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소선지서

연구 1 신랄한 책망(학1장)

은바리라이프 2008. 4. 26. 20:02
연구 1 신랄한 책망(학1장)
연구 1 신랄한 책망(학1장)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유대인들은 바사 고레스 대왕의 관대한 정책으로 수룹바벨의 지도 아래 5만 명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올 수 있었다(스1:2-4). 그 때에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가 함께 동행했다. 귀환 후 2년에 성전 기초가 놓여졌으나 사마리아와 바사의 압력으로 성전 재건이 정지된다. 그 후 16년 동안 정지되어 온 성전 건축을 하나님은 학개를 통하여 재건하도록 촉구하신다.

 

1. 선지자의 진지한 반성 촉구(학1:1-6)

 

본문은 하나님께서 중단했던 성전 건축을 다시 재건하도록 촉구하기 위해서 학개에게 주신 첫 번째 메시지이다. 학개의 메시지는 매우 직선적이며 신랄한 책망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학개의 메시지는 백성들의 무엇을 책망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을 책망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또한 성전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1) 백성들의 무관심과 이기심

학개 선지자가 백성들을 책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의 무관심과 이기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성전에 대한 백성들의 무관심은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아직 이르지 아니했다는 의사 표시에서 엿볼 수 있다(학1:2). 하나님은 무관심한 그들을 향하여 '내 백성'이라고 하지 아니하고 '이 백성'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회의적으로 반응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무관심을 신랄하게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러한 책망에는 충분한 목적이 있음을 본문에서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의 잘못된 생각과 잘못되었던 삶의 방식을 바로잡기 위함이다. 그들은 자기의 삶에는 분주했으나 하나님께는 무관심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성전 재건보다는 자신의 일이 더 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학1:6).

 

2) 우선순위

이러한 그들의 환경 조건이나 삶의 방식은 용납될 수 없었다(학1:5). 유대 백성들의 무관심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타당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은 다르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래서 우선적인 일과 차선적인 일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만약 우리의 일에만 분주하게 움직이고 생활한다면 하나님의 일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게 된다.

 

2. 성전건축 촉구(학1:7-11)

 

학개는 백성들이 자기의 일 때문에 무관심했던 소행을 되돌아보고 반성시키기 위해 또다시 과거를 회상케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시급한 문제인 성전을 건축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한다. 하나님은 왜 그들에게 과거를 회상케 했는가? 또한 과거 회상 속에서 자연이 제한받은 이유를 유대인들은 무엇 때문이라 했는가?

 

1) 성전건축

학개는 무관심한 유대 백성들이 확실하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충격 요법을 또다시 선포했다(학7,8장). 이와 같은 충격 요법의 목적은 유대인들의 이기심을 깨뜨리고 성전을 건축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인간 생업의 주관자이시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접하기 전까지는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큰 결실을 가져오지 못한 것이 그들의 이기심 때문임을 지적하였다. 그것은 그들의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만이 물질적·영적으로 누리는 축복의 유일한 참길임의 가르침이었다.

 

2) 축복의 참길(순종)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땅을 사는 날 동안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 권리가 잇다. 이 축복은 성도의 노력 여하에 좌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얼마나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았는가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성도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만이 물질적·영적으로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3. 백성들의 행동화(학1:12-15)

 

학개의 메시지는 호소력이 강하여서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여호와께서 간섭하시며 역사하셨다. 그들의 움직임은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러면 지도자들이 순종하게 될 근본적인 동기는 무엇인가? 또한 그들이 순종하고자 했을 때에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셨는가? 그리고 지도자들이 솔선 수범으로 얻게 된 약속은 무엇이며, '남은 바 모든 백성'이라는 말의 참된 신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1) 임마누엘의 약속

유다의 지도자였던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은 학개의 신랄한 책망에 무관심하지 아니했다. 학개의 책망은 잠자고 있던 그들의 영혼을 일깨우는 동기가 되었다. 학개의 책망은 그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순종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순종은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함께하겠다"(학1:13)는 새로운 약속을 받는다. 또한 그들의 솔선 수범으로 순종하고자 할 때에 하나님은 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성전을 재건하도록 만드셨다(학1:14). 지도자들의 솔선 수범을 보고 참여한 남은 모든 백성들은 포로에서 귀환한 유대인 공동체이다. 이들은 이사야가 예언했던 자들이며 (사6:11-13), 회개하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순종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가리켜 '남은 자'라고 하기도 한다. 여기서 남은 자란 예수그리스도에게 속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과거를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하면서 실천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남은 자들은 신약의 성도들을 예표한다고 볼 수 있다.

 

2) 지도자들의 생활모범

학개의 책망을 듣고 행동화하는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큰 교훈은 회개와 겸손, 곧 생활 모범이였다. 오늘날은 지도하려는 사람들은 많지만 지도자다운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적다. 또한 높임을 받으려는 사람은 많지만 솔선 수범하여 생활에 모범을 보이려는 사람은 적다. 목회자들의 문제가 여기에 있다.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자기들의 이권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위한 참다운 지도자가 되기를 기도한다.

 

학개의 메시지는 신랄한 책망과 격려였다. 특히 하나님의 충격 요법인 과거 회상은 무지했던 백성들과 지도자들을 일깨웠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항상 "무엇이 하나님을 위한 것일까? 행동의 우선권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자각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분주한 삶 속에서 본문 말씀이 주는 현대적 의미를 깨닫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