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1. 포도원 일꾼 비유
2. 강도 만난 자 비유
3. 때가 이르면 증거될 반세겔의 속전세
4. 말세의 현명한 종과 악한 종
5. 말세 부흥 (동방의 역사)
6. 나를 사망으로 이끄는 죄성에서 벗어나는 길
7. 본체의 형상, 영광의 광채
8. 보혈의 능력
1. 포도원 일꾼 비유
행전 16/6 그들이 프루기아와 갈라디아 지역을 통과하였을 때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 전하는 것을 금하셨으며
사도 바울이 이방 여러 나라에 복음을 전파할 때 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 전하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따라서 복음이 주로 지중해 근해 지역에 전파되었고, 로마제국 전역으로 뻗어나가 유럽에까지 전파되게 되었습니다.
이에 반해 동 아시아 지역은 가장 늦게 복음이 전파되었고, 한국에는 1895년 언더우드와 아펜셀러 선교사에 의해 전파되었습니다.
한국은 가장 늦게 복음이 전파된 곳 중 하나이지만 짧은 기간 동안에 큰 부흥을 이루어 지금은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한국에 늦게 복음을 전해 주셨고, 한국에는 마지막 때에 어떠한 사명이 있는지 궁금히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태 복음 20장의 포도원 일꾼 비유에서 이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어느정도 얻을 수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포도원을 위하여 일꾼을 구하러 나간 집주인과 같다고 하십니다.
주인이 일꾼들과 하루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정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원으로 들여 보냅니다.
이는 주인이 원래 데리고 있었던 일꾼으로 하나님이 이미 소유하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합니다.
초대교회의 복음전파자와 구성원은 대부분 유대인이었습니다.
주인은 일꾼이 부족했는지 제 육시와 제 구시에도 나가서 일꾼을 데려와 품삯을 약속하고 일을 시킵니다.
여기서 유대인의 시간개념과 우리가 갖는 시간개념이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계산법은 로마식인 한밤중인 0시를 기준으로 하지만 유대식 시간계산은 해 뜰 때인 오전 6시부터 시작합니다.
따라서 제 육시는 정오인 12시가 되고, 제 구시는 오후 3시가 됩니다.
이들은 유대인 다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여 발전시킨 유럽 사람과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기독교인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주인은 해 지기 한시간 전인 오후 5시에 해당하는 제 십일시에도 일하지 않고 서성대는 사람을 만나 '어찌하여 온 종일 서성대고 있냐'고 물어봅니다.
그들은 '아무도 우리를 고용해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하였고, 주인은 그들에게 포도원에 가라고 하며 적절한 대가를 받게 될 것을 약속합니다.
인류 역사가 다 저물어 가도록 복음을 전해 받지 못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일하지 않고 서성대었던 민족은 바로 가장 늦게 복음을 받아들인 한민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열의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동안 고용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일을 하지 못했으며, 주인의 사명을 받자마자 어느 민족 보다 포도원에서 열심히 일을 하게 됩니다.
해가 저물어 저녁이 되자 포도원 주인이 자기 관리인에게 '일꾼들을 불러서 나중에 온 사람부터 시작하여 처음에 온 사람까지 품삯을 주라'고 명합니다.
저녁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할 시간이 끝났다는 것으로 예수님의 심판과 재림이 끝으로 구원 받은 성도들에게 상을 줄 시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요한 15/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시라.
누가 10/2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참으로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들이 적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추수의 주께 간구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누가 20/13 그때 포도원 주인이 말하기를 ‘내가 어찌할까? 내가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라. 그들이 그를 보면 존중하리라.’고 하니라.
예수님은 포도원 비유를 많이 드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인류 구원사역이 포도원을 경영하는 주인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포도나무라면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가 되고, 성도가 포도원 일꾼이라면 하나님은 포도원 주인에 해당하며, 예수님이 포도원 주인의 아들이라면 하나님 아버지는 포도원 주인에 해당합니다.
마태 16/27 이제 인자가 자기 아버지의 영광으로 자기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그가 각자에게 그들의 행한대로 상 주실 것이라.
계시록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주리라.
따라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 아버지며 주인의 관리인(또는 아들)은 예수님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이 모든 일(역사)이 끝난 후 일꾼(성도)들을 불러서 그들의 일에 대한 삯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 곳곳에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줄 상이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마태 20/8~9 저녁이 되자, 포도원 주인이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기를 '일꾼들을 불러서 나중에 온 사람부터 시작하여 처음에 온 사람까지 품삯을 주라.'고 하더라. 제 십일시 경에 고용된 자들이 와서 각자 한 데나리온을 받은지라.
저녁이 되자 '포도원 주인'(하나님)이 '자기 관리인'(예수님)에게 나중에 온 사람부터 처음 온 사람까지 품삯을 주라고 하자, 제 십일시에 고용된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을 받게 됩니다.
처음에 온 자들이 나중 온 자들보다 더 받을 줄 생각했다가 같은 한 데나리온만 받자, 먼저 온 자들이 자신의 품삯이 적다고 불평합니다.
이에 주인은 내가 약속한 대로 품삯을 주었으니 불의한 것이 아니며, 내 것으로 내 뜻대로 행할 주권이 있다고 합니다.
마태 20/16 그러므로 나중 된 자들이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들이 나중 되리라. 이는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많으나,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적기 때문이라.”고 하시더라.
히브리서 10/9 그때에 말씀하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소서, 주의 뜻을 행하려고 내가 왔나이다." 하셨으니 첫 번째 것을 폐하심은 두 번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리고 주인은 나중 된 자들이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들이 나중된다고 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이는 영적 원리인데 하나님은 항상 처음에 쓰는 사람보다 나중에 쓰는 사람을 귀히 쓰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난 이스마엘이나 에서보다 나중에 난 이삭이나 야곱을 들어서 쓰셨습니다.
릴레이 육상경기에서도 가장 잘 뛰는 선수를 맨 마지막에 사용하여 승리를 이끕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를 완성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기에 하나님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민족을 아껴 두셨다가 가장 마지막에 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에 불림 받은 한민족은 온전한 진리를 온 세계에 전파해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큰 부흥의 역사를 일굴 것이므로 감사히 생각하고 사명을 감당해야겠습니다.
이사야 41/2 누가 동방에서 의인을 일으켜서 그를 자기 발 앞에 불렀으며, 민족들을 그 앞에 주어서 왕들을 다스리게 하였느냐? 그가 그들을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날아가는 그루터기 같게 하였도다.
이사야 46/11 내가 동쪽에서 굶주린 새를 부르고, 먼 나라로부터 나의 계획을 집행할 사람을 부를 것이라. 정녕 내가 그것을 말하였으니 그것을 또한 이루어지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의도하였으니 내가 또한 그것을 행하리라.
이사야 55/4 보라, 너는 네가 알지 못하는 한 민족을 부를 것이요, 너를 알지 못하던 민족들이 네게 달려올 것이니 주 너의 하나님 때문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을 위해서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니라.
로마서 10/19~20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말하기를 “내가 백성이 아닌 그들로 인하여 너희로 질투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인하여 너희로 진노하게 하리라.” 하였으며, 이사야는 매우 담대히 말하기를 “내가 나를 찾지 않은 자들에게 발견되었으며 나에게 묻지 않은 자들에게 나타났느니라.” 하였고
계시록 7/2 또 내가 보니, 다른 천사가 동쪽에서 올라오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장을 가지고 있더라. 그가 땅과 바다를 손상시킬 권세를 받은 네 천사에게 큰 음성으로 소리질러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인 그들의 이마에 인장으로 표시할 때까지 땅이나 바다나 또는 나무들을 손상시키지 말라."고 하더라.
이사야 11/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하박국 2/14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2. 강도 만난 자 비유
누가 10/31~34 예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그의 옷을 벗기고 상처를 입히고 반쯤 죽은 채로 버려 두고 갔더라. 그때 어떤 제사장이 우연히 그 길을 가다가 그를 보았으나 다른 편으로 지나갔으며 또 마찬가지로 한 레위인도 그곳에 있다가 다가가서 그를 보고 다른 편으로 지나가더라. 그러나 여행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이 그에게 와서 그를 보고 가엾게 여겨 그가 그 사람에게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 상처를 싸매 주고 자기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그를 돌보아 주더라.
예수님이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자 유대 율법사가 예수님께 누가 나의 이웃이냐고 질문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한 비유를 드시는데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코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 옷을 뺏기고 상처를 입어 반쯤 죽은 채로 버려졌다고 합니다.
마침 그 길을 지나가던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를 못 본 체 하고 지나갔지만 사마리아인은 그를 가엾게 여겨 치료해 주고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 그를 돌보아 주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고 묻자 율법사는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했으며, 예수님은 그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대략적으로 이 비유를 해석해 보면 겉으로는 경건한 체 하면서 희생하기 싫어하는 사람보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사람이 참 이웃이라는 교훈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일단 강도 만난 사람은 목적지부터 잘못 잡았습니다.
여리코는 여호수아 시절에 무너뜨린 성으로 다시 짓지 말라고 했는데 이 사람은 거룩한 예루살렘에서 황폐한 여리코 성으로 향했습니다.
잘못된 길을 가니 중간에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뺏기고, 생명의 위협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인생의 길을 잘못 들어서면 사탄과 마귀에게 모든 것을 뺏기고 생명까지 잃을 수 있습니다.
강도 만난 자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지만 길을 지나가던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를 보고도 외면했습니다.
물론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제사를 드릴 때 시체를 만져서는 안된다는 율법이 있지만 아직 죽지도 않은 사람을 외면한 것을 보면 도와줘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희생하기 싫으니까 외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지 않고 외면하기 쉽습니다.
사람은 본성이 이기적이고, 영광에는 앞장서지만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같은 유대인도 아닌 유대인이 멸시하는 사마리아인이 그를 보고 가엾게 여겨 치료해 주고, 여관에 실어다 주기까지 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은 단지 이방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려운 지경에 처해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때 나타나셔서 따뜻하게 우리를 감싸주고 치료해주시는 분입니다.
사마리아인이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를 싸매주었다는 것은 기름으로 상징되는 성령과 포도주로 상징되는 보혈을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 이야기의 결론은 예수님처럼 아무 조건 없이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섬김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겨주었고, 가난한 자들과 죄인들을 위로해 주셨으며, 병든 자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은 육신의 상태에서는 행할 수 없고,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행할 수 있습니다.
누가 10/35 그 다음날 그가 떠나면서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얼마가 더 든다 해도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으리라.'고 하더라.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여관에 그 사람을 데려다 놓은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두 데나리온을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돌보아 주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비용이 얼마가 더 든다 해도 돌아오는 길에 갚는다고 합니다.
이는 일시적인 치유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와 완전히 치유해주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강도 만난 자는 결국 유대인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 내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고 우상숭배와 각종 죄악으로 심판 당해 이민족에게 짓밟힌 유대인은 거의 강도 만난 자 같은 처지였습니다.
거의 죽게 된 그는 사마리아인이 치료해 주는 동안에도 의식이 없었으며, 사마리아인이 돌아 올 때에 알아 보고 감사를 표시할 것입니다.
스가랴 12/10 또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의 거민들 위에 은혜와 간구의 영을 부어 주리라. 그러면 그들은 그들이 찔렀던 나를 쳐다 볼 것이며, 그들이 그를 위하여 애통하리니,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 외아들을 위하여 애통함 같이 할 것이요, 그들이 그를 위하여 비통에 잠기리니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 첫아들을 위하여 비통에 잠기듯 하리라.
이와 같이 2000년 전 유대인은 시리아의 폭정과 로마의 식민지배로 제정신이 아니었고, 구세주 예수님을 몰라 보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말세에 영적인 눈을 떠 예수님을 기다리던 메시야로 시인하고 회개해 온전한 치유를 받게 될 것입니다.
벧후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마지막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사마리아인이 왜 두 데나리온을 주며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냐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걸리는 기간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다고 하셨으므로, 두 데나리온은 이천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태 24/34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리라.
누가 21/32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리라.
예수님은 말세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대(世代, generation)는 부모와 자식의 나이 차이에 해당하는 약 30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았기 때문에 이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한 세대란 구원의 경륜(經綸, 일정한 포부를 가지고 일을 조직적으로 계획함, 또는 그 계획)이 바뀌는 시기입니다.
아담부터 노아를 거쳐 아브라함까지 창조와 양심시대가 2000년, 아브라함부터 모세를 거쳐 예수님까지 족장과 율법시대가 2000년, 초림 예수님부터 재림 예수님까지 신약시대(믿음과 사랑)가 2000년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합쳐서 6000년이 하나님이 인류을 온전히 구원하기 위해 일하시는 기간이고, 마지막 천년왕국의 안식이 더해져 7000년으로 인류의 모든 구원사역이 완성됩니다.
그렇다면 두 데나리온은 이천년을 의미하고 서기 2000년 경에는 예수님이 재림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기다렸던 서기 2000년에 예수님은 재림하지 않으셨고, 많은 사람이 실망 내지는 안도했습니다.
마태 25/4~5 현명한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통에 기름을 가지고 있더라. 신랑이 늦어지므로 모두 졸려서 잠이 들었는데
이에 대한 답은 마태복음 25장 열 처녀 비유에서 찾을 수 있는데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들이 신랑이 늦어지므로 모두 졸려서 잠이 들었다고 합니다.
신랑이 늦어진다는 것은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긴장이 풀려 모두 졸려서 잠이 든다는 것입니다.
누가 21/34~36 너희는 스스로 주의하라. 그리하여 어느 때라도 너희 마음이 방탕과 술 취함과 이생의 염려로 무겁게 되어 그 날이 갑자기 너희에게 임하지 않게 하라. 이는 그 날이 온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 위에 덫처럼 임할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깨어서 항상 기도하라. 그래야 장차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피하고, 또 인자 앞에 서기에 합당하게 여겨질 것이라.”고 하시더라.
살전 5/4~6 그러나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니 그 날이 너희를 도둑같이 덮치지 못하리라. 너희는 모두 빛의 자녀들이며 낮의 자녀들이라. 우리는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노라.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자지 말고 깨어 있어 정신을 차리자.
예수님은 그 날이 온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 위에 덫처럼 임할 것이므로 방탕하거나 고민하지 말고 깨어서 항상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날이 도둑같이 덮치지 못하게 하려면 어두움에 속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 같이 영적으로 자지 말고 깨어 있어 정신을 차리라고 합니다.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를 대하여 오래 참으시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재림 약속은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에 대하여 주님이 오래 참으시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게 하려 하심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원래 서기 2000년 경 오셔야 했지만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예정보다 조금 늦게 오신다는 것과 성도들은 영적으로 졸거나 자지 말고 깨어 기도하고 긴장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때가 이르면 증거될 반세겔의 속전세
딤전 2/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몸값으로 내어 주셨으니 때가 이르면 증거되리라.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서에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몸값으로 내어 주셨으니 때가 이르면 증거될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죄인된 우리를 사탄의 권세에서 풀어주기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서 몸 값으로 내어 주신 사실은 구원 받은 성도라면 모두 다 아는 사실입니다.
고전 6/20 너희는 값을 치루고 산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런데 이러한 사실이 때가 되면 증거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에 대해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몸 값'을 의미하는 ransom은 속전이란 뜻도 있습니다.
죄를 대신해 돈을 지불하는 것으로 죄를 지어 감금된 사람이 보석금을 내고 석방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출애굽기 30/15~16 그들이 너희 혼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주께 봉헌할 때는 부자라고 반세겔보다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도 말지니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죄전을 받아 회중의 성막 봉사에 그것을 지정하라. 이는 주 앞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의 기업이 되게 하여 너희의 혼들을 구속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구약 율법에 의하면 사람의 혼(생명)들을 구속(몸 값을 주고 삼)하기 위해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하나님께 반 세겔을 봉헌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속죄전은 생명을 얻기 위해 지불하는 일종의 죄값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거두어진 속죄전은 성막 봉사에 사용됩니다.
속죄전을 내는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기업이 되어 혼들을 구속하기 위함입니다.
마태 17/24~27 그들이 카퍼나움에 왔을 때에 세금을 거두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와서 말하기를 "너희 선생은 세금을 내지 아니하느냐?"고 하니 그가 말하기를 "내신다."고 하더라. 그리고 나서 그가 집에 들어오니 예수께서 그보다 앞서 말씀하시기를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의 왕들이 누구에게서 관세와 정세를 걷느냐? 그들의 자손들에게서냐, 아니면 타인들에게서냐?"고 하시니, 베드로가 주께 말씀드리기를 "타인들에게서니이다."라고 하니,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그 자손들은 면세니라.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실족케 해서는 아니되니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올라오는 첫 번째 물고기를 잡으라. 그 입을 열면 동전 한 개를 찾으리니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그들에게 주라."고 하시니라.
그런데 마태복음 17장에 예수님 일행이 카퍼나움에 이르렀을 때 반세겔의 속전세를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성전 세금을 납부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올라오는 첫 번째 물고기를 잡아서 그 입을 열면 동전 한 개를 찾을 것이고, 그것을 가져다가 베드로와 예수님의 속전세를 내라고 명하십니다.
이는 두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구원은 예수님과 내가 하나 되는 것이기 때문에 베드로와 예수님이 하나되어 세금을 납부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온전한 속전세(몸 값)은 반세겔이 아니라 한세겔이란 것입니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합당한 예배니라.
구약 율법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반세겔만 드렸는데 이로써 온전한 구원을 이룰 수는 없었습니다.
절반이란 뭔가 부족하다는 의미이고, 하나는 온전하다는 의미입니다.
신약시대에 하나님께 드리는 속전세는 돈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영과 혼과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우리가 모든 일에 성장하여 그에게 이르리니 그는 머리시며 곧 그리스도시니라.
골로새서 2/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니, 온 몸이 머리에서 마디와 힘줄을 통하여 영양을 공급받고 엮어져서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고전 6/17 그러나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은 예수님만 드리는 것도 아니고, 나만 드리는 것도 아니라, 예수님과 내가 함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몸을 찢고 우리에게 머리를 주셨고, 우리 또한 십자가에서 머리를 버리고 몸을 드리면 머리와 몸이 합쳐져 온전한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머리와 내 몸이 합쳐져 한 영이 되는 것이 온전한 몸 값이요,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벧전 1/5 너희는 마지막 때에 나타내려고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고 있느니라.
베드로전서에서도 마지막 때에 나타내려고 예비하신 구원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과 내가 함께 십자가를 통과해 한 영이 되는 비밀입니다.
예수님과 하나 되기 위해서는 나의 머리(생각, 의지)를 머리고 주님을 머리 삼아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자신과 합할 나머지 반 세겔을 간절히 찾고 계십니다.
요한 10/17 이로 인하여 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리니 이는 내가 생명을 다시 얻기 위해 나의 생명을 내어 놓기 때문이니라.
로마서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들이니 하나님의 상속자들이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공동 상속자들이니 우리가 그와 함께 고난을 받은 것은 함께 영광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아버지 뜻에 따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육신의 생명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길 원하지만 먼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음을 경험해야 부활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부활한 생명체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국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4. 말세의 현명한 종과 악한 종
마태 24/45~47 그러면 그의 주인이 자기 집을 다스릴 자로 세워, 정한 시기에 그들에게 양식을 나눠주게 할 신실하고 현명한 종이 누구겠느냐? 그의 주인이 와서 종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리니, 그 종은 복이 있도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주인의 그의 모든 재산을 다스리는 자로 세울 것이라.
누가 12/42~44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주인이 자기 집을 다스리게 하여 제때에 그들에게 양식을 나눠 줄 신실하고 현명한 청지기가 누구겠느냐? 그의 주인이 와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볼 그 종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노니, 주인이 그 사람에게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다스릴 자로 삼으리라.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정한 시기'(말세)에 사람들에게 양식(말씀)을 나눠줄 신실하고 현명한 종(청지기)이 나옵니다.
구원의 주인되신 예수님이 와서 현명한 종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그 종은 복이 있어서 주인(예수님)의 모든 재산을 다스리는 자가 될 자로 세워질 것입니다.
현명한 종은 말세에 영원한 복음을 전파해 사람들을 온전한 구원으로 이끌고, 예수님의 재림을 대비하게 할 사역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말세에 진리를 중심으로한 부흥이 있을 것이 예언되어 있으며, 현명한 종은 진리 말씀을 깨닫고 널리 전파해 그 중심사역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마태 24/48~51 그러나 만일 악한 종이 속으로 말하기를‘내 주인이 오시는 것이 늦어지리라.’하고, 자기 동료 종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주정뱅이들과 함께 먹고 마신다면, 종이 예기치 아니한 날 그가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오리니, 그러면 주인이 그를 갈라내어서 위선자들과 함께 그의 몫을 지우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고 있으리라.”
반면 말세의 '악한 종'(주로 비리가 많은 담임목사)은 주인 되신 예수님이 늦게 오실 줄 알고 자기 동료 종(부목사)들을 때리고, 주정뱅이와 함께 마신다면 예기치 않은 날 주인 되신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그를 갈라내어 위선자들과 함께 그의 몫을 지울 것이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누가 12/45~48 그러나 만일 그 종이 속으로 말하기를 '내 주인이 오시는 것이 늦어지는도다.' 하고 남종들과 여종들을 때리기 시작하며, 또 먹고 마시어 취하게 되면 그 종이 그를 찾지 아니하는 날 예기치 않은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오리니, 그러면 그를 갈라내어서 그의 몫을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 정해주리라. 또 자기 주인의 뜻을 알면서도 준비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에 따라 행하지 않는 종은 매를 많이 맞으리라. 반면에 알지 못하고 맞을 짓을 한 자는 매를 적게 맞으리라. 이는 많이 받은 자에게서는 많이 찾게 될 것이요, 또 사람들이 많이 맡긴 자에게서는 더 많이 달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라.
누가 복음에는 좀 더 자세히 기술되어 있는데 더해진 내용은 주인되신 예수님의 뜻을 알면서도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에 따라 행하지 않은 종은 매를 많이 맞게 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과 온전한 구원을 선포하지 않고 기복적이거나 율법적인 설교만 하거나 진리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목사는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 진리를 알지 못하고 맞을 짓을 많이 한 자는 그보다 매를 적게 맞을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많이 받은자에게서 많은 것을 기대하고 찾게 될 것이고, 또 사람들도 많은 사명이 맡겨진 자에게서 더 많이 달라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에서도 말세의 악한 종의 습성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6/10~12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눈먼 자들이요, 다 무지한 자들이며 다 말 못하는 개들이므로 짖지 못하는 자들이며 잠자고 눕고 졸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참으로 그들은 탐욕이 심하여 만족할 줄 모르는 개들이요, 깨닫지 못하는 목자들이라. 그들이 다 자기 길만 바라보고 저마다 자기 구역에서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말하기를, 너희는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니 우리가 독주로 우리 몸을 가득 채우자. 내일도 이 날같이 더욱 풍성하리라, 하느니라.
요한 4/35~36 또 거두는 사람은 삯을 받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느니라. 이는 뿌리는 사람과 거두는 사람이 다함께 즐거워하려 함이라. 이렇듯 한 사람은 심고 한 사람은 거둔다는 그 말이 옳도다.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이 뿌린 것을 신약시대의 초대교회에서 거두었다면, 신약시대의 예수님과 제자들이 뿌린 씨는 말세의 현명한 종이 걷게 됩니다.
그래서 거두는 사람은 삯을 받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게 됩니다.
이는 뿌리는 사람과 거두는 사람이 다 함께 즐거워하려 함이고, 한 사람은 심고 한 사람은 거둔다는 말이 응하게 됩니다.
계시록 3/21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나와 함께 앉을 자격을 주리니, 이는 내가 이겨서 내 아버지와 함께 그의 보좌에 앉은 것과 같으니라.
말세의 미지근하고 영적으로 가난한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에 시험과 환난을 이기고 진리를 깨달아 전파한 사람은 예수님이 이겨서 아버지와 함께 보좌에 앉은 것같이 예수님과 함께 보좌에 앉을 자격을 얻게 됩니다.
계시록 6/2 내가 보니, 보라, 흰 말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위에 탄 자가 활을 가졌더라. 그에게 한 면류관이 주어졌고, 그는 나가서 정복하고 정복하려 하더라.
그는 말세에 예수님이 타고 오실 동일한 흰 말을 타고, 말씀을 널리 전파할 활을 가지게 되며, 승리의 상징인 면류관이 주어지고, 나가서 땅과 사람을 정복하고 또 정복하게 될 것입니다.
* 말세의 현명한 종과 관련된 구약의 예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사야 41/2 누가 동방에서 의인을 일으켜서 그를 자기 발 앞에 불렀으며, 민족들을 그 앞에 주어서 왕들을 다스리게 하였느냐? 그가 그들을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날아가는 그루터기 같게 하였도다.
이사야 41/25 내가 한 사람을 북쪽으로부터 일으켰으니 그가 오리라. 태양이 뜨는 곳으로부터 그가 내 이름을 부르리니 그가 와서 통치자들을 마치 회반죽을 이김같이,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음같이 하리라.
이사야 42/1~7 내가 드높이는 나의 종을 보라. 나의 택한 자, 그 안에서 내 혼이 기뻐하는도다.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두었으니 그가 이방인들에게 심판을 가져오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음성을 높이지 아니하며 그의 음성이 길거리에서 들리지도 않게 하리라. 그는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고, 그는 심판을 진리로 가져오리라. 그가 땅에 심판을 세우기까지는 쇠하거나 낙담하지 아니할 것이니 섬들이 그의 율법을 기다리리라. 하늘들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을 펼치셨으며, 땅을 펴셨고, 거기에서 소산을 내시고, 그 위에 있는 백성들에게 호흡을 주시며, 그 안에 다니는 자들에게 영을 주신 분이신 하나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 주가 의로 너를 불렀으니 내가 네 손을 붙들고 너를 지킬 것이며, 백성의 약속과 이방인들의 빛으로 너를 주어 앞 못보는 눈들을 뜨게 하며, 감옥에 갇힌 자들을 이끌어 내며, 암흑 속에 앉은 자들을 감옥에서 이끌어 내게 하리라.
외치거나 음성을 높히지 않고, 음성이 길거리에서 들리지도 않으면서도 복음이 전파된다는 것은 책이나 인터넷 등을 이용한 문서선교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참고구절 (시편 147/15 그가 그의 계명을 땅에 보내시니 그의 말씀이 매우 빨리 퍼지는도다.)
이사야 46/11 내가 동쪽에서 굶주린 새를 부르고, 먼 나라로부터 나의 계획을 집행할 사람을 부를 것이라. 정녕 내가 그것을 말하였으니 그것을 또한 이루어지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의도하였으니 내가 또한 그것을 행하리라.
이사야 60/1~3 일어나라, 빛을 비추라. 이는 네 빛이 왔고, 주의 영광이 네 위에 솟아났음이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심한 어두움이 백성을 덮으리라. 그러나 주가 네 위에 일어날 것이요,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이방인들이 네 빛으로 올 것이요, 또 왕들도 너의 솟아나는 광명으로 오리라.
이사야 65/13~15 이러므로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먹을 것이로되 너희는 주릴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마실 것이로되 너희는 목마를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기뻐할 것이로되 너희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마음이 기뻐서 노래할 것이로되 너희는 마음이 슬퍼서 소리를 지르고 영이 괴로워서 울부짖을 것이며, 또 너희가 남길 너희 이름은 내가 택한 자들에게 저주거리가 될 것이니 이는 주 하나님께서 너를 죽이고 자신의 종들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실 것임이니라.
이사야 66/21 주가 말하노라. 나는 또한 그들 가운데서 택하여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삼으리라.
말세의 구원 받은 성도는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신약시대의 제사장이자 레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3/15 내가 그 날들, 그리고 그 때에 의로운 가지를 다윗에게 자라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심판과 의를 실행하리라.
다니엘 12/2~3 땅의 흙 속에서 잠자는 많은 사람들이 깨어날 것이며, 얼마는 영원한 생명을 얻겠고, 얼마는 수치와 영원한 모욕을 받으리라. 현명한 자들은 창공의 광명처럼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의로 돌이키는 자들은 별들처럼 영원 무궁토록 빛나리라.
다니엘 12/10 많은 사람들이 정결케 될 것이며 희게 되고 연단되리라. 그러나 악인들은 악하게 행하리라. 악한 자들 중 아무도 깨닫지 못할 것이나 현명한 자들은 깨달으리라.
호세아 14/9 누가 현명하여 이런 일들을 깨닫겠느냐? 누가 총명하여 그것들을 알겠느냐? 주의 길들은 올바르니 의인이 그 안에서 행하리라. 그러나 범죄자들은 그 길에서 넘어지리로다.
아모스 3/7 실로 주 하나님은 선지자인 그의 종들에게 그의 비밀을 나타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행치 아니하느니라.
스카랴 6/15 멀리 있는 자들이 와서 주의 성전을 건축하리니, 너희는 만군의 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것을 알게 되리라. 만일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의 음성에 충실하게 복종하면 이같이 되리라.
말라키 2/6 그의 입에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는 죄악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그가 화평과 공평 안에서 나와 함께 행하며, 많은 사람들을 죄악으로부터 돌이켰도다.
말라키 3/16~17 그때에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이 종종 서로 말하니 주께서 경청하시고 그것을 들으셨으며,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과 그의 이름을 존중하여 생각하는 자들을 위하여 한 기념의 책이 그의 앞에 기록되어 있느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니, 내가 나의 보석들을 만드는 그 날에 그들이 나의 것이 되리라. 내가 그들을 아껴 두리니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자기 아들을 아낌 없이 하리라.
말라키 4/2~3 그러나 내 이름을 두려워하는 너희에게는 의의 태양이 그의 날개에 치유를 가지고 솟아오르리니, 그리하면 너희는 나가서 외양간의 송아지들처럼 자라리라. 또 너희는 악인들을 짓밟으리니, 이는 내가 이것을 행하는 날에 그들이 너희 발바닥 밑에 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말라키 4/5~6 보라,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대언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들의 마음을 자녀들에게로 돌아오게 하며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들에게로 돌아오게 하리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은 예수님의 초림이 아니라 재림입니다.
물론 침례인 요한이 예수님을 앞길을 예비할 엘리야의 역할을 했지만 예수님의 재림 때에도 엘리야의 심정과 능력을 가지고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할 사람(대언자)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들(성도)에게로 돌이켜 하나님이 땅을 저주로 치지 않게 할 것입니다.
5. 말세 부흥 (동방의 역사)
말세에 진리를 중심으로한 세계적인 부흥이 일어날 것으로 성경에 예언되어 있고, 동쪽에 있는 민족으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예기치 못했던 새로운 일이 시작될 것이고, 많은 사람이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전할 것이며, 이스라엘 민족도 깨우쳐 예수님을 믿게 할 것입니다.
* 말세 부흥(동방의 역사)과 관련된 성경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태 21/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에게서 빼앗아 그 소출을 가져올 민족에게 주리라.
로마서 10/19~20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말하기를 “내가 백성이 아닌 그들로 인하여 너희로 질투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인하여 너희로 진노하게 하리라.” 하였으며, 이사야는 매우 담대히 말하기를 “내가 나를 찾지 않은 자들에게 발견되었으며 나에게 묻지 않은 자들에게 나타났느니라.” 하였고
계시록 7/2 또 내가 보니, 다른 천사가 동쪽에서 올라오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장을 가지고 있더라. 그가 땅과 바다를 손상시킬 권세를 받은 네 천사에게 큰 음성으로 소리질러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인 그들의 이마에 인장으로 표시할 때까지 땅이나 바다나 또는 나무들을 손상시키지 말라."고 하더라.
이사야 11/9 그들은 나의 모든 거룩한 산에서 해치거나 파괴시키지 않으리니 이는 마치 물들이 바다를 덮음같이 세상이 주의 지식으로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33/6 지혜와 지식이 네 때의 안정과 구원의 힘이 될 것이요, 주를 두려워함은 그의 보배로다.
이사야 42/9~10 보라, 이전 일들이 이루어졌으며, 내가 새 일들을 선포하나니 그 일들이 시작되기 전에 내가 그 일들을 너희에게 말하노라. 바다에 다니는 너희들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과 섬들과 그 거민들아, 새 노래로 주께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그를 찬양하라.
이사야 43/18~21 너희는 이전 일들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들을 깊이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나리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참으로 내가 광야에 길을 내며 사막에 강들을 내리니, 들짐승 곧 용들과 올빼미들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내고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들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그들이 내 찬양을 보이리로다.
이사야 55/4 보라, 너는 네가 알지 못하는 한 민족을 부를 것이요, 너를 알지 못하던 민족들이 네게 달려올 것이니 주 너의 하나님 때문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을 위해서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음이니라.
이사야 60/3 이방인들이 네 빛으로 올 것이요, 또 왕들도 너의 솟아나는 광명으로 오리라.
이사야 61/5 타국인들이 일어나 너희 양떼를 먹일 것이요, 외국인의 아들들이 너희의 경작자와 포도원 가꾸는 사람이 되리라.
이사야 65/1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들이 나를 찾아내었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들이 나를 발견하였나니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아니하던 한 민족에게 말하기를, 나를 볼지어다. 나를 볼지어다, 하였노라.
요엘 2/28~29 그후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으리라. 그러면 너희 아들들과 너희 딸들이 예언할 것이요, 너희 노인들은 꿈들을 꿀 것이며, 너희 청년들은 환상을 보리라. 또 그 날들에는 내가 남종들과 여종들 위에도 내 영을 부어 주리라.
하박국 2/14 마치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땅이 주의 영광의 지식으로 가득 차리라.
스카랴 2/11 그 날에는 많은 민족들이 주께 합류하여 내 백성이 되리라. 그러면 내가 네 가운데 거하리니, 너는 만군의 주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 것을 알리라.
말라키 1/11 이는 해 뜨는 데부터 해 지는 데까지 내 이름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위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에 향을 피우며 순결한 제물이 드려질 것이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가운데서 위대하게 될 것임이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6. 나를 사망으로 이끄는 죄성에서 벗어나는 길
우리는 보통 수십년 동안 세상에 살면서 수 많은 죄악에 물들어 왔습니다.
그동안 무심코 본 TV와 인터넷과 광고와 영화와 게임 등에서 잔인하고 음란하며 쾌락적이고 물질만능주의적인 장면들이 나의 기억에 남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정생활 학교생활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람들과 겪었던 마음의 상처, 미움, 원망 등도 잠재의식에 남아 영향을 줍니다.
나의 육신의 강한 각종 본능은 나의 통제영역을 넘어 꿈틀거리고 나를 사로 잡으며 뭔가에 집착하게 합니다.
마귀와 악령들은 각종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으로 나를 좌절시키고 불안에 떨게 하며 미움과 다툼이 일어나게 하고 의심하게 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내 안에 죄성을 형성하고, 그것이 습관화 되어 언행으로 표출되는 것이 죄들입니다.
모든 인간은 악하고 음란하며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이기적이고 욕심 많으며 반항적이고 쾌락지향적인 죄성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통제하려는 양심이나 이성과 갈등을 겪고 대립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죄를 짓고 싶은 욕망은 커지기 때문에 통제영역을 넘어서게 되고, 급기야 사회적으로 충격을 주는 흉악한 범죄도 저지르게 됩니다.
최근에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을 구타하거나 다른 사람의 자동차를 불태우는 행위도 이러한 죄성을 표출하는 것이고, 일반인들은 비교적 양심의 가책과 사회적 책임이 덜한 사이버 세상에서 자신의 죄성을 마음껏 발산합니다.
술에 취하게 되면 죄성에 대한 통제능력이 상실되기 때문에 죄성은 쉽게 드러나고, 감추었던 욕망이 드러나 해소되면서 묘한 쾌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욕망은 발산되거나 해소되면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어 쾌락이 느껴지게 하면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배고픈 욕망이 있을 때에 밥을 맛 있게 먹을 때에도 도파민은 분배되며, 이러한 먹는 쾌락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면 비만에 걸려 각종 성인병으로 고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악한 욕망을 다스리거나 소멸하지 않으면 찾아 오는 것은 가정파탄과 다툼과 방탕과 타락과 가난과 질병과 정신질환과 악령들림과 범죄와 형벌과 사회적 실패 뿐입니다.
죄성이 밖으로 향하는 사람은 주로 다른 사람을 말이나 행동으로 괴롭히게 되고, 죄성이 안으로 향하게 되면 자신을 학대하거나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에 이르게 됩니다.
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계속 죄들을 짓다가 결국 사(死) 후에 심판을 받고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되므로 죄성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죄성은 인간적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치유할 수 없으며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과 성령의 인도와 말씀의 능력으로 치유할 수 있습니다.
나의 옛사람은 죄에서 빠져 나오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먼저 죄성에서 빠져 나오겠다는 굳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또한 악령들이 죄성과 죄들에게 빠져 나오지 못하게 끈질기게 방해하기 때문에 예수님 이름과 십자가 보혈로 끊임 없이 쫓아 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위해 뜨거운 기도와 찬양을 지속하며, 나의 죄성을 멸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며 새로운 마음을 달라는 기도를 계속해야 합니다.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세상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을 멀리하고, 조용히 신앙생활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벗어나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며 죄성에서 벗어나는데 40년이 걸렸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서 벗어나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신앙생활에 전념해도 죄성에서 벗어나는데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꾸준히 인내심과 절제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아래서 성장하면 온전히 거듭나 죄성이 멸해지고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해 어떠한 시험과 유혹에도 죄를 짓지 않는 단계에까지 성장하리라 믿습니다.
7. 본체의 형상, 영광의 광채
빌립보서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개역한글)
빌립보서 2/6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표준새번역)
빌립보서 2/6 그는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는 것을 탈취라 생각하지 않으셨으나 (한글 킹제임스)
빌립보서 2/6 그는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않으셨으나 (킹제임스 흥정역)
빌립보서 2/6 Who, being in the form of God, thought it not robbery to be equal with God: (KJV)
빌립보서 2/6 Who, being in very nature God, did not consider equality with God something to be grasped, (NIV)
빌립보서 2/6 who, although He existed in the form of God, did not regard equality with God a thing to be grasped, (NASB)
성경을 바로 이해하게 위해서는 여러 번역본과 원문을 참조하는 것이 좋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에 대해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본체라고 했고,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형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개역한글 관주성경에서는 '본체' 옆에 기호를 표시하고 밑에 해설로 '혹 형체'라고 합니다.
영어성경에서는 KJV와 NASB에서는 form(형체, 모습)라고 하고 NIV에서는 very nature(본래의 참 모습)이라고 합니다.
원문에서는 μορφη(morphe)로 shape(모양, 형상) figuratively nature(조형적인 본래의 모습), form(모양, 형상, 형태)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nature에는 자연, 본성이란 뜻 외에도 본래의 모습, 현실이란 뜻도 있습니다.
히브리서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개역한글)
히브리서 1/3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그 분의 인격의 정확한 형상이시고,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시며, 친히 우리의 죄들을 정결케 하시고 높은 곳에 위엄 있는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으니 (한글 KJV)
히브리서 1/3 Who being the brightness of his glory, and the express image of his person, and upholding all things by the word of his power, when he had by himself purged our sins, sat down on the right hand of the Majesty on high: (KJV)
히브리서에서도 예수님이 그 분(아버지)의 인격(본체, 본성)의 형상이라고 했으므로 예수님은 본체되신 아버지의 형상인 것이 맞습니다.
하나님은 본체와 형상으로 이루어졌는데 본체는 아버지이고 형상은 예수님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것의 근원이시지만 스스로 나타나지 않으시고 그 분의 정확한 형상이신 예수님을 통해 나타나십니다.
요한 14/8~11 빌립이 주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소서. 그러면 만족하겠나이다."라고 하니라.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빌립아, 내가 너희와 그처럼 오랜 시간을 있었는데 네가 나를 모르겠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그런데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말하느냐?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는 것을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에게 하는 말들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께서 그 일들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는 것을 믿으라. 그리하지 못하겠거든 행한 그 일들을 보고 나를 믿으라.
빌립이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하자 예수님은 나를 본 것은 아버지를 본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본체이신 아버지의 정확한 형상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면 아버지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예수님 안에 계셔서 자신의 일을 하셨고, 예수님은 자가 마음대로 행하지 않으시고 아버지가 원하는대로 행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 인간이 하는 일이 아니라 신이 하는 일인 것을 알 수 있고, 그로 인해 예수님을 구원주로 믿을 수 있습니다.
우주만물과 인간도 본체와 형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태양이 본체라면 태양 빛은 형상입니다.
우리는 태양 빛을 통해 태양을 알 수 있지만 태양 빛 자체가 태양은 아닙니다.
동물과 식물의 본체가 DNA라면 동물과 식물의 형상은 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체와 형상은 영광과 광채와도 비슷합니다.
태양 빛을 통해 태양이 드러나듯이 영광은 광채로 인해 드러납니다.
다이아몬드의 영광(가치)은 영롱한 다이아몬드의 광채로 드러납니다.
아무리 다이아몬드의 재질이 좋아도 좋은 빛을 내지 않는 다이아몬드는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건물의 본체가 설계도라면 건물의 형체는 외벽과 내장재로 이루어진 재질입니다.
건물이 설계도에 따라 잘 시공되었다면 우리는 그 건물을 실측해 설계도를 거꾸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본체는 영혼(마음과 생각)이고 형상은 육신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육신을 통해 그 사람을 알 수 있지만 그 사람의 육신 자체가 그 사람은 아닙니다.
아버지와 아들도 본체와 형상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근원(원인)이고, 아들은 아버지로 말미암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통해 드러나고, 아버지를 닮은 아들을 보면 아버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상대적인 개념으로 아버지가 없다면 아들도 없고, 아들이 없다면 아버지도 없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으로 보살피고, 아들을 대견스럽게 생각하며, 아들을 신뢰해 모든 권세와 소유를 맡기고, 아들로 인해 기뻐합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께 감사하고,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며, 아버지의 일을 하고,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 드리며, 아버지께 영광을 돌립니다.
머리와 지체도 본체와 형상입니다.
머리는 지체에게 명령을 내리고, 지체는 머리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합니다.
머리는 지체를 위하고 돌보며, 지체도 머리를 위하고 영광을 돌립니다.
머리와 지체는 분리될 수 없으며, 상호의존적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15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첫 태생이시니
예수님은 본체이신(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으로 계시므로 아버지와 하나 되신 분입니다.
아들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아버지를 정확히 나타내시고, 아버지의 일을 하시며,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십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 예수님을 기뻐하시고, 지극히 사랑하시며, 모든 것을 믿고 맡기십니다.
아들 예수님은 본체이신 아버지의 정확한 형체이고 머리 되신 아버지의 참된 지체이므로 아버지와 하나 되실 뿐만 아니라 동등하신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유의 왕이시라면 왕의 머리는 아버지시고, 왕의 지체는 예수님이십니다.
신하가 왕을 대할 때에는 왕의 머리 뿐만 아니라 왕의 지체도 머리와 동등히 대우하고 섬깁니다.
아버지를 대신해 이 땅을 통치하시는 아들 예수님은 아버지 보좌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함을 강탈(억지로 빼앗음)로 여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지위를 억지로 강탈하려고 한 존재는 사탄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지체로 살기보다 아버지와 같은 머리가 되려고 했기 때문에 하늘에서 쫓겨 났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유일한 머리이자 주인은 아버지 한 분 뿐이며, 그 분만이 온전히 선하시고 머리(주인) 되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구원 받은 성도도 아버지의 아들이자 천국의 상속자이지만 아버지와 하나 되고 아버지께 온전히 순종할 때에만 그 지위가 유지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진리와 성령으로 온전히 거듭나 예수님과 하나 됨으로써 아버지의 참 아들로 이 세상에 나타나기를 바라십니다.
빌립보서 2장 6절에 대해서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함을 취하지 않는다고 하여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하지 않다는 오해를 사게 합니다.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에서는 예수님과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는 것을 강탈로 여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지위와 능력에 있어서 동등하나 그것을 사탄과 같이 무력을 동원해 강제로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 뒤의 구절은 예수님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스스로 명성 없는 자가 되어 종의 형체를 취하셨다고 하므로 문맥상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하단 것이 맞습니다.
이 세상의 거짓 되고 무력적인 방법이 아닌 하늘나라의 진리와 사랑으로 예수님은 자연스럽게 아버지와 하나 되셨습니다.
요한 5/18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그를 더욱 죽이려고 하니, 이는 그가 안식일을 범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겼기 때문이라.
요한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하시고 아버지를 정확히 계시하나 아버지와 동일한 인격이 아닌 별도의 인격체로 존재하십니다.
이것이 삼위일체론의 신비이며, 우리가 일반적인(저차원적인)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론의 신비(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정확히 알아야 온전한 구원의 길이 열립니다.
요한 17/21~23 이는 그들 모두가 하나 되게 함이오니, 아버지시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서 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여주옵소서. 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그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옵니다. 내가 그들 안에, 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은 그들을 하나로 온전하게 하셔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니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 예수님과 하나 된 것같이 우리 또한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와 하나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다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연합해 옛사람을 버리고 아버지의 아들이자 머리의 지체로 새롭게 태어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8. 보혈의 능력
구원주이신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이 땅은 아담과 후손의 죄(불순종)로 인해 어두움에 속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한줄기 빛으로 이 땅에 임하셔서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죄와 악령과 저주와 사망은 어두움의 한묶음입니다.
의와 성령과 축복과 생명은 빛의 한묶음입니다.
죄를 지으면 악령과 저주와 사망은 원하지 않아도 덤으로 찾아와 나를 괴롭힙니다.
의를 행하면 성령과 축복과 생명은 원하지 않아도 덤으로 찾아와 나를 보살핍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스스로 모든 죄를 용서받아 악령과 저주와 사망으로부터 벗으날 수 없습니다.
또한 어느 누구도 스스로 온전한 의를 행해 성령과 축복과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 저주를 받으사 믿는 우리를 값없이 악령과 사망으로부터 건져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사 믿는 우리에게 값없이 성령과 생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회개를 할 때는 먼저 자신이 지은 죄를 하나님께 고백(자백)해야 합니다.
되도록 기억나는 모든 죄를 고백하는 것이 좋습니다.
죄들을 자백하면서 자신의 죄성을 깨달아 고침을 받고 같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깊히 하면 어릴 때 무익식적으로 지었던 죄까지 떠올라 회개합니다.
그러나 기억이 나지 않는 죄가 있고 마음에 걸림이 있으면 다음과 같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법을 모르고 알게 모르게 많은 죄를 지은 죄인입니다.
제 모든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오니 하나님께서 저를 긍휼히 여기사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이 제 모든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셨음을 믿사오며, 기억에 나지 않는 죄까지도 모두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씻어 주옵소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이 일어나는 이유는 아직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악령이 역사하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에는 묵상기도와 연상기도를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셔서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셨으니, 기록되기를 "나무에 매달린 자는 누구나 저주받은 자라."고 하였도다.
예수님이 우리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율법의 저주'(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음)를 받으셨습니다.
먼저 갈라디아서 3장 13절을 통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죄로 인한 나의 모든 저주로부터 건지셨음을 깊히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3/1 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가운데서 너희 눈앞에 분명하게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어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그리고 내 앞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 고통을 받고 계심을 연상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십자가 밑에 있고, 예수님의 몸에서 흘러내린 십자가 보혈이 내 머리 위에 떨어져 온 몸을 붉게 적시고 있음을 연상하시기 바랍니다.
내 모든 죄가 예수님의 피로 깨끗이 씻음을 받았고, 죄로 인해 모든 저주와 악령과 마음의 어두움이 떠나감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고 기쁨이 넘치며 소망과 강한 믿음이 생길 것입니다.
은혜는 정당한 댓가를 치루지 않았는데 거져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예수님으로부터 능력을, 성령님으로부터 진리를 믿음과 간구로 인한 은혜로 받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필요한 물질을 공급받습니다.
고전 1/18 십자가를 전파하는 것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24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유대인들에게나 헬라인들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또 하나님의 지혜니라.
에베소서 3/7 이로써 그 분의 능력이 효과적으로 역사하신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무리 좋은 무기가 주어져도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진리를 알고 사랑을 하고 싶어도 이를 행할 수 있는 능력(힘)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때문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주여주여 하는 자보다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갑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힘입어 죄를 씻어내고 악령을 쫓아내며 저주에서 벗어납니다.
마음 속에 어두움(불안, 두려움, 근심, 슬픔, 미움, 우울, 낙심, 외로움, 억울함, 답답함)이 몰려 올 땐 예수님의 피로 깨끗이 씻어내고 예수님의 피로써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마태 26/28 이는 이것이 죄들의 사하심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나의 새 언약의 피이기 때문이라.
요한 6/53~5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또 그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안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을 가졌나니 내가 그를 마지막 날에 살리리라.
에베소서 1/7 그 사랑하시는 이 안에서 우리가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즉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
골로새서 1/13~14 그분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로부터 구하여 내셔서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으니 그 안에서 우리가 그의 보혈을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함을 받았느니라.
히브리서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
히브리서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죽은 행실에서 너희 양심을 정결케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브리서 9/22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느니라.
벧전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케 하심을 통하여,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으로 택함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충만할지어다.
벧전 1/18~19 이는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너희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이어받은 너희의 허망한 행실에서 은이나 금 같은 썩어질 것들로 구속된 것이 아니라,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기 때문이니라.
계시록 7/14 내가 그에게 말씀드리기를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들은 대환난에서 나온 사람들이며 자기들의 옷을 씻어 어린 양의 피로 희게 하였느니라.
* 출력용 워드문서 : 영원한 복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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