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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2008] “상상력을 찾아서”… 한국영화 과거 속으로

은바리라이프 2008. 1. 21. 17:28
[굿모닝 2008] “상상력을 찾아서”… 한국영화 과거 속으로

스크린 레트로 열풍

‘과거로!’

지난해 관객들로부터 ‘서사의 빈곤’ ‘상상력 결핍’ 진단을 받은 한국영화가 새로운 이야기의 금맥을 과거와 옛 시대에서 찾았다. 무자년의 한국영화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새해 벽두부터 과거와 옛 시대를 복기하고 추억하는 작품이 잇따른다. 올 한 해 선보이는 영화만 줄잡아 10편이 넘는다. ‘레트로(Retro; 복고, 과거로의 회귀)’ 열풍이라 할 만하다. 가깝게는 2004년부터 1970년대와 일제시대를 거쳐 조선, 고려시대까지 이른다.

새해 포문을 여는 영화는 문소리, 김정은, 김지영 주연의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감독 임순례, 10일 개봉)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여자핸드볼 대표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허구를 섞었지만 소속 실업팀 해체로 생계수단을 잃은 ‘아줌마 선수’ 등 주요 캐릭터는 실제에서 많이 빌려왔고, 경기 내용만큼은 4년 전 있었던 그대로를 꼼꼼하게 재현한다. 연말 시사회 객석에서는 “맞다, 맞아, 그때 그랬었지!’ 하는 탄성이 자주 들렸다.

올해 한국영화에서 가장 ‘뜨거운 시기’는 1930~40년대다. 머릿기름에 머리를 딱 붙여 가지런히 빗어넘기고 중절모로 멋을 낸 ‘모던 보이’와 날렵한 단발머리에 잘록한 허리, 화려한 양장을 뽐내던 ‘신여성’이 도시를 활보하고 멀리 만주에서는 마적과 열차털이범, 독립군들이 신출귀몰하던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4편이나 몰렸다.

공교롭게도 오는 31일 맞붙는 류승범, 김사랑 주연의 ‘라듸오데이즈’(감독 하기오)와 박용우, 이보영 주연의 ‘원스어폰어타임’(감독 정용기)은 각각 1930년대와 194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코미디영화다. ‘라듸오데이즈’는 시대의 아픔에는 아랑곳없이 여자 뒤꽁무니나 쫓는 한량 PD 류승범이 조선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인 경성방송국에서 ‘오합지졸’ 같은 스태프와 함께 완벽한 단 한 번의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좌충우돌한다는 이야기. ‘원스어폰어타임’은 석굴암 본존불상의 미간에 박혀 있었다던 3000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소재로 했다. 재력가, 고고학자, 마술사 등 자유자재로 변신하며 여성 편력을 자랑하는 희대의 사기꾼(박용우 분)과 천재적인 여성 절도범이자 재즈싱어(김사랑 분)가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간 다이아몬드를 둘러싸고 뺏고 뺏기는 사기극을 벌인다.

뒤 이어 2월 중 개봉 예정인 박해일 김혜수 주연의 ‘모던보이’(감독 정지우) 역시 1930년대 경성이 배경. 상위 1%에 드는 최고위층이자 조선총독부 서기관인 이해명(박해일 분)이 매력적인 댄서 조난실(김혜수 분)에게 작업을 거는 데 성공하지만 그녀가 가진 거대한 비밀에 맞닥뜨리게 된다. 영화의 여주인공인 ‘모던걸’의 직업이 한결같이 재즈싱어(이보영, 김사랑)이거나 댄서 겸 가수(김혜수)인 점이 흥미롭다.

한국영화 최초의 본격 웨스턴을 표방하며 기대를 모으고 있는 대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감독 김지운)은 열차가 달리고 말발굽 소리 울려퍼지던 무법천지의 만주땅으로 안내한다. 열차강도 송강호, 마적단 두목 이병헌, 현상금사냥꾼 정우성이 쫓고 쫓기는 대결을 펼친다.

지난해 30~40대 관객은 한국영화의 주 타깃이자 흥행의 주 동력으로 입증됐다. 이들의 감성에 정조준한 1970년대 배경의 영화도 잇따른다. ‘라디오스타’ ‘즐거운 인생’ 등으로 중.장년층의 정서에는 일가견이 있음을 증명한 이준익 감독은 베트남전에 파병된 남편을 쫓아 위문공연단 가수로 껴들어가는 한 여인을 그린 ‘님은 먼 곳에’ 촬영을 앞두고 있다. 수애가 타이틀롤을 맡았다. 역시 제목부터 고풍스러운 ‘고고 70’도 음악과 복고 코드를 한데 묶었다. 청년문화가 폭발하던 1970년대 기지촌 주변 로커와 록밴드가 주인공. 조승우와 신민아 주연.

사극 열풍은 지상파와 케이블TV에 이어 스크린에도 번졌다. ‘신기전’(감독 김유진)은 15세기 최무선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다연발 로켓포이자 장거리 미사일의 모태가 된 조선시대 화포가 소재. 여균동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 ‘1724기방난동사건’은 조선시대 주먹들이 기방을 둘러싸고 벌이는 대결을 담은 코미디다. 유하 감독은 ‘쌍화점’에서 고려말 왕의 친위부대원들과 원나라 출신 왕비를 둘러싼 동성.이성 간의 러브스토리를 그린다.

이형석 기자(suk@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