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잃어버렸던 반쪽들을 찾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곧 반쪽을 찾아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반쪽을 합하여 하나를 이루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세상에 임하실 때『....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 10:7) 하셨습니다.
성경에『....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라고 기록 된 대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은 바로 자기와 하나 되신 그리스도가 또한 사람들과 하나 되기를 원하셔서 하나 되는데 거침이 되는 육, 곧 죄의 몸을 제거(십자가)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세상에 보내셨고, 또한 육신의 죄를 정하여 십자가에서 잃었던 반쪽들과 함께 죽게 한 것입니다.
이 비밀의 뜻은 이미 창세전에 하늘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은 바로 주께서 친히 말씀하신바『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5) 하셨고 또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2) 함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하나인 것은『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요 5:26) 또 누가 증거 하기를『....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전 11:3)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곧 하나입니다. 이 일이 이미 창세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람의 육체를 둘로 나누면 머리와 몸으로 가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부부를 둘로 나누면 남자와 여자로 나눕니다. 이는 세상에서 보는 참 것의 그림자입니다. 이런 일들이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기에 아무 사람도 핑계 할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증거 하셨고 또 이와 같이『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1-32) 고 진리의 영께서 사도로 증거 하시고 계십니다.
둘이 한 몸을 이루려면 간단합니다. 각각 자기의 반쪽을 버리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하나임을 보이신 것은 머리이신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자기의 몸으로, 또한 그리스도는 자기의 머리(자기의 뜻)를 버리고 오직 아버지의 원대로 하나님의 몸으로서 일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입니다. 몸은 바로 머리가 원하면 죽기까지 복종합니다. 기록되기를『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함과 같은 것입니다.
이 뜻을 좇아 이제 그리스도도 우리와 하나 되는 일을 다 이루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복종케 하실 때 까지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이제 하나 되게 하시는 일은 또 다른 보혜사 곧 진리의 영께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록되기를『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하셨습니다.
이를 이루시는 비밀은 바로 “반 세겔”의 증거입니다. 기록되기를『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딤전 2:6) 고 증거 된 이 “속전”이 바로 하나를 이루기 위한 소원의 반쪽 곧 반 세겔입니다.
이에 대하여 경에 기록되기를『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따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온역이 없게 하려 함이라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에 세겔대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 곧 이십세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너희의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의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속하리라』(출 30:12-16) 함과 같이 “속전”은 바로 “반 세겔” 곧 반쪽입니다.
그리스도의 이 “속전” 곧 반 세겔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주신 것은 이제 그와 합하는 “속전” 곧 반 세겔을 찾아 한 세겔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심입니다.
이에 대하여『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마 17:24-27)라는 기록으로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육으로는 아무리 주의 품에 기대어 누워도 또한 주와 입맛추어도 하나 될 수 없습니다. 그가 육체로 오신 것은 결코 육 그대로는 하나일 수 없는 죄의 몸을 제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의 몸을 멸하는 십자가의 죽음이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는 육으로가 아닙니다. 오직 영으로 입니다. 그러므로『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7)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하셨습니다. 이 길이 곧 그와 하나 되는 길입니다.
증거 되기를『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 6:5)함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둘이 한 몸”을 이루는 큰 비밀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와 한 몸을 이루기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셨고 그와 한 몸을 이룰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 머리를 버립니다. 그리하여 둘이 합하여 한 몸을 이룹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와 교회, 곧 남자(그리스도)와 여자(교회)가 둘이 하나 되는 하나님의 큰 비밀입니다.
기록되기를『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증거 된 대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둘이 한 몸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곧 그는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내 머리를 함께 버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에는 두 몸이 아니요 한 영(영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 이제 그리스도는 나의 머리시요 나는 그리스도의 몸이 된 것입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사 52:7)아멘.
그러므로 이제부터의 나는 오직 살아도 그리스도로, 죽어도 그리스도로 입니다. 주님! 이에 대하여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아직은 육신에 빚져있으므로 그저 감사 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음을 주님도 육체에 계셨었기에 아실 것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아도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이삭을 드린 아브라함에게 자기를 가리켜 맹세 하신 대로 그의 씨 곧 그리스도 예수를 나게 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구속 곧 죄 사함의 복을 다 얻게 하셨습니다.
기록되기를『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16-8) 함과 같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고 약속 받은 이삭을 잡아 바치라는 명령을 준행함으로 그 믿음이 온전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얼마나 보배로운 믿음인지 보게 됩니다. 기록되기를『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7-19) 고 증거 된 바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하여『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약 2:22) 증거하신대로 온전한 믿음은 그 믿음의 실상이 반드시 빛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많은 사람이 복음을 복종치 않습니다. 기록되기를『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8-9) 함과 같은 것입니다. 복음은 듣고 믿노라 하는데 그치는 허상이 아니고 믿고 복종하는 실상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 고 미리 말씀하셨고 또한『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벧후 1:10) 권면하신 대로 복음만 중히 여기고 복종을 경히 여기면 반드시 실족하게 될 것입니다. 부르심은 속죄하신 그 사랑의 음성이고, 택하심은 그 아들의 형상 곧 그 사랑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은 다 함께『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고 간증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 6:17-18) 하신 대로 약속을 믿음으로 실상의 믿음에 이른 자기 자녀들에게『....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딤후 2:19) 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히 6:7-8) 하셨고 또다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택하심을 받은 우리는 다함께『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9) 고 간증합니다. 이 간증을 우리에게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또한 우리를 사랑하신는 이로 말미암아.... 아멘,
죄 사함과 죄 없이함
죄 사함과 죄 없이함은 다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죄 사함을 “구속”이라 하고 죄 없이함을 “구원”이라고 분별하고 있습니다. 구속 곧 죄 사함은 온 세상이 다 받은 휘장 밖의 떡이요 구원 곧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는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는 자들이 받는 휘장 안의 만나입니다.
구속은 예수만 죽은 것을 믿은 복음이고 구원은 예수와 함께 나도 죽은 것을 믿는 영원한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육체로 오신 예수는 구속 곧 죄 사함을 이루셨고 이제 다시 영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그리스도는 구원 곧 죄 없이함을 이루시려고 내게 사시는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령이 바울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시기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셨습니다. 위의 말씀에 “믿음으로 믿음에” 라 함은 죄 사함의 믿음으로 죄 없이함의 믿음에 이르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곧 일만 달란트의 사랑으로 일백 데나리온의 사랑에 이른다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받은 사랑만 있고 주는 사랑이 없는 자는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결국 버린 자입니다. 그러므로 기록되기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주께서 친히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말씀하심 같이 천국은 죄 사함 받은 자들 가운데서 죄 없이함을 받을 자를 가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아들 예수의 피로 죄 사함을 주셔 모든 사람을 사망에서 부활하게 하시나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그리스도가 있는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나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있는 자는 그리스도가 있는 자요 사랑이 없는 자는 그리스도가 없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아버지 또한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원 얻은 것은 곧 그리스도를 얻은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얻은 사람 안에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리스도가 계시면 그리스도가 나타나십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아니면 구원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심같이 그 아들의 형상이 아니면 그리스도와 형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형제가 아니면 죄 사함은 받았어도 죄 없이함은 받을 수 없습니다. 죄 없이함은 죄의 몸이 멸해야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은 예수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모든 죄이고 죄 없이함은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게 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죽음만 있고 자기 죽음이 없는 사람은 복음은 받았어도 복음을 복종치 않는 사람입니다. 이를 성경은 “불순종의 아들들” 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구속만 있고 구원이 없는 사람들에게 둘째 사망의 형벌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있습니다. 이는 함께 고난을 받으면 함께 영광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은혜로 죽음을 맛보셨기 때문입니다. 기록되기를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함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과 죄 없이함은 다릅니다. 이는 일만 달란트와 일백 데나리온이 다른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이 낳은 아들은 또한 사랑입니다. 사랑이 아니면 사랑의 아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일만 달란트는 그 아버지의 사랑이요 일백 데나리온은 그 아들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과 죄 없이함은 다릅니다. 죄 사하신 주님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구원에 이르게 하기위하여 오시는 것입니다. 기록되기를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라 하셨고 또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죄를 없이하는 일은 죄를 범하는 죄의 몸을 멸해야 다시는 죄를 범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죽은 것만 좋아하고 자기 죽음은 싫어하는 자들이 영원한 형벌 곧 둘째 사망의 해를 받을 것입니다. 이는 기록되기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속은 예수만 죽은 복음이고 구원은 예수와 함께 나도 죽어 죄의 몸이 멸하여 죄 없이하는 영원한 복음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구원받은 생명은 새 생명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두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는 어두움에 속한 불순종의 생명이요 다른 하나는 빛에 속한 순종의 생명입니다. 성경은 불순종의 생명을 옛 생명이라 하고 순종의 생명을 새 생명이라 합니다.
불순종의 옛 생명으로 나온 사람은 첫 아담이고 순종의 새 생명으로 나온 사람은 마지막 아담 곧 다윗의 혈통으로 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고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이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낳으신 저주와 복의 대상인 두 아들입니다.
이 두 아들의 생명은 다릅니다. 또한 이 두 아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도 다릅니다. 성경은 이를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과 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옛 생명위에는 영원한 저주가 있고 새 생명위에는 영원한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신이시며 조물주이시기 때문에 그의 품성은 곧 “저주”와 “복”입니다. 저주와 복이 공평하시기에 공의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심을 받으십니다.
선지자로 말씀하시기를『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 45:7)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옛 생명을 주관하게 하신 사단에 대하여『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창 3:1) 고 증거 되었습니다. 이 뱀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옛 뱀”입니다. 기록되기를『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계 12:9)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그의 지으신 만물이 그의 종이므로 성경에는 악한 종과 선한 종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삼상 16:14) 고 기록되었고 또한『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신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삿 9:23)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저주 가운데서 역사 하게 하신 영이 있고 또한 복 가운데서 역사하게 하신 영이 있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 어두움과 빛의 두 가지 역사는 오직 한분이신 참 하나님께서 다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욥 1:6) 라고 기록되었고 또『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슥 3:1)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 생명은 참 빛의 생명이므로 영복을 받을 생명입니다. 이 생명이 바로 구원의 생명입니다. 이 생명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말씀하시기를『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8-9)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 함과 같습니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육신대로 살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들
육신대로 살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에 이제는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음으로 육신대로 살 수 없습니다. 이는 아래서 난 옛 생명을 벗어 버리고 위에서 다시 난 새 생명으로 새 생명 가운데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되어 이제는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들이며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않고 보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부활의 자녀로써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믿음으로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아래서 난 옛 사람을 그리스도와 함께 벗어버리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피조물이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위에서 다시 낳으신 하나님의 자녀들이기에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육신대로 살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에서는 나그네의 삶을 살아갑니다. 이전에 있었던 구습 곧 어두움의 일을 모두 벗어버립니다. 그러므로 겉 사람은 날로 후패해지고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참 것의 그림자로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이 세상의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기록되기를『하나님이여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 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시 17:14) 함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휘장(육체)을 찢으시고 앞서 들어가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요 17:16)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육신대로 살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는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나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습니다.
기록되기를『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하셨습니다.
아들을 죄 있는 사람의 모양으로 멸망 받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과 죄인을 함께 멸하시는 중에 그 아들 안에서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신 자기 백성 곧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하셨고 또 다시『....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딤후 2:19)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육신대로 살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는 땅에서 난 옛 사람은 사람이신 예수와 함께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는 사람으로 세상에 계시지 않으시고 영으로 계십니다. 그러므로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령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권면하시기를『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고전 7:29-31)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능히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이 육체와 함께 그 정(음욕)과 욕심(물욕)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며 이는 또한 기록된 대로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에게는 반드시 자기 안에 증거가 있습니다. 이것이 없으면 그 믿음은 헛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다시 사시는 믿음이 참 믿음입니다. 기록되기를『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 15:17) 라 하셨고 또한『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함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대로 살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르는 자들이며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는 자들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2-14) 아멘, 아멘.
구원에 이르는 길
길은 알아야 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앞서가신 길이 곧 구원의 길입니다. 이 길은 먼저 죽고 다시 사는 과정을 거쳐야 통과 할 수 있는 길입니다. 예수와 함께 옛 사람은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사람이 다시 살아야 이 길의 마지막인 아버지의 집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옛 사람 곧 혈과 육 그대로는 결코 아버지의 집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길 되신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구원에 이르는 길을 찾는 자기 백성들에게 불순종의 옛 사람을 제거하기 위하여 그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세상에 보내셨고 또한 육신의 죄를 정하셔서 다윗의 혈통인 사람으로 나게 하셨습니다.
인자(人子)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불순종의 본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혈통에서 나신 예수 곧 인자(人子)도 불순종의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이 있으므로 기록되기를『....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라고 자기를 부인하시고 십자가에서 불순종의 다윗의 혈통인 자기를 못 박아 죽이셨습니다. 이는 곧『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요 10:17)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3-4)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처리되지 않고 그대로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50)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 받지 못할 인자(人子)를 처리하는 것이 곧 옛 사람을 벗어 버리는 십자가 입니다. 이는 인자(人子)이신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믿음이 실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길이 바로 인자(人子)를 버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 했습니다. 이를 이루시고 앞서가신 사도께서 증거 하시기를『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 하셨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그 길이기에 이 길을 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 결코 이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록되기를『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라고 증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3장 16절과 요한복음 17장 3절이 하나가 될 때 구원의 길을 통과하여 아버지의 집에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영원히 거할 수 있습니다.
이 구원의 길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에게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보내신 성령 곧 진리의 영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는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하셨고 또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살후 3:2)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 6:5)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보다 더 나은 본향이 있는 자들만 나온바 본향을 버립니다. 또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새 생명을 아는 자들만 옛 생명을 버립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말씀하시기를『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하셨습니다.
이 길을 앞서 통과하신 영적인 몸의 간증을 들어 봅시다.『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아멘.
그러므로 구원에 이르는 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 예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주 예수를 믿어 거룩케 되지 못한다면 이는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입니다. 주 예수는 곧 말씀이 육신이 되신 새 언약의 중보이시기에 반드시 주 예수는 은혜의 말씀 곧 복음이시고 반드시 주 예수를 믿은 자들에게는 그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십니다. 기록되기를『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히 2:11-12) 하셨습니다.
증거의 말씀에『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 하심과 같고 또한 주 예수께서 사도에게 말씀하신 바『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행 26:18) 하심과 같이 반드시 주 예수를 믿으면 거룩케 됩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는 거룩함에 이르게 하시는 첫 열매이시므로 주 예수를 믿음으로 이 열매를 받은 사람들은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거룩한 자 뿐입니다. 증거 되기를『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 함과 같은 것입니다.
더욱 밝히 말씀하시기를『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하셨고 또한『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계 21:27) 하셨습니다.
거룩하지 못하다 하는 것은 곧 옛 죄 깨끗케 하심을 잊은 것입니다. 온전한 번제를 주의 단에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죄의 구속은 받았으나 몸의 구속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몸의 구속이 바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입니다. 이 고난은 그의 몸 된 교회 곧 거룩케 된 무리를 위하여 그리스도인에게는 반드시 있어야 할 그의 고난에 동참하는 과정입니다.
종살이 430년이 끝났다고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70년의 포로에서 놓여야 생수가 흐르는 하나님의 성전을 볼 수 있습니다. 430년은 죄의 문제이고 70년은 몸의 문제입니다. 430년의 죄의 법에서는 해방되었어도 70년의 몸의 사욕인 육성의 포로에서 놓이지 못하면 몸이 하나님의 전이 될 수 없습니다
70년의 몸의 포로에서 놓여 몸이 하나님의 전이 되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 7:38) 하심같이 될 것이며 이 거룩한 강가에서 모든 생물이 소생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430년의 출애굽의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고 70년의 시온의 포로를 돌리시는 기쁨까지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기쁨은 죄인들의 기쁨이고 시온의 포로가 돌아오는 기쁨은 성도들의 기쁨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으로 믿음에라 하셨고 또한 은혜위에 은혜라 하셨습니다.
70년의 몸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시온의 노래를 들어봅시다.『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입을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니라 너는 티끌을 떨어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 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사 52:1-3) 아멘, 아멘.
그러므로 시온의 포로 곧 몸의 70년이 마치지 아니하면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깨끗해질 수 없습니다. 기록되기를『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단 9:2) 증거된 예언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를 믿어 거룩케 되지 않으면 이는 진리의 복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썩지 아니할 씨이며 또한 반드시 거룩함에 이르게 하시는 첫 열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께서 충성된 그의 사도에게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 사함과 주 예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가 바로 주 예수의 몸 된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냥 교회가 아닙니다. 주 예수의 몸이 되어야 영광스런 교회입니다. 이는 머리가 거룩하니 몸 또한 거룩한 것입니다. 이 예루살렘은 세상에 속한 육 있는 교회가 아니요 하늘에 속한 영적인 교회 곧 새 예루살렘입니다. 거기에는 다시 가나안 사람(장사꾼)이 없습니다. 거기 더러운 것 없으니 거룩한 자 뿐이고 거기 악한 짐승 없으니 두려울 것 없습니다.
그러므로『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3) “거기서....”가 “여기서....”로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죄냐? 죄의 몸이냐?
성경에『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22) 라고 기록된 말씀같이 개는 속이 불편하여 토하였다가도 그 더러운 것을 다시 먹고 돼지는 몸을 깨끗이 씻어 주어도 그대로 돼지이기에 다시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눕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속 곧 모든 죄 사함 받았다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찬송하다가 다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가 되어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며 외식만 남는 것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다시 육체로 마치기 때문입니다.
죄는 죄의 몸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죄의 몸이 멸하지 않고는 결코 죄에게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말씀이 증거하시기를『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롬 6:6-7) 하셨습니다.
개 돼지가 죽고 양으로 다시 거듭나지 아니하면 참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개 돼지는 곧 옛 사람입니다. 그런고로 옛 사람(개 돼지)을 벗고 새 사람(양)을 입지 아니하면 결코 죄에게서 해방 될 수 없습니다.
기록되기를『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하심에서 “육체와 함께 그 정”은 개이고 “육체와 함께 그 욕심”은 돼지입니다. 육체와 함께 이 개와 돼지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아니하면 옛 죄에서 결코 깨끗해 질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벧후 1:9) 함과 같은 것입니다.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게 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죄인과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증거하시기를『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롬 8:22-23) 말씀하셨습니다.
죄 사함의 복음이 온 천하에 증거되면 죄 없이함의 영원한 복음이 나라와 족속과 방언에게 다시 증거될 것입니다. 이 증거의 말씀을 싸매시고 봉함하여 두신 것은 하나님의 허락이 있을 때까지 간수하여 두신 지성소의 보화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하라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사 8:16-18) 예언하신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그에게 주신 자녀들에게만 이 일을 이루시어 구원 얻을 후사들에게 징조와 예표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속죄의 주를 하나님이 미리 아신 모든 백성이 알게 하신 후에 영원한 복음이 다시 예언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반 세겔)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딤전 2:6) 하셨고 또한『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죄의 몸)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히 9:8-10)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고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습니다. 기록기를『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히 4:9-10)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자들은『....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 5:17) 말씀하신 주님과 함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쳐서 복종시켜 겉 사람은 날로 후패하고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안식은 반드시 엿새 동안 일한 자에게만 제 칠일에 영원한 안식이 있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4:11) 하셨습니다.
죄의 몸이 멸한 후에....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사람의 아들이 죽은 곳에
사람의 아들이 죽은 곳에 하나님의 아들이 살아납니다. 내가 죽고 내가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 나 죽은 곳에 하나님의 아들이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나의 나라가 아니고 그(하나님의 아들)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예수와 다시 살리심을 받으신 예수는 다릅니다. 죽은 예수는 사람의 아들이고 다시 살리심을 받으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죽은 예수를 사람의 아들 곧 인자(人子)라 하십니다. 기록되기를『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3-4) 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증거하시기를『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2-3)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생명은 사람의 생명이고 다시 살리심을 받은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이십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 3:18) 라 말씀하셨고 또한『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영적인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적인 몸이 있느니라』(고전 15:42-44) 하셨습니다.
진리의 말씀에『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0)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생명은 사람의 생명이고 다시 살리심을 받으신 새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요 5:26)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다시 살리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새 생명이라 말씀하십니다. 이는 사람의 생명 곧 옛 생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인 우리가 예수(사람의 아들)와 함께 죽은 그 곳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아 기록된 대로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히 10:5-7)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죽은 곳에 하나님의 아들이 사십니다. 그래서 기록되기를『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1) 하셨습니다. 내가 빼지면 하나님께는 더해집니다. 이는 나는 어두움이고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이 흑암의 세상에 사람의 아들 곧 육체(어두움)를 입으신 것은 어두움을 없이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 함이셨습니다.
이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흑암의 세상에 어두움의 몸을 입혀 보내신 것입니다. 어두움이 조금도 없는 것이 참 빛입니다. 어두움을 없이하는 도가 십자가의 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 1:5) 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 “다 이루었다” 하시고 그 영혼이 아버지께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도 이 고난으로 말미암아 아들이 아들로 온전케 되신 것입니다. 기록되기를『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히 2:10) 하셨고 또다시『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히 7:28)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다 이루시고 성결의 영으로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의 맏아들이 되시고 많은 열매 중에 첫 열매가 되신 인자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되셨습니다. 기록되기를『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하셨고 또한『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 함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 나라에서 나를 잃어버리면 하나님 나라에서 그를 얻는 것입니다. 진리가 말씀하시기를『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9) 하셨습니다. 잃는 것은 나요 얻는 것은 그리스도입니다. 이 얼마나 크신 영광입니까?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이 여기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없습니다.
기록되기를『....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하셨고 또한 이에 대하여 성경은『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계 11:15)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실 이 진리를 아는 사람마다 영원히 자유케 될 것입니다.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도 그는 또다시 인자와 같은 영광의 몸의 형체로 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육의 몸이 있은즉 또한 영적인 몸이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4) 하셨고 또다시『....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 하셨습니다. 이는 새 예루살렘은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속한 지금 있는 예루살렘이 황폐되고 하늘에서 하나님께 속한 새 예루살렘이 단장됩니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아들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참 아들!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사랑한다 하는 것은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말씀하셨고 또 다시『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하심같이 새 계명을 지키는 자가 주 예수를 참으로 사랑하는 자입니다. 입으로는 주를 사랑한다 하는 자들은 수 없이 많으나 아들의 계명을 지켜 참으로 주를 사랑하는 자는 적습니다. 주 예수를 사랑하는 것은 육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은 십자가의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새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사람, 곧 하나님께로 다시 난 사람이라야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는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 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아들의 새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입니다. 거짓말 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 “사랑의 아들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자들은 그 아들의 새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들입니다. 기록된 대로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라 말씀하셨고 또한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에게는 주께서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서 자기를 나타내시기 때문에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며 또한 예수(아들)의 흔적이 있습니다.
기록되기를『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고후 2:14) 하심과 같고 또한『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 6:17)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그리스도의 향기”가 있고 또한 “예수의 흔적”이 있는 자들만의 나라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확실하게『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아들의 향기가 있고 또한 아들의 흔적이 있습니다. 이는 아들을 믿고 아들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반드시 맺어지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자들은 아들을 얻고 아들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들을 새로운 피조물이며 또한 하나님께로 난 새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새 생명이라야 새 계명을 지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 받는 생명은 곧 그리스도의 생명이며 또한 아버지의 생명입니다. 기록되기를『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요 5:26) 또한『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 3:4)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이 진리가 곧 영생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9-10) 하셨으니 참 구원을 얻은 자는 아들의 계명을 지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입니다.
사랑의 나라로 가는 길은 향방 없는 길이 아닙니다. 그 길(예수)을 알아야 가는 길입니다. r기록되기를『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하셨고 또한『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은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록되기를『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영생은 욕심으로 믿는 자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고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자들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있는 자들(하나님께로 난 자들)만이 아들의 계명을 지켜 그 아들과 함께 아버지의 사랑 안에 영원히 거할 수 있습니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구원을 얻고 자기를 버리는 사람들!
그리스도를 얻은 사람이 바로 구원을 얻은 사람입니다. 이는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얻었다 하면서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은 거짓말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구원(그리스도)을 확실히 얻은 사람은 나와 세상을 버립니다. 이는 아들의 피로 세우신 언약으로 보다 더 나은 본향을 약속 받았고 또한 보배로운 믿음으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나와 세상을 버리는 것은 그리스도를 얻은 사람들에게 주신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믿음(실상)으로 그리스도를 얻었으므로 나와 세상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얻고 앞서 가신 선진께서 증거하시기를『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 3:7-9)하십니다.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 바로 참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진리에 대하여『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2-23)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된 사람은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장사지내고 그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아 그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 받습니다. 기록되기를『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구원은 내가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 울고 웃으며 감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기록된바『....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하심과 같이 그리스도를 얻은 사람들은 반드시 나와 세상이 함께 십자가에서 처리되는 사람들입니다.
증거되기를『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하심과 같이 구원 곧 그리스도를 얻은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이 십자가에 못 박혀 여섯 시간(제 삼시부터 제 구시까지) 동안에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여섯 시간(육)이 끝날 때 “다 이루었다”하시고 그 영혼이 떠나셨습니다. 이것이 구원을 이루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기록되기를『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이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기록되기를『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눅 8:10) 하셨고,
또다시『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함이니라....』(요 12:40)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기록된바『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벧전 2:8) 하심과 같습니다.
구원 곧 그리스도를 얻은 사람들은 그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심 같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합니다. 기록된바『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요 17:16) 하심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로 미리 말씀하시기를『여호와여 금생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에게서 나를 주의 손으로 구하소서 그는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심을 입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 남은 산업을 그 어린 아이들에게 유전하는 자니이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시 17:14-15) 하셨습니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새 예루살렘을 볼 때까지
그리스도의 형상이 내게 이루어질 때까지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볼 것입니다. 복음의 시초에 예사롭지 않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갈라디아 교회의 일입니다. 이방의 빛으로 세우셨던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하나님의 뜻 곧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하여 성령으로 시작하였으나 육체로 마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회에 대하여『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 라고 증거하셨으나 그 후에 성경은 갈라디아 교회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이룬 것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온전히 이룬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그에게 주신 예표의 사람들뿐이었습니다. 기록되기를『....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히 2:13) 하신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오랜 후에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하여 예언하신 중대한 말씀입니다.
예언되기를『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하라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하나님을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보라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산에 계신 만군의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사 8:16-18) 하셨습니다.
예언된 말씀에 “증거의 말씀”은 곧 머릿돌이신 그리스도입니다. 이 그리스도이신 증거의 말씀을 왜 풀어 놓지 않으시고 싸매어 완전한 데 나아가지 못하게 하셨을까? 이에 대하여 성경은 자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록되기를『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침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히 5:12-6:3) 하신 것과 같습니다.
복음의 시초에 주님이 곧 세상에 다시 오실 것으로 알아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버리고 주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일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대표가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들과 함께 살아서 주를 뵈올 것으로 알았습니다. 기록되기를『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7)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동일한 소망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적은 무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이 아니기에 때를 더디게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증거하시기를『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8-9)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그리 쉽게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하여 기록하기를『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빌 3:10-11)라 하신 대로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지지 않고는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계획 속에『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행 16:6) 이라고 증거된 대로 성령도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던 일이 있었습니다.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단만이 하는 일인 줄 알고 있으나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비하신 비밀의 섭리를 이루려 하심입니다.
이는 먼 훗날 하나님의 성전 곧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시기 위하여 얼마동안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곧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신부는 예비되는 기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록되기를『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2) 증거된 바와 같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오래 저장한 포도주와 같아서 기약이 이르러야 증거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록되기를『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딤전 2:5-7) 하심 같이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반 세겔)으로 주신 것은 자기 짝 곧 또 다른 속전(반 세겔)을 찾아 한 세겔을 이루시려고 두번째 세상에 들어오실 것입니다.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하나 될 반쪽도 다 예비하셔서 주와 합하여 하나가 되어지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 곧 이 날에『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 22:17)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어린 양의 혼인기약이 이르지 않아 신부가 예비되지 않았으므로 이에 대하여 성경은 증거하시기를『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히 9:8-10)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어서 완전한 데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이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정하신 때가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나 아직 그의 피 곧 생명과 하나 될 신부는 거룩하게 하심과 순종으로 각처에서 예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약이 이르면 반드시 신부의 나타내심을 보이실 것입니다. 기록되기를『....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계 21:9) 함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날 곧 이 날에는 말씀과 같이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언되기를『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하나님이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교회)가 남자(그리스도)를 안으리라』(렘 31:22) 하신 대로이며 또한『너의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하나님을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사 33:6)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선지자로 미리 말씀하시기를『내가 내 거룩한 이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알게 하여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하리니 열국이 나를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볼지어다 그 일이 이르고 이루리니 내가 말한 그 날이 이 날이니라』(겔 39:7-8)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예표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이 일들을 예표로 다 이루시고 가셨으나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하나님을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는 우리는 가련하고 잡힐 양떼였습니다. 그러므로 내 몸에서 예수의 형상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야곱의 남은 자들에게 성경은 권면하시기를『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 1:19) 하셨습니다.
그러나 약속하시기를『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하나님을 진실히 의뢰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사 10:20-21) 하셨고 또 다시『야곱아 내가 정녕히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정녕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 양떼 같게 하며 초장의 양떼 같게 하리니 그들의 인수가 많으므로 소리가 크게 들릴 것이며 길을 여는 자가 그들의 앞서 올라가고 그들은 달려서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좇아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행하며 하나님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미 2:12-13)(아멘) 하셨으며 또 다시『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중에 있으리니 그들은 하나님에게로서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 야곱의 남은 자는 열국 중과 여러 백성 중에 있으리니 그들은 수풀의 짐승 중의 사자 같고 양떼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 만일 지나간즉 밟고 찢으리니 능히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라』(미 5:7-8)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잃은 양 같이 내가 유리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시 119:176) 말할 것이며 또한『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 4:18) 할 것입니다.
반드시 예언하신 그 날이 이 날이 될 것입니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
예수 죽음 안에 내 죽음이 있으면 진리이고 예수 죽음 안에 내 죽음이 없으면 불의입니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예수 죽음만 있고 내 죽음이 없는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을 좋아합니다.
나사렛 예수 죽음과 함께 반드시 내 죽음이 있어야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과 함께 내 부활이 있습니다. 바로 이 길이 구원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하셨고 또 다시 “그와 함께 죽었으면 그와 함께 살리라” 하신 말씀이 진리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 가운데 역사하는 미혹의 영은 죄의 몸이 멸하고 영적인 몸으로 이루어지는 영원한 복음을 막고 있습니다. 불법의 비밀이 아직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증거되기를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더 밝히 증거하시기를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진리를 믿어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은 우리들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 에 참으로 감사하고 영원히 찬양 드려 마땅합니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은 참으로 미쁘십니다. 이는 그 아들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셔서 주의 날에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리스도에게서 시작하시고 우리에게서 마치려 하시는 하나님!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이제 그의 몸 된 교회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처음은 아버지와 아들이 말씀하셨고 나중은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십니다. 증거되기를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지금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입니다. 혼인 잔치에 청함은 받았어도 예복 곧 그리스도로 옷 입지 않아 어두운데 쫓겨나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복종이 없는 복음은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증거하시기를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넓은 문, 편한 길로 가려 하기 때문에 옛 사람이 벗어지지 않습니다. 좁은 문, 협착한 길을 통과하려면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 옛 사람이 사람이신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처리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옛사람 곧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 받지 못합니다. 그와 함께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옛 사람을 벗어 버리는 고난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믿음의 비밀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 믿음의 비밀이 바로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복음은 “일만 달란트” 에 있지 않고 “일백 데나리온” 에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셨습니다. 참 자유는 “일만 달란트” 에 있지 않고 “일백 데나리온” 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바로 “예수의 흔적” 입니다. 예수의 흔적이 있는 자들만이 들어가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지금 세상에는 예수의 흔적이 없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는 대기자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에 대하여 주께서 미리 말씀하시기를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하심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영원한 죄 사함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모든 자들의 죄를 사하게 될 때 우리의 모든 죄도 사해지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피와 나의 피가 합해야 한 생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옛 사람의 피가 남아 있으면 결코 형제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몸(교회)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에게서 떠나야 할 것입니다. 이는 장소와 환경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생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 하셨고 또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하셨습니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어두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길!
주께서 사도로 말씀하시기를『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 하셨습니다. 만일 주의 날이 천년이 하루와 같다면? 밤이 오백 년이고 낮이 오백 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날은 어두움이 오백년이요 빛이 오백년입니다. 이 천년의 한 날이 영원하신 주의 한 날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또 다른 사도로 말씀하시기를『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 13:12) 하셨습니다.
성경에서의 이스라엘 역사는 바로 천하 만민의 역사입니다. 주 예수께서 친히『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눅 13:6) 말씀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만유의 주 하나님께서 온 천하 만민의 포도원에 이스라엘을 표본인 무화과나무로 심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바로 하나님께서 천하 만민을 어두움에서 빛으로 구원하시는 표본의 역사입니다. 기록되기를『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18)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스라엘의 어두움의 날이 오백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의 날 곧 천년의 한 날 중에 어두움의 반 날이 바로 오백년입니다. 이 어두움의 날은 바로 사백 삼십년의 애굽에서(죄에서) 종살이와 칠십년 바벨론의(몸에서) 포로 생활입니다.
사백 삼십년과 칠십년, 이 두 기간을 성경은 나누고 있습니다. 지혜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깨달아 알 것입니다. 기록되기를『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하심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바로 어두움의 오백년에 비할 것입니다. 이 어두움의 오백년에서 사백 삼십년은 머리의 고난에서, 그리고 남은 칠십년은 몸의 고난으로 다 이루시었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제 육 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 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5-46) 기록된 증거와 같이 “온 땅에 어두움”이었습니다.
이 어두움의 비밀은 머리와 몸으로 나뉘어 증거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죄의 종 사백 삼십년과 몸의 포로 칠십년으로 나뉘어 있어 이 둘을 합해야 오백년의 밤이 끝난다는 어두움의 비밀입니다.
죄의 종 사백 삼십년은 천하 만민이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을 때, 더더욱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머리되신 그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으로 어두움을 끝내셨으나 그러나 이제 남은 몸의 포로 칠십년의 고난은 그의 몸 된 교회에서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을 말씀하시려고 그의 택하신 사도를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고 가시어 “말 할 수 없는 말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바로 그 사도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하셨습니다.
완전한 구원은 죄 사함에서 몸의 구속까지 이루어져야 어두움이 다 지나가고 영원한 하나님의 안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죄 사함은 일만 달란트의 값없으신 은혜이시고 몸의 구속은 주와 함께 죽은 자들이 이제 일백 데나리온의 몸의 구속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기록되기를『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롬 8:23)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과거이며 또한 현재입니다. 구원은 얻은 것이고 또한 구원은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값없이 죄에서 놓아주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믿음으로 죄에게서 해방되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몸에 채우며 그리스도께 붙은 지체들의 모임입니다.
증거하시기를『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3) 하심과 같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영광에 동참할 자들입니다. 또한『....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 하셨습니다.
그와 함께 고난을 받은 자들에 대하여 기록되기를『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히 4:10) 하심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이 교회가 우리들에게 나타나실 것입니다. 증거하시기를『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히 6:3)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이리하여 선지자의 예언도 모두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언되기를『....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단 9:2) 하심입니다.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입을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니라』(사 52:1) 아멘.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 57:8) 아멘.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 1:19) 아멘.
그 때 곧 이 때에 어두움은 완전히 끝나고『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계 22:17) 하실 것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휘장이 아래까지 찢어지는 그날!
기록되기를『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막 15:38) 하신 이 말씀은 이미 이루어진 말씀이지만 또한 이 말씀은 아직도 이루어져야할 말씀입니다.
기록된 바『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 10:19-20) 하신 말씀도 하나님의 뜻에는 다 이루어진 말씀이지만 아직도 이 일은 이루어져 가고 있는 말씀입니다.
휘장이 몸이라면 머리만이 아니라 발끝까지 다 찢어져야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찢어져야 할 것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뜻이 기록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 안에서는 그의 뜻대로 이미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만드신 피조의 세계에서는 이루어진 것도 있고 지금 이루어지는 것도 있으며 또 앞으로 이루어질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증거하시기를『....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안식에 대하여도 기록되기를『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 2:2) 하셨고 또한『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히 4:4) 라고 증거되었어도 또 다른 증거에는『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하셨습니다.
그러나 증거되기를『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히 4:10) 하셨습니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들! 이들은 오직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만 기쁘시게 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는 이미 자기 일을 쉬심도 있으시고 또한 이제까지 일하심도 있으십니다. 기록되기를『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 4:9)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정지되어 있는 점이 아니고 새롭고 살아있는 길입니다. 이 새롭고 산 길은 이미 통과한 자도 있고 지금 통과하는 자도 있고 또한 통과할 자도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눅 13:30) 하셨습니다.
더욱 확실한 증거는『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하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입니다. 그가 죽으심으로 고난을 다 끝내시고 “다 이루었다” 하셨는데 또다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말은 또 무슨 말씀입니까?
이는 기록된 대로『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롬 6:10-11) 하심같이 “그의 몸 된 교회”도 그와 함께 또한 죽어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완전히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소에 들어가는 길의 휘장은 지금까지도 찢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복음을 순종하고 복종하여 자기의 육체를 그리스도와 함께 찢은 자들은 이미 휘장 안에 들어가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도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 주신 자, 곧 그의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도다” 하셨습니다.
봉함되었던 말씀에『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히 9:8) 하신대로 그의 육체인 휘장 곧 그의 몸 된 교회까지 찢어지면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는 곧『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6)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성소에 들어가는 길에 아직 막혀있던 휘장이 아래까지 다 찢어지는 그날이 바로 지금이면『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하신 성경이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육과 혼과 영까지 버리지 아니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육과 혼과 영이 하나로 이루어진 피조물이 곧 사람입니다. 성경은 두 사람 곧 첫 사람과 둘째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계시지만 결국에는 둘째 사람에 대한 기록입니다. 증거되기를『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첫 사람(옛 사람)은 멸하시고 둘째 사람(새 사람)을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기록된 책입니다.
이 뜻의 주인공이 바로『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히 12:2) 이십니다. 이 예수께서 둘째 사람 곧 새 사람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로 보내심을 받으셨고 결국에는 자기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히 10:7) 라고 증거하셨고 그리고 또 다시『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요 19:30)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미리 말씀하시기를『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사 53:11-12) 하셨습니다.
멸하시기 위하여 창조하신 첫 사람도 육(죄의 몸)과 혼(교만한 마음)과 영(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 있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거할 둘째 사람도 육(신령한 몸)과 혼(겸손한 마음)과 영(또 다른 보혜사 진리의 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첫 사람을 멸하는 십자가의 도는 죄의 몸만 멸하는 것이 아니고 교만한 혼과 악한 영까지 완전히 멸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시 51:19) 라고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위의 기록된 말씀에 세 부분으로 나누신 것은 의로운 제사는 육으로, 번제는 혼으로, 온전한 번제는 영으로 분류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이에 대하여 동일하게『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셀라)』(시 32:5) 하신 증거의 말씀을 보면 더욱 분명합니다.
허물. 죄. 죄의 악을 합하여 함께 처리하는 십자가의 도를 모르는 사람은 결국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7-8)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따르는 참다운 회개는 “내가 무슨 죄를 범 했습니다”가 아니라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기록된 바『....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눅 5:8)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죄를 범해서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죄인이니까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는 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며 이 십자가는 영혼까지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는 온전한 번제의 제단입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께서 자기의 영혼까지 사망에 이르게 하신 그 제단에서 그와 함께 온전한 번제를 드리지 않고는 아버지의 집으로 갈 수 없습니다. 이 길은 새롭고 산길이기에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으로 새로 지음 받은 둘째 사람이라야 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새 몸, 새 혼, 새 영이 합해서 새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기록되기를『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 3:9-10) 하셨습니다. “지식에 까지”.... 아멘.
새 하늘과 새 땅은 새 사람을 위하여 예비하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기록되기를『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하셨고 또다시『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3) 하셨으며『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영혼까지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신 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온전한 번제로 옛 사람이 죽은 믿음의 실상이 없이는 우리 생명이신 주를 뵈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순종하므로 주와 합하여 한 영이 된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봅니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참빛 선교회 김윤구 목사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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