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사도행전

연구 1 교회의 탄생과 성장(행1-12장) 해설

은바리라이프 2008. 4. 25. 18:22
연구 1 교회의 탄생과 성장(행1-12장)

1. 스데반

 

구제 사업을 관리할 일곱 집사 가운데 하나로 뽑힐 만큼 성도들로부터 신망을 얻은 사람이었으며,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무리들 앞에서도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용기있고 담대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죽음의 순간에도 원수들을 위해 기도한 것으로 보아 그리스도의 충만한 사랑을 소유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1) 시대적 배경

A.D.30년경에 주로 활동하였으며, 이 시기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하심이 수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때로서 오순절 사건과 함께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도들에 의해 폭발적으로 전파되던, 한마디로 온 예루살렘이 떠들썩하던 때였다. 이때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전파하는 사도들에 의해 심각한 위험과 도전을 느끼게 되었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사회 속에서 가진 정치적 기독권을 잃지 않기 위하여 기독교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핍박을 가했는데, 스데반이 그 첫 번째 희생물이었다.

2) 교훈

스데반은 평신도의 자리에서도 사도 못지않은 복음의 사자로까지 위치가 격상된 사람이었다. 신앙의 연륜이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참된 믿음 생활과 열심히 교회 내에서 중요한 지도자로 떠올랐으며 설교까지 하는 역할까지 감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연륜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나 자신의 삶을 믿음 생활과 성령의 인도하에 내어 놓느냐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

 

2. 성령세례

 

이 말은 성령에 의한 세례라는 동시에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는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성령과 세례를 결부시켜서 특수한 현상을 실명한 구절은 사도행전에 6번, 마가복음에 1번 등장한다.

1) 성령의 은사

은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cavrisma(카리스마)인데 하나님이 부여하신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선물(gift)의 뜻이다. 은사에는 단수(gift)와 복수(gifts)의 차이가 있는데, 단수의 뜻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은사를 말하고 일반 대중적, 포괄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복수의 경우는 개개인에게 특별히 주어진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이 은사의 절대적 주체는 성령이시다. 오순절파에서는 신자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을 때, 그는 성령의 은사를 받을 자격이 있게 되며, 성령 세례와 동시에 때로는 그 이후에 성령의 특별한 은사를 받을 자격이 있게 된다고 말한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성령의 은사 특히 고린도전서12-14장까지 언급된 성령의 은사들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강조점을 둔다. 그러나 보다 더 미묘하고 지적인 은사들, 즉 지식과 말씀의 은사 등은 강조가 덜되고 있다.

2) 성령의 열매

성령을 받은 사람 속에서 성장하여 그의 삶 가운데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덕목을 말한다. 바울은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갈5:22,23) 등 아홉 가지를 들고 있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의 은사와는 다른데, 성령의 은사는 덕행으로 이끄는 원리들이고 성령의 열매는 오히려 덕행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3. 안디옥

 

안디옥은 성경의 본문에 나타나는 것처럼 최초로 이방인들이 중심이 되어 교회를 세운 곳이다. 그리고 이 교회는 무엇보다도 이방인의 사도 바울을 세계 선교사로 파송한 교회로서 이방인 전도 사역의 전초 기지가 된 중요한 교회였다.

1) 지리적 배경

안디옥은 시리아 북서쪽, 지중해로부터 약 19Km 떨어진 도시로서 오늘날 터어키의 안타키아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 도시는 오론테스(Orontest) 강의 하구에 위치해 있고, 근처에 실파우스 산이 위치해 자연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안디옥의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일찍부터 지중해와 시리아 그리고 근동 국가들의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하였다.

2) 역사적 배경

안디옥은 B.C.300년에 알렉산더대왕 사후, 스스로 왕이 된 셀류커스 1세(Seleucus B.C.322-282)에 의해 시리아지역의 중심 성읍으로 건립되었다. B.C.63년경에는 시리아 왕국이 로마에 의해 멸망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안디옥은 정치, 경제, 문화, 종교적으로 발전한 부유한 도시로서 계속해서 명맥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이는 안디옥이 동지중해 지방을 군사적, 상업적으로 장악하려던 로마의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듯 부유하고 주요한 도시였던 안디옥은 A.D.6세기경의 대지진과 페르시아의 공격으로 점차 쇠퇴해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