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성경배경사

<언어 분화의 근원, 바벨탑>

은바리라이프 2008. 4. 23. 20:08
<언어 분화의 근원, 바벨탑>

  신을 경배하는 지구라트

기원전 3세기 바빌론의 신관이자 역사가 베로수스는 인간들이 원래는 한 민족이었으나 다음과 같은 사건 때문에 언어가 달라지고 다른 민족으로 나누어졌다고 기록했다. "최초의 사람들은 자신의 힘을 너무 믿어 신을 경멸하고 자신이 신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오늘날 바빌론이 있는 곳에 높은 탑을 쌓았다. 이 탑이 하늘에 닿으려 할 때 갑자기 신이 있는 곳에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해 탑을 무너뜨렸다. 탑의 폐허는 바벨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사람들은 이때까지 같은 언어를 사용했는데, 신은 이들로 하여금 다른 언어로 말을 하게 만들었다."

성경의 창세기에는 이와 비슷한 얘기가 등장한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도 바벨탑의 규모에 대해 언급했다. 과연 바벨탑은 실재로 존재했을까.

바벨탑처럼 각 시대의 예술가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불러 일으킨 것은 드물다. 신들이 인간의 도전에 대한 대비책으로 인간의 언어를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건설중인 탑을 파괴한다는 전설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였기 때문이다.

우선 예술가들은 바벨탑의 규모가 도대체 얼마나 되길래 신들조차 두려워했는지 알고 싶어했다. 하늘까지 오르려면 어떤 구조로 건설해야 하는지는 더욱 궁금한 일이었다. 중세시대의 삽화를 보면 상상력으로 그린 바벨탑이 여러가지로 등장한다.

그러나 바벨탑은 상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실재로 존재하는 탑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지구라트라는 건축물이 존재한다. 바벨탑은 바빌론에 지어진 지구라트의 하나일 뿐이다.

메소포타미아의 풍요로운 도시국가들은 기원전 3000-500년 사이 자신들이 숭배하는 신을 모시는 수백개의 지구라트를 만들었다. 바빌론, 우르크, 우르와 같은 주요 도시들은 도시 중앙에 거대한 지구라트를 갖추고 있었다. 현재 유적이 확인된 것만 해도 30곳 이상이다. 지구라트는 위로 올라갈수록 규모가 작아지는 단으로 된 피라미드 형태의 탑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지구라트는 우르에서 발견됐다. 이 지구라트는 기원전 1천2백년 경에 건설됐다. 5단으로 만들어졌으며 높이는 50m다. 꼭대기에 있는 신전은 신관만이 출입할 수 있고, 일반인은 1단까지만 접근이 허용된다. 이 지구라트에서 올려지던 특수 의식에 대한 전설은 지구라트가 종교적인 용도로 사용됐음을 말해준다.

수많은 지원자 중에서 엄선된 한쌍의 남녀는 지구라트 위의 신전 앞에서 엄숙하게 결혼식을 올린다. 식이 끝나면 부부와 수행원, 그리고 가족들은 신전 안으로 들어간다.

이곳에는 두개의 관이 있는데, 이곳에서 신랑과 신부는 성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그들이 관속에 뉘어지면 수행원들도 독약을 마시고 부부를 따라간다. 곧 가축들을 죽여 제물로 바친 후 무거운 돌문을 닫는 것으로 의식은 끝난다. 이들의 성스러운 죽음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신들의 은총이 내려져 풍요와 영원한 삶이 보장된다.

 알렉산더 대왕이 포기한 사업

그러나 모든 지구라트에서 인간을 제물로 희생시킨 것은 아니다. 지구라트는 신들이 내려와 축복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든 건물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홍수에 휘말리고 작열하는 태양의 불볕에 시달리는 세계에서 인간이 신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쉽게 이해가 간다. 지구라트를 만든 동기가 신의 강림을 바라는 인간의 욕망이었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여기서 유명한 바벨탑이라 불리는 지구라트를 생각해보자. '바벨'은 '신의 문'이라는 뜻으로, 유태인들이 붙인 이름이다.

바벨탑을 처음 발굴한 사람은 독일의 콜데바이다. 그는 1913년 바빌론을 발굴하던 중 도시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탑 유적의 토대에서 기원전 229년에 새겨진 점토판을 발견했다. 점토판에 따르면 탑은 7층이고 그 위에 사당이 설치돼 있었다. 몇가지 자료를 종합해 조사한 결과 바벨탑을 세우는데 모두 8천5백만개의 벽돌을 사용했으며, 건물의 규모는 가로와 세로, 그리고 높이가 약 90m에 달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렇듯 바벨탑의 규모는 다른 지구라트보다 훨씬 크다. 이런 거대한 규모를 갖게 된 것은 바빌론이 다른 도시들을 압도할 정도로 정치·경제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당시 바빌론의 외곽 둘레의 길이는 16km에 이르렀고, 폭 27m에 달하는 도시의 내벽을 따라 경계탑들이 서있었다. 도시 한편으로는 유프라테스강이 흘러 천연의 방어선을 이루었다. 도시 안에 화려한 궁전이 수없이 지어졌고, 한때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공중정원도 성 안에 있었다.

바벨탑은 기원전 479년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철저히 파괴됐다. 알렉산더 대왕이 바빌론을 점령했을 때 폐허가 된 바벨탑을 재건하려 했지만, 너무나 거창한 사업이었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1만여명의 인원이 2개월 간 투입된 후의 일이었다.

한편 건설 중이던 바벨탑 위로 혜성이 떨어져 수많은 사람들이 살상당했다는 대담한 가설을 세우는 사람도 있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전세계의 수많은 언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단 하나의 혜성 충돌로 설명하는 것은 외계인이 지구라트를 건설했다는 주장만큼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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