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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만화의 문화 파생력

은바리라이프 2008. 1. 1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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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만화의 문화 파생력


이글은 원래 출간 예정인 허영만 헌정 평전(김영사)에 실릴 예정이었으나,
이런 저런 사정으로 (원고함량 미달이 가장 크겠고..) 제외된 글입니다. 뭐 제 나름대로는
책에 한번 이름제대로 내 보겠다고(사실 이름은 없엇지만, 쓴 책이 하나 있기는 했지만...^_^;)
한 녀석인데, 역시나 저의 글솜씨는 부족 그 자체 (맞춤법이나 제대로 써라!)
여하간 그냥 놔두면 뭐합니까? 얻어 맞더라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들어가기전에 언제나 처럼 이 글은 저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이글에 대해 다른 곳에 저도 모르게
옮기는 일은 삼가해 주십시오. 그건 하이텔 놈들같은 짓입니다.

자아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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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만화의 문화 파생력

                                                                                                                     김 창 균

허영만은 데뷔 30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화는 끊임없이 변해야 돼요. 항상 새로운걸 독자들에게 던져줘야만 합니다. 그게 잘 안될 때면 '나는 그저 화공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고, 그러면 다시 마음을 잡아 의욕을 살리고, 그렇게 반복하는 거죠. " 그의 말처럼 허영만은 그 시대의 문화에 맞는 소재들로 자신의 만화들을 끊임없이 변화시켜왔다. 1980년대 초 고독한 권투선수를 그리는가 하면, 1980년대 중반 민주화 욕구가 시작되는 시기에 ꡔ오! 한강ꡕ 등 이데올로기에 대한 만화를 제기하기도 하고, 1990년대 엑스세대라 불리는 신세대들이 움직일 무렵의 ꡔ비트ꡕ, 2000년대 도박만화인 ꡔ타짜ꡕ 등을 통해 그 변화를 보여줘왔다. 문화가 움직이는 시기에 그 흐름을 읽고 나온 만화는 당시 문화에 영향력을 끼치며 편입되어, 여러 부문으로 그 파생력을 넓혀갈 수 밖에 없다.

최다 6명의 세계 복싱 챔프를 배출하는 등, 권투에 대한 열기가 있던 1980년대에 허영만은 권투경기를 직접 보며 아이디어를 얻어 권투만화를 시작한다. 승부를 조작하는 악덕 체육관의 횡포 때문에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권투선수가 된 이강토. 춤을 추듯, 무당거미처럼 상대를 노리는 이강토가 링 위에서 사투를 벌이는 1981년작 ꡔ무당거미ꡕ 시리즈는 당시 권투의 붐과 함께 독자들의 반응을 불러내었다. 음울함 속에 권투장에 서는 주인공의 모습은 80년대 헝그리 정신이 어린 복서들의 한을 투영하고 있었다. 허영만은 그 후 1982년에는 같은 장르로 분위기를 명랑물로 바꿔, 청학동에서 온 주인공이 권투를 하게 되는 ꡔ사마귀ꡕ, 1983년 발레리나가 될 것을 강요하는 아버지 밑에서 태권도식 변칙 복싱으로 국가대표선수로 성장해가는 코믹 권투만화 ꡔ변칙복서ꡕ 등을  내놓는다. 이와 같은 허영만의 작품들은 다시 만화계에 권투만화의 붐을 일으켜서, 1983년 ꡔ20세 재벌ꡕ이라는 기업 만화를 통해 데뷔한 박봉성의 ꡔ신의 아들ꡕ과 같은 작품이 독자들에게 어필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20대의 중소기업사장인 최강타가 권투선수로서 다시 태어나는 노력과 집념을 그린 권투와 기업만화가 섞인 작품이었다.
<yawara-01.jpg-80년대 대표적인 복서 김득구(1955-1982) 82년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WBA 라이트급 챔피언 결정전 중 사망한 비운의 권투선수 그의 일대기를 담는 전기 영화가 2002년 챔피언이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었다.> <yawara-02.jpg-만화 ꡔ무당거미ꡕ>.
80년대는 고독하거나 가난한 주인공이 스포츠를 통해서 성공하는 식의 스포츠 만화가 붐을 일으켰다.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기고 불구가 된 주인공이 같은 처지의 감독과 선수들을 만나 다시 마운드에서 복수한다는 이현세의 1983년작 ꡔ공포의 외인구단ꡕ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80년대 초 이런 복수와 한이 서려있는 스포츠맨들의 모습이 당시 스포츠 만화 전반에 끼친 영향은 실로 컸다. 이후 허영만은 고독한 권투선수의 모습을 그린 무당거미 시리즈를 1985년까지 연작으로 발표했다.  1986년, 역시 고독한 권투선수인 주인공의 모습을 독특하게 표현한 ꡔ카멜레온의 시ꡕ를 발표했는데, 작품에 인용된 로뜨레아몽의 ꡔ말도로드의 노래ꡕ가 서점가를 강타했을 정도로 이 만화의 힘은 대단했다.


<yawara-03.jpg-왼쪽에서부터 공포의 외인구단과 신의 아들, 80년대는 고독하거나 가난한 주인공이 스포츠를 통해서 성공하는 식의 스포츠 만화가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들은 둘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성공을 거둔다.>
1985년 2월 12일 창당된 지 채 한달도 안 된 신민당이 제 1야당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군부 쿠데타 정권에 대한 직선제 개헌투쟁, 1986년 권양 성고문 사건, 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등으로 그간 시대가 금기시했던 이데올로기와 민주화 바람이 고개를 들던 무렵, 허영만은 ꡔ오! 한강ꡕ 을 발표한다. 일제시대 소작농의 아들이었던 주인공이 해방 후 화가로 성장하면서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고 남로당혁명에 가담, 월북한다. 그 후 6.25를 거치고 남한에 살면서, 그의 아들이 학생운동에 뛰어드는 모습들을 통해 일제시대, 해방, 분단, 6 .25를 거치는 역사적 혼란기를 작품 속에서 표현했다. ꡔ오! 한강ꡕ은 1987년 월간 <만화광장>에 2년간 연재된 뒤 10권짜리 단행본으로 나와, 당시 서울대 학생회가 선정하는 대학신입생 필독서 목록에 오르는 등 대학생과 젊은 세대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일부대학에서는 ꡔ오! 한강ꡕ에 대한 포럼이 열리는가 하면 술자리의 토론거리로 등장하였는데, 이 만화가 분단과 이데올로기 대립을 재조명하려 했던 80년대 후반의 사회정서에 부합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중년이 되어있는 이들에게 ꡔ오! 한강ꡕ의 출현은 그들 가슴속에 응어리지어있던 그들의 마음의 표현으로, 만화 이상의 인상을 그들에게 각인시킨 것이었다.<yawara-04.jpg-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朴鍾哲)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고문·폭행으로 사망한 사건.당시“책상을 ‘턱’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경찰의 증언을 통해 "탁치니 억하더라"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 사건과 관련된 일련의 추모집회와 규탄대회는 개헌논의와 연결되면서 6월항쟁으로 이어져 1987년 민주화운동의 촉발제가 되었다.><ywara-05.jpg-만화 ꡔ오! 한강ꡕ>


허영만의 만화 중에 문화적 파생력이 제일 강한 것으로 두 작품을 뽑으라고 한다면 역시 ꡔ날아라 슈퍼보드ꡕ와 ꡔ타짜ꡕ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작품은 허영만의 전체 작품을 통틀어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가장 성공적으로 대중들에게의 인지도를 확립시킨 작품들이다.
ꡔ날아라 슈퍼보드ꡕ는 1986년 <만화왕국>에 연재 시작된 것으로, 중국의 ꡔ서유기ꡕ를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려 주인공 미스터 손과 삼장법사 일행을 중심으로 한 코믹한 모험을 그린 작품이다.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ꡔ날아라 슈퍼보드ꡕ는 1990년 KBS TV애니메이션으로 에서 첫방영을 시작하여, 1차 시리즈 방영시 TV 시청률 42% 점유율 45~55%, 2차에서는 78%로서 사상 최초로 시청률 1위에 오른다. 이와 같은 시청률에 힘입어서, 이 작품은 국내 창작 프로그램 중 최다 에피소드의 장수 애니메이션 프로로 방영되어, 최근 시리즈로 2001년의 ꡔ날아라 슈퍼보드 5탄 '환상여행ꡕ까지 제작되었다. 애니메이션의 인기뿐만 아니라 가수 김수철이 부른 동명의 주제가가 경쾌한 멜로디와 가사로 인해 응원가나 선거 방송용으로 불려지는 등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한편, 1988년 이후로는 사오정 시리즈라는 개그 시리즈가 유행하기도 하였는데, 예를 들어 이런 이야기들이다. “어느 날 사오정 집에 강도가 들어왔다. 강도가 사오정에게 칼을 들이대며 ‘죽을 준비를 해라’ 라고 말하자 사오정은 ‘우리집엔 밥밖에 없는데요’ 라고 했다.”라는 식의 유머다. ꡔ날아라 슈퍼보드ꡕ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사오정은 귀가 파묻혀 있는 신체구조로 인해 남들의 얘기를 엉뚱하게 듣고 행동하고는 하는데, 그 캐릭터에 재미를 느낀 사람들이 우스개 소리를 만들던 것이 시리즈화 된 것이다. 그 외에도 무대를 게임으로 옮겨 3인용 액션 게임 ꡔ날아라 슈퍼보드 3ꡕ, 롤플레잉 게임인 ꡔ날아라 슈퍼보드 환상 서유기ꡕ,  액션 게임 ꡔ날아라 슈퍼보드 외전ꡕ, ꡔ미스터 손과 하이드로퀘스트ꡕ 등의 다양한 게임으로 제작되어 그 문화적 파생력을 더하고 있다.  ꡔ날아라 슈퍼보드ꡕ는 한국에서 한 컨텐트를 통해 복합적인 미디어들 간의 융합 현상과 파급 효과로 효율성을 높이는 미디어믹스를 보여주는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yawara-06.jpg-국내 창작 프로그램 중 최다 에피소드의 장수 애니메이션 프로로 방영된 애니메이션 ꡔ날아라 슈퍼보드ꡕ.그림은 ꡔ날아라 슈퍼보드 5탄 '환상여행ꡕ 만화원작에 기반을 둔 전작과 비교해 오리지날 케릭터와 스토리로 만들어졌다.>

ꡔ타짜ꡕ는 1989년 도박을 통한 비참한 주인공의 말로를 보여준 ꡔ48+1ꡕ이 1995년 박상민, 심혜진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진 이후, 허영만이 2번째로 내놓은 도박만화다. ꡔ타짜ꡕ는 도박 기술자를 일컫는 은어로써 화투나 카드게임에서 마술과 같은 손재주와 테크닉으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2000년 <스포츠 조선>에 연재한 이 만화는 농촌의 한 청년이 친구와 함께 도박판에 가면서 시작된다. 조금만 더하면 돈을 딸 수 있다는 생각에 집의 목돈을 날려버린 주인공은, 집을 나와 기술자들에게서 도박의 기술을 하나하나씩 터득해 나간다. 이 작품은 당시의 암울한 사회와 인간상들을 리얼하게 그린 성장 만화적 특성을 무기로 독자들로부터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게 되었다. 1부 지리산 작두의 고니, 그리고 고니의 조카 이야기를 다룬 2부 신의 손에 이어, 3부 윈 아이드 잭에서는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유사한 복수 구조를 담고 있고 4부에서는 카지노로 도박의 무대가 옮겨진다. 서로 다른 인물과 배경을 바꿔가며, 도박판을 둘러싼 인물들의 배신과 갈등, 의리, 복수, 그리고 사랑 등이 얽어놓음으로써, 긴장감을 구성해내는 동시에 상상을 뛰어넘는 반전을 주는 것이다. 3년이 넘게 이어온 이 만화가 지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현재에도 ꡔ타짜ꡕ의 문화 파생력은 계속해서 그 힘을 더해가고 있다.<yawara-07.jpg-1부 화투로 시작해 4부 카지노까지 도박판을 둘러싼 인물들이 이야기로 인기를 얻은 타짜>

2000년 IT업계의 붐과 함께 한게임 등의 인터넷 게임업체가 등장한다. 당시 인터넷을 통한 게임이 바둑이나 장기, 바람의 나라 등의 게임이 주류였던 시대에 게임 사이트인 한게임은 고스톱이나 포커류의 성인용의 보드게임을 내놓는다. 이로써 종래에는 명절이나 잔치 등 특별한 날에 했던 이런 도박게임들이, 이제는 인터넷으로 통해 언제나 즐길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비슷한 시기 만화 도박판을 배경으로 한 ꡔ타짜ꡕ라는 만화의 등장은 문화적 파생력을 인터넷 도박 게임들과 연계해 폭발적인 영향을 줘 한게임, 넷마블 등의 게임업체가 코스닥에 상장될 정도로 성장하기에 일조를 하였다.
ꡔ타짜ꡕ가 직접적으로 도박 게임들과 연계를 갖게 된 것은 2003년 네오위즈의 세이게임을 통해서로, 세이게임은 ꡔ타짜ꡕ에 등장했던 하이로우라는 포카 게임의 일종인 일명 바둑이라는 카드게임을 서비스하게 된다. 게임포탈들의 수익은 게임상에 거래되는 사이버 머니인 게임머니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서비스 업체들은 게임머니를 채워주는 아이템 등의 판매를 통해 사용자들에게 수익을 얻는 것이다. 세이게임은 바둑이를 서비스하면서 게임머니를 충당하는 방법으로, 만화 ꡔ타짜ꡕ를 온라인상으로 구입하면 게임머니를 일정부문 주는 식의 서비스를 채택하였다. 사용자들은 게임을 하면서 소진된 게임머니를 만화를 보면서 채우게 되었는데, 만화의 내용이 게임과 연관되기 때문에 서로간의 연계성은 잘 맞아 떨어졌다. 게임과 ꡔ타짜ꡕ의 연계는 월 매출이 억대를 넘는 이익을 보게 하면서 온라인 업계에 컨텐츠와 게임을 연계시킨 성공적인 서비스로 평가받는다. 직접적인 만화컨텐츠 외에도 가상세계의 자신을 표현하는 케릭터인 아바타에도 ꡔ타짜ꡕ의 케릭터와 배경들이 사용자들의 인기를 얻었다. 2003년 7월에는 ꡔ타짜ꡕ의 케릭터를 이용한 ꡔ타짜 맞고ꡕ와 ꡔ타짜 고스톱ꡕ이라는 게임이 개발되어 게임포탈사이트인 엠게임(www.mgame.com)에서 인기리에 서비스되고 있다. <yawara-08.jpg-타짜의 케릭터들과 음성 등을 첨가하여 만들어진 게임 타짜맞고와 타짜고스톱은 2003년 인터넷 도박게임의 인기에 맞춰 인기를 얻고 있다.>
도박이라는 소재는 방송에도 영향을 주어 드라마 ꡔ올인ꡕ을 통해 대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2003년 1월 SBS를 통해 방영된 이 드라마는 현존하는 라스베가스의 도박사 차민수를 주인공으로 한 노승일의 동명소설을 이병헌, 송혜교 주연으로 하여, 도박이란 소재를 배경으로 주인공의 사랑과 성공을 그려 시청률 1위의 인기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도박문화의 열풍은 2004년 여름개봉을 예정으로 한 ꡔ타짜ꡕ의 영화로 이어져, 이후로도 ꡔ타짜ꡕ의 문화적 파생력은 계속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yawara-09.jpg-2003년 1월부터 방영을 시작해 시청율 1위를 기록한 이병헌, 송혜교주연의 도박 드라마>

20003년은 인터넷시대를 넘어 모바일(mobile) 문화 시대라고 불리우고 있다. 모바일은 본래 '움직일 수 있는'이라는 뜻으로, 휴대폰과 휴대용개인정보단말기(PDA) 등과 같이 이동성을 가진 것들을 총칭한다. 단순히 통신 수단이나 메모 등의 용도로 쓰였던 모바일이 기술발달로 인해 새로운 매체로서 등장하게 된다. 휴대폰이나 PDA를 통해 인터넷에 연결, 뉴스를 보는가 하면 케릭터를 다운받아 꾸미고, 게임을 즐기는 등의 변화된 문화는 2003년들어 활발한 변화로 꼽히고 있다. 매체의 변화에 맞춰 허영만의 만화들도 모바일 게임으로 속속 등장한다. ꡔ미스터 큐ꡕ, ꡔ비트ꡕ, ꡔ아스팔트 사나이ꡕ, ꡔ변칙복서ꡕ, ꡔ날아라 슈퍼보드ꡕ 등이 그것이다. 이들 게임은 숨은그림찾기, 퀴즈, 액션, 스포츠, 레이싱, 슈팅 등 만화만큼이나 다양한 게임 장르로 사용자들에게 다가섰다. 게임조선의 기사에 의하면 날아라 슈퍼보드의 경우 2003년 6월1일부터 SK텔레콤 NATE에 서비스된  `날아라 슈퍼보드` 모바일게임이 오픈과 동시에 NATE `6월 추천게임`으로 선정되고, 서비스 20일만에 다운로드 6만건을 돌파하는 등 호응을 얻었다. 날아라 슈퍼보드의 인기에 대해 제작사는 익숙한 케릭터의 영향이라고 말하고 있다. <yawara-10.jpg-허영만의 모바일 게임들 왼쪽부터 미스터큐, 비트, 아스팔트 사나이, 변칙복서>

이 밖에도 1991년 <스포츠 조선>에 연재한 자동차 기업만화 ꡔ아스팔트사나이ꡕ가 1995년 이병헌, 정우성 주연 드라마로 만들어져 신세대 스타 정우성을 탄생하게 하였다. 한편 1994년 같은 신문에 연재한 직장인들을 소재로 한 독특한 기업만화  ꡔ미스터 큐ꡕ가 1998년 김민종, 김희선 주연의 동명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방영 당시 시청률 50%를 넘으면서 그 해 최고의 인기 드라마가 되었다. 또, 1994년 같은 해 <영챔프>에서 연재를 시작한 ꡔ비트ꡕ 역시 1997년 김성수 감독에 의해 영화로 옮겨지게 되는데, 이것은 90년대 새롭게 등장한 신인류, 엑스세대를 다룬 작품으로, 대중예술의 최대소비자가 된 이들 신세대들의 일종의 성장만화다. 정우성, 고소영 등의 신세대 스타들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신세대보고서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1997년 흥행 4위를 기록하는 인기를 얻었으며, 당시 정우성이 한 헤어스타일과 오토바이 등이 화제를 일으키는 등 ꡔ비트ꡕ는 그 해의 영향력있는 한국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2003년 8월 제7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축제(SICAF) 개막작으로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인 ꡔ망치ꡕ도 또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허영만의 1990년 원작 만화를 동명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ꡔ망치ꡕ는 온 가족이 즐겁게 볼 수 있는 가족용 애니메이션으로서 손색없는 평가를 받았다. 이상에서 보는 것들과 같이 허영만의 컨텐트를 통해 문화적 파생력을 갖춘 작품이 현재에도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중인 것이다.


<결론> 허영만이 소재로 삼았던 대상은 그가 작품 활동을 한 30년동안 실로 다양하다. 역사물, 공상과학, 권투, 야구, 당구, 골프, 경마, 도박, 자동차, 직장인, 세일즈맨, 정치, 요리 등에 이르기까지 그가 그린 만화만큼이나 많은 소재를 삼고 있다. 그가 소재를 담는 것은 그 당시 시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그것은 그 시대가 중심삼아 움직이고 있는 대상을 소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허영만의 변화에 대한 노력은 그가 2000년 7월에 한 <조선일보> 인터뷰에서도 나타난다. “내가 스스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은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 그림을 그릴 때면, 언젠가 그렸던 표정, 비슷한 구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건 독자에 대한 기만 아닙니까. 곧 5년을 마감할 때입니다. 그 때까지 새로운 작품에 대한 구상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결심을 해야겠죠. ꡔ타짜ꡕ를 통해 인기를 얻고 있을 무렵 그는 또 다른 뭔가의 소재를 고민했고 그 결과가 지금 <동아일보>에 연재중인 요리 만화 ꡔ식객ꡕ이다.

다작을 했던 한국 작가들에 비해 적은 수의 만화를 만들어냈던 허영만의 작품들이, 80년대를 거쳐 90년대를 지나 2000년도에 이르기까지 30년의 세월동안 점점 문화 파생력을 더욱 더 증폭시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변화되는 시대의 문화적 흐름을 읽고 그 흐름에 맞춘 작품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 시류에 편성한 만화가 아닌 그 문화보다 한 단계 앞서서 그 흐름을 짚고 자기만의 개성을 첨가하여 새로운 문화를 이끌어낸다. 이것이 허영만의 만화가 출판물로만 끝나지 않고 다른 분야에까지 연쇄적으로 문화적 파생력을 일으키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