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2/메모

책읽는 부자

은바리라이프 2007. 12. 14. 18:59

며칠 전 출판계에 있는 후배가 책을 한 권 보내왔다. 모 경제 일간지의 출판부 직원으로 일을 하다가 연초에 독립하여 창업을 한 친구였는데, 첫 책이 나왔다며 보내준 것이었다. 소위 요즘 잘 팔린다는 재테크 분야의 책이었고, 부자가 된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 어떻게 같고 다른가를 조목조목 사례를 열거하며 해설한 책이었다. 그러면서 부동산이나 주식, 채권이나 적금 등을 통해 돈을 불리는 방법들에 대해 필자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들까지를 예로 들면서 길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 문학이나 역사 등의 인문학 분야 책들을 주로 읽고 또 만들기도 하는 필자와 같은 사람으로서는 그 책의 내용 대부분이 그저 난해하거나 동의하기 어려운 것들 투성이로만 느껴졌다. 하지만 부자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지식과 정보로 무장되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필자로서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책의 저자가 현금 자산만 20억 이상 보유한 수백 명의 부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부자들의 55%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멘토(정신적 스승)로 ‘책’을 꼽았다고 한다. 그리고 부자들의 69%는 한 달에 책을 20권 이상, 98%는 10권 이상 읽는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 스스로 부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우선 자신이 한 달에 몇 권의 책을 사서 읽는지 자문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물론 책을 좋아하거나 많이 읽는다고 해서 무조건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작가나 선생님들, 혹은 출판사 직원이나 신문사의 도서 담당 기자들이 최고의 부자 반열에 올랐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책 속에 길이 있다’거나, 부자가 되려면 남들보다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책을 많이 읽는 것 자체로 돈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지금의 이 시대를 사람들은 흔히 지식 사회, 혹은 지식 정보 사회로 규정한다. 그만큼 지식과 정보가 중요하다는 말이자, 더 단적으로 말하면 지식과 정보가 돈이 되고, 지식과 정보가 없으면 더 이상 부자가 될 수 없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유태인들보다 선견지명이 뛰어났던 우리의 부모 세대들은 그래서 논과 밭을 팔아가면서까지 기를 쓰고 자식들을 대학에 보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패러다임이 고착되고 가속화될수록 지식과 정보를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더욱 더 많은 부를 축적할 기회를 갖게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가 직면한 양극화의 진정한 위험성은 날이 갈수록 부자와 빈자 사이의 교육 기회 불평등이 더욱 심화된다는 점에 있다는 진단도 가능해진다. 물질적 부 자체의 양극화도 문제지만, 물질적 부의 기반을 이미 갖춘 부자들의 자녀들과 그렇지 못한 빈자들의 자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교육 기회 자체의 양극화가 더욱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이 이런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소시켜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주 낙천적인 사람이거나 바보 소리를 듣는 사람일 공산이 크다. 우리 사회에서 자녀들의 교육에 대한 집착은 기본적으로 날이 갈수록 심화될 것이며, 양극화 또한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날이 갈수록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부자라고 하면 흔히 지독한 자린고비나 탁월하게 근면성실한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실제로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이 부자가 되었다. 누가 더 일찍 일어나 한 시간이라도 더 노동을 하느냐에 따라 부의 양이 결정되고, 누가 더 한 푼이라도 아끼느냐에 따라 부자와 빈자가 결정되는 시대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건 이제 흘러간 얘기다. 최근에 붐을 이루며 출간되는 재테크 관련 서적들을 몇 권만이라도 사서 읽어보라. 그 내용 자체에 필자처럼 반감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오늘날 부와 재산이 어떻게 창출되고 확산되는가에 대해서는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근면이나 성실, 절약만으로는 부자가 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평생 살 집을 한 채 사더라도 재테크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바보 소리를 듣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니 부동산에 관한 법률이며 세금 지식을 알아야 하고, 어느 지역의 부동산이 오를 것인지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은 정보를 얻어야 한다. 그러자면 꾸준히 책이나 신문을 읽고, 인터넷에 떠도는 사소한 정보라도 속속들이 파악을 하고 있어야 한다. 한 번이라도 주식 투자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식과 정보가 곧 돈이다. 나아가 어떤 재테크 방법이나 비즈니스 분야든, 결국 최종적으로는 지식과 정보를 얼마나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 물론 부동산이나 세금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집을 살 수는 있고, 특별한 정보가 없이도 삼성전자의 주식을 소유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얘기를 하다 보니 필자가 마치 재테크 서적의 내용을 신봉하고 전파하려는 사람인 것처럼 되고 말았다. 하지만 필자가 진정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단 한 가지, 책을 읽어야 경쟁력이 생기고, 경쟁력이 있어야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풍요로운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하고도 단순한 진리다. 어떤 사람은 책을 통해 자기 직업이나 재테크에 관한 지식을 많이 얻어서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책을 통해 인간과 사회, 역사와 문화에 대한 소양을 많이 쌓아서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물론 후자의 효용성에 더 큰 의미를 둔다. 하지만 어느 경우가 되었든 책의 힘을 빌지 않고는 목표 성취가 불가능하다. 인터넷의 바다에 떠도는 신뢰할 수 없는 정보들 대부분은 돈이 되지 않으며, 저녁마다 방영되는 텔레비전의 오락 프로그램이나 선남선녀들의 짝짓기를 다룬 드라마를 통해서 인생의 깊이와 가치를 진정으로 배울 수는 없을 터이다. 어느 경우든 책 속에 길이 있고, 책 속에 답이 있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앞서 소개한 책에서 흥미롭게 읽은 내용 가운데 하나를 더 소개한다. 필자의 예상과 달리, 그 책에 소개된 부자들의 추천 도서 목록에는 재테크 관련 서적이나 실용서는 거의 없었다. 피터 린치 같은 금융권 인사의 책이 목록에 들어 있기는 했지만,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세 권의 책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사기열전>, <로마제국 쇠망사>였다. 부자들도 돈 자체만을 위해 책을 읽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돈 자체에만 집착해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저자의 충고에도 공감이 갔다.

 

1980년 재개점 이래 매년 조금씩이라도 신장세를 보여 왔던 광화문 교보문고의 월별 매출액이, 지난 3월에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는 소식을 어제 전해 듣고 우울해진 기분으로 두서없는 얘기들을 적어보았다.

 

김환기(도서출판 이른아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