 본문에서는 부()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는데 부가 단순히 죄악된 것인가? 모든 부가 다 죄악된 것인가? 모든 부가 다 죄악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야고보는 어떤 면을 부의 죄악된 면이라고 한 것인가? 그리고 이는 주의 재림 사상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이런 종말론적인 시대에 교회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하늘나라에 쌓는 복

야고보는 부 자체를 비난한 것이 아니라 부를 쌓는 방법과 재물로 인한 욕심과 재물의 사용법에 대하여 경고하였다. 약5:4에서는 노동력 착취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 약5:5에서는 물질을 올바로 사용하지 못하고 정욕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이 나타난다. 즉 부 자체가 죄악된 것이 아니라 부로 인한 탐욕과 착취가 죄악된 것이다. 우리는 진정 부를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한다. 사악한 부에 대해서도 심판이 곧 임하기 때문이다. 또 주님께서 곧 오시기 때문에 부를 올바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종말의 때 교회에서는 기도와 찬양과 신유, 회심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약5:13-20). 이것이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

 

2) 올바른 물질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경제가 부요해지고 향락이 증가하고 있음을 누구나 느낀다. 또 빗나간 재림 운동으로 기독교인조차도 그리스도의 재림을 잊으려하고 회피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목적과 수단 없이 부를 쌓아가는 것에 대하여 성경이 경고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건전하게 쌓아 올린 부와 부의 올바른 사용은 종말의 때에 결코 부끄럽지 아니할 것이다.

 

신앙은 매우 실천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속에 물든 사람들과 생활에 있어 다를 바가 없다면 복음에 능력이 있을 수 없다. 이 실천은 중요성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기 때문에 더욱 강조된다. 행여 우리가 안일하고 나태한 생활을 함으로써 형이상학적인 공허한 믿음을 갖지 않도록 야고보는 행함을 강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