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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박사의 경배와 찬양 㟉

은바리라이프 2007. 12. 8. 21:11
동방박사의 경배와 찬양

마2:1-11, 2000,12,24. 늘찬양교회(오후찬양예배)

낮 시간에 우리는 세상 모든 부귀영광을 다 버리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것도 말구유에 오심으로 외롭고 쓸쓸한자 가난한자와 병든자들을 구원하사 하늘의 새 소망을 심어주시기 위하여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는데 오후 시간에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천사들과 큰 별의 알림을 통하여 믿고 순종하여 아기 예수님께 찾아와 엎드려 경배하며 '황금과 유향과 몰약'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동방박사의 찬양과 경배에 대하여 말씀을 증거 하도록 하겠습니다.

. 별을 동방 박사들

우리말 성경에는 '동방 박사들'이라고 써 있는데 동방박사가 무엇 하는 사람들이었을까요?

우리는 쉽게 별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어 성경을 찾아보면 이

들을 가르쳐 "Magi"(매기)라고 되어있으며, 또 다른 번역에는 "Wise men"(지혜로운 사람들)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으로 보아 동방박사는 천문학자보다는 점성가라는 말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이들은 별을 연구하면서 그것으로 개인의 운명을 예언하였습니다. 또한 이들은 당시 왕의 자문관 역할까지 담당했던 막강한 세력이었습니다. 이런 동방 박사들이 자기의 안일과 평안함을 추구하지 않고 먼 거리를 걸어 그것도 이방나라 사람으로 예루살렘까지 찾아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2절)고 말할 정도로 열의와 헌신을 보인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단순히 커다란 별만을 바라보고 무작정 따라나선 것일까요? 아니면 정말 메시야에 대한 대망(大望)을 가지고 찾아온 것일까요?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 예루살렘에 도착한 동방 박사들

동방 박사들은 점성가 들이다보니 확실히 그 별이 메시야의 탄생을 알리는 커다란 별임을 한 눈에 직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여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었거나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동방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하고 물을 때 그때 가서야 유대인들은 허겁지겁 메시야의 탄생에 대하여 서로 묻고 토론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동방 박사들이 그들의 고향을 떠나서 예루살렘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이 그리 쉽지 많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메시야를 만나기 위해서 숫한 고난과 아픔과 어려움을 이겨내야만 했습니다. 낮은 평야만이 아니라 때로는 높은 산을 넘어야 했고, 낮에는 뜨거운 사막을 건너야 했으며, 또 유브라데와 티그리스 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두운 밤하늘에 떠있는 달을 바라보며 집에 두고 온 그리운 가족의 얼굴도 생각도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하루빨리 메시야를 만나서 그 분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일이 더욱 중요한 관심사였기 때문에 동방 박사들은 그리움과 고통도 뒤로 한 채 예루살렘까지 한 걸음에 내달려 왔습니다.

. 메시야를 끈질기게 찾는 동방 박사들

예루살렘에 도착한 동방 박사들은 이제 메시야를 찾는 고통은 모두다 끝났다. 생각을 하고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지나는 행인들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2절)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전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의아한 얼굴로 되묻기를 "유대인의 왕이요, 그분이야 왕이시니까 궁궐에 있겠죠, 궁궐로 가 보시요" 하며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하도 느낌이 이상해서 동방박사들은 다른 사람을 붙들고 똑같이 물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그런데 이번에도 이 사람 역시 메시야의 탄생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은 물론 동방 박사들을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며, " 난 무식해서 잘 모르겠오, 다른 사람한테 가서 물어보시오" 하며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서서히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메시야가 이곳 예루살렘에 탄생하였다면 지금쯤 거리가 온통 시끌벅적 축제의 잔치로 한창 떠들썩해야 하는데 어찌 이렇게 쥐 죽은 듯 조용한가? 우리가 뭔가 잘못 착각하고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닐까? 하며 불안해 있는데 마침 헤롯왕이란 자가 궁궐에서 동방 박사들을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듣기에 당신들이 동방에서부터 왔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하고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서슴없이 " 우리는 페르시아 (동방= 바벨론)에서 별들을 보고 나라와 미래의 운명을 예언하는 점술가올시다. 그런데 저희들이 하늘의 별을 관찰하던 중 커다란 별이 나타나서 우리를 따라 오라 손짓하는 것 같아서 저런 별이라면 분명히 다니엘 선지자가 말하던 메시야의 탄생을 가르치는 별이 아니겠는가? 생각되어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한 걸음에 여기까지 달려오게 된 것입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헤롯왕은 동방의 박사들이 이미 궁궐에 도착하기 전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불러 "메시야가 어디에서 나겠느뇨?"하고 묻고 또 "유대 베들레헴 땅에서 메시야가 나온다."(5절)는 대답을 다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메시야를 만난 것은 아닐까? 염려하여 시치미를 뚝 떼고 동방 박사들에게 물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부탁하기를 "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도 알려주셔서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할 수 있도록 해주시오."(8절) 하며 이들을 풀어주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헤롯왕을 만나고 나오면서 더 의아심만 생겼습니다.「 분명 메시야의 탄생이 맞는 것 같은데 왜 이들은 쉬쉬하며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일까?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 아니면 메시야가 듣던 소문과는 달리 별 볼일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이렇게 궁금즘을 갖고 고민하고 있을 때 이게 웬 일입니까! 9절의 말씀에 있는 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던 그 큰 별이 다시금 이들 앞에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별이 다시금 동방 박사들을 인도하여 아기 예수께서 탄생하신 베들레헴 마구간까지 인도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떠 있더니 또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떻든 동방박사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찾고 찾던 메시야를 만나게 되어서 너무나도 반갑고 기뻤습니다. 이에 대해 본문 10절은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동방 박사들

본문 11절을 보십시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 드디어 동방 박사들은 아기로 출생하신 메시야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장면은 얼마나 동방 박사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크리스마스를 맞는 우리들의 모습은 얼마나 가슴 벅차고 기쁩니까? 매년 돌아오는 성탄절에 더욱이 올해는 퇴출과 실직에 대한 두려움으로 전혀 성탄절의 감격과 기쁨이 다가오지 않습니까? 그것은 물질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미래에 대한 불 확신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닙니다. 단지 동방 박사들처럼 고생 고생하여 아기 예수를 찾아뵙고 경배한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군대를 78년 12월 20일에 군 입대를 하였는데 그때 태어나서 난생처음으로 친구들을 초청하여 생일잔치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별로 기분이 나지 않더군요 군대간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영 마음을 개운치 못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군에 입대하여 성탄절을 처음으로 맞이하였는데 논산의 밤하늘에 떠있는 별들을 바라보며 성탄기념 과자선물 세트를 받아들고 얼마나 울었던지 서러워서 울었던 눈물인지 아니면 군 3년 동안 아무 사고 없이 잘 지내다가 무사히 제대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였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어떻든 논산 훈련소에서의 성탄절의 모습은 남다른 느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동방박사들의 경배에서 눈여겨볼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동방 박사들이 지금껏 자신들을 인도하였던 별에 대한 고마움과 관심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곧 바로 아기 예수께만 경배하며 찬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 옆에는 아버지 요셉과 마리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주 관심사는 오로지 한 분 아기 예수님께 있었습니다. 아마 요셉과 마리아가 서운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들은 누가복음 4장 8절에 있는 대로 " 주 (主)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는 말씀대로 오로지 아기 예수님께만 경배를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성탄절에 있어서 참 경배와 찬양의 대상은 오로지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자세는 그것이 아닙니다. 성탄절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수님께 경배하는 것이 아니고 예배 후에 있을 선물교환에 더 관심이 많고 또 예배 후에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놀이동산이나 백화점에 쇼핑 갈 생각에 더 기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세상 사람들은 산타라는 희한한 사람을 만들어 예수의 관심에서 세상 것에 대한 관심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 귀한 성탄절 전야 그리고 내일 성탄절에 우리는 "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의 왕"(눅2:14)으로 오신 예수님을 몸과 마음과 정성을 드려 진정으로 찬양하고 경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예물을 드린 동방 박사들

11절을 다시 보십시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 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동방박사들은 메시야 즉 아기 예수를 찾아뵙고 그들이 준비해왔던 보배 함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동방 박사들이 드린 찬양과 경배의 정성보다 그들이 드린 황금과 유향과 몰약에 관심을 갖고 그 물건들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냐? 고 묻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과다한 영적 의미를 붙여서는 안됩니다. 황금은 보석 중에서 가장 귀한 것으로 변질되지 아니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유향과 몰약은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얻을 수 있는 향유 가운데서 가장 귀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고로 동방 박사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린 것은 그들이 가장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합니까? 성령의 인도가 감사합니까? 예수님 안에서 얻은 영원한 생명에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하십니까? 모두다 힘들고 어려운 제2의 IMF 시대이지만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정성을 드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합니다. 황금이 없으면 당신의으로 영광을 돌리십시오. 유향이 없으면, 당신의 사랑을 드리십시오, 몰약이 없으면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인생을 그 분 앞에 드리십시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 오늘같이 귀하고 소중한 시간에 예배에 불참석한다는 것처럼 안타까운 사실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엎드려 기도하기를 "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그리고 나의 죽을죄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 져주신 예수님! 작지만 나의 기도와 나의 찬양과 경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내 평생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며 주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합니다. 주여 나를 받으시고,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옵소서!" 기도하며 엎드리는 귀한 새 천년의 성탄절의 모습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