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그 빛바랜 땅 (7·끝)] 바벨론에 잡혀간 유다 포로들
[이라크―그 빛바랜 땅 (7·끝)] 바벨론에 잡혀간 유다 포로들
BC 1050년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나라를 세웠다.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낸 후 1000년에 걸친 프로젝트가 성취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가나안의 신을 섬기다가 BC 931년에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북의 이스라엘은 BC 722년 앗수르(아시리아)에 멸망당했고 남의 유다는 BC 605년과 597년 두 차례에 걸쳐 바벨론의 침입을 당한 끝에 BC 586년 완전히 멸망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무력의 전쟁에서는 이겼으나 문화전쟁에서는 패배하고 말았던 것이다. 유다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미 그 일을 예고했다.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70년동안 바벨론을 섬기리라”(렘 25:11)
바벨론에 잡혀간 포로들은 바벨론 성벽의 증설과 공중정원 건설,그리고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을 연결하는 운하 공사 등에 동원되어 강제 노역에 시달리며 해가 지면 강변에서 목을 놓아 울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 137:1)
하나님도 그들의 고난에 함께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셨는지 70년의 기한을 단축해주셨다. 유다의 포로가 처음 잡혀갔던 BC 605년으로부터 67년째 되는 BC 539년 바벨론을 점령한 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바로 그 해에 유다 포로들을 석방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한다. 요세푸스는 그의 ‘유대고대사’에서 고레스가 이사야의 예언을 읽고 감동했다고 기록해 놓았다. 이사야는 장차 고레스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유다 백성을 본토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예언해 놓았던 것이다. 아마도 당시까지 생존해 있던 다니엘이 그 예언에 관해서 들려주었을 것이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사 44:28)
비평적인 학자들은 이 예언이 고레스라는 이름을 너무 정확히 썼다고 하여 후대의 기록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고레스의 본래 이름은 다리우스였고(단 5:30) 그는 이사야의 글을 읽고 감동을 받아 자신의 왕호를 고레스 2세로 했던 것이다. 고레스 1세는 그의 조부였고 안샨의 왕이었다. 어쨌든 고레스의 칙령으로 고국으로 돌아가는 유다 백성들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시 126:1∼2)
그들이 잡혀갈 때에는 다메섹과 하맛을 거쳐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돌아올 때에는 사막을 가로질러 곧바로 달려왔다. 필자가 이라크에 들어갈 때에는 공항이 폐쇄되어 있으므로 암만에서 국경을 넘어 바드다드까지 1000㎞를 자동차로 달려야 했다. 그것이 바로 유다의 포로들이 돌아오던 길인데 그야말로 사막과 광야의 길이었다. 이사야는 이미 160년 전에 그것을 예언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사 40:3)
오늘날의 인류도 바벨론같은 인본주의 세상에서 시달리며 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위해 그 분께로 돌아올 해방과 자유의 큰 길을 예비해 주셨던 것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김성일 <한세대 교수·소설가>
<국민일보>
BC 1050년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나라를 세웠다.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낸 후 1000년에 걸친 프로젝트가 성취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가나안의 신을 섬기다가 BC 931년에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북의 이스라엘은 BC 722년 앗수르(아시리아)에 멸망당했고 남의 유다는 BC 605년과 597년 두 차례에 걸쳐 바벨론의 침입을 당한 끝에 BC 586년 완전히 멸망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무력의 전쟁에서는 이겼으나 문화전쟁에서는 패배하고 말았던 것이다. 유다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미 그 일을 예고했다.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70년동안 바벨론을 섬기리라”(렘 25:11)
바벨론에 잡혀간 포로들은 바벨론 성벽의 증설과 공중정원 건설,그리고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을 연결하는 운하 공사 등에 동원되어 강제 노역에 시달리며 해가 지면 강변에서 목을 놓아 울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 137:1)
하나님도 그들의 고난에 함께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셨는지 70년의 기한을 단축해주셨다. 유다의 포로가 처음 잡혀갔던 BC 605년으로부터 67년째 되는 BC 539년 바벨론을 점령한 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바로 그 해에 유다 포로들을 석방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한다. 요세푸스는 그의 ‘유대고대사’에서 고레스가 이사야의 예언을 읽고 감동했다고 기록해 놓았다. 이사야는 장차 고레스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유다 백성을 본토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예언해 놓았던 것이다. 아마도 당시까지 생존해 있던 다니엘이 그 예언에 관해서 들려주었을 것이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사 44:28)
비평적인 학자들은 이 예언이 고레스라는 이름을 너무 정확히 썼다고 하여 후대의 기록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고레스의 본래 이름은 다리우스였고(단 5:30) 그는 이사야의 글을 읽고 감동을 받아 자신의 왕호를 고레스 2세로 했던 것이다. 고레스 1세는 그의 조부였고 안샨의 왕이었다. 어쨌든 고레스의 칙령으로 고국으로 돌아가는 유다 백성들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시 126:1∼2)
그들이 잡혀갈 때에는 다메섹과 하맛을 거쳐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돌아올 때에는 사막을 가로질러 곧바로 달려왔다. 필자가 이라크에 들어갈 때에는 공항이 폐쇄되어 있으므로 암만에서 국경을 넘어 바드다드까지 1000㎞를 자동차로 달려야 했다. 그것이 바로 유다의 포로들이 돌아오던 길인데 그야말로 사막과 광야의 길이었다. 이사야는 이미 160년 전에 그것을 예언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사 40:3)
오늘날의 인류도 바벨론같은 인본주의 세상에서 시달리며 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위해 그 분께로 돌아올 해방과 자유의 큰 길을 예비해 주셨던 것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김성일 <한세대 교수·소설가>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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