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바울서신

연구 2 교회의 무질서(고전5,6장)

은바리라이프 2008. 4. 26. 20:34
연구 2 교회의 무질서(고전5,6장)
연구 2 교회의 무질서(고전5,6장)

바울은 교만(고전4:18,19 ; 5:2,6)과 능력(고전4:19-20 ; 5:4)의 주제를 이어가면서 고린도전서 1-4장의 배후에 있는 권세와 복음의 위기에 대한 문제, 특히 바울과 교만한 자들의 권세를 다룬다. 즉 고린도전서 5,6장에서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현재 영적으로 완전하다는 것에 도취하지 말고 현재 삶 속에서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는 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이러한 삶을 살지 못하였기에 바울은 본 서를 통해 교회의 질서를 파괴하는 음행하는 일과 믿지 않는 자들 앞에 송사를 가져가는 부끄러운 성도들을 향한 잘못을 꾸짖고 있다.

 

1. 음행한 사람(고전5장)

 

본문은 성도가 음행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그런 행위에 우유부단한 교회의 태도를 지적하는 내용이다. 바울은 그런 자에 대하여 어떻게 판단하는가? 이 땅에서의 교회의 성격은 무엇인가? 성도가 음행하는 자들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

 

1) 음행자는 축출되어야 한다

고전5:1은 음행 자체의 성격을 보여 주고, 고전5:2은 고린도 교회가 음행하는 자에 유연하게 대천한 태도에 대한 바울의 실망을 보여 준다. 이는 그 동안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한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음행한 그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한다. 즉 바울은 음행하는 사람을 믿음의 공동체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네 번이나 명령한다. 바울은 축출의 방법과 이유를 제시하다. 그리고 유월절 비유를 통해 교회는 이땅에서 순전하고 진실한 공동체로서 유지되어야 한다고 그 축출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2) 이전에 쓴 편지에 대한 오해를 수정함

바울은 교회의 태도로 돌아가서 고린도인들이 바울이 이 문제에 대하여 이전에 쓴 편지를 오해하고 무시한 것과 연결한다. 바울이 이전에 쓴 편지의 진의는 음행하는 자들은 교회 안에서 축출해야 하되 교회 밖에서는 전도와 회개의 대상으로 한정하여 사귈 수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직접 가서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성령 안에서 사도적 권세를 행사하던 이전의 편지를 통하여 그들의 문제를 해결한다.

 

2. 세상 법정에서 성도의 고소건(고전6:1-11)

 

본문은 교회 안의 그릇된 일을 불의한 외부인들 앞에서 판단받게 함을 책망하고 교회 안에서의 성도의 판단하는 권세 사용을 권면하는 내용이다. 성도의 판단하는 권세는 어디까지 해당하는가? 성도는 현재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윤리적 삶이 없이도 미래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가?

 

1) 교회의 수치

교회가 교회 안의 문제를 불의한 외부인들 앞에 송사하는 것은 성도가 세상을 판단하고 천사까지 판단할 것을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나온 수치스런 처사이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아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믿지 않는 자들 앞에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고린도 교회의 수치는 소송에 의해서 해결될 수 없는 사건이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영적으로 실패한 삶을 보여 준다. 바울은 교인들이 이런 모든 싸움에 휩쓸리기보다는 해를 당하거나 속임을 받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지적하고 있다.

 

2) 어리석음의 수치와 행악자에 대한 경고

바울은 피차 송사하는 성도들은 그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교회를 수치스럽게 하는 행위임을 지적한다. 성도들은 믿음에 기초하여 비복수적 윤리에 따라 살아야 한다. 만약 고린도 교회처럼 송사나 분쟁이 있을 경우 세상 법정에까지 나아가면 그 교회는 하나님께 향한 정체성을 잃고 스스로 파멸하는 결과까지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처럼 행할 경우,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위험을 경고한다(고전6:8). 이 경고성 명령은 그들이 회심한 자들이라는데 근거한 성도의 윤리 요구인 것이다.

 

3. 신령한 사람의 자기 몸 사용법(고전6:12-20)

 

본문은 고린도 교회 가운데 신령한 사람은 창기에게 가서 몸으로 음행을 행할 자유의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다루는 내용이다. 죄로부터 자유케 되어 구원받은 사람은 윤리적으로 아무렇게 살아도 죄가 되지 않는가? 몸이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1) 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존재한다

고린도 교회의 신령하다는 자들은 위와 같이 자유와 몸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6:12에서 직접 그들이 기독교의 자유를 오해하고 있음을 반박하고, 고전6:13,14에서 몸의 본질에 대한 오해도 반박한다. 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존재하고 주는 몸을 위하여 존재한다. 우리의 몸은 아직 하나님이 부활시키실 때까지 완전하지 못하다. 따라서 바울은 음행을 통해 영적인 감응력에 치명타를 받을 수 있기에 그리스도인은 음행을 피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2) 몸은 성전의 전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이런 신학적 근거 위에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명시한다. 즉 몸은 창기와 합하면 저와 한 몸이 되고 주와 합하면 한 영이 된다. 바울은 음행할 수 없는 신학적 근거로서 몸이 성전의 전이라고 제시한다. 그러므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대하여 요셉이 과감하게 물리쳤듯이(창39:12),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임을 늘 인식하고 요셉과 같은 신앙이 필요하다.

 

고린도 교회에는 신령하다고 하면서 음행을 행하거나 불신자들 앞에서 형제를 고소하거나 몸으로 음행하는 자유의 권리를 자랑하는 자들이 있었다. 바울은 그들의 윤리적으로 부패한 삶이 근본적으로 복음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근거함을 지적한다. 성령의 은사들을 마치 구원의 증거로 제시하며 윤리적으로 부패한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신비주의자들이 도지 말아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들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용하고 몸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